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 민주주의 요람에서 적으로
    [책소개] 『디지털 디스커넥트』(로버트 맥체스니/ 삼천리)
        2014년 12월 14일 01: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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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전자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한 그 어떤 프라이버시도 보장받지 못한다. 당신이 온라인상에서 무선전화나 여타 무선장치를 통해 하는 활동 가운데 국가 공안 기관들과 사기업들의 도달 범위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줄리언 어샌지

    미국의 언론학자이자 미디어 이론가의 최근 저작 《디지털 디스커넥트》는 기본적으로 미국에서 최근 20여 년에 걸쳐 변화된 디지털 미디어 환경을 다루고 있다.

    미디어는 자본의 사유화 욕망이 관철되고, 소비자의 정보가 상품화되며, 광고의 경제학이 지배하는 철저한 이윤과 경쟁의 공간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미국에서 인터넷은 민주적이고 자율적이며 사회적인 대중 소통의 공간이 아니다.

    국가 권력 또한 이 공간을 상대로 강력한 통제의 활동을 조직적이고 일상적으로 펼친다. 대중들의 의사와 표현을 검열하고 사생활과 프라이버시를 통제하며 궁극적으로 민주적인 여론과 진보적인 정치의 가능성을 폐쇄하려는 조치들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자본의 욕망과 국가권력의 의지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과 모바일 메신저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카카오톡 검열 논란이 화제가 되었다. 각종 미디어는 정부 검열과 감청 문제를 언급하며 카카오톡을 도마에 올렸고, 곧 카톡 이용자들은 너도나도 ‘사이버 망명’을 외치며 텔레그램으로 갈아탔다.

    사이버 공간은 상품경제에 더욱 깊숙이 포섭되고 있는 중이고, 민주주의의 강화와 진보정치의 구성에 기여하는 만큼이나 국가의 감시 통제, 전체주의적 정보 집적의 채널로 변질되고 있다.

    구글 검색과 위키피디아, 스마트폰, 소셜미디어 같은 새로운 매체는 한국 사회를 들뜨게 했던 게 사실이다. 사실 최근 10여 년 동안, 여러 학자들이나 언론인, 인터넷 평론가들은 너도나도 인터넷 매체와 소셜네트워크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이 위기에 빠진 저널리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분석을 내놓았기에 조금은 어리둥절한 상황이다.

    로버트 맥체스니 교수는 탈출이나 망명, 시스템으로부터의 단절 또는 체제와의 절연을 선언하지 않는다. 정치적 냉소주의도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글로벌 자본주의 제국 바깥에 머무는 일이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프로젝트이듯이, 자유로운 디지털 세계가 자본과 권력이 지배하는 영역 바깥에 있을 거라는 소망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과도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재의 권력 시스템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는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책임 있는 답안으로서, 인터넷 미디어와 디지털 기술을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정치적인 개입 활동을 제안한다.

    디지털 디스커넥트

    디지털 문명을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할 ‘결정적 국면’

    이 책은 ‘자본주의 현실과 민주주의’라는 문제에서 시작된다. 경제 불황은 자본주의의 위기에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한 대항 세력의 출현과 사회혁명의 기회로 이어지기보다는, 반동적 흐름과 야만적 경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이다. ‘파시즘’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섬뜩한 주장이다.

    테크놀로지의 혜택을 모든 사람이 공유하고, 온갖 사회와 환경의 문제 해결하는 데 효과적으로 응용할 수 있게 하며, 민주주의를 다시 복원하고 확장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새로운 경제로 바꾸자는 것이 맥체스니의 제안이다.

    그가 그리고 있는 사회는 이른바 ‘포스트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갈등은 공존할 수 없기에 결국은 둘 가운데 하나는 사라져야 한다.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서 나는 자본주의가 이 갈등의 패배자가 되는 게 옳다고 확신합니다.”

    ‘디지털 시장’에서 기업은 개인 정보를 상품으로 취급하고 이윤 축적을 위해 무단으로 유통시킨다. 대중들의 중요한 사생활이 이른바 ‘빅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거래되는 것이다. 시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권력조차 사회적 통제와 정치적 검열을 위해 이런 데이터에 대한 은밀한 접속과 비밀스러운 독해, 위험한 활용의 시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따라 민주주의와 자유, 공공성의 미래가 결정된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미래를 두고, 인터넷과 디지털의 미디어 기술 영역에서 신자유주의 자본/국가와 운명적인 교전을 펼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미래는 확정된 게 아니다. 인터넷과 디지털을 둘러싼 정치적 투쟁이 지닌 중요성이 바로 이러한 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

    이 책은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로런트 레식, 제임스 쿠란 등 여러 학자들이 지난 20년 동안 내놓은 다양한 저작을 검토하고 그것을 폭넓은 역사적 시야 속에 위치시켜 보면서, 큰 질문으로 나아가는 방향 찾기를 시도하고 있다. 인터넷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예찬론, 디지털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부정론 모두를 시비하면서 문제의 핵심을 짚어 나간다.

    우선 한국에도 번역된 클레이 셔키, 요차이 벤클러, 사이먼 메인워링, 제프 자비스 같은 ‘예찬론자’들은 대부분 미국적이다. 기술적 진보와 자유시장뿐 아니라 진보와 유토피아적 전망, 개인주의에 관해 거의 무조건적인 애정을 보인다. 성가신 정치의 개입 없이도 혁명과도 같은 혜택을 얻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주류 문화가 그토록 폭넓게 받아들이는 이런 예찬론을 지은이는 인터넷에 관한 지배적인 생각이라고 간주한다.

    그런가 하면 재런 래니어, 일라이 패리저, 레베카 매키넌, 에브게니 모로조프, 니컬러스 카 같은 비관론자들은 비교적 현실적이고 냉철한 태도를 보인다. 밑바닥에 깔려 있는 위험을 지적하고 있지만, 그들의 가치관은 너무 불투명할 뿐 아니라 어떤 믿음이 가는 대안적 경로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맥체스니가 보기에 비관론자들은 안타까운 비명을 지르면서, 기본적으로 예찬론자들이 내놓는 현실 규정적인 언설에 그저 각주를 달고 있는 수준이다. 이런 보조적인 위치에서, 몇몇 비관론자들은 까다로운 심술쟁이 역할을 하거나 주장의 핵심을 완전히 벗어날 정도로 자신의 생각에 모순을 드러내기도 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예찬론이든 비관론이든 두 진영은 공히 치명적인 취약점을 안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실재하는 자본주의를 무시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생활을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터넷 관련 저작들이 정치경제적 맥락을 빠뜨린 채 자본주의를 당연시하고 테크놀로지를 역사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려놓는다. 이렇게 되면 디지털 문명 거의 신비주의적인 모습을 띠게 되고, 대중들은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하면서 밀려오는 물결에 떠밀려가는. 뗏목과도 같은 신세를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인터넷 자체는 지난 20년 동안 유즈넷 시대부터 월드와이드웹과 AOL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브로드밴드와 그 후 구글이나 와이파이, 아이패드, 스마트폰, 소셜미디어로 이어지는 몇 차례의 생애주기를 이미 체험했다. 신문과 방송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올드미디어는 민주사회의 공론장으로서 독보적인 지위를 내주게 되었다.

    좌파 지식인 답게 맥체스니는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PEC) 이론을 바탕으로 인터넷과 뉴미디어를 분석하고 있다. 마르크스, 엥겔스, 폴 스위지를 비롯하여 케인스, 갤브레이스, 스티글리츠, 장하준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를 변혁하거나 개혁하려는 지점에 서 있는 경제학 이론을 검토하고 있다. 이니스, 매클루언, 리프먼, 하버마스 같은 비판적 커뮤니케이션 이론가들은 물론이고 미국 헌법의 기초를 마련한 토머스 페인이나 토머스 제퍼슨의 언론 인식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자유시장의 신비화된 개념, 이른바 ‘교리문답’을 폭로함으로써 자본주의에 관한 훨씬 정확한 이해의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불평등과 경제 권력의 집중, 경제 성장에 자본주의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상세하게 평가해 보고, 테크놀로지, 상업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광고와 홍보에 이르기까지 현대 사회에서 회자되는 중요한 이야기 가운데 디지털 혁명과 겹치는 것은 대부분 노동계급의 몰락과 경제 불평등의 엄청난 증가를 동반한 것이었음을 지적한다.

    공공재, 저널리즘 되찾기

    이렇듯 변화된 환경 속에서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디지털 혁명은 과연 ‘혁명’인가! 맥체스니는 앞으로 펼쳐질 세계가 결코 테크놀로지만으로 결정되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사회가 테크놀로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발전시킬지 선택할 문제라는 것이다.

    벼랑 끝까지 몰린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슘페터가 말하는 기술혁신보다는 독점으로 살길을 찾는다. 미국 전체 시장의 60퍼센트를 장악한 AT&T와 버라이즌(Verizon)은 이른바 복점 구조 속에서 무선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주파수 용량의 점점 더 많은 비율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다.

    스탠더드오일, GM 같은 전통적인 대기업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AT&T 같은 IT 기업이 지배하는 기업자본주의는 이제 구글, 애플, 페이스북, 트위터, 아마존 같은 새로운 디지털 기업의 도전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이 ‘새로운 기업’들도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틀 속에서 뭔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줄 것 같지는 않다.

    미디어를 비롯한 민주적 사회 인프라들은 지난 40여 년 동안 끊임없는 공세에 시달렸다. 전 세계 곳곳에서 자본과 기업들이 표적으로 삼은 첫 번째 과제가 바로 이런 인프라를 해체시키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제목인 ‘디지털 디스커넥트’를 돌파하고 절망에서 희망의 근거를 마련해야 할 ‘결정적 국면’에 와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오늘날의 기술 문명과 정치 문화를 완전히 다른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쟁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독점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통해 인터넷과 미디어를 사회의 공공재로 되돌려놓는 게 시급한 과제이다.

    비영리 미디어와 저널리즘을 좀 더 실용적인 시스템으로 바꾸고 전문적 저널리즘을 복원하는 일, 폭넓은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을 각급 학교의 정규과목으로 편성하는 일, 지역과 공동체 미디어를 지원하는 일, 공공 자원으로서 주파수를 관리하고 브로드밴드 이용을 시민의 기본권으로 찾아오는 일, 인터넷 활동에 대한 검열을 금지하고 망 중립성을 보장하는 일.

    이 모든 과제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힘겨운 싸움이 필요하고 시민들이 결집된 힘과 정치 운동을 통해 개입해야 한다. “현실적이면서도,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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