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녀사냥과 생존공포의 시대
        2014년 12월 22일 10: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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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주류 미디어들은 대개 한국의 국내 정치 소식을 잘 다루지 않지만,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소식만큼은 많이 비중 있게 다루었습니다. 세계사에서 “형식적인 민주국가에서의 의회 정당의 강제 해산” 사례들이 매우 적어 이번 한국 헌재의 결정이 정말로 세계사적인 이벤트라는 느낌이 들어서일까요?

    서독 공산당 해산(1956년)은 냉전 시기의 가장 유명한 전례가 되겠지만 그대로 비교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분단의 독일에서 그 당시만 해도 좌파로서 서독에서 당을 만드는 것보다 동독으로 이주하는 게 훨씬 더 쉬웠기에 서독 공산당은 1968년 이후에 부활돼도 보통 0,3%의 득표율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해상 당하지 않더라도 동서독 사이의 왕래가 가능했던 분단 초기의 상황에서는 아마도 그 이상의 지지를 얻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 통진당의 잠재적 지지층은 약 7-12%로 추산돼 그 강제해산의 폭력성도 그만큼 훨씬 더 큽니다. 조금 더 비견한 사례라면, 미국의 1954년의 “공산당 통제령” (Communist Control Act)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만 해도 미국 공산당은 상당한 힘을 가진 정치세력이었습니다. 특히 노조에서의 영향력이 컸기에 매카시즘의 타깃이 된 거죠. 매카시즘이 한참일 때 통과된 이 법 아닌 “법”은, 미국 공산당의 강제해산과 당원에게의 형사처벌 (징역 5년까지)을 명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우리 위대한 대한민국은 냉전시대의 미국보다 한층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한 셈입니다. “공산당 통제령”은 통과돼도 미국 공산당의 전 재산 몰수와 법인 등록 취소 등의 조치는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원 수는 약 5천 명으로 급감됐지만 당은 그래도 건재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런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판결 이후 바로바로 당 재산 몰수 등의 조치에 임하는 등 정말 용감한 반공투사로서의 모습을 만천하에 과시했습니다. 역시 이승만과 박정희의 국가다운 용단이죠. 박근혜 공주님은 독일, 미국보다 훨씬 “더” 나아간 셈입니다.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는 냉전기 광풍이 한참일 때의 미국/독일에서의 조치들과, 이번의 한국에서의 폭거는 닮은꼴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 사례들을 살펴보면 법적인 조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빨갱이 사냥”의 핵심은 법외적/경제적 영역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반공 히스테리의 광풍 속에서 정부와 기업이 하나로 똘똘 뭉친 1950년대 초반, 조선전쟁 시절의 미국이나 독일(서독)에서는 “빨갱이”들에게는 정말 “살 공간”이라고는 없었습니다.

    사람은 우선 밥을 먹고 살아야 하고, 대다수가 생산수단의 소유로부터 소외당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밥 먹고 사는 것은 “고용관계”를 뜻하는데, 구직 시에 배경 조사를 당해 “빨갱이”임이 밝혀진 사람은 1950년대 초반의 미국이나 서독에서는 막노동이나 단순 하급사무직 노동 이상의 일자리를 갖기는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할리우드 (미국 연예계) 등 “가시성이 높은” 직장 같으면 아예 공식적인 블랙리스트들이 실재했습니다 (관련 자료 링크). 독일 같으면, 이미 냉전이 다 식어버린 1972년에 신좌파의 부흥을 억제하려는 차원에서 “급진파” 구성원들의 공무원 취직을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베루프스베르보트”이라고 하죠(링크) ).

    헐리우드 10

    사진 설명: 헐리우드에 대한 빨갱이 마녀사냥이 시작되면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 중 자신의 과거 경력을 고백하고 동료들을 고발하라는 미 정부의 요구에 반발하며 끝까지 침묵을 지킨 10명의 헐리우드 배우, 작가, 감독들과 그의 가족들이 항의하는 모습(사진=위키피디아). 

    제작자 가운데 첫 블랙리스트 사람들을 신고하고 해고한 첫 번째 사람은 워너 브러더스의 잭 워너였다. 또 미 정부기관에 협력한 대표적인 인물이 당시 헐리우드 배우연합의 회장직을 맡았던 로널드 레이건(결국 대통령까지 한다)이었다. 그리고 엘리아 카잔 감독과 배우 게리 쿠퍼도 조사위원에 과잉충성을 하면서 출세의 기회를 잡았다. 할리우드의 블랙리스트 사건이 터지자 찰리 채플린, 오슨 웰스, 벤 바르즈만, 존 베리, 줄스 다신 등 수많은 인재들이 유럽으로 망명했다. (편집자)

    그 전에는 “법”은 없었지만, 취직 시 배경조사 때에 “급진파”로 밝혀질 경우 “웬만한” 직장에서 배제되는 것은 불문율이었습니다. “빨갱이 밥줄 끊기”야말로 서방권의 반공 광풍의 핵심이었으며, “당 해산” 등은 어디까지나 그 “장식”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이제 과연 다를까요? 제 예상 같으면 비슷한 코스로 갈 듯합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 잠재적으로 약간이라도 “위협”이 될 만한 모든 사람-특히 노조활동가나 “지식분자” 등-에게 이제 “생존의 공포”가 점차 엄습할 셈입니다. 재학 시 데모 내지 “불순 동아리” 참여 경력은 그렇지 않아도 안 되는 취직을 더더욱 어렵게 만들 것입니다.

    한 때 “불순 정당”에 몸을 담았던 노조 활동가는? 회사 내에서 “재교육”, “관심” 대상이 되고 가장 안 좋은 곳으로 배치되고, 시시각각 감시 속에서 눈칫밥을 먹어야 할 것입니다.

    박사과정 시절에 논문에서 “사회주의” 같은 단어를 긍정적 맥락에서 사용한 신진학자는? 차라리 처음부터 국내 아닌 외국 대학이나 연구소에서의 취직을 알아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신자유주의적 생존공포로 꿍꿍 얼어버린 사회에서 이런 “밥그릇 때리기”는 70년대적인 납치, 고문, 살인 이상의 효율성을 발휘합니다. 데모하다가 잡혀서 동무들과 함께 경찰서에서 구타당하는 것 이상으로, 취직이 제대로 안되고 이런저런 알바 일자리로 몇 년을 혼자서 생활고를 겪는 것이 훨씬 더 무섭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저들이 우리를 “생존 공포”를 통해 신권위주의적 시대에 순치시키려 한다면 우리가 맞설 수 있는 방법은? 그 누구도 절대로 혼자서 고생하지 않게끔 “연대”하는 것뿐입니다. 당 활동 등의 이유로 대한민국에서 국가적, 조직적 이지메를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갹출을 하고, 그 이지메의 케이스들을 널리 공개하고, 더 이상 국내에서 버틸 수 없으실 것 같은 분들을 위해 해외에서의 삶의 가능성들을 알아보고, 그리고 해외 양심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남한의 유사 파쇼적 모습을 여지없이 세계에 알리고. 화염병 이상으로 동지애가 큰 힘을 발휘합니다.

    그리고는 그 어떤 “공산당 통제령”도 15년 후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의 대중적 출현을 막을 수 없지 않았는가요?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통진당의 해산은 끝이 아닙니다. 기나긴 투쟁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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