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랜드와 자본에
    자신의 취향을 맞추지 마라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5회] 김경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
        2014년 12월 17일 09: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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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깔있는 진보 미디어’ 칼라TV가 제작하는 논픽션 책 팟캐스트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는 르포르타주와 논픽션 책을 다루고 있고, 매주 월요일 업로드 된다. 김현진(에세이스트)과 송기역(시인, 르포작가)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책 소개 및 저자와의 인터뷰 외에, ‘신간 논픽션 브리핑’, ‘김현진의 라디오 에세이’, ‘논픽션 작가 열전’, ‘인문학 강의’, ‘내 인생의 밑줄 쫙 별표 땡땡’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5회 방송은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달)의 저자 김경과 북토크를 진행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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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랜드와 자본에 자신의 취향을 맞추지 마라

    “보풀이 잔뜩 일어난 블루 스웨터를 껴입고 대단한 지성이나 갖춘 양 잘난 척을 떠는데 넌 자기가 입은 게 뭔지도 모르고 있어. 그건 그냥 블루가 아냐 정확히 세룰린 블루야. 또 당연히 모르겠지만 2002년엔 드 라렌타와 입센 로랑 모두 세룰린 컬렉션을 했지. 세룰린 블루는 엄청 인기를 끌었고 백화점에서 명품으로 사랑받다가 슬프게도 니가 애용하는 할인매장에서 시즌을 마감할 때까지 수백만 불의 수익과 일자릴 창출했어. 근데 패션계가 심혈을 기울여 탄생시킨 그 스웨터를 니가 패션을 경멸하는 상징물로 선택하다니 그야말로 웃기지 않니?“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미란다(메릴 스트립 분)가 앤드리아(앤 헤서웨이 분)에게 쏟아낸 말이다.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5회 방송을 들으면서 위 대사가 떠올랐다. 17년간 패션지 에디터로 일했던 김경 작가가 그녀의 삶과 취향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었기 때문이다.

    패션에 대해 문외한이기도 했고, 지금도 여전히 패션의 문밖에 있지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의 대사를 듣기 전까지는, 영화 속의 앤드리아처럼 패션이라고 하면 명품, 사치, 허영, 소비 등의 단어와 자동 접속되었다. 패션을 상표와 연결시켰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패션은 상표가 아니다. 예술의 영역인 거 같다.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인 것이다. 아름답다는 것이 절대적인 것일 수 없듯이 패션의 취향도 마찬가지다. 패션의 취향은 삶의 취향이자 영혼의 취향인 것이다. 김경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브랜드와 자본에 자신의 취향을 맞추려 하지 말고, 기업의 꾀임에 넘어가지 말고, 삶의 가치들을 발견하게 하는 취향을 찾으면 좋겠어요. 자본이 개입되지 않은 스타일과 취향을 말이에요.”

    패배자

    ‘선망’도 아닌 것을 ‘선망’

    2012년 1월호 『VOGUE』 한국판은 ‘밑바닥을 보아온, 빈곤에 마비된 눈에 하늘을 가리켜주는 잡지’라는 광고 문구를 실었다. 1967년 2월 김수영 시인이 쓴 <VOGUE야>라는 시에서 두 행을 취한 것이다.

    김수영 시인은 미국판 『VOGUE』를 보면서 ‘아이들의 눈을 막은 죄- 그 죄의 앙갚음/VOGUE야’를 외치며 시를 마무리 지었는데, 앞뒤 맥락은 다 생략하고 뻔뻔하게 두 행만 따서 광고 전략으로 쓴 한국판 『VOGUE』에 김경 작가는 분노했다.

    그녀는 ‘선망’도 아닌 것을 ‘선망’하게 만들고, 욕망을 생산하고 호들갑스럽게 부추기는 패션 에디터 일을 하면서 마음 한구석 항상 께름칙했다. 그 스트레스로 공항장애까지 왔다. 직장을 관두라는 전조 증상인 셈이다.

    정작 직장을 관두게 된 건 조지 오웰의 『숨 쉬러 나가다』를 읽고서다. 보험회사에서 18년이나 근무한 뚱보 영업사원이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무한경쟁사회의 중압감을 떨쳐내려고 잠시 혼자만의 숨 쉴 곳을 찾아 나서지만, ‘현대라는 괴물’이 이미 숨 쉴 곳을 다 집어삼켰다는 내용이다.

    김경 작가는 그 소설을 읽고 간소하게 사는 법을 택한다. 17년 동안 몸담았던 패션지 에디터를 관두고, 평창으로 가서 글을 쓰며 살고 있는 것이다.

    패션은 구입할 수 있지만 스타일은 구입할 수 없다

    명품을 사라고 부추기는 매체에서 일하면서 망할 놈의 로고에서 헤어나자는 글을 쓴 김경 작가지만, 패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삶의 환영으로서 패션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경 작가는 옷의 ‘기적적인 힘’을 믿는다고 말한다. 일본의 한 스님은 꼼데가르송 브랜드의 옷을 독실하게 수집하는데, 비행청소년이었던 여동생이 그 옷을 입고 나서부터 달라졌다. 모델처럼 몸을 만들고 옷을 잘 입게 되면 주변에서 다르게 대하기 시작하는 것이 옷의 기적적인 힘일 것이다. 옷차림은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도구가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누가 입으니까 나도 입는다.’는 식은 곤란하다.

    “세바스찬 호슬리라는 예술가는 패션은 구입할 수 있지만 스타일은 구입할 수 없다고 말했어요.”

    위에서 세바스찬 호슬리가 말한 패션은 상표를 뜻하는 것일 테다. 내 스타일에 맞는 패션(상표)을 구입해야 한다.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 주류의 패션을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다면 자신의 취향이라고 믿었던 것이 자신의 취향이 아닌 것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취향인 듯 취향 아닌 취향 같은’ 텅 빈 취향인 것이다.

    김경 작가는 집의 규모를 줄여 시골로 이사를 하면서 옷을 반 이상 줄였는데도 안 입는 옷이 많았다. 그래서 각 시즌마다 서너 벌만 남기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스타일을 펑크락 뮤지션 패티 스미스에게서 찾고 있다. 패티 스미스는 닳아빠진 청바지에 헐렁한 재킷과 티셔츠를 트레이드 마크로 삼고 있다.

    구입이 불가능한 스타일을 완성하기 위해선 시간, 장소, 상황(T.O.P : Time, Occasion, Place)에 맞는 패션(상표)을 구입하고 입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최근 신간 소설 『너라는 우주에 나를 부치다』를 펴내고 독자와의 만남의 자리를 갖고 있다는 김 작가는, 북토크 자리에서는 턱시도를, 평창 집에서는 노동복으로 갈아입는 진정한 스타일리스트다.

    썸 열풍 속 진짜 사랑이야기

    김경 작가의 신간소설의 <너라는 우주에 나를 부치다>는 썸 열풍 속 진짜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김경 작가의 연애관을 들어보자.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몰라요. 그러니 타인에 대해서는 어떻겠어요? 내 아내이거나 애인이면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한 사람의 우주이듯이 타인을 우주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알아가야 하는 게 사랑 같아요.”

    소개팅을 해도 정치적 성향부터 물어본다는 김경 작가가 쓴 연애소설이 어떨지 궁금하다. 절반은 자전적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김 작가의 실제 연애 이야기도 흥미롭다. 공개 구혼 에피소드, 월간 패션잡지 제작 과정, 그녀가 좋아하는 이성복 시인의 시, 수잔 손텍에 대한 이야기 등도 팟캐스트를 통해 들을 수 있다.

    김경 작가는 마지막으로, 산드로 마라이의 『열정』 이라는 소설의 한 구절인 “중요한 문제는 전 생애를 통해 대답한다.”를 인용한다.

    “전생애로 답하고 싶은 어떤 것이 있는지 자신에게 질문해보고, 평생 누구를 사랑할 건지,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 그것을 어떻게 내 삶에 녹여낼 건지, 그런 것이 어떤 것인지 여러분도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제5회 붉고도 은밀한 팟캐스트는 다소 무거웠던 그동안의 주제를 잠시 잊고 편안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을 거 같다. 신간 논픽션 브리핑 따북에서는 『그들의 손에 총 대신 꽃을-영화감독 민용근이 전하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이야기』(끌레마 출판사)와 『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다나미 아오에, 현암사)가 소개되고, 논픽션 작가 열전에서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를, 밑줄 쫙 별표 땡땡 코너에서는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 출판)를 백상웅 시인이 소개한다. 인기 코너로 부상한 김현진 작가의 라디오 에세이도 어김없이 들을 수 있다.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듣기 ☞ http://www.podbbang.com/ch/8412

    마지막으로 이번 팟캐스트에서 계속 언급되었던 김수영 시인의 시 한편을 띄운다.

    VOGUE야
    –김수영

    VOGUE야 넌 잡지가 아냐
    섹스도 유물론도 아냐 선망조차도
    아냐-선망이란 어지간히 따라갈 가망성이 있는
    상대자에 대한 시기심이 아니냐, 그러니까 너는
    선망도 아냐

    마루바닥에 깐 비닐장판에 구공탄을 떨어뜨려
    탄 자국, 내 구두에 묻은 흙, 변두리의 진흙,
    그런 가슴의 죽음의 표식만을 지켜온,
    밑바닥만을 보아온, 빈곤에 마비된 눈에
    하늘을 가리켜주는 잡지
    VOGUE야

    신성을 지키는 시인의 자리 위에 또 하나
    넓은 자리가 있었던 것을 자식한테
    가르쳐주지 않은 죄-그 죄의 앙갚음
    VOGUE야 너의 세계에 스크린을 친 죄,
    아이들의 눈을 막은 죄- 그 죄의 앙갚음
    VOGUE야
    그리고 아들아 나는 아직도 너에게 할 말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안한다.
    안하기로 했다 안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에게도 엄마에게도 모든
    아버지보다 돈 많은 사람들에게도
    아버지 자신에게도

    필자소개
    자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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