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시민인권헌장,
    시민들은 만들고 서울시는 폐기
        2014년 12월 05일 11: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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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의 시민인권헌장 폐기와 관련한 파장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과 분노도 깊고 큰 탓일 게다. 서울시과 박원순 시장의 요청으로 시작된 시민인권헌장 제정 논의, 그 논의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위원들, 그리고 이들의 숙의와 토론을 통해 결정된 인권헌장을 서울시와 시장이 거부한 사태는 우리 사회 인권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민낯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시민위원으로 시민인권헌장 제정 과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박자민씨가 기고글을 보내와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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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8일 서울시 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의 마지막 회의가 있었습니다. 모든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모집하고 추첨된 시민위원들이 지난 8월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위촉장을 받고 시작한 토론이 마무리되는 날이었습니다.

    저도 추첨된 시민위원으로 이날 시민위원회에 참석했고 시민의 손으로 만들어진 인권헌장이 서울시에 의해 사실상 폐기되는 과정을 전달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날 시민위원회는 시작부터 이전 회의와는 달랐습니다. 인권헌장 공청회를 무산시켰던 우익 종교단체 회원들이 시청을 포위한 채 인권헌장 반대 집회를 했고(정확히는 동성애, 인권헌장 반대 시위였습니다), 시민위원들은 그들을 피해 시청 후문으로 경찰의 확인을 거쳐 입장했습니다.

    그러나 회의장 안에도 우익 종교단체 회원들은 있었습니다. 그들은 시민위원에 추첨되어 회의장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인데, 인권헌장을 제정하면 ‘동성애로 나라가 망한다’는 요지의 유인물을 회의장에서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직전 회의에서 난동을 부리며 명찰을 던지고 사퇴하겠다던 우익단체 시민위원 몇 명도 태연하게 회의에 참석하셨고요.

    인권헌장

    성소수자 혐오를 비판하는 기자회견(비마이너)

    인권헌장1

    인권헌장 공청회에서 동성애 반대 주장하는 모습(참세상)

    회의가 시작되고 문경란 제정위원회 부위원장은 마지막 회의의 진행방식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서울시에서 인권 관련 일을 한다는 공무원이 앞으로 나와 문경란 부위원장에게 발언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시민위원회 마지막 회의에서야 인사를 드리게 되어 죄송하다면서, 인권헌장과 관련한 사회적 논란이 많으니 마지막 회의에서 헌장을 제정하는 방식은 시민위원의 만장일치로 결정되어야 하고, 만장일치로 결정되지 않으면 서울시는 인권헌장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시민위원들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회의는 지난 4개월간 토론했지만 최종적으로 시민위원 간에 조율되지 않은 조항을 표결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정에 없던 제정방식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었고 시민위원들은 서울시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원래대로 표결처리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물론, 만장일치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던 시민위원도 있었는데 그들은 직전 회의에서 난동을 부린 우익 종교계 회원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시민위원들은 조율되지 않은 조항에 대해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외부에 알려진 인권헌장의 쟁점은 ‘동성애 허용’으로 왜곡 전달되었지만, 실제로 시민위원들이 토론한 것은 인권헌장이 규정하는 차별금지 대상을 ‘여성, 장애인, 종교, 이주민, 노약자’ 등으로 나열할 것인지 ‘서울시민’으로 함축할 것인지의 문제였습니다.

    즉, 전체 인권헌장의 50개 조항 가운데서 차별금지 대상의 정의 방법이 포함된 단 두 개의 조항이 쟁점사항이었고, 그 중 나열식 정의 방법에 ‘성소수자’가 포함되었을 뿐이었습니다. 분과별로 진행된 토론에서도 시민위원들은 ‘동성애’에 초점을 두지 않고 나열 방법과 함축 방법의 효과에 대해서 주되게 토론했습니다.

    시민위원 전체토론과 표결을 거쳐 인권헌장은 차별금지 대상과 사유를 구체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으로 결정되었습니다. 4개월간의 대장정을 마친 시민위원들의 환호와 박수로 제정이 선언되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회의 시작 무렵 등장했던 서울시 인권담당 공무원이 인권헌장 제정과 폐회를 선언하려던 문경란 부위원장의 마이크를 뺏고 이번엔 ‘과반수’ 문제를 지적하며 인권헌장이 무효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처음엔 만장일치로 결정할 것을 요구하던 그 공무원은 이번엔 재적 과반수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권헌장 제정이 무효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무효 선언은 그의 주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민위원회의 인권헌장 제정방식은 재적 과반 참석규정을 요구하지 않으며, 또한 만장일치 제정 규칙도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만장일치에서 재적과반으로 변경된 그의 요구는 서울시가 인권헌장을 무산시키려고 시민위원회의 진행상황에 끼워 맞춘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민위원회는 소위 ‘표 계산’이 되는 야당과 여당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전원 ‘추첨’으로 위촉된 시민위원회에 다수파와 소수파는 없었고,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의견을 경청했습니다. 시민위원회 외부의 쟁점이었던 ‘동성애’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한편 우려하는 시민위원들이 다수 있었지만, 그분들도 모두를 위한 인권헌장에는 차별금지 대상과 사유를 열거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인권헌장은 시민사회의 요구로 추진된 것이 아니라 박원순 시장의 공약 사항이며 시청에서 추진한 것입니다. 박시장의 공약 이행에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숙의와 민주적 토론과정을 통해 인권헌장을 제정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를 시청과 시장은 거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회의에서 180명 제정위원 가운데 100명이 항의 퇴장했다는 거짓말을 일삼으며 말이죠.

    시민위원회 마지막 회의 1주일 전, 시민 대상의 인권헌장 공청회가 있었습니다. 우익 종교단체의 난동으로 공청회는 무산됐죠. 그들은 공청회장에서 ‘인권헌장 반대’, ‘동성애 반대’, ‘박원순 반대’를 외치며 공청회를 방해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은 그들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인권헌장을 수용할 수 없다고 하며, 개신교계와의 간담회에서 자신은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며, 그리고 자신의 공약사항을 뒤엎으며 스스로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인권 반대자와 성소수자 혐오세력의 눈치를 이토록 열심히 살피는 박원순 시장에겐 큰 야망이 있다는 것을 이번 일로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권후보에 오르내리는 그가 차기 시장에 재선하건 대권을 쥐건 소수자와 인권의 편에 서지 않으리라는 것도 예측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박시장이 그의 거부로 시민들이 만든 인권헌장이 소멸될 것이라 기대했다면 그 예측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인권 문제와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는 사회는 사람과 사건과 상황을 인권의 눈으로 살펴보고 그 모자람을 채우고 또 그 의미를 공유할 때 조금씩 실현되어 가는 것입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왜곡되거나 굴절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민들 스스로 만든 인권헌장은 서울시와 시장 개인에 의해 폐기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들에게 그럴 권리는 없습니다. 인권은 우리 모두의 권리이고 바람이지 특정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필자소개
    시민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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