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권 서울대' 아닌 '서민의 서울대'로
    [기고] 대학의 서열화는 학생들의 인생을 서열화한다.
        2012년 07월 09일 06: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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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열의 정점, 특권의 정점으로서의 서울대는 폐지되어야 한다.

    민주통합당에서 통합 국립대안을 대선 공약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학 개혁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의 대학은 점점 사회적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비싼 등록금을 받고 있지만 졸업생들은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 없다. 국가의 공적 지원은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 수준이고, 교육환경은 최악의 수준이다(교육환경의 가장 중요한 지표인 교수 1인당 학생수가 가장 많다).

    소위 일류 대학들은 교육과 연구에 힘을 쏟기보다는 성적이 좋고 부자인 학생들을 뽑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다.(연․고대를 중심으로 수시 입학 전형 과정에 대한 의혹이 계속 불거지고 있다.)

    사립대학의 비중이 너무 높고, 봉건적 족벌 운영이 계속되면서 대학의 민주주의는 질식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학 서열 체제로 인한 극단적인 입시경쟁으로 초중등 교육이 황폐화되어 가고 있으며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서울대는 해방 이후 대학 서열의 정점에 있으면서 온갖 특권을 독점해 왔다. 대학에 대한 국가 지원이 열악한 가운데에서도 서울대는 다른 국립대학에 비하여 학생 1인당 지원 액수가 3배가 넘는 특권을 누려왔다.

    2010년 현재 고위직 공무원의 26%를 서울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으며, 대기업 임원의 15% 이상을 역시 서울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서울대 출신들이 모든 사회 분야에서 최고 지위를 독점하고 서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끼리끼리 지배하는 서울대의 나라이다. 서열의 정점, 특권의 정점으로 서울대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서울대 정문의 모습

    서울대는 서민의 대학으로 부활해야 한다.

    통합 국립대안은 서울대 폐지가 목적이 아니다. 서울대를 확대하여 모든 서민들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만드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과 학부모들은 SKY(서울대 연대 고대)에 들어가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으며, 최소한 서울에 있는 사립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왜 집 가까이 있는 국립대를 마다하고 등록금이 두 배나 비싸고 생활비가 훨씬 많이 들어가는 서울 사립대 진학에 목을 매야 할까?

    통합 국립대안은 서울대에 대한 특권적 지원을 폐지하고 모든 국립대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하여 전국 국립대의 수준을 현 서울대 수준으로 상향시키려는 것이다. 또한 학생을 공동선발하고 공동학위를 부여함으로써 어느 국립대를 나왔든, 국가가 지원하고 국가가 운영하는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음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통합 국립대안을 서울대 폐지안으로 선전하는 것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특권 서울대는 폐지하는 것이지만, 더 많은 일반 사람들을 위해 서울대를 확대하는 것이다. 통합 국립대안은 서울대의 죽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서울대의 올바른 부활을 위한 대안이다.

    서울대의 나라가 가고 연․고대의 나라가 올까?

    통합 국립대안이나 대학통합네트워크안을 제안하면 가장 흔하게 돌아오는 질문은 ‘연고대가 서울대를 대신하여 최고의 정점에 위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맞다. 연고대가 최고 서열의 대학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다. 최소한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이 열리게 된다.

    사교육비를 쏟아 붓지도 않아도 되고, 아이들을 10년 이상 입시 지옥으로 떠밀어 넣지 않아도 되고, 등록금은 무상이거나 사립대의 1/4 수준의 통합 국립대에 보낼지 아니면 성공의 확신이 서지도 않으면서 막대한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10년 이상 아이들의 고통스런 삶을 지켜봐야 하고, 훨씬 비싼 학비와 생활비를 지출해야 할 연․고대나 사립대에 보낼지 사람들은 고민할 것이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적어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물론 여전히 연․고대에 들어가려고 목 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모든 학생과 학부모에게 선택지가 없다. 일렬로 서열화되어 있는 대학 중에서 한 단계라도 더 높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하여 피나는 경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입시 경쟁에 계속 목매달지 아닐지는 적어도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한국 교육에서는 가히 혁명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더욱이 통합 국립대는 매년 10만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한다. 반면 연․고대는 6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한다. 만약 6천여 명의 연고대 출신들이 우리 사회의 특권을 독점한다면, 10만 명의 통합 국립대 출신들이 이를 수수방관하겠는가? 최근에 단지 반값 등록금이라는 조건 하나만으로도 서울 시립대의 인기가 거의 연․고대 수준에 접근하고 있다. 이는 통합 국립대가 연고대나 서울 사립대와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들을 쉽게 능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만이 대학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교육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분야에서 진보적이거나 민주적인 정책과 대안을 제시할 때마다 보수 세력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것이 경쟁력 담론이다.

    ‘당신들의 대안이 경쟁력을 약화시킬 거야’라는 낙인만 찍으면 너무나 쉽게 담론 투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역시 통합 국립대안에 대해서도 하향 평준화니, 경쟁력 약화니 하는 뻔히 예상되는 카드를 꺼내들고 맹공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글 속에서 객관적 근거를 찾기는 매우 힘들다.

    대학의 본령은 연구와 교육이다. 대학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연구능력이나 교육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사회에서 연구는 천재가 골방에서 획기적인 발견이나 발명을 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협력과 교류를 통해 연구는 전진할 수 있다. 한국 대학의 연구 역량이 떨어지는 근본적 이유는 개별 대학의 교수와 연구자의 수가 매우 적고, 연구비나 연구 환경도 열악하여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합 국립대안은 단순히 공동선발과 공동학위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대학간 협력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다. 전국적 차원의 네트워크와 권역별 차원의 네트워크를 복합적으로 운영하여 연구 역량의 집중과 협력을 가능케 함으로서 연구 능력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것이다.

    연구역량이 강화되고, 교원 1인당 학생수가 감축되면 교육 역량도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통합 국립대안은 학생들이 여러 캠퍼스에 수강을 할 수 있으며, 학점 교류도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개별 대학체제로 운영되는 지금보다는 훨씬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기회를 학생들에게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 서열화로 인한 입시경쟁을 방치하는 것은 범죄행위이다.

    거의 매일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살하고 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배움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으며, 폭력이나 일탈행위를 통해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는 학생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40명의 학생이 입시교육으로부터 일탈하여 잠을 자거나 딴 짓을 하고 있고 단 한 명의 학생만이 입시교육을 요구하고 있다할지라도, 교사는 40명의 학생이 아니라 단 1명의 학생을 위해 입시교육을 해야 한다. 이것이 입시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 교육의 현 주소이다.

    이것은 수백만 명의 학생들을 방치하는 것을 넘어 이들을 학대하는 범죄행위다. 따라서 우리는 입시공화국을 해체하기 위한 실낱같은 가능성도 놓쳐서는 안 된다.

    통합 국립대안은 민주당이 갑자기 만들어낸 제안이 아니다. 입시공화국과 학벌사회 때문에 고통받던 학생, 학부모, 교사, 교수, 일반 시민 등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실천 속에서 탄생하고 발전해온 제안이다. 보수 세력들은 이 안이 지니고 있는 폭발력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초기부터 맹폭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통합 국립대안은 교육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대안이고,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사회적 불평등을 역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정치세력 간의 싸움으로 승부가 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민주통합당의 공약화는 통합 국립대안의 현실화를 위한 일보전진의 의미가 있지만, 민주통합당이 본래적 의미를 손상하지 않고 이 대안을 제대로 밀고 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따라서 통합 국립대안 나아가 대학통합네트워크안(통합 국립대 + 정부 책임형 사립대)의 실현을 위해서는 민중들과 진보진영의 관심과 참여 그리고 투쟁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 1막이 겨우 시작되고 있을 뿐이다.

    필자소개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월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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