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자본의 탐욕을 다룬 영화들
    [영화잡론] 자본주의 적나라한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By 문석
        2012년 07월 10일 12: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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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금융위기가 멈추지 않을 기세다. 최근에는 영국의 투자은행 바클레이즈의 리보 금리 조작 사태까지 벌어져 세계 금융시장의 안정성은 더욱 위협받고 있다. 금융위기는 가진 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금융위기가 대대적인 공적 자금 투입으로 마무리되는 현실로 미루어볼 때 외려 이것은 없는 이들의 문제다.

    꼬박 꼬박 내는 세금이 광기어린 금융자본의 손실을 고스란히 충당해주는 데다 금융자본이 빚어낸 피해 또한 없는 이들이 감당해야 한다. 이 미친 금융자본주의 시대는 상위 1%와 하위 99%의 간극을 계속 벌려놓고 있으며 대립 또한 벌어지게 하고 있다.

    세계 금융자본의 중심은 미국의 월스트리트다. 지금의 유럽 금융위기 또한 2008년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그 여파와 충격이 컸던만큼 2008년 월스트리트의 금융위기는 영화에서도 꽤 많이 다뤄졌다.

    광기어린 탐욕의 시대를 다룬 영화들

    그런 점에서 최근 영화들이 이 광기어린 탐욕의 시대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이 주제가 한줌도 안되는 1%의 무리들에 관한 문제라면 다음 회에는 나머지 99%의 문제인 미국 민중들의 빈곤과 불행에 관해서 다뤄볼 계획이다.

    최근 금융위기에 관한 영화를 언급하기 전에 우선 영화가 그동안 월스트리트 등 금융가를 어떻게 다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월스트리트에 관한 가장 유명한 영화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올리버 스톤이 전성기 시절 만든 <월스트리트>(1987)를 택할 것이다. 마이클 더글라스가 연기한 주인공 고든 게코는 영화사에서 가장 악독한 금융가라 할 만큼 비열하고 더러운 수단으로 치부를 한다.

    내부자 거래, 회계부정, 탈세 등 그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돈을 벌어들인다. 고든 게코의 다음과 같은 대사는 그 이전 시대와 구분되는 1980년대 미국 자본주의의 정신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탐욕은 선하지. 탐욕은 올바를 뿐 아니라 제대로 먹힌다고. 탐욕은 진화적 정신의 핵심을 명확히 해주고 그것을 관통하면서 또 그 정신을 담아낸단 말이야. 인생, 돈, 사랑, 지식, 무엇에 관한 것이든 탐욕은 인류를 보다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줬지.”

    현재 금융위기의 출발점을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반 사이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이 나란히 권력을 잡으면서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이 구축된 데서 찾을 수 있다면<월스트리트>와 고든 게코는 그 상징적인 존재다.

    <월스트리트>의 악독 금융가 고든 게코역의 마이클 더글라스

    1980년대 초 미국과 영국은 금융시장에 대한 온갖 규제를 풀어버렸다. 특히 미국의 경우, 이런저런 규제에 묶여있던 투자은행들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힘입어 자유의 몸이 되면서 스스로 몸집을 불려 공룡이 되기 시작했고 투자의 자유를 얻은 저축대부업체들은 방만한 투자를 계속했다. 금리는 계속 낮아져 증시는 팽창했고 부동산 가격은 폭등했다. 반면 생산업은 무방비 상태로 놓아 자동차, 철강 등 전통적인 경쟁 산업은 침체됐고 노동조합을 강력하게 공격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지원함으로써 대다수 정규직 노동자들을 실업자나 시간제 노동자로 전락시켰다.

    밀튼 프리드먼 교수의 가르침을 따라 이제 탐욕은 절대 선의 자리를 차지했다. 탐욕은 자본주의의 유일한 추진력이요, 노동조합이나 협동조합과 공동체, 그리고 평등과 정의라는 논리에 입각한 정부의 규제는 이 ‘위대한’ 전진에 걸림돌일 뿐이었다.

    당연히 이 시대의 영웅의 자리는 트레이더 차지였다. 탐욕의 화신인 이들은 증권, 선물, 상품 등을 거래하면서 하이에나처럼 먹잇감을 찾아내 사자처럼 잔인하게 뜯어먹었다. 기존의 법체계를 벗어난 파생상품과 신종 금융상품은 이들의 강력한 무기였다. 세상은 고든 게코와 같은 부류의 것이 되었다.

    오죽하면 톰 울프가 자신의 소설 <허영의 불꽃>(브라이언 드 팔마가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하기도 했다)에서 트레이더인 주인공 셔먼 맥코이(영화에서는 톰 행크스가 연기)를 ‘우주의 지배자’(master of the universe)라고 묘사했겠나.

    물론 <월스트리트>의 거물 트레이더 고든 게코는 결국 감옥으로 갔고, 사치와 불륜으로 매일 축포를 쏘던 <허영의 불꽃> 속 트레이더 셔먼 맥코이는 우연한 교통사고로 파멸했지만, 그것이 남긴 교훈은 올바로 전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야망과 능력이 있는 젊은이들은 트레이더를 선망하며 불나방처럼 월스트리트로 몰려들었다. 단시간에 엄청난 돈을 벌어 명품으로 온 몸을 치장하고 섹시한 여자들을 주렁주렁 거느리며 저택과 별장과 요트에서 긴 여생을 보내고자 하는 욕망이 아이비 리그를 달궜다.

    1990년대가 되자 고삐 풀린 금융시장은 더욱 광기에 휩싸였다. 1992년 빌 클린턴은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그 유명한 슬로건으로 아버지 조지 부시를 누르고 대통령이 됐지만 그 또한 경제에 관한 한 ‘바보’이긴 매 한가지였다.

    클린턴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을 연임시켰고 골드만 삭스의 회장이던 로버트 루빈을 백악관 경제 보좌관과 재무장관으로 기용했으며 그 아래 세계은행의 래리 서머스를 뒀다.

    이들의 정책으로 금융기관은 이전보다 더 소수에 집중되고 비대해졌으며,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 금융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법이라 할 수 있는 글래스-스티걸 법(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업무를 명확히 구분하는)은 유명무실해졌다.

    이 덕분에 신종 금융상품은 하루가 멀다 하고 개발됐고, 도대체 그 상품이 어떻게 부를 창출한다는 것인지 그 상품에 투자하는 사람조차 이해할 수 없는 지경이 돼버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터진 대표적인 사건이 영국 베어링스 은행 파산이다. 2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이 은행의 파생상품 거래 직원이었던 닉 리슨이라는 청년은 1995년 싱가포르 지점에서 일본 니케이주가지수 선물에 회사 돈을 올인했다. 하지만 그의 예측은 빗나갔고 회사는 14억 달러의 손실을 입고 파산하고 말았다.

    베어링스 은행 파산을 다룬 영화 <겜블>

    이완 맥그리거가 주연을 맡은 <겜블>(1999)은 이 사건을 다루는 영화다. 주인공 닉 리슨은 고졸 출신으로 회사에서 그리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였으나 타고난 배짱과 운으로 엄청난 수익을 만들어낸다. 결국 그는 엘리트 동료들을 제치고 회사에서 인정받는 트레이더가 됐으나 한 순간의 무리수 때문에 회사까지 망하게 만들고 만다. 다소 졸속으로 기획된 듯 보이는 이 영화는 별 대단한 점이 없긴 하지만 당시 트레이더들의 흥청망청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겜블>의 영화 포스터

    트레이더의 삶에 관해서라면 <보일러 룸>(2000)이 좀 더 세밀하게 보여준다. 일확천금의 꿈에 사로잡힌 세스 말린(지오바니 리비시)은 흑인 래퍼의 ‘대박을 내려면 마약을 팔거나 농구를 하라’는 말에 따라 주식이라는 마약을 팔기 위해 트레이더가 된다. 그는 부지런히 일해 돈을 만들어내지만 탐욕은 그를 자유롭게 놓아두지 않는다.

    <아메리칸 싸이코>(2000)는 트레이더의 내면을 파헤치는 섬뜩한 영화다. 금융회사 CEO인 패트릭 베이트먼(크리스천 베일)은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지만 내면은 황폐하다. 그는 결벽증적인 기질과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를 갖고 있다. 겉은 말쑥하지만 이기적이고 성마르며 신경질적인 트레이더의 일반적 기질이 극대화된 그의 비밀은 살인마라는 사실이다. 자기보다 잘났다고, 창녀라고, 자신을 기분 나쁘게 한다고, 그리고 마침내 아무 이유도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그는 현대의 잭 더 리퍼인 셈이다.

    이제 현재의 금융위기로 돌아올 때다. 알다시피 최근의 금융위기는 2008년 9월 세계 4위의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됐다. 리먼의 파산에 가장 큰 공헌을 세운 건 서브프라임모기지였다.

    서브프라임모기지란 비우량 주택 담보대출증권을 의미한다. 한글로 설명해달라고? 어떤 가장이 있다고 치자. 결혼한 지 10년이 된 그는 아이가 커감에 따라 집을 옮기고 싶다. 그는 루스벨트의 미국이 만들어놓은 위대한 전통인 모기지 제도를 이용하기로 한다. 모기지란 자신이 살 부동산을 담보로 장기에 걸쳐 주택 매입 자금을 갚아나가는 제도다. 이 모기지는 주택대부업체를 통해 제공되는데 이 대출 증서는 주로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이라는 모기지 대출 전문 금융회사가 매입해 안정화시켰다. 또 이 대출 증서는 투자은행들도 사들였는데 이들은 이 대출 증서를 CDO(부채담보부증권)이라는 것으로 변신시킨 뒤 다시 패키지로 묶어 투자자에게 판매했다. 이 대출 중 우량한 등급, 즉 대출상환이 원활할 것으로 보이는 것을 프라임, 불량한 등급이 서브프라임모기지라는 것이다.

    아까 그 가장으로 돌아와 보자. 보다 큰 집으로 옮기고 싶어 모기지를 얻으려 하지만 불행히도 쥐꼬리만한 월급만 받는 그에게는 여력이 없다. 그렇게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데 이게 웬일인가.

    2000년대 중반부터 자신처럼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도 좋은 조건으로 모기지가 제공되는 것 아닌가. 아니 주택대부업체에서 제발 모기지를 가져가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한다. 물론 그의 등급은 서브프라임이라 이자율을 상대적으로 높긴 했지만, 집값의 1% 수준만 내고도 일단 집을 얻을 수 있으니 누가 마다하겠는가.

    게다가 그의 머릿속에는 꼼수가 떠오른다. 지금은 부동산 가격 폭등의 시대 아닌가. 이 집을 얻은 뒤 가격이 오를 때 팔면 짭짤한 장사까지 될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당시 서브프라임이 다량 발생한 데는 이러한 수요자들의 꼼수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지만 금융권의 신상품이 더욱 커다란 근원이 됐다.

    금융권에서는 프라임모기지보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증권을 더욱 사랑했는데, 이쪽의 이자율이 높을 뿐더러 대부분 사기로 판명난 교묘한 금융기법으로 포장해 높은 등급의 증권으로 만들어 투자자에게 판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비즈니스 모델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집 없는 사람들은 거의 공짜로 집을 얻을 수 있었고 이 증권을 보유한 업체들은 뻥튀기해서 투자자에게 팔 수 있었으며, 투자자 또한 높은 이자율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장사처럼 보였던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었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한다는 것 말이다. 당시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고 의심한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2005년 한 해에만 6천억 달러가 서브프라임모기지로 대출됐을 정도니까.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무소득, 무직장, 무자산(No Income, No Job, No Asset)이라는 뜻의 ‘닌자(NINJA)대출’이라는 신조어(이 말은 뒤에 소개하는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에서 인용된다)까지 생겼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IT 버블 붕괴, 9.11 사태, 아프간/이라크 전쟁 등으로 단행됐던 미국의 초 저금리 정책이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종료된 것이다. 금리가 폭발적으로 오르자 모기지 대출자들은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연체와 지불불능이 쓰나미처럼 밀려들었고 담보물인 주택들은 쉴새없이 차압당했다.

    집을 빼앗긴 사람들은 졸지에 텐트촌이나 자동차, 심지어 길거리에서 잠을 처하는 신세가 됐다. 부동산 가격은 급속하게 하락했다. 주택의 담보 가치가 떨어지자 소규모 모기지 대출회사들이 파산의 행렬에 동참했다. 마침내 2007년 미국 2위의 서브프라임모기지 대출회사인 뉴센추리 파이낸셜이 파산신청을 했고 이들 업체의 조정자 역할을 했던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조차 파산 위기에 처했다.

    파국을 막기 위해 미국 정부는 2000억 달러를 집어넣어 두 업체를 사실상 국유화했다. 불똥은 서브프라임모기지를 CDO로 증권화해서 거래해왔던 거대 투자은행으로까지 번졌다.

    한때 돈을 다발로 가져다줬던 서브프라임모기지는 이제 그야말로 똥이 됐다. 손실은 쌓여만 갔고, 투자은행의 주가는 바닥을 뚫고 내려갈 기세였다. 결국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가 6천억 달러가 넘는 부채와 낙엽처럼 떨어지는 자사의 주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에 이르렀으며 세계 최대의 보험업체인 AIG 또한 CDO에 대한 보장상품인 CDS 때문에 파산 위기에 몰려 미국 연방정부로부터 173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은 뒤 겨우 회생했다. 뿐만 아니라 골드만 삭스 같은 투자은행까지도 구제금융을 제공받았으며 상업은행과 합병이라는 과정을 겪었다.

    금융위기의 원인과 파장을 다룬 <인사이드 잡>

    대충 짐작했겠지만, 이 모든 사태를 알기 쉽게 설명할 재주가 내겐 없다. 대신 이 사태를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게 해주는 영화 한 편을 추천한다.

    그건 바로 <인사이드 잡>(2010)으로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과 그 파장에 관해 상세하고 쉽게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소프트웨어 업체 대표까지 지냈던 독특한 경력의 찰스 퍼거슨이 연출한 이 다큐멘터리는 당시 관련자들의 인터뷰와 배우 맷 데이먼의 친절한 설명을 통해 금융위기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알게 해준다.

    이 영화 또한 금융위기의 출발점을 레이건 시대로부터 찾는다. 1980년 시작된 신자유주의 금융정책은 클린턴 정부까지 이어져 금융사가 소수에 집중되면서 거대한 위험성으로 가득차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온갖 부정이 행해졌으며 도덕적 해이가 가속화됐다.

    특히 금융사 간부 출신 인사들이 정부 고위 관료로 임명되면서 정부의 규제는 완화일로를 걸었고 금융의 타락은 심화된다. 규제의 바깥에서 만들어진 고수익 고위험의 파생상품이 금융의 주를 차지하게 됐고 이러한 고수익을 바탕으로 금융사 임직원들은 돈잔치에 여념이 없게 된다.

    이 다큐에는 트레이더의 ‘뇌구조’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도 등장한다. 한 연구의 결과, 돈을 벌었을 때 자극받는 뇌의 부위가 코카인을 흡입했을 때 자극 부위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트레이더들 사이에서 마약이 일상화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또한 간부들이나 트레이더나 할 것 없이 공금을 유용해 스트립 클럽이나 매춘을 통한 접대를 해왔다고 한다.

    이 다큐는 금융위기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행크 폴슨에 주목한다. 골드만 삭스의 CEO 출신인 그는 4억 달러가 넘는 주식을 매각한 뒤 행정부에 입성했다. 그가 그만한 ‘손해’를 보고 행정부에 들어왔다면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기대했을 텐데 그것은 바로 금융업계, 특히 ‘친정’인 골드만 삭스에 대한 특혜였다고 이 다큐는 주장한다.

    즉 이 다큐는 2008년의 금융위기의 본질이 제목 그대로 ‘내부자 거래’였다고 밝힌다. 행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투자은행, 보험사, 신용평가기관이 한 통속이 되어 돈잔치를 벌이면서 이 위기가 만들어졌고 그 결과 국민의 혈세로 이들을 ‘구제’하게 됐다는 것이다.

    월가와 관료들이 공모한 '금융사기극'을 다룬 <인사이드잡>

    이 ‘인사이더’ 중 주목해야할 또 다른 분야는 경제·경영학계다. 이들은 금융사의 이사회에 참여하거나 각종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금융회사들로부터 거액을 받아온 탓에 편향적인 입장을 취하게 됐다. 이 ‘인사이드 잡’으로 국가경제가 거덜나게 됐는데도 이들은 여전히 돈잔치를 멈추지 않고 있으며 피해는 국민들이 모두 짊어지게 됐다는 게 이 다큐의 결론이다. <인사이드 잡>은 그 해 아카데미 다큐멘터리상을 받기도 했다.

    <대마불사>, <마진 콜>,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

    <대마불사>(Too Big To Fail, 2011)는 2008년 9월 월스트리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근접해서 바라보는 영화다. 저널리스트인 앤드루 로스 소킨이 쓴 같은 제목의 논픽션에 기반해 만들어진 이 TV(HBO)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은 당시 재무장관 행크(헨리) 폴슨(윌리엄 허트),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폴 지아매티), 티모시 가이트너 뉴욕 연준 의장(빌리 크러덥), 리먼 브라더스의 CEO 리처드 펄드(제임스 우즈), 골드만 삭스의 CEO 로이드 블랭크페인(에반 핸들러) 등이다.

    이 영화는 특히 그해 9월 12일 밤부터 9월 15일 아침까지의 순간에 집중한다. 바로 이때 리먼 브러더스의 위기가 알려졌고 월요일인 9월15일 아시아 증시가 열리기 전에 금융위기를 마무리지으려는 정부와 월스트리트의 줄다리기가 주 내용이다.

    행크 폴슨은 이 주말동안 주요 투자은행 CEO를 워싱턴으로 소집해 리먼 브러더스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이 영화에는 리먼의 리처드 펄드가 한국 산업은행과의 인수 딜에서 거만한 태도를 보이다 거절당하는 장면도 포함돼 잔재미를 준다.

    결국 폴슨은 리먼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하지 않고 파산시킨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지만 파장이 훨씬 커다란 보험사 AIG에는 구제금융을 실시하게 된다. 한 마디로 ‘대마불사’라는 얘기.

    또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인위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투자은행을 정부의 관리 감독 아래에 놓도록 했다고 이 영화는 주장한다. 하지만 <대마불사>가 펼쳐놓는 이야기는 곧이 곧대로 믿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원작은 말할 것도 없다).

    영화에서 폴슨은 자신(과 재무부 주요 직원들)의 출신지인 골드만 삭스를 특별히 배려하지 않고 공정하게 정책을 집행한 것처럼 묘사되지만, 현재 많은 저널리스트들은 폴슨이 골드만에게 일종의 선물을 줬다고 주장한다. 당시 골드만은 AIG에 100억 달러 이상 ‘물려’ 있었는데 구제금융을 통해 이를 가볍게 해소했다는 것이다. 또 리먼의 파산은 골드만의 경쟁자를 걷어낸 것이며, 상업은행과의 결합은 골드만으로 하여금 각종 규제를 피해 영업할 수 있는 결과를 빚었다고 한다.

    아무튼 <대마불사>는 위기감이 극에 달했던 당시 월가와 미국 정부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 영화다. <LA 컨피덴셜> <원더 보이즈> <8 마일> 등으로 한때 주목받았던 커티스 핸슨 감독의 역량은 긴박한 상황을 추적하는 데서 발휘된다. 특급 배우들의 연기 또한 보는 이를 매료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의미는 딱 그 정도까지만이다.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바를 그대로 신뢰하지 말지어다.

    ‘그날’의 분위기가 보다 생생하게 묘사되는 건 <마진 콜>(2011)을 통해서다. J.C. 챈더라는 신인감독이 만든 이 놀라운 데뷔작은 한 가상의 투자은행을 배경으로 24시간동안 벌어진 일을 그려낸다.

    2008년의 어느날, 회사는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이 와중에 리스크 관리 부서의 에릭 데일(스탠리 투치)도 해고된다. 데일은 같은 부서의 젊은 직원인 피터 설리반(재커리 퀸토)에게 ‘뭔가 중요한 것을 발견한 것 같다’면서 그 내용이 담긴 USB를 넘긴다.

    <마진 콜>의 한 장면

    그날 저녁 그 파일을 분석하던 설리반은 이 금융회사가 어마어마한 ‘유독성 증권’(서브프라임모기지) 때문에 치명적인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상급자인 윌 에머슨(폴 베타니)에게 연락한다.

    밤중에 회사로 돌아온 에머슨 또한 그 다음날 바로 회사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는 상급 관리자 샘 로저스(케빈 스페이스)를 호출한다. 샘은 CEO 존 털드(제레미 아이언스)까지 부르고 급기야 심야에 긴급 간부회의가 열리게 된다.

    이 자리에서 털드는 중요한 결단을 내린다. 다음날 하룻동안 이 ‘유독성 증권’을 모두 매각하라는 것이다. 이 골치 아픈 쓰레기를 다른 금융회사로 떠넘기라는 얘기다. 물론 이 계획이 외부에 노출되서는 안 된다. 트레이더들은 이런 식으로 거래했다가는 거래선이 모두 끊길 것이라고 반발하지만 털드는 로저스에게 설득과 협박을 병행하며 이를 성사시킨다.

    이 회사는 누가 보더라도 주말 사이에 망한 리먼 브러더스를 연상케 한다(이 회사 CEO 이름은 존 털드(Tuld)인데 당시 리먼의 CEO는 리처드 펄드(Fuld)였다. 이곳이 리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업체는 비열하고 치사한 방법을 통해 살아났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아직까지 월스트리트를 다룬 영화 중 최고”(<뉴요커>의 영화평론가 데이비드 덴비)라는 평가를 얻었을 정도로 실감나게 월스트리트의 내부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수백만, 수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트레이더들의 아귀다툼에 내가 공감할 게 뭐람”이라는 비아냥 섞인 평가가 있긴 하지만, 이 영화보다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집요하게 묘사한 영화가 없다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영화 속 주인공 중 하나인 설리번은 “MIT에서 공학박사를, 특히 추진력에 관해 연구했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90년대 들어 수많은 공학자와 수학자들이 월스트리트로 영입돼 복잡한 수식으로만 수익과 리스크가 계산되는 여러 종류의 파생상품을 개발했다.

    특히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 이후 ‘냉전산업’이 시들해지면서 이들의 ‘전향’은 가속화됐다. 로켓 공학자였던 그는 월스트리트에 오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다 숫자에 관한 거니까요… 그리고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면 돈이 여기 있으니까요.”

    이러한 분석가들의 숫자 이야기에 대한 상급자들의 반응은 더 걸작이다. 에머슨이건 로저스건 설리번이 말하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기는 매 한가지다. 그들은 “그러니까, 영어로 얘기해 봐”라거나 “도대체 그게 뭘 의미하는 거지?”라고 물을 뿐이다.

    CEO인 존 털드는 아예 종지부를 찍는다. 그는 설리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달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되도록이면 어린 아이나 골든 리트리버에게 설명하듯이 쉽게 말해줘.” 그리곤 한 마디 덧붙인다. “내가 여기 앉아있는 이유는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거든.”

    영화의 후반부, 로저스에게 하는 털드의 일장연설은 월스트리트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섬찟하게 만든다. “그것은 그냥 돈이야. 만들어지는 거라고. 그림이 그려진 종잇조각일 뿐이야. 그러니 서로 죽이거나 할 필요가 없어. 그냥 뭔가 먹기만 하면 돼. 여기에 잘못된 건 없어. 그리고 예전부터 지금까지 달라진 건 없어. (역사적으로 공황 등 경제위기가 벌어졌던) 1637년, 1797년, 1819, 1837년… 1929년, 1937년, 1974년, 1987년- 맙소사 난 그때도 망하지 않았어- 그리고 92년, 97년, 2000년… 이것을 우리가 뭐라고 부르건 간에 모두 똑같아. 계속해서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거야. 우리로선 어쩔 수 없어. 너나 나나 통제할 수 없어. 멈추거나 느리게 할 수도 없다고. 아주 조금도 바꿀 수 없어. 우린 반응할 뿐이야. 그리고 큰 돈을 벌겠지. 올바르게 반응했다면 말이야. 만일 틀린 선택을 했다면 길 한켠에 내쳐질거야. 세상에는 말야 언제나 똑같은 비율의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게 마련이야.”

    <마진 콜>에 비하면 올리버 스톤의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2000)는 싱겁기 짝이 없는 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젊은 트레이더 제이콥 무어(샤이어 라보프)다.

    KZI라는 투자회사에 다니는 그는 자사주에 올 인했다가 파산한다. 이 회사의 주가가 폭락한 것은 라이벌 회사인 처칠 슈워츠의 브레튼 제임스(조시 브롤린)가 퍼뜨린 헛소문 때문이다. 그 사건으로 제이콥이 아버지처럼 여기던 KZI의 대표는 자살까지 하고 만다.

    제임스에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품은 제이콥은 여자친구 위니(캐리 멀리건)의 아버지이자 20여년 전(<월스트리트>에서) 금융 스캔들로 감옥에 갔다 사회에 복귀한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러스)를 찾아간다.

    문제는 위니가 아버지를 경멸한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제이콥은 게코를 몰래 만나야 하지만 게코에게서 동질감을 발견하곤 유사 부자 관계를 맺는다.

    이 영화의 반전은 출소 후 금융자본주의의 비판가가 된 듯 행동하던 게코의 본 모습이 드러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감옥에 가기 전 엄청난 자산을 위니 앞으로 위장해 스위스 비밀계좌에 은닉해뒀다. 그는 이제 1억 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가치가 불어난 자산을 되찾기 위해 제이콥을 징검다리 삼아 위니에게 접근한다.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는 ‘잠들지 않는’ 자본의 속성 보다는 게코 가족 이야기에 더 치중하면서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간간이 2008년 금융위기와 현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긴 하지만, 무딘 날로 변두리만 긁어댈 뿐이다.

    이 영화에서 월스트리트와 그 속의 탐욕이란 심심한 멜로 드라마를 지루하지 않게 하려는 양념 정도의 역할만 한다. 전작인 <월스트리트>에는 비교할 바가 아니니 기대하진 마시라. 대중의 눈높이와 입맛에 맞춰 영화를 만든 걸 보면 올리버 스톤은 시류에 편승해 돈을 만지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돈이 그의 나태한 자장가에는 잠들지 않는다는 사실만 깨달았을 것이다.

    이들 영화로도 만족스럽지 않아 금융위기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면 몇권의 책을 추천한다. 대중음악과 사회문제를 다루는 잡지 <롤링 스톤>의 인기 칼럼니스트 매트 타이비의 <오 마이 갓!뎀 아메리카>(서해문집)은 2008년 금융위기에 관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이다. 이 책에서 그는 한 챕터에 걸쳐 금융위기를 설명하는데, 티파티(Tea Party), 앨런 그린스펀, 상품 버블, 국부펀드, 건강보험 개혁, 그리고 골드만 삭스에 관한 나머지 이야기와 함께 읽으면 미국에 대해 보다 폭넓은 시각을 얻을 수 있다.

    칼럼니스트인 에드워드 챈슬러가 쓴 <금융투기의 역사>(국일증권경제연구소)도 도움이 된다. 비록 1990년대 후반에 쓰여진 책이긴 하지만 2008년의 금융위기가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부터 시작된 자본주의 경제의 항시적인 불안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튤립 투기 당시부터 선물 등 옵션거래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신선한 충격을 준다.

    저널리스트인 윌리엄 크라인크넥트가 쓴 <세계를 팔아버린 남자>(사계절)도 도움이 된다. 1980년 ‘레이건 혁명’이 일으킨 파장이 어떻게 현재까지 악몽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시원시원한 문체로 쓴 책이다. 직접 읽진 않았지만 <금융위기, 누구의 책임인가>(책세상), <세계 금융위기 이후>(한즈미디어), <모든 악마가 여기에 있다>(자음과 모음)도 도움이 될 듯하다.

    미국 자본주의 현실 다룬 두 개의 다큐

    만약 당신이 미국의 자본주의의 현실에 관심이 많다면 최근 DVD로 출시된 두편의 다큐멘터리 <기업의 숨겨진 진실>(The Corporation, 2003)<엔론-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2005)을 강력 추천한다. <기업의 숨겨진 진실>은 자본주의적 기업의 본질을 상세하게 해부하는 영화다.

    그들이 어떻게 (그 더러운) 부를 축적했으며 어떤 (추잡한) 방법을 통해 그 왕국을 유지하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노엄 촘스키, 하워드 진, 마이클 무어 등의 비판적인 코멘트 뿐 아니라 거대 기업 관계자들의 뻔뻔한 이야기도 육성으로 들을 수 있다. <엔론-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은 미국 역사상 가장 커다란 기업 사기라 할 수 있는 2005년의 엔론 사태의 전말을 드러낸다.

    엔론이라는 기업이 공공의 소유물이어야 할 에너지 자원을 가지고 어떻게 거대한 부를 축적했는지, 그리고 현대판 폰지 사기라 할 만한 회계 부정을 어떤 방식으로 저질렀는지, 엔론이 운영권을 확보했던 캘리포니아의 정전사태는 왜 발생했는지, 그리고 부시 정부는 그들을 어떻게 도와줬는지 꼼꼼하게 알 수 있다. 두 편의 다큐멘터리 모두 세계의 여러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았던 영화이니 그 충실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필자소개
    문석
    중앙일보 기자로 있다고 영화가 좋아서 씨네21로 이직하여 현재 씨네21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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