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춘봉, 그는 사이코패스인가?
    [프로파일러의 범죄이야기] 범죄의 사회적 재해석
        2014년 12월 29일 10: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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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방송에 자주 출연하면서 시사프로그램 PD나 작가들과 이야기를 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그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올해 들어 부쩍 잔혹한 범죄가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데, 실제 그런 범죄율이 높아진 것인지 아니면 그런 사건들만 집중해서 보도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두 가지 요인 때문에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요인은, 경찰을 포함 사법기관의 언론 대응 방침이 변한 것이고 그 다음 요인이 종편의 재승인과 함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유명무실화일 것이다.

    같은 사건이라도 이전의 경우 되도록 공개하지 않는 방향이었다면 현재의 경우 되도록 공개하면서 무엇인가 이슈를 만들려고 한다. 그래야 성과도 내고 승진도 하는 상황인 것이다.

    작년에 이른바 ‘용인모텔 엽기살인사건’이라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19세 남성 심 모씨가 여중생을 살해 후 잔인하게 훼손하고 ‘자수’한 사건인데, 문제는 그 사건을 수사한 팀의 팀원 전원이 승진을 했고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수사계선상의 간부들도 차례로 승진을 했다는 점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경찰이 수사를 해서 살인범을 잡은 것도 아니고 범인 스스로 ‘자수’를 했는데 모두 승진이라니? 그렇다. 눈치 채셨겠지만, 문제의 핵심은, 범인이 누구인지 어떻게 잡는지 어떻게 해야 재발을 막는지가 아니라 되도록 사건 자체를 키워서 대중의 공포심과 호기심을 통해 (정권이나 언론이나) 정치적 사회적 이득을 얻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올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유병언 수사를 통해서, 김형식 청부살해사건 등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사건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다만 그로 인해 얻어질 이해득실을 고려하고 어떻게 하면 더 크게 뻥튀길 것인지 고민하는 상황인 것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이런 경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가능성도 거의 없는 장기밀매, 인육캡슐 등에 대한 루머를 이용하고 본질과는 무관한 조선족들에 대한 과도한 공격 등이 자행되었다. 범죄와 관련된 매우 우려스러운 사회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고 더 증폭될 것이다. 그 이유는 모두가 다 알 듯이 이런 사건들을 정치적 위기에 대한 타개책으로 이용하고 있는 검은 그림자가 상존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개요는 간단하다. 지난 12월 4일 수원시 팔달산 경기도청 뒷산 등산로 옆에서 검은 비닐봉지 안에 든 토막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범인은 재중동포 불법체류자 박춘봉이었고 피해자는 그의 이전 동거녀였다.

    박춘봉

    박춘봉은 동거녀의 변심으로 살해를 계획한 후, 지난달 25일 일하던 공사장에서 휴가를 내고 퇴근, 26일 오후 피해자가 일하는 대형 마트를 찾아가 강제로 데리고 나온 뒤 매교동 전 주거지로 데리고 들어가, 목 졸라 살해한 뒤 매교동 전 주거지와 교동 반지하방 두 군데에서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한 후, 팔달산과 주거지 인근 등을 돌며 훼손한 시체를 버리고 귀가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사건이 이렇게 커진 과정에는, “공간적으로 오원춘 사건의 발생지와 거의 근접해있다는 사실”, “시체를 토막으로 냈다는 사실”, “신장의 일부를 제외한 장기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 등을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확대 과장한 이유였다.

    더구나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런 사실들을 교묘하게 결합하여, 이 사건에서 장기가 없는 이유에 대해 재작년에 인근에서 발생한 오원춘 사건과의 연관성에 집중하면서, 영화 ‘황해’와 같은 조선족들에 의한 장기밀매나 인육캡슐 등과 같은 지점에 주목했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그런 논란의 와중에, 이름 있는 범죄심리학 교수가 인육캡슐의 가능성에 대해 언급을 하면서 논란과 공포는 더욱 확대되었다.

    일반 국민들은 진짜 영화에서처럼 사람을 납치해서 장기를 빼내고 인육캡슐을 만드는 잔혹하고 엽기적인 범죄가 우리나라도 발생했다는 점에 대해 사람들은 경악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사건 초기부터, 시신(일부)의 발견 형태와 그 공간 등에 주목하면서 장기밀매와 인육캡슐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봤다. 이런 범죄들의 경우 대부분 개인이 아니라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조직에 의해 주도되므로 이렇게 노출시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반면 언론에서의 논란이나 국민들의 공포어린 관심과는 달리, 사실 정작 이 사건에서 우리 같은 강력범죄 전문 범죄심리수사관(Profiler)이 가장 주목했던 사항은, 잔혹함이나 엽기성 등이 아니라, 훼손의 위치와 방법, 그리고 유기의 방법과 공간 등이었다.

    (사건 초기에는 사건과 관련된 증거가 매우 제한적인 것이 이러한 사건의 특징이다. 사건 해결 후 이미 다 알려진 증거를 통해 범죄를 평가하는 것이 범죄심리학자라고 하면 사건 초기 몇 안 되는 범죄행동을 통해 ‘수사선’을 도출하고 범인상을 추정하는 것이 바로 ‘Profiler’이다.)

    우선 먼저 일반적으로 언론에서 통용되는 ‘토막살인’이라는 개념이 사실 적당한 표현 방법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 즉 살아있는 사람을 ‘토막’내서 죽이는 것이 아니므로, ‘살인 후 토막(훼손)’이 더 적합한 표현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서 이런 ‘살인 후 토막’은 대부분 사타구니와 어깨 등을 중심으로 훼손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인데 이 사건의 경우 그와는 달리 배꼽을 기점으로 훼손한 것이 특징이다.

    전자와 같이 사지를 중심으로 훼손하는 경우는 대부분 유기 자체를 목적으로 하며 이 때 살인의 동기도 또한 계획성보다는 우발성이 강하다. 즉 우발적인 살해 이후 다급한 마음에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으로 훼손하여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땅에 깊이 묻거나 물속에 투기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반면 이 사건과 같은 경우에는 배꼽 아래의 생식기와 관련된 부분을 의도적으로 감출 때 사용되는 방법으로, 이는 범인이 이런 종류의 훼손에 경험치가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며 우발성보다 계획성을 강하게 추정하게 된다.

    또한 근육과 뼈로 이루어진 (상대적으로 단단한) 부분과 내부 장기(부드러운 부분) 등을 명확하게 분리해서 처리하는 수법은, 경험치를 전제로 범인이 이 사건이나 피해자를 대하는 심리상태를 추정하는데 강력한 근거가 된다.

    신원을 알 수 있는 신체 부위는 멀리, 알 수 없는 것은 가까이, 중간 정도의 것은 그 둘 사이의 중간 정도에서 처리하고, 부패나 설치류 등에 의해 빠르게 처리될 가능성이 높은 장소와 시간도 고려했는데 이 점도 또한 그가 이 전에도 이런 종류의 범죄에 대한 경험치가 있다는 점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또한 이는 범인이 피해자에게 가지는 감정 상태가 일정정도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주도면밀한 판단력과 평가능력, 수행능력, 인내심, 회피능력 등이 범행의 시작부터 종료까지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지 진술하지 않고 있지만 (추정하기는 비교적 단순한 도구와 육체적인 힘을 이용했을 것인데 이는 그만큼 노출되지 않는 최소치의 활동 반경을 의미한다.) 비교적 긴 시간동안 별다른 거부감 없이 꾸준한 작업을 했다는 점 또한 이 범인의 심리적 특성과 이 범죄를 대하는 자세를 추정할 수 있게 한다. 이런 면은 마치 정남규(서울서남부 연쇄살인범)를 떠올리게 한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박춘봉은 사이코패스이다.

    사이코패스로서 범인 박춘봉의 행적 중 눈에 띄는 점은 여성에 대한 소유욕과 과도한 집착이다. 착실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어 피해자의 언니가 본인의 동생을 소개했다고 하는데 실제 동거를 해보니 본성(소유욕과 과도한 집착)이 드러났고 이에 범인에게서 떠나려고 하니까 범인의 소유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행동은 범인의 자존감을 자극하게 되어 존재 자체를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방식으로 살해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과도하게 훼손을 하게 되는 것이고 같은 맥락에서 비닐봉지에 담아 마치 쓰레기 투기하듯이 야산이나 더러운 개울가에 던져버리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사이코패스들은 자신을 잘 감추고 또한 최소한 3명 이상의 이성과 관계를 가진다. 이는 한 여자에게서 만족 못하는 점을 다른 여자에게서 찾고 또 그 여자에게서 만족 못하는 점을 또 다른 여자에게서 찾는 것과 같이 이치이다.

    모두 소유의 관계이지만 본인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더 낮은 집단에서 그 대상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정시간이 지나 효용이 다한 여성은 지금 이 사건과 같이 죽이거나 이에 준하는 방식으로 처리를 한다. 즉 다른 남자를 만나지 못하게 얼굴에 상처를 내거나 여성의 상징 부분(앞가슴, 생식기 등)에 상처를 내기도 한다. 그리고 하나를 처리한 이후에도 별다른 감정의 동요 없이 자신이 처리한 여자와 유사한 유형의 다른 여자를 찾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를 얘기하면 한 가지 언론을 통해 잘못 알려진 오해 하나를 언급하고자 한다.

    통상적으로 헐리우드 영화나 미드(미국 드라마), 영드(영국 드라마) 등에 나오는 사이코패스들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에서의 사이코패스, ‘양들의 침묵’에서의 ‘헥터 박사’ 등과 같이 말끔한 옷차림에 정돈된 몸가짐의 중산층 이상이라고 표현되지만 실제 현실에서의 사이코패스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그것은 문화적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인데 우리 문화 자체가 미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렇게 느낄 뿐이다. 정남규와 같이 막노동꾼 차림의 사이코패스도 충분히 현실적인 것이다. 즉 중산층 사이코패스의 정형화된 이미지는 미국사회에서의 일면적 특성에 대한 반영일 뿐, 곧 바로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범인이 중국과 우리나라를 넘나들 수 있는 조선족이라는 점이다. 주지하듯이 2012년 입국 시 생체정보 등록 시행 이전까지는 입국하는 조선족들의 신원확인이 거의 불가능했다. 게다가 중국은 위조의 천국이기에 타인으로 가장해서 입국하는 방법은 너무나도 흔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 자체로 범죄 발생에 자양분이 되었고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도시 외곽 슬럼화와 상승작용을 일으켜 조선족에 의한 치안불안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번 사건 하나로 조선족 범죄에 대해 너무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지만 충분한 대응이 필요한 것도 또한 사실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이번 사건은 사건 자체에 대한 의미와 함께 매우 중층적인 사회적인 의미를 가진다. 범인 자체가 사이코패스라는 점을 중심으로, 그러한 점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들이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의미 부여를 하고 어떻게 이용을 하면서 또 다른 지배 이데올로기로 만들고 있는지에 대한 매우 전형적인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중들은 혼란을 겪을 것이다. 실제 어떤 사건이 사이코패스에 의한 사건이 아닌 일반적인 살인 사건인데도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 따라) 사이코패스에 의한 살인으로 가공될 수도 있는 것이고 정반대로, 진짜 사이코패스에 의한 살인 사건인데도 여타의 사회적 상황에 따라 그냥 단순한 일반적인 살인 사건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필자소개
    2000년대 중후반 경찰청 범죄심리수사관(프로파일러)과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팀(프로파일링 부서) 재직했다.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이며, 국립중앙경찰학교 (수사) 프로파일링 과목 담당 외래교수이다.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진보정치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임상병리사와 사회복지사를 거쳐 프로파일러의 삶을 살아온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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