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되어버린 불안정
[기고]철거된 꿈돌이, 상실된 유토피아
    2014년 12월 22일 11: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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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와 파키스탄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한국에서도 강연장에서 백색 테러기도가 있었다는 소식이 특별할 것도 없이 다른 소식들과 섞여 뉴스에서 보도되고, 헌정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어느 당이 강제 해산 당했다는 소식 역시 담담하다고 할 만큼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어느 날, 우연히 접한 한 장의 사진이 무디어질 대로 무디어진 내 마음 속에 파장을 남겼다.

그것은 지난 11월 대전 엑스포가 철거되는 와중에 바닥에서 엑스포의 마스코트였던 꿈돌이 동상이 뜯겨져 나가는 사진이었다.

꿈1

꿈돌이 철거 모습

그 이름 그대로, 꿈돌이는 1993년 개최된 대전 엑스포가 나타내는 “꿈”의 상징이었다. 어린 시절, 엑스포 자원봉사 활동을 하시던 할머니를 보러 매주 엑스포장을 찾아가던 나에게 엑스포 행사장은 꿈의 무대였다.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꾸며진 행사장은 미래 인류의 번영을 약속하고 있었고, 유럽관, 오세아니아관, 아프리카관 등에서 접한 이국적인 국가들의 풍경들은 세계화가 낳을 국경 없는 인류의 연대를 예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엑스포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세 가지 전시관을 꼽으라면 럭키금성(LG)이 운영하던 “테크노피아관”, 선경(SK)이 운영하던 “이매지네이션관”, 그리고 대우에서 운영하던 “인간과 과학관”이었다.

테크노피아라는 이름에서 보듯, 기술(Technic)이 미래의 인간을 유토피아(Utopia)로 이끌 것이라는 생각이 녹아 있는 이 전시관들에서 나는 거대한 돔 천장에 펼쳐진 우주의 무한함에 경탄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해본 3D 영상을 보고 너무나 신기한 나머지 화면을 뚫고 내 앞까지 튀어나오는 물방울을 만지러 손을 뻗어보기도 했다.

화면 속에 펼쳐진 경이로운 세계에서 그야말로 불가능이 가능성으로 뒤바뀌어 있었고, 이는 결코 실현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인류의 유토피아적 미래가 21세기에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를 낳게 했다. 21세기, 그야말로 꿈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물론 당시 어린 나이의 나는 역사나 주변 세계에 대해선 이해하지 못했지만, 엑스포가 열리기 직전 소련이 붕괴하면서 냉전이 해체되었고, 한국에선 군부독재 정권이 막을 내리고 최초로 문민정부가 들어선 시점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20세기를 나타내는 냉전과 폭력, 억압이 소멸해가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한국 경제는 나날이 성장하고 있었다. 당시에 대기업에 다니던, IMF 이후의 몰락을 당시에는 결코 예상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언제나 희망에 넘쳐 있었으며, 아들인 내가 어른이 될 미래에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될 것이고,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데올로기의 종말, 군부독재의 종식, 세계화와 좁아지는 지구, 경제성장, 눈앞에 다가온 OECD 가입과 국민소득 1만불 달성. 그리고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사회. 20세기의 마지막 순간들은 찬란한 미래를 예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93년 대전 엑스포의 환상적이고 축제적인 분위기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이 모든 유토피아적 광경들이 눈 앞에 펼쳐질 21세기를 이미 선취하여 지상에 건설해놓은 것처럼 보였다. 21세기. 이 단어가 아직은 생소하고, 또 듣기만 해도 가슴 벅차던 순간들이었다.

 몇 해 뒤 IMF가 찾아왔다. 잔인한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사라진 화염병이 다시 등장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의 집안도 이 비극을 빗겨나가지는 못 했다.

그로부터 몇 해 뒤, 나는 대학에 들어갔다. 이미 모두가 무한 경쟁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한 듯, 신입생들은 과 행사에도, MT에도, 술자리에도 소극적이었고 오로지 자신들의 미래만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진 21세기에, 유토피아의 그림자라고는 없었다. 그 21세기도 이미 14년이 흘렀다. 대전 엑스포의 방문객들 앞에 미래의 번영에 대한 약속이 펼쳐진지도 20년 이상이 지났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한 편에선 취업을 못해 한숨만 쉬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한주 내내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출근하라는 명령이 왔다는 후배들의 푸념 섞인 메시지는 “꿈돌이”를 보며 “꿈”을 키운 세대들의 현 주소를 말해준다.

OECD 자살률 부동의 1위, 연간 노동시간 2위, 노인빈곤률 1위, 저출산 1위, 소득불평등지수 4위. 물론 단지 수치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 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경쟁의 압박과 생존의 위기감을 어떻게 수치화할 수 있는가?

한 여름 땡볕 속에서 40여 일간 단식을 하며 진상규명을 외치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이제 지겨우니 세월호 얘기 좀 그만 하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수십 명이 자살을 했고, 남은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고공농성을 하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귀족노조”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 역시 절벽 아래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인지도 모른다.

일상이 되어버린 불안정. 무한을 향해 질주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경쟁은 인간을 그 가장 내면적인 요소부터 파괴하기 시작한다. 옆에 있는 사람은 밟아 넘어야 하는 경쟁자일 뿐이며,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잡아 먹어야 한다.

이것은 93년,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꿈돌이를 보며 꿈꾸었던 21세기가 아니다. 이것은 휘황찬란한 행사장이 예고한 미래의 광경들이 아니다. 테크놀로지로 인해 펼쳐질 유토피아는, 테크놀로지가 창출한 부를 독점하며 절대적 권력을 누리는 소수의 사람들, 그리하여 땅콩을 껍질째 주었다는 이유로 비행기를 회항시킬 수 있는 권한을 손에 쥔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평범한 사람들은 꿈조차 잃어버렸다. 엑스포의 꿈돌이를 보며 꿈을 꾸던 세대에게는, 그들이 평범하게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내 집과 차를 마련하고, 자녀를 키우며 사는, 극히 평범했던 아버지 세대의 삶의 모습조차도 사치로 느껴지는 삶을 살 거라는 사실, 절망이 일상이며, 절망에서 가까스로 멀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축복이라 위안해야 하는 현실과 마주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말해주었더라면 조금은 좋았을까.

우리의 유토피아는 빼앗겨 버렸다. 대전 엑스포 행사장을 20년 만에 철거하면서 바닥에서 뜯겨져 나간 꿈돌이의 형상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실된 유토피아를 체화한다.

21세기라는 유토피아적 시간 속에서 디스토피아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혹여나 과거에 잠시나마 자신들이 꾸었던 그 “꿈”을 자각한다면, 그리고 자신들이 살아가는 이 삶이 결코 정상이 아니라, 착취의 사슬 속에서 빼앗긴 유토피아의 잔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지금보다는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을, 지금은 빼앗겨 버렸지만 언젠가 우리 모두가 간직하고 있었던 그 소망을, 우리는 다시 꿈꾸어 볼 수 있는 것일까?

필자소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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