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노래 부른
크로스오버 싱어 안드레아 보첼리
[클래식음악 이야기] "신은 내게 눈 대신 목소리로 축복"
    2014년 11월 27일 03: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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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말. 말.

“클래식음악과 팝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이다. 각각은 자체만의 어려움, 특이성, 깊이 그리고 예술적 위엄을 가지고 있다. … 하지만 음악의 역사는 융합으로 가득 차 있다. 대중음악과 클래식음악은 상호 이익을 끌어내는 데 항상 접점, 교차점을 모색해 왔다.”

이탈리아 출신 테너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 1958- )는 선천성 녹내장을 안고 태어났다.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눈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그의 부모는 사방팔방으로 여러 의사들을 찾아다녔지만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그래도 한쪽 눈에는 약간의 시력이 살아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때 보첼리의 어머니는 우렁차게 울어대는 보첼리에게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었는데, 그때마다 아기 보첼리는 금세 조용해졌다고 한다.

어둠 속에서의 답답함과 두려움으로 가득찬 어린 보첼리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은 눈맞춤이 아닌 ‘소리맞춤’이었다. 귓가에 스치는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이 그의 세계와 세상의 세계를 연결하여 주는 또 하나의 탯줄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음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어린 보첼리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은 이 어린 영혼이 음악과 소통하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보첼리에게는 특별히 성악곡을 좋아하는 친척이 한 명 있었다. 아름다운 미성의 테너 성악가 벤야미노 질리Benjamino Gigli(1890-1957)를 좋아했던 이 친척은 어린 보첼리에게 테너 가수 카루소Enrich Caruso(1873-1921)를 비롯해 마리오 델 모나코Mario Del Monaco(1915-1982), 쥬세페 디스테파노Giuseppe Di Stefano(1921-2008) 등의 유명 성악가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린 보첼리는 그 이야기를 몹시 재미나게 들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프랑코 코렐리Franco Corelli(1921-2003)를 좋아했다.

보첼리는 사람들의 기대대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소년으로 성장했다. 보첼리의 목소리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점차 인정받게 되어 성가대 독창자가 되었다. 열 살 소년은 수백 명의 청중 앞에서 <오 솔레미오O Sole Mio>를 불러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후 소년의 노래 실력은 일취월장하여 가는 곳마다 소년의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노래하기를 좋아했던 소년 보첼리는 큰 음량과 아름다운 억양, 깊은 표현력을 요구하는 오페라를 특히 좋아했다. 소년은 노래뿐 아니라 음악을 하는 데 필요한 기본 악기인 피아노와 플루트, 색소폰, 트럼펫, 기타 등 여러 악기를 배우며 음악에 대한 소양과 열정을 키워 나갔다.

보첼리는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다고 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집안에만 틀어박혀 피아노만 두들기는 연약한 소년이 아니었다. 그 나이 대의 다른 소년들처럼 이 음악 소년은 수영 등 다양한 스포츠에 도전하고 그 활동을 즐겼다.

그런 활달한 소년 보첼리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친구들과 축구 경기를 하던 도중 골키퍼를 맡고 있던 보첼리에게 날아온 공이 그만 눈에 맞는 바람에 그나마 남아 있던 한쪽 시력마저 완전히 잃고 만 것이다.

어려서부터 갈망하고 꿈꿔 왔던 오페라 가수의 꿈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순간이었다.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된 소년은 “단 줄의 악보도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울었다. 단순히 악보를 보지 못하게 된 차원이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 종횡무진 움직이며 상대 배우를 바라보며 표정과 몸짓으로 호흡을 맞춰 노래를 불러야 하는 오페라가수 특성상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 보첼리는 그 꿈을 단념해야 했다.

보첼리는 점자를 익히며 피사Pisa대학 법대를 졸업하고 잠시 동안 법정 선임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러나 성악가에 대한 꿈은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고,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루리라는 희망을 안고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피아노바에서 노래하기도 했다.

보첼리

안드레아 보첼리

그러면서 보첼리는 영국의 록 밴드 비틀스와 스티비 원더의 노래를 즐겨 듣게 되었다. 클래식 음악으로 훈련된 그에게 이들의 팝 음악은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었다. 한 마디로 이들의 음악에 ‘꽂힌’ 것이다.

“하늘은 나에게 어둠을 주었지만, 나는 세상을 노래의 빛으로 가득 차게 해야지.” (보첼리)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보첼리에게는 딱 맞는 말이었다. 그의 첫사랑은 오페라 가수였다. 비록 오페라 가수의 꿈은 접었지만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그의 간절함은 대중적 요소를 가진 팝음악과 오페라를 접목시킬 수 있는 팝페라(Popera) 가수를 꿈꾸게 했다. 그리고 그 꿈이 실현되려는 조짐이 보였다.

20대 중반의 보첼리에게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코렐리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어느 날, 그의 집 가정부가 보첼리에게 신문 한 장을 가져다주었다. 가정부가 읽어 준 기사 제목은 ‘프랑코 코렐리, 라 스칼라, 모든 이를 놀라게 하다’였다. 가정부는 보첼리에게 코렐리가 무척 미남이니 만나 보라고 권했다. 당대 최고의 테너 프랑코 코렐리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코렐리는 이 재능이 넘치는 청년을 제자로 받아들였다.

1992년 그의 나이 34세가 되던 어느 날, 그의 아내가 다급하게 불렀다. “여보, 주케로(Zucchero Fomaciari, 이탈리아의 유명 팝 작곡가이자 가수)가 파트너를 구한대요!”

주케로는 자신과 U2의 멤버 보노(Bono, 보컬 리드 싱어)가 공동 작곡한 작품 <불쌍히 여기소서 ‘미제레레Miserere’>를 듀엣으로 부를 테너를 뽑기 위해 오디션을 열었다. 여기서 주케로는 안드레아 보첼리를 선택한다. 주케로는 시각장애인 보첼리의 목소리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다른 테너들이 결코 가질 수 없는 뭔가를 갖고 있어요. 그것은 바로 목소리에 영혼을 불어넣은 능력이죠.”

보첼리는 이제 상류층의 고급문화를 대변하는 엄격한 클래식 오페라와 자유분방한 대중음악을 아우르고 소통시키는 팝페라 가수로서 당당히 무대에 서게 되었다. 그의 노래는 이탈리아, 독일어로 된 전통 오페라 가사뿐만 아니라 영어로 된 가사들이 중간에 들어갔고, 강렬하고 외우기 쉬운 선율과 친숙한 후렴구와 리듬이 있었다. 대중들은 보첼리의 음악에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1995년 보첼리는 이탈리아 작곡가 사르토리Francesco Sartori가 루치오 콰란토토Lucio Quarantotto의 시에 곡을 붙인 <그대와 함께 떠나리Conte Partire>의 영어 버전 <헤어질 시간Time to say Goodbye>을 불렀다. 이것을 들은 영국 팝페라 여가수인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이 함께 부를 것을 제안하여 두 사람은 무대에 같이 서게 된다.

Quando sono solo Sogno all’orizzonte혼자일 때면 수평선을 꿈꾸며 침묵에 잠깁니다

E mancan le parole Si lo so che non c’e luce그래요. 알아요 빛이 없다는 것을

In una stanza quando manca il sole 방안에 태양이 없을 때면

Se non ci sei tu con me, con me만약 당신이 나와 함게 있지 않다면, 나와 함께

Su le finestre창가에

Mostra a tutti il mio cuore나의 마음을 모두에게 보여줄게요

. . . 

Time to say goodbye안녕이라 말해야 할 시간 

Paesi che non ho mai내가 한번 보았고

Veduto e vissuto con te당신과 함께 살았던 나라

Adesso si li vivro지금부터 나는 거기서 살렵니다

Con te partiro당신과 함께 떠나렵니다

Su navi per mari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을 타고

. . .

It’s time to say goodbye안녕이라 말해야 할 시간

. . .

Con te io li vivro당신과 함께 살렵니다

Con te partiro당신과 함께 떠나렵니다

. . .

Io con te당신과 함께

 이 음악을 듣고 미국의 유명한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보첼리의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쏟아지고 만다.”고 찬사를 보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보첼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종교심을 불러일으키며 절대자에 대한 찬미를 드리는 또한 인간의 마음을 성화시킬 수 있는 거룩한 가톨릭 성가 및 종교음악에도 음악에도 몰두했다. 그는 바로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유명 종교 음악들을 모아 앨범에 담았다.

비발디의 <주 하느님, 하늘의 왕이시여Domine Deus Rex Celestis>, 바흐의 칸타타 <예수, 인간의 소망과 기쁨Jesus bleibet meine Freude>, 헨델의 <할렐루야Alleluia>, 모차르트의 <경배하나이다. 진실한 그리스도의 성체여Ave Verum Corpus>, 리스트의 <눈물을 흘리며 씨 뿌리는 자Qui Seminant In Lacrimis>, 베르디의 <거룩하시다Sanctus>, 롯시니의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어지이다Amen>, 19세기 구노Charles-François Gounod의 <교황 행진곡Marche Pontificale>, 비제의 <하느님의 어린양Agnus Dei> 등이 수록된 앨범 <세계를 위한 찬송 A Hymn for the World>(1997)과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Ave Maria>, 베르디의 <레퀴엠> 중 <Sanctus> 등이 수록된 앨범 <영혼의 아리아 Sacred Arias>(1999)을 출시했다.

2006년에는 캐나다 출신의 팝페라 가수 셀린 디온과 <기도The Prayer>(2006)를 함께 불러 큰 찬사를 받았다. 디온은 보첼리의 목소리를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난 어떤 이가 하느님이 노래 부르는 음성을 가졌다면, 안드레아 보첼리와 같은 음성을 지니었을 것이라는 것을 들었다.”

이렇게 보첼리는 세상과, 대중과 그리고 하늘과 소통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소통하지 못한 단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그의 아버지이다.

보첼리의 아버지는 시력을 잃은 어린 아들이 결국 상처만 입을 거라고 생각했으며 그의 아들이 험난한 예술가의 길을 가는 것에 대해 엄청난 반대를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기우에도 불구하고 보첼리는 보란 듯이 성공했으며 온 세상 사람들이 그의 목소리에 넋을 잃었다.

그는 좌절된 오페라 가수의 꿈을 팝페라 가수의 꿈으로 승화시켜나갔으며 결국 그의 앨범인 <꿈 Sogno>(1999)에서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그와의 간절한 화해가 깃들인 자신이 직접 작사한 “아버지께(A Mio Padre)”라는 곡을 통해 아버지와의 대화와 화해를 갈구했다. 아버지에게 편지를 낭독하는 형식으로 된 이 곡을 듣는 순간 보첼리의 아버지와 온 가족은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 우리 말싸움 그만해요. 30년 동안 얼굴 안보고 살 이유가 뭐 있어요. 아버지도 두려우셨죠. 항상 제 옆에 계실 수 없다는 걸 아셨을 때는, 걱정 마시고 제 말 들으세요….저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거든요…. 아버지가 항상 제 옆에 계셔주시길, 제가 얼마나 바라고 있는 지. 안녕. 아버지 또 만나요.”

 안드레아 보첼리는 자신의 환경과 처지를 기꺼이 그리고 긍정적으로 승화시킨 성공적인 예술가이다. 그의 음악은 음악 팬들에게서 유리돼 있던 클래식을 팝과의 부드러운 융합으로 클래식 음악의 거리감을 서서히 좁혀주었다. 이것이 “소통”이다. 그는 음악을 소통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결국 보첼리는 아버지와의 소통을 위해 그렇게 노력했다.

보첼리는 음악을 통해 빛을 보았고 그 빛은 마음의 빛, 세상의 빛, 하늘의 빛을 보고 싶었다. 포기하지 않는 꿈은 언젠가는 이루어짐을 보여준 당사자이다. 그의 꿈은 “소통”이었다. 소통의 대명사인 음악의 힘은 역시 대단하다. 보첼리는 말한다.

“신은 내게 눈 대신 목소리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필자소개
한양대 음악대학 기악과와 동대학원 졸업. 미국 이스턴일리노이대 피아노석사, 아이오와대 음악학석사, 위스콘신대 음악이론 철학박사. 한양대 음악연구소 연구원, 청담러닝 뉴미디어 콘테츠 페르소나 연구개발 연구원 역임, 현재 서울대 출강. ‘20세기 작곡가 연구’(공저), ‘음악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번역), ‘클래식의 격렬한 이해’(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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