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오스에서의 이상한 설문조사
    [에정칼럼] 문맹률과 문해력 부진 상태에 대한 이해
        2015년 01월 05일 09: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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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겨울로 기억한다. 내가 2년간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원으로 활동했던 라오스 학교로 한국 의료팀을 도와 이동진료를 갔었다.

    그때 치과위생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문항은 20개 정도였고 내용은 아주 쉬웠다. 주식으로 무얼 먹는지, 간식은 주로 어떤 것인지, 음료는 무엇인지, 하루에 양치질은 몇 번하는지, 치과에 간 적이 있는지, 치료를 받은 치아 개수는 몇 개인지 등등.

    그런데 우리 학교 학생들이 이 설문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설문지는 현지에서 라오스어로 번역된 것이었다. 우리 학교는 라오스 북서부의 시골이지만 도청이 소재한 지역의 중심지에 있다. 더구나 이날 학생들 50여 명은 한국 의료팀을 돕기 위해 일부러 불러 모은 우등생들이었다.

    나는 내 서툰 라오스어 실력 때문인가 싶어 교장 선생님께 설문조사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과 작성방법에 대한 안내를 다시 한 번 해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그런데 (학생들의 수준을 잘 아는) 교장 선생님은 나의 부탁대로 간단한 설명에 그치지 않고 아예 설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각 문항, 문항을 차근차근 읽어주고 (객관성이 우려되는) 해설과 예시까지 덧붙여주셨다. 그렇게 해서 50 여부의 설문지가 가까스로 회수될 수 있었다.

    이런 이상한 설문조사는 또 있었다. 이번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직접. 2012년 라오스 산간학교 태양광발전기 지원 사업을 준비하면서 사전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당연히 현지 주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설계되었고, 읍내도 아닌 산간 오지에 위치한 지배적인 민족보다는 소수민족 학생이 더 많은 학교인지라 조사문항은 더 쉽게 작성되었다.

    지난 경험이 있어 설문조사의 객관성은 어느 정도 포기하고 이번에는 머뭇거리는 기색을 파악하고는 바로 문항 하나하나를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이것도 부족. 결국 나의 설명을 가장 잘 이해한 것으로 보이는 선생님들이 나서서 각 반을 돌아다니며 재차 설명했다. 그러나 그 설명을 듣고도 학생들이 설문지를 작성하는 데 또 30분 이상이 걸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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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라오스 재생가능에너지 지원 대상 지역의 도이까오 초등학교 5학년반 수업 모습

    이때까지만 해도 이건 처음 경험하는 설문조사의 낯선 형식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생전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글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털어놓는 게 절대 쉬울 리 없겠지.

    라오스 문맹률과 문해력 부진 상태에 대한 이해

    본격적으로 연구소의 라오스 산간학교 재생가능에너지 지원 사업이 시작되면서 ‘라오스 산간지역 중학생들은 글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라는 나의 문제 인식도 본격화 되었다. 그리고 이는 불행히도 곧바로 ‘라오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로 확대되었다.

    (2008년 한국의 ‘국민의 기초 문해력 조사’에서도 중학생에 비해 성인의 문해력이 상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는 의무교육 과정인 중학교 과정을 수학하면 기초적인 문해력을 보유하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러면 애초 라오스는 초등학교 학생과 비교를 했어야 하는 것이니 나의 이러한 추측의 확대가 전혀 특이한 전개는 아니라는 말이다.)

    라오스 재생가능에너지 지원 사업의 중심축으로서 매번 재생가능에너지 교육이 진행될 때마다 설문조사는 실시되어야 했고 그때마다 문제의 원인으로 추측해 볼 수 있는 것들, 문제의 확대를 충분히 염려할 만한 것들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지금까지 누적된 관찰과 추측으로 나름대로 정리해본 원인은 다음과 같다. 만국 공통으로 문맹, 비문해, 기초 문해력 부진의 원인이 학교 교육을 못 받은 데 있고, 특히 제3세계는 시골, 여성, 소수민족의 취학률이 현저히 떨어져서 그렇다는 너무나 일반적인 진단은 말고.

    라오스 학생들이 아직까지 근대적인 사회체계에 편입되지 않더라도 독립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그럴 수 조건을 가진 가족, 지역공동체의 문화적 습성을 그대로 물려받고 있는 것 같다.

    정말 어린 학생들은 극단의 경우 지금 당장은 홀로 생활할 수 없을지라도 이들은 지금까지 부모나 이웃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굳이 학교 교육을 통해 문자를 익히고 정보를 얻고 앞으로 직업까지 얻어야 한다는 절실한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취학 또는 비진학, 학교 교육을 못 받는 원인으로 일반적으로 지목되는 학교(시설)가 없어서 라든가 학교에 보낼 가족 공동체의 조건이 안 좋아서 라는 등의 경제적인 것들과 구별해 주목해 봐야 하는 것이다.

    (라오스는 경제적 요인과 문해율 사이의 이러한 직접적인 관계를 증명이나 하려는 것처럼 OECD가 등수를 매긴 세계 최빈국들에 속하고 UN이 종합한 최고 문맹률을 나타내는 국가들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기는 하다.)

    경우에 따라서 라오스는 학교 교육을 안 받는 이유로도 이런 경제적인 것보다 문화적인 것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최소한 학교 교육을 받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은 라오스의 문화적 습성은, 미취학 또는 비진학의 학교 교육을 못 받는 이들이 아닌, 현재 학교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인 학생과 학교 교육을 받고 난 성인들의 문해력 부진을 설명하는 데 보다 적합해 보인다. 라오스의 이러한 문화적 습성은 몇 가지 제도와 관찰, 증언을 통해 엿볼 수 있다.

    학교 교육에 적극적이지 않은 라오스의 문화적 습성

    라오스에는 산간오지의 학교들은 물론 읍내 중심지 학교에도 모두 개근상이 없다. 이건 개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으며 그래서 더욱 이를 가치 있게 여겨 상을 주는 제도도 없다는 뜻이다.

    라오스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결석은 물론 교사들의 잦은 수업 결손도 거의 문제시되지 않는다. 수업 결손은 학생사정회의나 학교당원(교사)평가회의 어디에서도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물리적으로 성실한 수업참여가 학교 교육과 문맹률의 관계만큼이나 직접적으로 교육의 질적 수준을 좌우하는 요인이 되는 만큼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산간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재생가능에너지 교육훈련을 마치고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설문지를 정확히 읽었다면 어떤 경우든 서로 반대되는 수치로 답해야 하는 아주 쉬운 교차확인 문항들에 똑같은 수치로 답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개 보통의 주민들보다는 문해력이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직업군임에도 불구, 교사들은 웬만큼 긴 문장이나 많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보통의 문단을 이해하는 데는 물론, 간단한 문장으로 표현된 사칙연산을 수행하는 데도 많은 시간을 요하거나 자기에게 매우 곤란함 과제임을 나에게 표현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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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스 지원사업의 교재들은 가능한 쉽게, 교육은 실기와 현장 실습 위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산간학교 재생가능에너지 지원사업의 베이스캠프는 읍내가 될 수밖에 없기에 나는 늘 라오스를 가면 도청소재지에 위치한 예전에 활동했던 우리 학교 믿따팝(우정) 중학교를 들른다.

    2014년 11월, 다음은 산간학교 학생과 주민들을 위해 재생가능에너지 교재를 만들고 있는 중이라니까 우리 교장 선생님이 교재를 가급적 쉽게 만들라고 당부하면서 들려준 이야기다.

    “7, 8년 전만해도 글을 잘 읽지 못하는 학생이 한 반에 한두 명 정도였어요. 그런데 요즘은 한 반에 열댓 명이 넘어요. 예전엔 글을 읽지 못하면 초등학교 졸업을 시키지 않았는데 요즘은 중학교로 진학하는 학생 수가 (목표치에) 모자라면 안돼서 그런지 그냥 졸업을 시켜버려요.”

    최근 라오스는 2020년 최빈국 탈출을 위한 국내 정책 때문만이 아니라 UN, OECD 공여국들에 제출해야 하는 자료들 때문에 교육관련 기본 통계를 새로이 많이 작성해야 한다.

    이러한 통계의 세부 항목들은 그 자체로 말단의 행정기관과 학교들에 조직의 기본적이고 추상적인 목적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당면한 목표로서 작용한다.

    중앙정부가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직결되는 초소수력발전기나 소수력발전 댐을 통한 전력생산보다, 국제금융기관과 외국기업에 빚을 지고라도 대규모 댐을 짓고 또 그 전력을 팔아 거시경제지표를 높이려고 애쓰는 것과 같은 까닭이다.

    “초등학교를 너무 어릴 때 들어와 글자를 읽지 못하면서 그냥 학교만 다니다가 졸업하는 학생들이 늘어서이기도 한 것 같고.”

    이건 부모들이 보육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무상의 의무교육이 아닌 유아원이나 유치원을 건너뛰고 초등학교를 보낸다는 말로 들을 수 있다. 그러면 취학 전 아동을 돌보거나 교육하는 시설이 없는 변두리나 산간 지역은 더할 거라는 얘기고.

    문맹률과 문해력 부진의 경제적 요인과 문화적 요인

    교장 선생님의 얘기는 얼핏 경제적 수치를 중시하는 국제기구 보고서 때문이라거나 보육비 부담 때문이라거나 모두 경제적인 요인들인 것 같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우선 보육 부담, 라오스는 최근 7, 8년간 꾸준히 10%에 이르는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더욱 우리 학교가 있는 싸이냐부리는 동쪽으론 메콩강 본류를 막는 첫 번째 댐이, 서쪽으론 대규모 갈탄화력발전소가 건설 중에 있어 수 만에 이르는 타이, 베트남, 중국인들 노동자들의 왕래만으로도 눈에 띄는 경제적 활기를 보여주는 지역이다. 그리고 최소한, 내가 보기에 여기 읍내 주민들은 보육비 부담 때문에 초등학교를 빨리 보낼 정도로 어려운 사람들은 아니라는 거다.

    글을 읽지 못하는 중학생 문제의 경우엔 냉정하지만 당장 그 자리에서 묻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러면 그 학생들은 최소한 글은 읽게 만들어서 고등학교로 진학 시키느냐고. 우리처럼 극성스럽지는 않아야 하겠지만 나는 라오스에서 ‘나머지 공부’, 보충수업, 특별반 운영 같은 것을 본적이 없다.

    지금까지 라오스의 교사들은 물론 교육 당국이 학생들의 특별한 교육수요에 대해 언급하거나 연구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여유가 있는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에게 영어나 수학, 과학, 국어 등 부진한 과목을 위해 과외를 시키거나 학원을 보내는 것 말고는 학교운영위원회든 학부모 모임이든에서 학생들의 학력 증진을 위한 논의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다.

    연구소가 라오스 재생가능에너지를 지원하는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가 교육이다. 이의 가장 중요한 수단은 지원과 교육이 필요한 라오스 사람들에게 딱 알맞는 교재다. 이러한 교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라오스 사람들의 문해력 수준을 이해하고 이에 적응하나 그 수준을 향상시킬 바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는 대응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소는 라오스 문맹∙소수민족 학생과 주민을 위한 재생가능에너지 교재를 시작으로 이제 고작 교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문해력에 대한 이해를, 그 연구의 첫발을 내디뎠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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