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이 지나도
    기억 속에 오늘을 각인하다!
    [책소개] 『세월의 기억』(박순찬/ 비아북)
        2014년 12월 07일 12: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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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격적인 표지로 독자들로부터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장도리의 대한민국 현재사現在史 시리즈의 2013~2014년 결산판이 나왔다.

    저자 박순찬 화백은 장도리의 소재가 떨어져 연재가 종료되는 날만을 꿈꾸지만 현실은 요원하다. 지난 1년간 장도리는 예전과 변함없이 연재를 이어갔지만 그 안에 담긴 우리의 삶은 잊힐 수 없는 공포와 슬픔의 상처를 입었다.

    2014년 봄, 전쟁처럼 닥친 세월호 참사는 탐욕적 비리 사회의 실체와 정부의 무능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며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엄혹한 현실을 아프게 드러냈다.

    상처는 치유해야 하지만 상처의 원인은 밝혀내고 기억해야 하며, 잔인했던 ‘세월의 기억’을 위해 지워지지 않는 기록을 해야 한다고 저자는 믿는다. 더 이상의 비극이 있어선 안 된다는 소망을 품고, 우리에게 참사를 각인시키기 위해 박순찬 화백은 앞으로도 장도리로 계속해서 기억하고 기록할 것이다.

    <세월의 기억>은 지난 20년간 장도리가 연재되는 동안 발생했던 한국 사회의 굵직굵직한 사고들인 삼풍백화점 참사, 대구 지하철 참사 등을 특집으로 다룬다. 이 과거의 참사들이 세월호 사건과 겹쳐지며 독자들은 20년이 지났음에도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은, 한국 사회의 현실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세월의 기억

    기억하고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

    장도리는 연재되는 동안 5명의 대통령을 거쳤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하루하루 우리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대한민국에서 하루 동안 벌어졌던 일 가운데 가장 하이라이트를 그리는 시사만화는 미디어의 특성상 풍자와 맞닿아 있다. 그 풍자는 단순한 희화에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준다.

    움베르토 에코가 말했듯 희극은 수수께끼와 은유를 통해 우리를 진실로 인도하는 기능을 한다. 네 컷 속에 담긴 장도리는 독자들에게 실소를 짓게 하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의 현실을 통찰할 수 있는 비판적 안목을 제공한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으로 남기는 사관(史官)들이 있었다. 그들은 당파에 치우치지 않고 왕의 행적을 낱낱이 기록했고, 그 기록이 모여 오늘의 역사가 되었다. 장도리를 그리는 박순찬 화백의 마음가짐도 사관과 다르지 않다.

    만평을 그린다는 것은 당대의 삶을 가장 농밀하게 역사에 부조(浮彫)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펜대를 잡는다. 5명의 대통령을 거친 20년의 세월 동안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냉정하고 균형 잡힌 시선은 곧 오늘을 기록하고 기억하려는 작가의 의지다. 그 하루하루의 네 컷이 모여 훗날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역사가 될 것이며 그것이 장도리가 바로 우리의 ‘현재사(現在史)’인 이유이다.

    현재를 압축한 표지 한 컷의 힘
    탐욕의 괴물이 대한민국 99%를 집어삼킨다!

    출간될 때마다 언제나 독자들에게 신선함과 놀라움을 선사하는 장도리 시리즈의 이번 표지도 가히 압권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이번 표지의 테마는 올해 온 국민을 안타깝게 했던 세월호 사건으로, 참사의 기억을 국민에게 ‘각인’시킨다는 의미로 특별히 목재에 부조(浮彫)한 후 채색하는 형식으로 완성되었다.

    그림 좌측에 세월호가 전복되어 가라앉고 있는데, 선체를 커다란 몸집의 뱀이 휘감고 있다. 이 뱀은 자본과 탐욕의 상징이다. 그리고 언론은 ‘펜’이라는 강력한 혀를 무기 삼아 본질을 호도한다. 이 괴물은 눈물을 흘리는 대통령을 응시하며, 세월호 진상 규명을 외치는 시민들을 공격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이 괴물은 관료, 국회의원, 검찰, 경찰 등 기득권이 떠받치고 있다. 진실을 호도하려는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에도 그림 좌측 상단 ‘세월의 기억’이라는 제목을 감싸며 보호하고 있는 무수히 많은 노란 리본들, 세월을 ‘기억’하려는 그 움직임이 우리의 기억 속에 비극을 각인시키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별’이 될 것이라고 이 강렬한 표지 그림은 말하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 99% 모두에게 안부를 묻다!

    지난 해, 한 대학생이 손글씨로 작성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그 일상적인 말이 더 이상 단순한 인사말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우리들의 현실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자보의 말을 빌려 우리의 안부를 묻는다. “99%,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그 안부 인사는 생각과 사상, 세대, 성별을 뛰어넘어 국민 모두에게 열려 있다. 그 범위는 광화문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폭식 농성’을 벌인 ‘일베’ 회원들이나 아직도 박정희 시대의 향수에 머물러 있는 ‘신386(30년대에 태어나 이제 80대를 바라보며 60년대에 사회 진출한 사람)’ 등 생각과 사상이 다른 모든 이들을 포용한다.

    그들 또한 결국 국가주의, 반공이데올로기의 희생자일 뿐, 본질적으로는 우리들의 모습과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이들의 차이를 인정하고 소통을 시도할 때에야 비로소 99%가 ‘안녕’할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 곳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이 오랜 기간 동안 장도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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