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과 보베라이트,
시민인권헌장 폐기를 지켜보며
    2014년 12월 08일 10: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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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지향을 근거로 성적 소수자를 차별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 담긴 서울 시민인권헌장이 폐기되는 과정은 많은 물음을 낳는다.

무엇보다도 이 문제는 그동안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젊은 층의 진보적인 시민들에게 광범한 사랑을 받아온 박원순 서울시장이 보수적 종교인들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필자는 지난 8월 베를린을 방문한 박원순시장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다. 세월호 유가족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조선일보>가 마련한 독일-한국 교류 행사에 참석한 것이라 눈치가 꽤 보였을 텐데도, 박원순 시장은 당시 세월호 특별법을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던 교민들을 방문해 악수를 나누며 격려를 해주었고, 이런 모습은 베를린 교민들에게 상당히 긍정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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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세월호 특별법 서명운동을 격려하는 박원순 시장

시장으로서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

베를린을 방문한 박원순 시장은 베를린 시장인 클라우스 보베라이트를 만나 두 시의 우호관계 증진을 논의하며 “문화관광 분야 교류를 위한 업무협약(MOU)”를 체결했다.

이날 박원순 시장을 만나 함께 악수를 나누고 베를린과 서울의 공동의 미래에 대해 논의한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은 2002년부터 올해까지 무려 13년째 베를린 시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오늘날 젊은 보헤미안 예술가들과 학생들에게 전 유럽에서 가장 사랑받는 문화도시 베를린을 만들어낸 주역이다.

또한 그는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이미 정식 시장이 되기 전에 이미 그는 커밍아웃을 통해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밝혔으며, 그가 했다고 알려지는 “나는 동성애자입니다. 그건 그런대로 괜찮아요 (Ich bin schwul – und das ist auch gut so!)”라는 말은 그 이후 수많은 사람들에게 젊고 개혁적이며, 소수자와 약자를 대변하는 베를린 시장으로서 그의 이미지를 어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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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과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 (사진제공: 서울시 홈페이지)

무려 13년째 자기 자신을 동성애자로 밝힌 시장이 통치하는 도시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시장으로서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고 말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언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첫째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시장은 어째서 소수자의 인권을 대변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인지에 대해서다. 과거 시민운동가로 활동한 박원순 시장은 여러 차례 동성애자를 비롯한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서 옹호한 바가 있다. 그런데 시장은 중립을 지켜야 하므로 갈등을 부추길 수 있는 인권헌장 제정에 대해서 찬성할 수 없다고 말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이라는 자리가 모든 시민의 자유로운 삶과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점을 감안해보면, 오히려 ‘시장이기 때문에’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옹호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물음은 다시 두 번째 질문으로 이어진다. 만약 언론에 알려진 대로 박원순 시장이 “시장으로서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고 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말 자체가 논리적으로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다.

동성애는 지지 또는 반대와 무관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들 사이의 감정과 사랑에 관한 것으로, 어떤 사람이 다른 누군가와 맺는 관계의 형태중 하나이며, 따라서 타인의 지지와 동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군가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차별과 소외, 억압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은 그 누구도 인종과 종교, 성적 지향에 따라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현대 사회의 원칙에 비추어볼 때 정당하지 못한 일인 것이다.

따라서 시장이라는 공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서울시 안에서 보편적인 가치인 인권이 지켜지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이를 소홀히 하는 것이야말로 태만이다.

억압의 상처

베를린 놀렌도르프 광장(Nollendorfplatz)은 동성애자들이 많이 거주하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이곳에 가면 나치의 지배 하에서 억압 속에 목숨을 잃어야 했던 동성애자들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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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렌도르프 광장의 희생된 동성애자들 추모비

나치가 집단적으로 학살한 것은 유태인들만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떠돌이생활을 하는 (흔히 집시라는 차별적 이름으로 알려진) 로마족, 그리고 동성애자들 역시 탄압을 받았고 수용소에서 죽어갔다.

게르만 민족의 우월함을 유지한다는 나치의 광신적 우생학의 관점에서는 동성애자 역시 게르만족의 자손 번식을 가로막는데다, 게르만족의 성적 미풍양속을 해치는 제거돼야 할 사회의 악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동성애자들을 향해 온갖 폭력적인 발언들을 쏟아 부으며 그들에 대한 인권을 인정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보수 종교인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나치의 그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리고 나치의 기억 때문에 독일에서 소수자에 대해 노골적으로 차별을 선동하는 사람에게는 지금 한국에서 보수 차별주의자들이 소수자들에 대한 증오를 선동할 수 있는 그런 표현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을까?

소수자 차별은 범죄다. 그리고 모든 시민의 인격적 평등을 주창하는 헌법의 가치가 존중받는 나라에서라면 당연히 범죄가 되어야 한다. 동성애라는 사랑의 형태가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증오야 말로 사회적으로 추방해야 할 범죄인 것이다.

인간의 권리와 신의 권리

보수 종교인들은 신이 동성애를 금지했으므로, 소수자의 인권 역시 존중받을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한다. 그런데 ‘인간의 권리’는 ‘신의 권리’와 양립될 수 없는 것일까? 철학자 칸트는 양자가 양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의 도덕법칙을 신의 계명으로 여기고 살아갈 때 나는 자유로워지며, 내가 자유롭게 행위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유를 보장해주는 자연에 있어 인간인 나의 존재가 목적이기 때문이며, 이러한 목적의 관계는 다시 신의 존재를 전제해야 하므로, 결국 ‘나의 자유’와 도덕법칙은 ‘전능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유일한 길이다. 이것이 칸트가 인간의 자유와 이성, 도덕의 관점에서 신의 존재를 논하는 방식이다.

자유로운 인간은 신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신을 공포의 대상, 복종해야 할 존재로 여기는 것은 미신과 우상숭배의 흔적이다. 진정한 신학과 종교는 신을 나의 자유(그리고 자유로운 의지에서 나오는 도덕법칙)를 보장해주는 세계의 근원적 존재자로 표상하는 데에서 출발하지, 엎드려 절하며 두려워 몸서리치는 데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신이 동성애를 금지했을까. 물론 몇 구절들을 인용해 기독교는 동성애와 양립불가능하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성경을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하지 않고 글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위험하다. 예컨대 성경에는 근친상간도 등장한다. 창세기를 보면 소돔에서 도망쳐 나온 롯의 두 딸이 번갈아가면서 아버지를 잠들게 만든 후 겁탈하는 장면도 등장한다(창세기 19:30~38).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율법들 중 상당수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전혀 적용될 수 없을 뿐더러, 기독교인들도 전혀 지키지 않고 있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예수가 등장해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에게 새로운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동성애자들은 사랑을 원한다. 그것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보수 기독교인들의 증오의 감정보다 훨씬 더 숭고한 감정이다. 인간의 권리는 신의 권리와 모순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은 인간이 서로 증오하는 것보다는 사랑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인간에게는 다른 인간을 차별할 권리가 없다는 것. 그래서 인종, 종교,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만인이 동등한 법적 인격으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의 원칙이다. 지금은 마녀를 이단 심문해서 불에 태워버리던 중세, 혹은 천주교도들이 조상에게 제사지내지 않는다고 참수해버리던 조선시대가 아니다. 만인의 인격이 동등하다는 것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현대 사회다.

동성애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사람은 결국 현대의 성과를 되돌리고 사회를 전근대로 되돌리려는 시도를 하는 셈이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지, 뒤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필자소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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