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사람보다 이윤이 더 중요한 사회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3]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2014년 12월 01일 12:27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성깔있는 진보 미디어’ 칼라TV가 제작하는 논픽션 책 팟캐스트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는 르포르타주와 논픽션 책을 다루고 있고, 매주 월요일 업로드 된다. 김현진(에세이스트)과 송기역(시인, 르포작가)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책 소개 및 저자와의 인터뷰 외에, ‘신간 논픽션 브리핑’, ‘김현진의 라디오 에세이’, ‘논픽션 작가 열전’, ‘인문학 강의’, 브릿지 코너인 ‘내 인생의 밑줄 쫙 별표 땡땡’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3회 방송은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사회운동)의 저자 박상은과 북토크를 진행했다. <편집자>———————

    세월호 사고, 진보가 내놓은 대답은 무엇인가?

    “온 국민이 슬퍼해주고 그만큼 관심 가져줬으면 됐지. 지네들이 놀러가다가 죽은 걸 나라가 왜 책임져야 하냐구요.”

    세월호 특별법 문제로 한창 나라가 시끄러울 때, 막차를 놓쳐 탄 택시의 기사가 한 말이다. 절망스러웠다.

    “잊지 말아 주세요. 이 말이 정말 무거운 말이고, 실현시키기 어려운 말이지만, 세월호 이후에 사회가 어느 정도 변화했다는 메시지가 남으면 기억될 거예요. 그걸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싶어요.”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의 박상은 작가가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에 나와서 한 말이다. 아직도 4명의 단원고 학생을 찾지 못하고 있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은데 사람들은 벌써 세월호 문제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박상은 작가의 말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박근혜 정부는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는 등, 안전을 강조했지만 세월호 사고 구조에 속수무책이었고, 온 국민에게 내상을 입혔다.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는 세월호 사고 후, 5개월 만에 발간되었다. 대단한 속도다. 이에 대해 박상은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고,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다. 사회운동이 여기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역사적인 맥락에서 봐야 해결책이 있겠다 싶었다. 이것이 정리가 되어야 다음 발을 내디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형사고를 많이 겪었지만, 특히 이번과 같이 어린 친구들이 희생된 것에 대한 책임감이 컸다.”

    그렇다. 세월호가 준 상처를 딛고 일어나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통시적인 정리와 분석을 통한 대책이 필요하다. 박상은 작가는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안전위원회 안전대안팀에서 안전문제의 대안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세월호는 이미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대형사고가 나기 전에는 이미 여러 가지 징후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징후를 미리 캐치하고 대책을 마련했으면 참사는 막을 수 있는 것인데, 우리 사회가 그런 징후를 잡아낼 수 있는 규제를 강화해 간 것이 아니라 해체했기 때문에 세월호가 그렇게 허망하게 침몰했던 것이다.

    1953년 1월 창경호 침몰로 300명 사망, 1970년 12월 남영호 침몰 326명 사망, 1993년 서해페리오 침몰 292명 사망. 20년마다 반복된 이들 사고의 원인은 ‘과적과 과승’, ‘배의 복원력 상실’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20년 후인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이유는… 같았다.

    20년 전 페리호 사고 후, 정부는 과적을 검사하는 운항관리자들을 일시적으로 늘였으나, 사고가 사람들에게 점점 잊힐 때 국가보조금을 줄여버린다. 심지어 2005~2010년까지 6년 동안에는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운항관리 업무예산을 줄인 것뿐만이 아니다. ‘비즈니스 프렌드리’하게 선령규제를 완화하고, 선사와 선주의 책임을 줄이고, 과적을 묵인했다. 그 기나긴 시간동안 세월호는 이미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던 것이다. 10년, 아니, 1953년 창경호 침몰로부터 무려 반세기가 넘는 60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 대한민국이 침몰하고 있었다.

    몇 사람 죽는 일이야 그들에겐 아무 일도 아니다

    세월호 이전에도 한국에는 많은 붕괴 사고가 있었다. 준공 4개월 만에 무너진 와우아파트 붕괴(1970년)부터 성수대교 붕괴(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부끄럽다. 특히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사망자가 502명이나 되는 대형 참사로, 1,000여 명이 사망한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붕괴사고(2013년)전까지 세계 건물 붕괴 사고 사상 최다사망 사고였다.

    삼풍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자료사진

    원인은 부실 공사였다. 기업이윤을 위해 무너지기 직전까지 철근을 빼냈다. 지금도 건설노동자들의 산재율이 가장 높고 그 비율이 낮아지지 않는데, 안전수칙을 다 지켜서는 공기를 맞추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김현진 작가의 말처럼 우리나라 건물은 시멘트가 아니라 사람을 갈아 넣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윤을 위해 사람을 죽인다. 몇 사람 죽는 일이야 그들에겐 아무 일도 아니다. 이윤이 중요하니까.

    방글라데시의 라나플라자 붕괴사고의 원인 역시 부실공사다. 비용절감을 위해 시멘트보다 모래를 더 많이 사용한 데다가 당초 5층이었던 건물을 8층으로 증축했다. 사고 전날 건물 균열로 조업중단을 하였으나,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1-2층 은행과 상점 직원을 제외한 의류 노동자들은 정상출근을 하여 일제히 재봉틀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물이 무너졌다.

    방글라데시에서는 한국 기업인 영원무역이 OEM으로 노스페이스를 제작하고 있으며, 미국의 GAP을 비롯, 스웨덴의 ZARA, H&M 등의 유명 브랜드 옷이 생산되고 있다. 라나플라자 사고 후, 스웨덴 본국의 NGO와 소비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클린 클로즈 캠페인이라고 해서 의류공정무역, 의류노동자지위향상 운동이 일어나 유럽 기업들은 최종 원청이 공장의 안전을 직접 점검하겠다는 ‘방글라데시 화재 건물 안전협정’에 서명했고, 미국과 일본은 ‘방글라데시 노동자 안전을 위한 동맹’에 가입했다.

    이 협정과 동맹은 안전문제 외에 최저임금 등 노동자의 지위 향상은 외면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그나마 한국은 둘 중 어디에도 서명하지 않았다. 방글라데시 노동자가 총에 맞아 죽어도, 건물이 붕괴되어 1천 명의 노동자가 죽어도 한국 기업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한 푼도 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게 다 이윤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한국기업은 제3세계 노동자들도 세월호에 가득 태우고 있는 것이다.

    대형 사고 후 액슨 사와 삼성의 차이

    세월호 사건이 초기에는 ‘진도 여객선 사고’로 불리기도 했는데 사건의 책임을 져야할 기업의 이름을 쓰지 않고 지역명으로 사건을 명명했던 대표적인 예가 ‘태안 기름 유출 사고’(2007년)이다. ‘삼성-허베이스프리트호 충돌 기름유출사고’라고 불러야 하는데,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 사고에서 삼성은 쏙 빠져나갔다.

    당시 유조선 허베이스프리트호는 태풍을 피해 정박하고 있었는데 삼성예인선단이 기상악화를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크레인 예인을 위해 무리한 항해를 시도했다. 해양청 관제사들이 1시간 40분전부터 충돌의 위험을 경고하고 항로 변경하라고 했으나 삼성은 무시했다. 급박해진 해양청이 무전으로는 안 되니 선장의 휴대폰 번호를 수소문해 전화로 경고까지 했으나, 삼성은 충돌 10분 전 허베이스프리트 호에 피하라고만 하고 항로 수정을 하지 않았다.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나. 팟캐스트를 듣다가 살의를 느낄 뻔했다. 사고가 날 경우 직접 책임을 져야하는 선장은 삼성중공업의 하청업체 직원이었고, 기름 유출한 자에게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지만, 크레인의 하루 임대료는 6천만 원이 넘었으므로 무리를 해서라도 선박운항을 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삼성은 사고 후 56억의 손해배상금을 내놓았는데, 삼성이 가입한 보험금이 딱 그만큼의 액수였다. 삼성의 예상 피해액의 1%도 안 되는 경이로운 피해배상액만 물었던 이유는 ‘선박소유주 책임제한’ 제도 때문이다.

    삼성의 기름유출사고와 연관한 사고로 미국 알래스카에서 1989년에 일어난 액센 발데즈호 사고가 있다. 미국은 원유유출사고가 나면 해당 기업에 배상책임을 모두 지우고 있다.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있어 손해배상금 외에 더 배상해야 한다. 삼성이 1% 미만의 책임을 진데 비해 액슨사는 200%의 책임을 졌다. 손해배상금 5억 달러(5천억 원) 외에 징벌적 손해배상액으로 5억 달러를 더 내놓은 것이다.

    당초 알래스카 주민은 액센발데즈호의 1년 수익인 50억 달러를 청구하였으나, 돈도 있고 시간도 있는 기업을 상대로 한 재판은 20년이나 걸렸고, 결국 받아낸 것이 그 액수였다. 오랫동안 싸우고 보니, 미국법정이 회사의 손을 들어줬던 것이다.

    그나마 한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없고, 소유주 책임제한제도를 철폐할 움직임도 없다. 대형사고 경신이라는 불명예를 계속 안고 가지 않으려면 사고의 책임을 실소유자에게 물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민영화와 이윤추구 최우선이 안전을 위협

    지면관계상 팟캐스트에서 이야기 된 대형사고와 그 후속 조치를 다 소개할 수 없어 아쉽다.

    민영화로 인한 무리한 운행으로 결국 탈선 사고를 일으킨 후쿠시야마 사고 후, “책임 추궁에서 원인규명으로”라는 JR 동일본 노조의 원칙을 기조로, 사고를 보고하면 오히려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만들었던 사례, 대구지하철 2호선 화재 사건 후 공기업사상 최장 파업으로 내장재를 불연성 소재로 전환한 사례, 1911년 3월, 불과 15분 만에 146명을 사망케 한 미국의 트라이앵글 화재 사고 후 공장조사위원회를 통한 시설안전, 최저임금, 아동노동금지 등 노동법이 현대화되게 된 사례 등 기업의 이윤을 최대화 하는데 중점을 두면 안전한 사회는 멀어진다는 교훈을 준 사례들이 소개된다.

    특히 트라이앵글 화재사고는 2008년에도 200개가 넘는 단체들이 모여 “트라이앵글 화재를 기억하라”는 조직을 결성했으며, 2011년에는 화재 100주년 기념행사가 거행되었다고 하는데, 세월호 사고를 잊기 바쁜 한국사회에 남다른 시사점을 던져준다.

    서울에서도 외진 곳에 있는 양재시민공원에 버려지듯 구석에 위치한 삼풍백화점 추모비, 대구 시내 중심가에 건립하면 땅값이 떨어진다 하여 외곽으로 빠진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추모비 등… 우리 사회는 무언가를 기억하기엔 너무 바쁘다. 그러다가 또 같은 사고가 반복되게 할 것인가?

    사람을 살리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대형사고가 발생한 전후는 다 비슷하다. 징후가 있었고, 그걸 무시했다. 경영진 등 돈 많고 빽있는 사람은 먼저 빠져나갔으며, 조금이라도 항의를 한 사람들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따른 사람들만 희생되었다. 그리고 조금 기억되었다가 잊혀졌다. 송기역 작가의 말처럼 기억의 싸움, 기억의 투쟁이 절실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위험에 처해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거대한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박상은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사회 전체에 던져진 그 질문에 대해 전문가가 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 전체의 관심과 고민, 토론을 통해 답을 도출해 내는 것이 필요하다.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시 하는 사회분위기와 시스템을 해체하고, 이윤보다 안전을 우선시 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규제완화와 민영화 저지도 같은 맥락이다. JR 동일본의 ‘책임 추궁에서 원인규명으로’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노동조합이 현장노동자들의 권한을 강화하는 작업 속에서 안전한 사회로의 길이 가능한 것이다. 한국은 사고책임을 다 현장 노동자들에게 지게 한다. 안전문제를 바꿀 권한을 주지 않으면서 책임만 지게 하는 체제를 개선해야 한다. 세월호의 전 선장이 복원력에 문제가 있다고 회사에 말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도 현장 노동자의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전규제 강화, 민영화 저지, 현장 노동자의 권한 강화 등 우리가 조금씩 바꿔나가면 안전사회로 갈 수 있다.”

    그렇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책을 쓰면서 많이 울었다는 박상은 작가. 자세히 보면 볼수록 왜 막지 못했을까 싶어서 너무 괴로웠다고 하는데, 팟캐스트를 듣다가 그리고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와 소리를 질렀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괴로웠다.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듣기 ☞ http://www.podbbang.com/ch/8412

    필자소개
    자연인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