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터키-스웨덴 민중의 집 방문기 마지막 편
        2014년 12월 29일 10: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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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 민중의 집 탐방기

    스웨덴 민중의 집 탐방기

    딱딱하겠지만 스웨덴과 터키 민중의 집을 비교해 보자.

    스웨덴에서 민중의 집은 복지국가를 이끈 한 축이다. 잘 알려진 대로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그리고 진보정당의 활동가들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만든 풀뿌리 조직이 민중의 집이다.

    반면 터키 민중의 집 운동은 전투적 반체제 운동의 지역 버전이다. 잘 훈련된 활동가 그룹이 동네마다 거점을 만들고 대중과 함께 투쟁하게 된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닐까.

    스웨덴 민중의 집 운동이 다른 운동과의 협조 하에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현재는 안정 혹은 정체 그러니까 새로운 모색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터키 민중의 집 운동은 신자유주의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정부와 자본에 맞선 투쟁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다.

    스웨덴 민중의 집 운동은 600개에 달하는 민중의 집과 120개의 민중공원 등 이미 확보하고 있는 자원도 막대하고 민중의 집 건물도 소박한 느낌에서 세련되거나 심지어 화려한 외양을 갖춘 곳 까지 다양하다.

    반면 터키 민중의 집 운동은 80-90년대 우리 노동조합 사무실이 동네에 나와 있는 느낌이다. 애써 꾸며 놓은 듯한 실내는 아마 우리도 20-30년 전에 그랬을 텐데 투박하다. 스웨덴 민중의 집은 평화로운 반면 터키 민중의 집은 전투적이다.

    스웨덴 민중의 집 운동은 이미 안정화 단계를 지났다는 점에서 한국의 우파 풀뿌리 운동과도 비교할 만하다.

    한국에서는 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새마을운동중앙회 등 3대 관변단체를 비롯해 각종의 우익 단체들이 지역에 퍼져 풀뿌리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 보수정당의 국회의원과 지역 상공인 모임들, 그리고 지역의 사학 재단 및 복지관, 지역 보수언론 등도 지역 우익 네트워크의 강력한 주체들이다.

    스웨덴은 한국의 이런 시스템이 정반대의 이념적 토대 하에서 구축되어 있다고 보면 맞을까. 두 나라의 네트워크는 각자의 방식으로 주민들에게 공동체적 삶의 경험을 주지만 방향은 정반대다.

    한국의 우파 네트워크는 돈과 권력 나눠먹기라는 이해관계로 연결되어 있는데 반해, 스웨덴 좌파 네트워크는 노동자 교육, 시민 교류, 최근의 이민자 연대 사업 등 여전히 사회운동적 방식이 남아 있다.

    지역사회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 확고하다는 것, 그리고 각자의 헤게모니에 도전할 세력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은 아마 스웨덴과 한국 좌우익 풀뿌리 네트워크의 가장 큰 공통점이 아닐까.

    터키 민중의 집 운동은 반체제적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과거 노동운동과 비교해볼만 하다. 터키 민중의 집은 투박하면 투박한 대로, 주민들의 모임 장소를 갖추고 있고, 어떤 곳은 영화를 볼 수도 있었으며, 도서관 기능을 하는 곳도 있다.

    과거 한국의 노동조합 가운데 어떤 곳은 노동자들이 모여 함께 풍물도 하고 쉴 수도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런 가운데 유지되는 노동자들의 공동체성이 투쟁의 힘이 되었던 것 같이 터키 민중의 집은 주민들 간의 공동체성을 고양시키는 한 장소였고, 아마도 그러한 공동체성이 반체제 운동의 한 토대였다.

    스웨덴-터키

    왼쪽이 스웨덴 민중의 집, 오른쪽은 터키 민중의 집 모습

    스웨덴과 터키 민중의 집 운동의 이러한 특징들로부터 우리가 눈 여겨 봐야 할 점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스웨덴 민중의 집이 이미 오랜 시절 ‘여당’의 지역운동과 같은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운동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운동이 마을공동체 운동의 유행 속에서 사회운동 지향, 현실 정치 참여 같은 것들 보다는 사회 구조 변화와는 동떨어진 공동체성, 중립과 순수를 가장한 정치적 실리주의 같은 것에 점차 매몰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또 하나는 지역 수준에서도 터키 민중의 집 운동과 같은 전투성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지역 수준의 전투적 운동이 있었다. 빈민운동이 그랬고, 철거민 운동, 노점상 운동이 그랬다. 다만 이런 부문 차원의 운동이 아니라 마치 정당운동이 그런 것처럼 자본주의 체제와 자본가 정부에 맞선 종합적 사회운동으로서의 지역 운동이 전국적 수준에서 구축됐던 적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스웨덴 민중의 집과 터키 민중의 집의 차이가 또 있다. 스웨덴은 다양한 사회운동 조직의 연합체 같은 것이라면 터키 민중의 집은 단일한 사상과 단일한 정치노선을 가진 하나의 조직체라는 점이다. 스웨덴 민중의 집은 그 구성과정에서부터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운동 조직 간의 연합인 반면, 터키 민중의 집은 단일한 이념을 가진 활동가 조직이 선택한 운동의 한 방식이다.

    두 방식 모두 장단점이 있겠지만 문제는 한국 진보운동이 양쪽으로부터 어떤 점을 참고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염두에 둬야 할 상황은 이렇다.

    첫째, 노동운동의 지역활동은 산별노조 강화 혹은 비정규직 조직화와 관련해 지난 수년 간 한국 좌파운동의 주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였지만 뚜렷한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대공장 노동운동은 지역 차원의 활동은 거의 못하고 있다.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노동운동이 미약하지만 조금씩 생기고 있다.

    둘째, 진보정당의 지역적 기반은 최근 해산 판정을 받은 통합진보당을 제외하면 거의 완전히 무너졌다. 진보정치의 재건을 위해서 지역운동을 재건하는 것이 급선무다.

    셋째, 지역 시민사회운동은 마을공동체 운동 흐름에 급속히 휩쓸리고 있다. 열악한 조건 때문에 생계 자체가 어려운 좌파 활동가들은 상당수가 마을공동체 운동에 뛰어들었으나 지역 수준의 계급적․급진적 운동을 창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넷째, 최근 몇몇 소비자생활협동조합들의 규모가 커지면서 민중의 집 유형의 지역센터를 건설하는 생협이 등장했다. 이들은 지역 공동체 운동을 위한 거점으로 지역센터 활동을 구상 중이다.

    고집스러운 좌파가 보기에 가장 좋은 것은 아마 터키 민중의 집 같은 방식이 아닐까. 자신들이 독자적으로 주도한 지역 운동이 전국적으로 활성화되어 다른 조직과의 경쟁 속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 아마 이들에게 가장 좋은 그림일 것이다. 이것이 운동성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우리 상황에서 오히려 필요한 것은 스웨덴 민중의 집 운동의 방식이다. 지역 활동에 대한 고민은 있으나 갈피는 못 잡고 있는 노동운동과, 재건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옛날의 감정 때문에 함께 손잡는 건 죽기보다 싫어하는 진보정당들, 자유주의적 운동이 아니라 진보적 지역운동을 하고 싶어 하는 지역사회운동세력들 그리고 지역센터를 새로 지을 만큼 의지와 역량을 갖추고 있는 생협 운동. 이 모든 운동들이 함께 모여 새로운 사회를 위한 거점 공간을 곳곳에 만들자는 구상이 현실로 등장한다면 매우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힘을 보일 것이다.

    물론, 지역운동만 활발하다고 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다. 좌파 지역운동의 전국적 건설 구상은 지역이 아닌 중앙 수준에서의 전략과 어울려 함께 성장할 때만 의미가 있다.

    스웨덴 민중의 집이 여전히 스웨덴 사민당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건 우리가 참석했던 스웨덴 민중의 집 연합회 총회 당일 사민당 전 당수 모나살린이 행사의 핵심 강연자로 초대된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스웨덴 민중의 집은 노동자교육협회, 스웨덴 노총과도 여전히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우리가 만났던 민중의 집 연합회의 젊은 대표는 사민당 의원이었고, 노동자교육협회 의장이었으며, 조만간 스웨덴 노총의 간부로 일하게 될 예정이라고 했다.

    사민당-노총-노동자 교육협회-민중의 집, 각자는 스웨덴 사회를 진보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구상 속에서 만들어진 네 바퀴다. 터키 민중의 집은 노동운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자전거의 앞 뒤 바퀴처럼 함께 달린다. 곳곳에서 지역 수준의 노동자 조직화를 함께 벌이고 있다.

    결론적으로 스웨덴과 터키 민중의 집 운동을 보며 정리된 생각은 이렇다.

    첫째, 전국적 수준으로 좌파 지역사회운동을 광범위하게 펼쳐 나가야 한다. 각자 흩어져 있는 단체들을 모으기만 해도 적지 않은 힘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지역에 갇힌 지역운동이 아니라, 전국을 장악하는 지역운동을 해보자.

    둘째, 노동운동-진보정당운동-마을공동체운동-협동조합운동이 지역과 중앙 두 수준에서 함께 할 수 있는 획기적 구상이 필요하다. 현재처럼 뿔뿔이 흩어져서 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셋째, 이런 활동을 토대로 대중 속에 확실히 뿌리 내리는 진보운동을 새롭게 펼쳐 나가자.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전략적 구상이 필요하나, 이는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중 속에서 나온다.

    해외의 사례는 어디까지나 남의 이야기다. 사례로부터 교훈을 얻고 우리의 과제를 정교화하지 않는다면 더욱 그렇다. 남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바꿀 만한 실력과 의지. 그 가운데 우리에게 남아 있는 건 무엇일까.

    필자소개
    구로 민중의 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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