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가족은 정말 근사해요
    [그림책 이야기]<근사한 우리 가족>(로랑 모로/ 로그프레스)
        2014년 12월 30일 09:40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그림에서 힘이 무지무지 센 오빠를 찾으세요!

    누군가 자기 가족을 소개합니다. 우리 가족은 정말 근사해요! 우선 우리 오빠. 우리 오빠 기분을 언짢게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힘이 무지무지 세서 아무도 꼼짝 못하거든요.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주인공의 오빠가 궁금할 겁니다. 도대체 얼마나 힘이 세기에 아무도 꼼짝을 못할까 하고 말이죠.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이 대목에서 제 글을 읽는 독자들보다 실제로 그림책을 보는 독자들이 더 궁금하고 어리둥절하다는 것입니다. 왜냐고요? 그림에서 주인공의 오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의 그림에는 놀이터를 배경으로 농구대, 그네, 철봉 같은 다양한 놀이 기구와 어린이들과 코끼리 한 마리가 나옵니다. 코끼리는 왼발로 시소의 한 쪽을 밟고 있습니다. 다른 한 쪽엔 네 사람이 앉고 서고 당기며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시소는 꼼짝도 않습니다.

    그림책을 보는 독자들은 그림에서 주인공의 오빠를 찾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설마 주인공의 오빠가 코끼리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누구나 코끼리가 오빠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엄청난 힘으로 시소 반대편의 네 사람을 꼼짝도 못하게 만들고 있는 코끼리 같은 사람, 그가 바로 주인공의 오빠입니다.

    우리가족

    아주 근사한 그림책을 만나다

    주인공은 이렇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자기 가족을 한 사람씩 소개합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때마다 주인공의 가족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점이 참 재미있습니다.

    페이지마다 사람들 속에 동물이 등장하고 동물이 바로 주인공이 소개하는 가족입니다. 같은 형식이 반복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인공이 가족을 소개하는 문장을 읽고 나면 습관적으로 그림 속의 사람들 중에서 주인공의 가족을 찾게 됩니다. 정말이지 사람의 가족은 사람이라는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기가 참 어렵습니다.

    가족들의 특징을 설명하고 그 특징을 동물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이 이렇게 유쾌하고 신나고 기발한 일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멋지게 알려주는 그림책은 정말 처음입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술처럼 특별하고 놀라운 경험을 선사합니다.

    그림책을 다 보고 나니 『근사한 우리 가족』의 표지가 더 더욱 예사롭지 않게 보입니다. 표지에는 원숭이, 기린, 사자, 부엉이, 공작, 사슴 등 다양한 동물들과 한 소녀가 있습니다. 책을 펼치기 전에 이미 각각의 동물들과 소녀의 가족 관계를 짐작해 보는 독자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본문을 펼치면 사람들 속에서 주인공의 가족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곧 페이지마다 동물로 표현된 가족을 발견하고는 놀라게 될 것입니다. 대중의 마음에 아로새겨진 ‘생각의 관성’과 작가의 ‘창의적인 그림’이 만나 아주 놀라운 그림책이 완성된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어떤 동물을 닮았나요?

    『근사한 우리 가족』을 보면 누구나 자기 가족을 재미있게 소개해 보고 싶을 겁니다. 이때를 놓치지 말고 서로가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을 표현해 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과 우리 가족이 생각하는 내 모습은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내가 생각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그리다 보면 가족들에 대한 나의 감정도 다시금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거기엔 분명 사랑하는 마음도 있고 미워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서로 가족의 어떤 면을 사랑하고 어떤 면을 미워하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가족끼리 서로의 모습을 표현하면서 서로의 감정을 드러내고 소통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가족끼리 어떤 점을 사랑하고 어떤 점을 미워하는지 서로 배우고 인정하고 기억하고 배려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서로 다른 성격은 피부색이나 취향처럼 타고난 것이기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일이지 서로 미워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림책 『근사한 우리 가족』과 영화 『대부』

    어릴 때 저는 영화 『대부』를 보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미국으로 이민해서 조직폭력단이 된 이태리 마피아 가족의 이야기가 어째서 명작인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 인간의 역사가 가족의 역사이며 가족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슬픈 자각을 통해 비로소 저는 영화 『대부』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가족을 위해 대부의 자리를 물려받을 수밖에 없었던 알 파치노의 마음을 많은 이들이 공감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대부』의 가족관에는 심각한 가족이기주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는 남의 가족을 희생해도 된다는 폭력적인 가족주의를 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범죄자의 가족이기주의인 것입니다. 또한 가족을 위해서는 구성원의 꿈과 삶을 희생해도 된다는 폭력적인 가족주의도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의 꿈과 삶을 희생하는 것은 이미 가족을 위한 일이 아닐뿐더러 명백한 폭력이며 범죄입니다. 폭력적인 가족주의가 인간의 역사를 폭력의 역사로 만든 것입니다.

    영화 『대부』의 폭력적인 가족주의에 비해 그림책 『근사한 우리 가족』은 공존과 평화의 가족주의를 품은 작품입니다. 가족끼리 서로를 존중하고 평화를 이루는 작품입니다. 우리 가족만큼 남의 가족도 존중하는 작품입니다.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는 것이 공존과 평화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근사한 우리 가족』은 아주 근사한 가족 그림책입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