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녹색을 거부한다
[에정칼럼] 나스카 라인과 한수원 해킹
    2014년 12월 26일 09: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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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다. 산타나 연말에 찾아오는 영화 속 기적을 바랄 만큼 순수한 나이는 아니지만 이맘때는 사람을 들뜨고 설레게 한다.

그러나 올해 크리스마스는 예년처럼 마냥 기다려지지만은 않는다. 최근 있었던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을 대상으로 진행된 해킹 때문이다. 해킹을 한 것으로 밝힌 ‘WHO AM I’라는 그룹은 크리스마스부터 고리 1·3호기, 월성 2호기 가동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였고, 더불어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경우 또 다른 2차 파괴를 공언했다.

후쿠시마 이후로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는 이야기지만 종종 “진짜 한번 크게 사고가 나야 사람들이 정신 차린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만큼 원전이 안전하길 바래본 적이 없다.

모르는 이들이 보면 해킹그룹이 주장하는 원전가동 중단은 탈핵 진영의 요구와 같은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탈핵이 단순히 에너지원에서 핵이 다른 에너지로 대체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탈핵은 핵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로의 전환을 이야기한다. 핵을 사용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핵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즉 핵으로부터 안전하고자 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사회, 안전하고 청정한 에너지를 누구나 사용하는 사회, 그리고 그러한 사회를 민주적인 절차와 합으로 이끌어내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탈핵이고 진정한 녹색인 것이다.

따라서 설사 해킹 그룹의 협박으로 인해 원전 가동이 잠시 멈춘다고 해도 그것은 단순한 사이버테러일 뿐 탈핵이나 녹색의 가치로 포섭될 수 없다.

이번 해킹사건은 필자로 하여금 얼마 전 페루에서 진행되었던 기후변화당사국 총회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2주간 열리는 당사국총회의 첫 주가 지나고 본격적인 2주차 회의로 접어들 무렵 그린피스의 캠페인 사진 하나가 이슈로 떠올랐다.

그 사진은 “Time for Change: The Futures is Renewable”이라는 노란색 문구를 놓인 항공촬영사진이었다. 하지만 이 사진으로 그린피스는 페루 정부와 국민에 공식사과를 해야만 했다.

그린피스

나스카 라인에서의 그린피스 캠페인(방송화면)

이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은 그들이 사진을 찍은 곳이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페루 나스카 라인이었기 때문이다. 약 1500년~2000년 전 나스카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 나스카 라인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한 케이블 방송을 통해 많이 알려진 곳이다.

나스카 라인은 경비행기를 타고 상공에서 봐야 할 만큼 거대하고 누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지 정확하게 밝혀진 바 없는 미스테리 한 세계적 유산이다. 현재는 페루 법에 따라 이 지역에 걸어 들어가는 것은 특별한 허가 없이는 불가능한 지역이다.

그린피스는 1주차 회의동안 아무런 결과를 내놓지 못하는 한심한 회의장에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고 페루에서 가장 의미 있는 장소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기후변화의 가치만큼 고대 문화유산이 가치가 클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우리는 종종 많은 부분에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관심이나 가치에 매몰되어 다른 중요한 것들을 잊을 때가 있다. 환경단체들도 간혹 다른 무엇보다 ‘환경’이 우선되고 강조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치우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오히려 녹색의 가치가 제대로 발현되기 보다는 ‘에코파시즘’으로 비춰지는 부작용을 야기한다.

지금의 해킹 사건도 같은 우려가 들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겠지만 ‘WHO AM I’ 는 결코 녹색이나 탈핵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 그들은 그냥 과격한 환경단체 혹은 아주 많은 환경주의자들 중 일부로 보일 것이다. 이로 인해 오랜 시간 싸워온 탈핵 진영과 녹색진영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려스럽다.

물론 이러한 우려와 해커들의 위험한 행동을 걱정함과 동시에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분명 여기에는 불통의 시대, 아무리 우리가 떠들어도 바뀌지 않는 세상이라는 현실이 있다.

한국에서의 오랜 반핵운동의 역사를 차치하더라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기존 환경단체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도 원자력에 대한 위협을 느꼈고 원자력발전소의 확대 반대 입장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하는 정부의 입장은 변한 것이 없다. 국민의 정서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문제시 되고 있는 Who am I 와 같은 위협적인 방식을 옹호 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런 방식은 오랜 시간 탈핵 진영이 쌓아온 공을 한 번에 무너트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남아있다. 여전히 시한폭탄 같은 원전이 가동 중이란 사실이다. 물론 당장 가동을 중단하고 대안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이상적이 답이긴 하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한가?”하는 문제다. 지금까지 동통 움직이지 않는 정부가 우리의 목소리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방법이 있긴 하냐는 것이다.

필자는 다시 기후변화당사국총회를 떠올려 본다. 페루 리마의 총회장에서 각국 대표단들이 서로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할 때 민중은 스스로의 힘을 모아내는 작업을 했다. 민중포럼을 열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공감하고 연대했다.

결국 답은 느리지만 아래로부터 연대를 통해 우리의 길을 열어가는 것 뿐이다. 진정한 원전으로부터의 해방은 그들과 똑같은 협박과 불통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식과 더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이루어 져야하며 그것이 성공됨으로써 지속가능하고 평등한 사회구조로의 전환이 약속될 것이다.

우리는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올해는 특히 더 잔인했다.

수많은 어린 학생들의 희생을 가져왔음에도 제대로 원인 규명조차 하지 못한 세월호 사건부터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한국의 에너지 시스템과 이로 인한 송전탑과 원전 투쟁, 한국의 ‘갑’질사회를 처절하게 보여주는 웃기면서도 슬펐던 땅콩회항 사건, 그리고 잔인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해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의 가난함을 보여준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까지 이보다 더하랴 하며 내쉰 한숨이 어느 때보다 많이 쌓였다.

하지만 야만의 시대를 견디는 녹색진영은 그들과 다르기 바란다. 아니 다르다. 진정한 녹색의 가치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빛을 바랠 것이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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