• 완벽한 괴물
    [논술에서 배운다]통제할 수 없는 강력한 존재
        2015년 01월 05일 03: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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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다시 올립니다. 괜히 번거럽게 하는 것 같아서 좀 쉬었는데, 그래도 이런 것쯤은 생각을 해봐야한다 싶어서요.

    이번 문제는 인간이 만든 기계인간(또는 복제인간)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묻습니다. ‘프랑켄슈타인’에서 뽑은 제시문도 있네요. 문제를 푸노라면 기계인간뿐만 아니라 문명 일반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제시문 (나)의 입장에서 (가)의 입장을 심도 있게 비판하라.(500~600자)

    (가) 인간을 물리학, 화학, 그리고 이제 생물학으로 환원하려는 시도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환원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여러 가지 발견을 하게 했다. 이상하게도 이 시도의 윤리적 목적은 불완전하고 타락한 상태에서 인간을 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 중 가장 최근의 것이 바로 유전공학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으며, 최소한 몇몇 전문가들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윌슨의 말을 다시 인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과학자들과 휴머니스트들은 이제 윤리학을 일시적으로 철학자의 손에서 해방시켜서 생물학의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는 제안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는 계속 말하기를 “사회생물학이 순전한 현상론에서 기본 이론으로 바뀌려면 인간의 뇌가 뉴런 수준에서 완전히 설명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 메커니즘을 세포 수준으로 분해해서 종이에 그릴 수 있고, 조립해서 다시 감정을 느끼고 윤리적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어야․․․․․․ 인식은 회로로 해석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도덕성을 얻는 대가로 기계가 되기를 원했던 토머스 헉슬리의 현대판이 아닌가? 인간을 완전하게 하려는 열망은 매우 깊다. 이 열망은 과학을 이용해 인간을 기계로 만듦으로써 동물성에서 해방시키려는 세속적인 형태의 시도로 나타날 수 있다(이론과 실제 모두에서). 이 시도는 공공연한 기계적인 수단뿐 아니라 유전공학적인 수단으로도 추구할 수 있다.

    이 방향으로 가는 첫걸음은 유전적으로 다른 동물을 개조하는 것이다. 웰스(우연히도 그는 헉슬리와 함께 한 해 동안 생물학을 공부했다)는 그의 유토피아 소설『신과 같은 인간 』에서 앞에서 설명한,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을 몇 가지 예측했다. 제목이 가리키듯 웰스는 인간에게 성스러운 특권을 주었고, “인간이 코뿔소에서 결핵균에 이르는 모든 생물을 시험하여 만족스럽게 개조하거나 제거할 것을 요구한다.” 좀 더 최근에는 명석하고 다재다능한 과학자 프리먼 J. 다이슨이 우주에서 살 수 있는 생물을 유전공학적으로 창조하자고 제안했다.

    그의 계획에는 무게가 1킬로그램쯤 되는 ‘우주 닭’이 있는데, 이것은 “제작되는 것이 아니라 유전공학으로 키우는 것이며․․․․․․ 인공지능에 의해 동작하고 태양 전기로 추진한다.” 그는 또한 ‘화성 감자’와 ‘우주 나비’ 등도 생각했다.

    다음 단계는 분명히 인간을 조작하는 것이다. 유명한 분자생물학자 윌리엄 데이는 인간의 진화를 이렇게 예측했다. “인간은 서로 다른 정신적 능력을 갖는 종류로 나누어져서 여러 가지 종으로 분화할 것이다. 이러한 종류 중에서 새로운 종이 태어날 것인데, 이것을 오메가 인간이라 하자. 이 종은 혼자서 또는 여럿이 함께, 또는 기계의 도움으로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의 차원―마치 인간이 진핵 세포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듯이―으로 들어갈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오메가 인간이 유전공학으로 만들어질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예를 몇 가지만 더 들어보자. 노벨상을 받은 생물학자이며 한때 록펠러 대학 총장을 지낸 조슈아 레더버그는 1978년에 이렇게 썼다(요즘이라며 이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슈퍼맨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것에 대한 생화학적 지식의 부족이다.” 여기에서 함축하는 바는 우리가 생화학을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며, 슈퍼맨을 만들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 프랜시스 크릭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자멸하거나 환경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그리고 극단적인 과학 혐오자들이 득세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1000년 안에 인간의 본성 자체를 개선하는 중요한 성과를 보게 될 것이다.”

    명백히 우리는 18세기 철학자 마르퀴 드 콩도르세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바뀐 것은,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는 것이 사회적 노력이 아니라 사회생물학 또는 유전공학이라는 것뿐이다. 완전에 대한 열망은 새로운 모습으로 여전히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 브루스 매즐리시, <네번째 불연속>

    (나) 당신의 증오로 내 머리에 구멍을 내기 전에, 내 애원을 들어주시오. 당신이 지금 나에게 고통을 더하기 전에도, 나는 벌써 충분히 괴로움을 당하지 않았소? 삶은 나에게 고뇌의 연속일 뿐이지만, 나는 내 삶을 두둔해야겠소. 당신은 나를 당신보다 더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내 키는 당신보다 크고, 내 관절은 당신보다 더 민첩하오.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반항하려 들지 않았소.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고, 나에게 생명을 준 주인에게 온순하게 복종할 수 있었소. 당신이 당신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면 말이오. 그것은 당신이 나에게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소. 오, 프랑켄슈타인, 당신은 공평하지 않았고, 나만을 짓밟았소. 당신의 정의, 당신의 관용, 당신의 온정은 당연히 나에게 주어져야 했소.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오. 나는 당신의 아담이 되어야 했지만, 아무 잘못도 없이 쫓겨난 타락한 천사가 되었소. 나는 어디에서나 은총을 보지만, 나에게는 그 은총이 베풀어지지 않았소. 나는 선했지만, 고통이 나를 악마로 만들었소, 나를 행복하게 해주면, 나는 다시 선하게 살 것이오.

    …(중략)…

    이제 나는 또 다른 괴물을 창조하려고 한다. 이 괴물이 어떤 성격을 가질지 나는 알 수 없다. 아마 그녀의 짝보다 만 배는 더 사악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살인과 파괴를 일삼을지도 모른다. 그는 인간의 주위에서 벗어나 사막에서 살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그녀는 맹세를 하지 않았다. 분명 생각하고 추론하는 동물이 될 그녀는, 자기가 태어나기 전의 맹세를 지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미워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김새 때문에 혐오를 받았던 자가, 똑같은 모습의 여성이 자기 눈앞에 나타나면 혐오를 느끼지 않을까? 그녀도 그를 버려서, 그는 다시 홀로 남고, 동족에게 버림받아서 분노가 더 커질지도 모른다.

    그들이 유럽을 떠나 신대륙의 사막에 산다 해도, 그러한 동정의 결과로 맨 먼저 생기는 것은 그들의 자식이다. 악마의 종족이 지구상에 퍼지면, 인간은 두려움과 불안에 떨 것이다. 나 자신의 이익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대대로 저주가 될 행위를 할 권리가 있는가?

    ―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슈타인

    사진은 위키피디아

    완벽한 괴물

    ‘비판하라’는 주문을 받으면, 무엇보다 먼저 두 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해야 합니다. 비판하는 글이든 비판받는 글이든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 그 주제에 대한 태도가 다르니까요. 한마디로 비교분석을 잘 하자는 거지요.

    다음으로, 두 글 어디서 차이가 생겼는지를 찾아야 합니다. 이건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상대방 주장이 어떤 전제를 깔고 있는지를 찾아보는 게 좋습니다. 아하, 여기서 차이가 생겼구나, 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게 잘 되면 현실에서도 꽤 유용하답니다. 이를테면 ‘국제시장’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공통점과 차이점에 주목하면 미묘하게 갈라지는 까닭을 어렵잖게 짚을 수 있습니다.

    제시문 분석

    (가)는 유전공학을 활용하여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을 이야기한다. 이 오메가 인간 내지 슈퍼맨은 신체적으로나 지능상 인간보다 탁월할뿐더러 윤리적으로도 완성된 존재다. 이런 인간을 통해 타락한 인간을 구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새로운 인간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이 피조물은 얼굴이 흉하긴 해도 신체적으로는 탁월하다. 게다가 그의 말을 들으면 이성과 감성까지도 갖추었다. 그런데 지금 이 피조물이 화가 잔뜩 났다. 창조자인 프랑켄슈타인이 저를 제대로 품어주지 않아서다. 그래 더불어 살 여자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다. 이에 프랑켄슈타인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이 ‘괴물’이 여자를 얻어 자식까지 얻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적어도 그 일을 인간이 통제할 수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공통점 : (가)가 품은 인간보다 뛰어난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려는 열망을 (나)에서 실현했다. 적어도 신체 능력이 훨씬 뛰어나고 이성과 감성을 갖춘 존재를 만든 것이다.

    차이점 : (가)는 그 새로운 인간이 기존 인간의 불완전함을 극복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의 피조물은 통제불가능한 존재다. 그럴 때 그 강력한 힘은 기존 인간에게 재앙이 되고 만다.

    문제 해결

    (나)로 (가)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는지를 밝혀야 한다. (가)가 바라마지 않는 새로운 인간을 만들었는데 결과는 왜 이리 판이할까? 그것은 (가)에 숨어 있는 어떤 전제가 충족되지 않아서다.

    기본적인 전제는 이 새로운 인간이 창조자의 뜻대로 움직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슈퍼맨이 인간을 불완전과 타락에서 구해주기를 바라는 뜻 말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과연 완전한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의 의도대로 움직여 줄까?

    (나)에서 인간이 새로운 인간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 핵심이다. 왜냐? 완벽한 존재가, 불완전한데다 윤리적으로 타락한 존재의 뜻대로 움직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설령 인간이 바라는 대로 행동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이 그렇게 만든 게 아니라, 새로운 인간의 뜻에 따른 것이다. 한마디로 기존 인간은 새로운 인간에게 어떤 작용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불완전하고 타락한 인간을 쓸어내는 것이 완벽하고 도덕적인 세계를 만드는 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세계는 더 이상 인간 세계가 아니다.

    (나) 피조물은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을 배신한 것일까? 새로운 인간이 창조자의 행태를 본 딴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 인간이 자신을 이용하고 착취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면, 당연히 그것을 따를 것이다. 그가 인간에게 ‘괴물’이 된 것은 만든 자가 그에게 ‘괴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둘의 관계는 ‘힘과 힘’의 관계가 된다. 모든 미래과학영화가 둘의 전쟁으로 귀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새로운 인간을 만드는 것은 과학의 발전으로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새로운 인간을 불완전한 인간이 통제한다거나 그들이 좋은 세계를 만들도록 강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통제할 수 없는 강력한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에게 ‘괴물’이다.

    오늘 우리가 ‘문명’이라 부르면서 자랑스러워하는 것, 그것은 어떠한가? 도처에 괴물이 출현하고 있지 않은가. 세월호는 어쩌면 그 상징일지도 모르겠다. 완벽한 것을 추구하면 할수록 그것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괴물로 되돌아온다. 자식에게라도 완벽을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말 것!

    필자소개
    민주노동당 활동을 하였고 지금은 정의당의 당원이다. 수도권에서 오랫동안 논술 전문강사로 일하다가 지금은 부산에 정착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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