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학적 안목으로
    직조한 정치경제학 교양서
    [책소개] 『오래된 질문 새로운 답볍』(조계완/ 앨피)
        2014년 12월 20일 11: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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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이후 수백 년간 거대한 지성들이 쌓아 올린 경제학의 핵심 주제와 그 지적 유산들을 총망라한 책.

    경제 전문 기자이자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연구자인 저자는, 오랜 시간 국내외 사회과학 및 인문학 고전 속에 담긴 지적 거인들의 학문적 성취들을 성실하게 탐색하고 채집하여, 그것들이 기획·생산·소비되는 구조와 회로를 830페이지의 방대한 분량 안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제시하고 있다.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은 인간·사회·경제를 둘러싼 오랜 질문에 나름의 답변을 내놓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 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지적 거인들 역시 그 답을 찾기 위해 여러 지적 채석장들을 섭렵했을 것이며, 그 과정을 거쳐 그들은 스스로 또 하나의 거대한 ‘지적 채석장’이 되었다. 이 책은 그러한 여러 채석장을 두루 거닐며 편력하는 방식으로 씌어졌다.

    경제학과 사회과학의 살아 있는 고전들 총망라

    이 책에 등장하는 고전과 사회과학의 거인들은 사상의 DNA가 좌파인지 우파인지를 막론하고 현재에도 세계적으로 유효한 주화鑄貨로서 통용되며 학술적 유행과 혁신의 외풍에 상관없이 여전히 어느 연구실에서나 관심을 누리고 있다.

    저자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되, 어느 쪽의 눈으로 다른 어느 쪽을 비판하고 결함을 지적하거나 근본주의의 가슴과 머리로 ‘해방의 철학’을 옹호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거울에 비추어 들여다보는 방식을 취하면서, 근본적으로 다른 철학과 방법론을 취하는 여러 유파와 학설을 뒤섞어 제시하고 있다. 사상은 대립적이지만, 실은 같은 현상과 사실을 다른 거울로 비추거나 서로 보완해 주는 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질문

    다양한 주장과 가치들이 용광로 속에 한데 어울리는 공존을 염두에 두고, 그것이 책 전편에 걸쳐 관철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저자의 노력은 우리 학문 풍토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시도이며, 이처럼 다양한 가치 지향을 한꺼번에 ‘포괄하는’ 사회과학 책은 (아마도) 지금까지는 없었다.

    방대한 주제들의 얽힘과 스며듦

    이 책은 순수경제학의 세 가지 기본 탐구 주제인 시장 · 개인 · 경쟁에서 출발하여 사회와 정치가 포함되는 집단 · 민주주의와 윤리의 영역으로 넘어간 뒤, 역사로 향하는 징검다리 성격으로서 경제 발전과 제도, 노동규율을 검토하고, 이데올로기와 경제과학, 정치를 거쳐 마지막으로 역사와 지식, 그리고 경제학과 행복에 대한 논의로 나아간다.

    파상적으로 흩어져 있는 여러 주제들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하나로 엮는 작업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지적 모험’이다.

    예컨대 기원전 5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몇 켤레의 신발과 집 한 채의 교환을 예로 들며 ‘교환의 비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이래로, 약 2천 년이 흐른 뒤 존 로크와 카를 마르크스 등 또 다른 인류 지성들이 투입노동(시간)을 제기하며 그 비밀을 해명했으며, 17세기 영국 시인 존 던이 했던 “인간은 섬이 아니다.”라는 말은 1990년에 시카고대학 경제학교수 도널드 맥클로스키의 ‘공조적 경제학’과 연결된다.

    무릇 사회과학 연구는 그 주제를 둘러싸고 경제학 . 사회학 . 역사학 . 정치학 . 철학 . 문학까지 경계와 분과를 넘나들며 이루어지기 마련이고, 복잡한 얽힘과 스며듦, 복사와 재생산, 재창조 과정이 개입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고전 속에서 짚어낸 구체적인 일상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거인들의 지적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은 아니며, 살아 있는 고전들을 일독하자고 주창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지도 않다. 지식의 지평에 우뚝 선 거인들 역시, 자신들이 살았던 당대의 시대적 조건 속에서 좀 더 멀리 보는 시야를 가졌을 뿐이다.

    이 책은 거인들의 사유와 논리들을 통해 구체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외부세계(주로 서구)에 대한 학문적 호기심은 그것이 일정한 국내적 함축을 던지지 못한다면 자칫 자기만의 피상적이고 오만한 지적 유희에 머물기 쉽다”는 말을 경구로 삼아, 한국의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기반으로 우리들의 구체적인 삶과 관련된 맥락을 ‘살아 있는 고전’들 속에서 짚어내고 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더 잘 말할 수도 있는 법이다.

    사회과학을 ‘이야기’로 묶다

    사회학자 라이트 밀스는 “사회학적 상상력은 한 가지 관점에서 다른 시각으로 전이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즉, 정치적인 것에서 심리적인 것으로, 단일 가족 연구에서 세계 각국의 정부 예산 비교 연구로, 또는 석유산업 고찰에서 현대 시 연구로 각도를 옮길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처럼 사색과 감수성으로 사회과학의 문화적 의의를 인식하는 것은, 이제까지 친숙하고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잘 몰랐던 것을 갑자기 깨닫는 새로운 경험으로 이끈다. 시카고대학의 맥클로스키가 “문학적 용어로 경제학에 대해 말하자”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사회과학의 ‘각성의 눈’으로 인간과 세상을 보는 것이나 ‘오막살이 집 한 채’ 따위 소설 제목들이 말하는 감성적으로 전달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다!

    정의와 공리를 논하는 명징하고 냉철하고 메마른 ‘논리’와, 따뜻하고 풀어헤쳐진 감성과 감상의 ‘이야기’를 오가며 사회학적 분석을 인문학적인 필치로 꿰맨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주제는 엇비슷하지만 같은 모양이 다시 나타나지 않고 천변만화하는 만화경萬華鏡을 보는 듯한 신선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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