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집 성공의 비법
처음 그녀 H를 봤을 때 난 멈칫했다. 강남 여자들 예쁘다, 예쁘다 했지만 저 여자는 너무도 걸어 다니는 ‘인형’이잖아…!? 자그마한 키에 얼굴이 진짜 바비인형 복사판인 그녀는 얼구굴의 거의 100%가 인공 제작품이었다. 스스로 말하기를, 성형을 열 번도 넘게 했다는 그녀는 쉬운 말로 ‘얼굴을 갈아엎었고’ 그 결과는 자타 공인 성공, 대 성공이었다.
H는 한시도 핸드폰을 놓고 있지를 않았다. 친구들, 남편, 친구들, 남편. 요가 레슨, 그 짧은 한 시간 동안에도 수십 번 문자 메시지가 오고 갔다. 레슨이 끝나면 기사가 밑에서 대기하고 있고 친구들을 만나러 어느 스파, 어느 백화점, 어느 레스토랑으로 떠나는 H. 남편한테서 전화가 오면 반말과 존칭이 교묘하게 섞인 오묘한 어투, “해산물? 아앙, 난 별로인데 다른 거 먹으면 안되요?”라며 말하는 그녀. 저 예쁜 얼굴에 저런 귀염성 있는 말투로 부탁을 하는데 어떤 남자가 들어주지 않을까. 무조건, 합격, 합격! 해산물 따위, 바로 불합격, 불합격!
요가원에서는 튀는 외모의 H에 대한 입소문이 당연히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부산에서 올라왔다, 상업 고등학교 출신이다, 어느 무역회사 사장인 남편이 연애시절 H의 얼굴을 조금씩 개조해줬다, H의 친구 L도 같은 케이스(지방에서 올라와 돈 많은 남편 만나 취집 성공)다 등 등.
늦깎이 미혼녀인 우리 요가원 원장 S는 H의 얘기를 할 때마다 목이 벌겋게 달아오르곤 했다. 인형 같진 않은 외모래도 섹시한 스타일의 매력적인 외모의 S 원장 역시 남자들이 제법 따랐지만 정작 S원장 본인이 만족할 만한 남자는 하나도 없었다. “짜증나 죽겠어! 남친이 결혼하재. 지가 볼 게 뭐 있다고? 자기 월급 500 갖고서 내 씀씀이를 감당하겠다고?” S는 30대 후반 나이까지 변변한 직업 하나 없이 이제 겨우 요가원 원장이 되었지만 골프장 소유주인 아버지 덕분에 여태껏 한 번도 궁핍해본 일이 없었다. 자신의 남편감이 되려면 최소한 월급이 10000은 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런 S에게 정말 부러운 케이스가 바로 H였다.
어느 오후, 압구정 요가원에서 H와 S의 대화.
S: 남편 분은 뭐하세요?
H: 사업이요.
S: 사업? 좋겠다, 사모님이시구낭.
H: 뭐, 네.
S: 가방 바뀌셨네요. 남편 분이 새로 사주셨나 보다?
H: 뭐, 네. 색깔이 저랑 잘 어울린다고.(연보라색에 각진 명품 브랜드 C***의 가방을 보여주며)
S: 진짜 어울려요. 여기 요가 개인 레슨도 남편 분이 전화해서 알아보셨던데, 되게 잘 해주시나 봐요, 그죠?
H: 뭐. 부족한 건 없죠.
S: 정말, 좋으시겠다~! 전 아직 미혼이에요.
H: 아 그러세요? 나이가 저랑 비슷하지 않으세요?
S: 더 많아요, 제가.
H: 아.
S: 저도 얼른 결혼해서 남편 돈으로 마사지나 받고 다녔으면 좋겠는데 쉽지가 않네.
괜찮은 남자들 다 어디 갔는지…
H: 호호. 꼭 좋지만도 않아요.
S: 왜요? 좋아보이시는데?
H: 뭐, 그냥. 답답하기도 하구요. 친구랑 둘이서 만날 그 얘기해요. 진짜 ‘궁전감옥’이라고…남편은 기사 붙여놓고 제 일거수일투족을 다 확인해요. 어디 가서 누구랑 뭐 먹었고, 어느 요가원에서 몇 시 강의를 들었고, 어디서 얼마짜리 옷을 샀고 등등. 물론 그만큼 다 남편이 알아봐주고 지원해주는 거지만 그만큼 간섭받고 감시당하고 그러는 거죠.
S: 그거야 뭐, 결혼하면 다 그렇죠, 뭐.(부러운 표정이 역력한 S)
H: 그런가요. 어쨌든 만족은 하는데 꼭 좋은 것만도 아니에요. 궁전 감옥이란 데가.. 훗.
S의 얼굴에서 부러운 기색이 가실 줄 몰랐다. H는 자기의 성공적인 취집 생활에 매우 만족하며 사는 여자였다. 시즌 별로 바꾸는 명품 구두와 가방들은 그 예쁜 인형 얼굴을 더욱 품격 있어 보이게 해주었고 인공미를 뿜어내는 얼굴에 더해지는 각종 한방, 중국식, 스웨덴 식 마사지 기법들은 그녀의 얼굴에 나날이 자연스러움을 가미했다. H는 종일 집안일도 바깥일도 하지 않고도 어떻게 하루를 즐겁게 소모할 줄 아는, 적당히 머릿속이 한가한 여자였다. 지금 내가 머릿속이 한가하다 한 표현은 진심 좋은 의미로 쓴 거다. 어떻게?
어느 날, H와 요가 명상시간에 이벤트로 그림 심리 테스트를 할 때였다. H는 30대 후반, 뱃속에 아기를 가진 엄마였음을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그 날 파스텔을 손에 쥔 H가 보여준 모습은 H가 왜 그녀의 인생에서 성공했는가를 알 수 있게 했다. 내가 취집을 성공한 인생으로 본다는 게 아니라, H가 자기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성공이라 할 수 있다면 말이다.
나는 그냥 단지 열 가지 아이템(해, 달, 별, 산, 호수 등)이 담긴 한 폭의 그림을 그리라고 했을 뿐이었는데 H는 달에 얼굴 표정을 그리고 별들이 속삭이는 대화를 그려 넣고 산에 핀 꽃의 종류를 고민했다. 다른 어떤 동년배의 산모들에게 시켜보았을 때도 나오지 않았던 색감이나 모양에 대한 감수성을 보며 H가 그토록 가방이나 구두의 모양, 색감 하나 하나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만히 지켜보니 H는 차를 마실 때도, 요가 동작을 하나 배울 때도 감탄을 잘 했다.
일부러는 아니지만 그녀의 취집을 감싸주는 말을 하자면 그런 천진한 감수성을 가진 H는 과연 남편의 풍족한 경제적 능력에 만족하며 종일 그림을 배우고 요가를 배우러 다니는 한가한 생활이 정말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그녀도 어떤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쩜 그녀에겐 지금의 그 놀고먹는 생활이 너무도 잘 어울리게 느껴졌다 할까…
H의 남편 역시 만족스러울 터였다. 아주 예쁜 H가 종일 감수성을 충족시키고 돌아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남편의 고된 하루를 위로해주면 피로가 씻은 듯이 날아갈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역할은 바뀌어도 좋겠지. 아주 멋진 남편이 고되게 바깥일을 하고 돌아온 부인이 집에 돌아왔을 때 부인을 위한 최상의 휴식을 기획하는 것으로.
어쨌든 H를 만나고 나는 생전 처음으로 ‘취집’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봤다. 누가 누구에게 기대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인간인 나지만, 남자에게 부인을 부양할 책임을 지우는 요상한 생각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지만, 글쎄 어떤 사람에게는 그 말고 다른 삶의 형태를 상상할 수 없도록 그 모습이 너무 잘 어울리기도 했으니까. 자기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구석이 있는 H, 그래서 가끔 예약해놓고도 마음이 변해 갑자기 “못 올 거 같아요.”라고 말하는 H지만 그래도 어딘가 미워하기는 어려운 여자였다.
S 원장은 H의 취집 성공의 비밀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해 했고 나름 자기 혼자 결론짓곤 했지만 그 비밀은 아마도 영원히 밝혀질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냥 누군가에게 어울리는 삶이 있는 거고, 아무리 부러워해도 그 삶은 나한테는 안 올 수도 있는 거란 생각에. 혹시 아나, 그렇게 내 일에 몰두하겠다고 자신하는 내가 언제 취집을 하게 될 지? 물론 아직까진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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