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리우드, 당신들의 천국
        2014년 12월 01일 01: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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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LA를 방문했을 때에 할리우드에 갈 마음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제게 할리우드 영화는 쾌락 유발의 문제라기보다는 “영화에서 반영된 욕망지형의 읽기” 문제고, 또 거기에 가봐야 저로서 그다지 볼 게 없다 싶었습니다. 제 취향으로는 할리우드 영화 중에서 도대체 몇 개 정도 즐겁게 볼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한데, 할리우드 영화에 훨씬 더 긍정적인 제 아들의 강철같이(?) 강력한 주장도 있고 해서, 일단 우리는 할리우드에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가서 名優 (“스타”)들의 주거지를 탐방하는 단체관광에 동참하게 됐습니다. 정말 제 팔자에 없는 체험을 하게 된 셈입니다.

    약 두 시간이 소요된 투어의 가이드 분은 약 50대 후반의 마른 체형의 남자였습니다. 제가 그에게 “구 소련 출신이다”고 자기 소개를 하자 그는 아주 반가워했습니다. 본인의 어머니가 키예브 출신의 유대인임으로, 거의 모계 친척 대부분이 홀로코스트에서 참살 당했다고 제게 알리기도 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저도 유대계라고 소개하자 그의 기쁨은 아예 무한해졌습니다. 길게 악수하면서, 그는 친우를 만나듯이 제게 자신의 삶의 이력과 세계관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가난한 이민자 출신으로 그 몸을 미국의 군영에 투탁하여 장기간 한국 등 미국의 여러 군사보호령에서 복무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공산 침략자들이 노렸던 한국을, 한국민의 요망대로 우리들이 지켜낸 자긍심이 크다”고 자기 인생 이력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저는 참다못해 공산 침략자들이 과연 화성인이었느냐, 결국 다른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같은 한국인이 아니었느냐, 그리고 역사를 볼 적에 그들의 요망도 같이 봐야 하지 않느냐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제 취향이 많이 다르다는 걸 이해하자, “그러면, 일단 정치토론을 하지 맙시다”라고 타협(?)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30년 가까이 군문에 있었던 남아답게 그는 타협하지 말아야 할 것을 끝내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 구역의 병무청 건물을 지나갈 적에 그는 “할리우드 출신으로 이 나라, 이 국민을 위해 몸 바치신 분들”을 위한 경례를 하고, “신이 미국을 축복하소서!”라고 크게 외쳐댔습니다. 물론 그 뒤에 작은 목소리로 “유대인의 신”이라고 첨언하기도 했죠.

    너무나도 비장한 일종의 “국민의례”이었습니다. 신이 미국을 축복하소서. 위대하신 우리 수령민 만세. 알라신 위대하다 (알라후 아크바르). 아아, 아마도 그 첫 번째 국민의례를 행하시는 분들은 두 번째 의례와 세 번째 의례를 적대시, 야만시하겠죠? 참, 동류가 동류를 못 알아보는 희비극(?)입니다.

    퇴역군인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가이드를 하게 됐는지, 저는 궁금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 남성에게는 중국인 부인과의 사이에 아이 6명이나 돼 국방부 연금만으로는 육아비를 커버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육아수당을 제대로 지급할 만큼 신이 미국을 아직도 축복하지 못한 셈이었죠.

    그러나 이 남자는 그런 피해의식은 전혀 없었던 듯합니다. 적어도 없는 것처럼 그가 타자를 대하는 전략을 짠 셈이죠. 미국 최고 부유층이 사는 지역을 돌 때에 그는 자신보다 재산이 아마도 만 배 이상(?) 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선망의 정을 보일지언정 그 어떤 반감도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한 번 정도는, 본인이 저들을 질투하고 본인도 그렇게 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자백 (?)했지만, 대체로 저들의 삶은 그에게 너무나 자기 자신의 것처럼 친숙하고 좋았던 셈입니다. 그가 빠짐없이 기관총처럼 빠른 속도로 손님들에게 안내했던 내용은, 각자 고래등 같은 주택들의 감정가부터 면적까지, 그리고 그 주인 각자의 선호하는 옷 스타일, 손톱관리방식부터 연애스캔들까지, 너무나 친밀하달까? 일종의 매우 깊은 친밀감을 보여 주었습니다.

    비록 “나”보다 재산은 만 배 이상 많고 과연 이 정도 많은 돈을 받아온 게 타당한가를 의심해볼 수 있어도, “나”는 그/그녀의 겨드랑이털 관리 습관부터 신발 고르는 습관까지 알면, “나”도 그/그녀와 약간 일체화되는 것처럼 상상이 되나 봅니다. 이렇게 명우나 영화감독, 영화사 주인들의 은밀한 속살을 응시하는 듯한 환상 속에서 우리가 두 시간이나 할리우드와 버벌리 힐 지역을 돌았던 것입니다. 끝에 가서 저는 역거움과 피로로 거의 빈사상태이었죠.

    제정러시아의 귀족 저택 이상으로 큰 커다란 빌라들, 거친 키치가 느껴지는 관문 장식, 커다란 수영장… 이층, 삼층 이상 되는 이 저택의 거의 모든 창문에서 환한 빛이 보였습니다. 한 주인 내지 주인의 가정은 도대체 수십 개의 방들을 어떻게 동시에 쓸까요? 저들이 얼마나 많은 하인들을 부리면서 살까요?

    그리고 거리들은 깨끗하게(?) 한산했습니다. 유령도시 같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인들이야 초호화 자동차를 타지만, 하인들에게 이동권이 없나요? 정말 끔찍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었죠.

    저는 끝에 가서 피로 때문인지 구토 증세 같은 게 심각해졌습니다. 결국 이 고래등 같은 주택들의 주인들이 전문업체에 가서 수백 달러를 주고 겨드랑이털 관리 받는 방식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금 미국 정부가 수천 개의 핵폭탄을 비축해 전 세계를 제압하고, 이라크 침략 등의 방식으로 저들을 위한 석유 등이 나오는 중동을 집중 정밀 관리(?)하고, 아프간이나 파키스탄에서 매일같이 무인폭격기로 아이들을 죽이지 않습니까?

    세계인 대부분이 겪는 기아, 살인, 박탈, 착취의 대가는 결국 최고 전문가로부터 네일 관리를 받고 이웃보다 수영장을 배로 더 크게 늘리는 자존심으로 사는 이 몇 안 되는 초대형 부호들의 라이프스타일일 것입니다! 저는 그 생각으로는 그 날 밤잠을 설쳤습니다. 분노를 참기가 힘들었죠.

    유령도시 같은 할리우드, 아마도 제가 평생 동안 본 것 중 제일 무서운 곳인지도 모릅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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