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례 없는 더러운 시대”
    [책소개] 『비굴의 시대』(박노자/ 한겨레출판)
        2014년 12월 20일 11: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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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살아야 올바른 삶일까?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가치를 더 이상 묻지 않는 ‘동물적’ 시대를 살고 있다. 2014년 11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 한 명이 “드럽고 치사한 나라 살기 싫어 죽으려 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시도했다.

    박노자는 이 시대를 “전례 없는 더러운 시대”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사회적 연대 의식은 증발하고, 저마다 자신과 몇 안 되는 피붙이들의 잇속만 추구하고, 타자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각자도생의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비굴’은 자연히 우리 삶을 지배하는 핵심 키워드가 된다. 우리는 ‘냉소의 시대’를 지나 ‘비굴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1등’만을 강요하는 세상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은 생존에 도움이 되는 사람만 골라 사귀고, 친구를 경쟁자로 여기며, 강자에게는 아부하고 약자는 짓밟으며, 동시에 절망의 발버둥을 친다. 개개인은 이렇게 비굴해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이 적자생존의 원리를 체득하며 괴물로 자라나 윤 일병을 구타한 가해자가 된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의식이 세월호를 탈출한 무책임한 선원을 만든다.

    아이를 차가운 바다에 묻고 국가에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인 ‘일베’와 매상이 떨어진다며 유가족이 걸어놓은 현수막을 떼어버리는 상인들. 대한민국은 괴물공화국이다.

    비굴의 시대

    저자는 “이 책을 쓰는 것으로 이런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비굴하고 잔혹한 시대를 철저히 응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문제를 냉철히 진단하고, 우리가 처한 상황과 자신의 모습을 여실히 보자. 그렇게 한다면 각자도생의 시대에 인간 본원의 의무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모범국, 대한민국의 미래는 안녕한가?

    이 책은 우리 시대 가장 급진적이고 예외적인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박노자의 고민과 번뇌를 담고 있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1부에서는 박근혜 정권의 후진성,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사고와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노동자 문제 등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해 다루었다.

    한국은 어떤 자본주의 사회보다도 더 자본주의적 사회, 신자유주의 모범국이다. 여기에 여전히 완고하게 남아 있는 전근대적 요소까지 겹치면서 한국은 그야말로 ‘중세성’과 첨단의 자본주의성이 공존하는 묘한 이중적 사회의 특징을 보인다.

    2부에서는 바깥으로 눈을 돌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정치사회적 문제를 살펴본다. 지난 20년간 세계는 급격하게 돈과 시장에 그 중심 자리를 내어 주고 말았다. 대신 인간은 사회의 주변으로 밀려났다.

    ‘사회 없는 사회’ 혹은 ‘인간의 주변화’로 요약되는 이러한 괴물성은 전 세계가 동일하게 겪는 문제다. 이는 필연적으로 저항을 직면할 수밖에 없다. 몰락의 징후를 보이는 신자유주의의 흐름, 미 제국의 약화, 아랍권과 우크라이나 혁명 등이 이를 보여준다. 2부의 마지막에는 북한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는다. 북한 사회의 야만성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우리의 야만성 또한 외면할 수 없는 부분이다.

    3부에서는 지식인의 한계와 자본의 노예로 전락한 학계에 대해 비판한다. 학문과 진리를 탐구하는 상아탑에서 교수는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제자를 성추행한다. 또한 경쟁에 매몰되어 권력 비판이라는 지식인 고유의 임무를 유기한 채 살아간다.

    신자유주의 시대, 개개인은 ‘1인 기업’이 되어 경쟁적인 서바이벌 게임에 몰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동료를 뛰어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사회의 미래보다 개인의 미래가 앞서는 분위기에서 인문학은 비효율적 학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4부에서는 우리 시대 사회주의와 좌파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루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주의와 좌파란 지난 역사에서 사라진 현실 사회주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비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을 대변하는 하나의 표현이다.

    저자에게 사회주의는 하나의 정치 체제나 집권을 위한 정당 이념이기 이전에, 인생의 의미와 뜻을 되찾기 위한 마지막 보루이자 실존적 운동이다. 그렇기에 사회주의는 박제해서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자신에게서 심각하게 소외된 이 폐허의 세상에서는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되짚어 보아야 할 이념이다.

    대들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면 희망은 시작된 것이다!

    현실은 너무나 절망적이고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만 같다. 괴물을 만드는 이 세상에서 과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과연 출구를 찾을 수는 있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박노자는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상황은 더 악화될 수도 있지만, 잔혹한 시대와 맞서 싸우려는 수많은 사람들과 연대한다면 그 자체가 희망의 씨앗이 될 것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지배층의 요구에 “조금이라도 대들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면” 그것만으로도 상황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갖고 연대와 투쟁을 한다면 당장 문제가 깨끗이 해결되지는 않아도 미친 세상을 뜯어고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반성하지 않는 한 이 지옥의 삶은 무한히 반복된다. 스러져간 이들을 기억하고 고통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할 때, 비로소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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