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녀, 취집의 실체
    [강남의 속살-2] "결혼해서 남편 돈으로 마사지나 받고 다녔으면..."
        2012년 07월 09일 10: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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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집 성공의 비법

    처음 그녀 H를 봤을 때 난 멈칫했다. 강남 여자들 예쁘다, 예쁘다 했지만 저 여자는 너무도 걸어 다니는 ‘인형’이잖아…!? 자그마한 키에 얼굴이 진짜 바비인형 복사판인 그녀는 얼구굴의 거의 100%가 인공 제작품이었다. 스스로 말하기를, 성형을 열 번도 넘게 했다는 그녀는 쉬운 말로 ‘얼굴을 갈아엎었고’ 그 결과는 자타 공인 성공, 대 성공이었다.

    H는 한시도 핸드폰을 놓고 있지를 않았다. 친구들, 남편, 친구들, 남편. 요가 레슨, 그 짧은 한 시간 동안에도 수십 번 문자 메시지가 오고 갔다. 레슨이 끝나면 기사가 밑에서 대기하고 있고 친구들을 만나러 어느 스파, 어느 백화점, 어느 레스토랑으로 떠나는 H. 남편한테서 전화가 오면 반말과 존칭이 교묘하게 섞인 오묘한 어투, “해산물? 아앙, 난 별로인데 다른 거 먹으면 안되요?”라며 말하는 그녀. 저 예쁜 얼굴에 저런 귀염성 있는 말투로 부탁을 하는데 어떤 남자가 들어주지 않을까. 무조건, 합격, 합격! 해산물 따위, 바로 불합격, 불합격!

    영화 '프리티우먼'의 한 장면

    요가원에서는 튀는 외모의 H에 대한 입소문이 당연히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부산에서 올라왔다, 상업 고등학교 출신이다, 어느 무역회사 사장인 남편이 연애시절 H의 얼굴을 조금씩 개조해줬다, H의 친구 L도 같은 케이스(지방에서 올라와 돈 많은 남편 만나 취집 성공)다 등 등.

    늦깎이 미혼녀인 우리 요가원 원장 S는 H의 얘기를 할 때마다 목이 벌겋게 달아오르곤 했다. 인형 같진 않은 외모래도 섹시한 스타일의 매력적인 외모의 S 원장 역시 남자들이 제법 따랐지만 정작 S원장 본인이 만족할 만한 남자는 하나도 없었다. “짜증나 죽겠어! 남친이 결혼하재. 지가 볼 게 뭐 있다고? 자기 월급 500 갖고서 내 씀씀이를 감당하겠다고?” S는 30대 후반 나이까지 변변한 직업 하나 없이 이제 겨우 요가원 원장이 되었지만 골프장 소유주인 아버지 덕분에 여태껏 한 번도 궁핍해본 일이 없었다. 자신의 남편감이 되려면 최소한 월급이 10000은 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런 S에게 정말 부러운 케이스가 바로 H였다.

    어느 오후, 압구정 요가원에서 H와 S의 대화.

    S: 남편 분은 뭐하세요?

    H: 사업이요.

    S: 사업? 좋겠다, 사모님이시구낭.

    H: 뭐, 네.

    S: 가방 바뀌셨네요. 남편 분이 새로 사주셨나 보다?

    H: 뭐, 네. 색깔이 저랑 잘 어울린다고.(연보라색에 각진 명품 브랜드 C***의 가방을 보여주며)

    S: 진짜 어울려요. 여기 요가 개인 레슨도 남편 분이 전화해서 알아보셨던데, 되게 잘 해주시나 봐요, 그죠?

    H: 뭐. 부족한 건 없죠.

    S: 정말, 좋으시겠다~! 전 아직 미혼이에요.

    H: 아 그러세요? 나이가 저랑 비슷하지 않으세요?

    S: 더 많아요, 제가.

    H: 아.

    S: 저도 얼른 결혼해서 남편 돈으로 마사지나 받고 다녔으면 좋겠는데 쉽지가 않네.

    괜찮은 남자들 다 어디 갔는지…

    H: 호호. 꼭 좋지만도 않아요.

    S: 왜요? 좋아보이시는데?

    H: 뭐, 그냥. 답답하기도 하구요. 친구랑 둘이서 만날 그 얘기해요. 진짜 ‘궁전감옥’이라고…남편은 기사 붙여놓고 제 일거수일투족을 다 확인해요. 어디 가서 누구랑 뭐 먹었고, 어느 요가원에서 몇 시 강의를 들었고, 어디서 얼마짜리 옷을 샀고 등등. 물론 그만큼 다 남편이 알아봐주고 지원해주는 거지만 그만큼 간섭받고 감시당하고 그러는 거죠.

    S: 그거야 뭐, 결혼하면 다 그렇죠, 뭐.(부러운 표정이 역력한 S)

    H: 그런가요. 어쨌든 만족은 하는데 꼭 좋은 것만도 아니에요. 궁전 감옥이란 데가.. 훗.

    S의 얼굴에서 부러운 기색이 가실 줄 몰랐다. H는 자기의 성공적인 취집 생활에 매우 만족하며 사는 여자였다. 시즌 별로 바꾸는 명품 구두와 가방들은 그 예쁜 인형 얼굴을 더욱 품격 있어 보이게 해주었고 인공미를 뿜어내는 얼굴에 더해지는 각종 한방, 중국식, 스웨덴 식 마사지 기법들은 그녀의 얼굴에 나날이 자연스러움을 가미했다. H는 종일 집안일도 바깥일도 하지 않고도 어떻게 하루를 즐겁게 소모할 줄 아는, 적당히 머릿속이 한가한 여자였다. 지금 내가 머릿속이 한가하다 한 표현은 진심 좋은 의미로 쓴 거다. 어떻게?

    어느 날, H와 요가 명상시간에 이벤트로 그림 심리 테스트를 할 때였다. H는 30대 후반, 뱃속에 아기를 가진 엄마였음을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그 날 파스텔을 손에 쥔 H가 보여준 모습은 H가 왜 그녀의 인생에서 성공했는가를 알 수 있게 했다. 내가 취집을 성공한 인생으로 본다는 게 아니라, H가 자기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성공이라 할 수 있다면 말이다.

    나는 그냥 단지 열 가지 아이템(해, 달, 별, 산, 호수 등)이 담긴 한 폭의 그림을 그리라고 했을 뿐이었는데 H는 달에 얼굴 표정을 그리고 별들이 속삭이는 대화를 그려 넣고 산에 핀 꽃의 종류를 고민했다. 다른 어떤 동년배의 산모들에게 시켜보았을 때도 나오지 않았던 색감이나 모양에 대한 감수성을 보며 H가 그토록 가방이나 구두의 모양, 색감 하나 하나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만히 지켜보니 H는 차를 마실 때도, 요가 동작을 하나 배울 때도 감탄을 잘 했다.

    일부러는 아니지만 그녀의 취집을 감싸주는 말을 하자면 그런 천진한 감수성을 가진 H는 과연 남편의 풍족한 경제적 능력에 만족하며 종일 그림을 배우고 요가를 배우러 다니는 한가한 생활이 정말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그녀도 어떤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쩜 그녀에겐 지금의 그 놀고먹는 생활이 너무도 잘 어울리게 느껴졌다 할까…

    H의 남편 역시 만족스러울 터였다. 아주 예쁜 H가 종일 감수성을 충족시키고 돌아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남편의 고된 하루를 위로해주면 피로가 씻은 듯이 날아갈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역할은 바뀌어도 좋겠지. 아주 멋진 남편이 고되게 바깥일을 하고 돌아온 부인이 집에 돌아왔을 때 부인을 위한 최상의 휴식을 기획하는 것으로.

    어쨌든 H를 만나고 나는 생전 처음으로 ‘취집’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봤다. 누가 누구에게 기대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인간인 나지만, 남자에게 부인을 부양할 책임을 지우는 요상한 생각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지만, 글쎄 어떤 사람에게는 그 말고 다른 삶의 형태를 상상할 수 없도록 그 모습이 너무 잘 어울리기도 했으니까. 자기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구석이 있는 H, 그래서 가끔 예약해놓고도 마음이 변해 갑자기 “못 올 거 같아요.”라고 말하는 H지만 그래도 어딘가 미워하기는 어려운 여자였다.

    S 원장은 H의 취집 성공의 비밀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해 했고 나름 자기 혼자 결론짓곤 했지만 그 비밀은 아마도 영원히 밝혀질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냥 누군가에게 어울리는 삶이 있는 거고, 아무리 부러워해도 그 삶은 나한테는 안 올 수도 있는 거란 생각에. 혹시 아나, 그렇게 내 일에 몰두하겠다고 자신하는 내가 언제 취집을 하게 될 지? 물론 아직까진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지만!

    필자소개
    현재 요가 강사이며, '자칭 소설가, 작사가, 일러스트레이터 & 래퍼'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과 사물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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