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러리스트 강민철은
    왜 전두환 암살에 실패했나?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2] 라종일의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
        2014년 11월 24일 04: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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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깔있는 진보미디어’ 칼라TV가 제작하는 논픽션 책 팟캐스트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는 르포르타주와 논픽션 책을 다루고 있고, 매주 월요일 업로드 된다. 김현진(에세이스트)과 송기역(시인, 르포작가)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책 소개 및 저자와의 인터뷰 외에, ‘신간 논픽션 브리핑’, ‘논픽션 작가 열전’, 인문학 강의, 브릿지 코너인 ‘내 인생의 밑줄 쫙 별표 땡땡’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2회 방송은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창비)의 저자 라종일 교수와 북토크를 진행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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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쾅!!”

    1983년 10월 9일 아침, 버마(현재의 미얀마) 아웅산 묘지에서 하늘이 놀라고 땅이 요동칠 만한 폭발이 일어났다.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은 폭발이 일어난 곳에서 불과 1.5킬로미터 떨어진, 시간으로는 2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이 폭발로 한국인 17명과 버마인 4명이 목숨을 잃고 부상자는 49명에 이르렀다. 전두환을 노린 테러였으니, 테러는 실패했다.

    아웅산테러

    1983년 아웅산 테러 현장 모습(국가보훈처)

    지난해인 2013년, 아웅산 테러 30년째를 맞아 미얀마 수도 양곤에서 테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추모기념비 소식과 함께 흥미로운 기사가 해외언론들을 통해 올라왔는데, 테러리스트 강민철에 대해 다룬 라종일 교수의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이었다.

    강민철은 1983년 당시 북한이 보낸 3명이 테러리스트중의 한 명이었다. 다른 한 명은 체포과정에서 사살되고, 또 다른 한 명은 재판 후 사형 당했다.

    강민철은 왜 김현희와 다른 운명을 맞이했나?

    강민철은 1983년 사건 직후부터 25년 동안이나 형을 살았다. 2008년, 죽음에 이르러서야 감옥 생활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몇 차례 남한으로의 송환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1987년 KAL기 858편 폭파 사건의 주범인 김현희는 특별사면을 받고, 안기부 직원과 결혼, 책 출간도 하는 등, 한국에서 자리를 잘 잡은 것과 크나큰 대조를 이룬다.

    “무엇보다 부정의한 일이죠. 남한에서는 흉악한 테러범이고 북한에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부정하고… 이용당하고 버림받은 한 젊은이가 25년을 타국 감옥에서 살다가 죽은 것을 모른 체 하는 것은 부정의한 일이죠. 그리고 그 사안이 함축하는 의미가 많아요.”

    강민철에 대해 쓰게 된 이유를 라종일 교수는 위와 같이 말한다.

    책을 내면서 비난도 많이 받았다. 우선 끝날 수 없는 희생자 가족들의 슬픔이 가장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이, 송환 노력을 다하지 않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버려져야 마땅할 사람은 없다.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야 하는데, 분단 상황의 국가권력이 한 인간에게 얼마나 큰 비극을 안겨다줬는지 강민철을 통해 알 수 있다.

    전두환은 왜 갑자기 버마를 순방지로 결정했나?

    라종일 교수는, 북한이 광주민주화운동을 지켜보면서 북이 주도하는 통일의 기회로 판단하고, 몇 차례에 걸쳐 전두환 암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1983년 전두환의 서남아시아 순방계획에 버마는 애초에 포함되지 않았었다. 갑자기 버마가 순방지로 결정된 이유는 무엇일까?

    “통상 외교부에서 대통령의 해외 순방국을 계획하는데 버마는 생각지도 않았대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청와대에서 버마를 집어넣으라고 하니까 깜짝 놀랐다고 해요. 버마를 가려면 일정상으로도 차질이 있고, 당시 안기부의 반대도 굉장히 컸어요. 그런데 청와대가 강행을 했어요. 왜 그렇게 청와대에서 원했는가 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이 있어요.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이, 유일한 정당성으로 강조한 것이, 자신은 나라가 비상상태에 있기 때문에 대통령을 하는 것이니, 7년의 임기 동안 나라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고, 임기가 끝나면 재임기간을 절대 늘이지 않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물러나려고 하니까 후한이 두려운 거죠. 그러던 차에 측근 중에 한 사람이 물러난 후에도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버마에 있다는 걸 알려줬다고 해요. 자신의 과오를 들추지 않을 사람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섭정을 하려는 거죠. 그래서 갑자기 버마를 순방국에 넣은 거라는 얘기가 있어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그런 이유밖에는 없지 않겠냐는 추측이죠. (웃음)”

    엉성하고 웃픈 테러리스트

    아웅산테러 사건에 대해서는 ‘남한 정부의 자작극이 아니냐’부터, ‘북한이 테러의 목표를 남한 대통령 제거에서 남한 대통령을 노린 듯한 테러로 바꾼 것이 아닐까’하는 의혹까지 갖가지 음모론이 떠돈다.

    남한 정부의 자작극 가능성에 대해서 라종일 교수는 “그건 우리나라 정보부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다.”라고 일갈한다.(좌중 웃음)

    아무튼 전두환에겐 아웅산 사건이 전화위복이었다. 신군부의 집권으로 동요되고 있던 민심과 민주화 요구를 반공 의식으로 몰고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동북아시아에서 한.미.일 삼각 방위체제를 강화해 신냉전 구도를 확립하려 했던 미국의 속셈과도 맞아떨어졌다. 곧 전쟁이라도 일으킬 거 같았던 한국정부가 예상외로 온건하게 대응한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강민철을 비롯한 3명의 테러리스트들은 고도의 훈련을 받았을 텐데 왜 실패했으며, 실패 후 도피는 또 왜 제대로 못했을까?

    강민철의 증언에 의하면, 테러범들은 전두환이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다는 걸 첩보를 통해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런데 폭탄은 의도치 않게 일찍 터져버린다. 폭발 후, 이들은 현장을 급히 탈출하여, 기다리고 있다던 스피드 보트에 오르려했지만, 있어야 할 배는 없었다. 게다가 이들에게 지급된 수류탄은 안전핀을 뽑기도 전에 터져버렸다고 라종일 교수는 말한다.

    “테러 실패로 자살을 기도할 때 통상적으로 수류탄을 목 밑에 두고 터뜨리는데, 이들의 다친 정도를 보면 손에 쥐고 있다가 터진 것이 분명하다.”

    작전 지도부에서 의도적으로 즉각 터지는 수류탄을 지급한 것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은 정말 테러가 실패하길 원했던 걸까?

    아웅산 테러로 북한은 버마로부터 국교를 단절 당하고 외교적 비난을 받게 되지만, 냉전이 다시 강화되는 당시 상황에서, 제3세계의 모호한 지지보다 소련이나 중국의 지지가 더 아쉬웠을 것이다. 테러 후, 한.미.일 안보체제가 강화되면서 북.중.소의 안보협력 역시 더욱 강화되었으니, 전면전으로 치달을 국가 원수 제거보다 테러 실패가 북한으로서도 실리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강민철을 비롯한 세 명의 테러리스트는, 철저히 이용당하고 냉정하게 버려진 것이다. 특히 사건 후 25년이나 감옥에서 생활하며 평범한 삶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생을 마감한 강민철에게는 더욱 가혹한 처사가 아니었나 싶다.

    라종일 교수는, 여자 손목도 한 번 잡아보지 못한 풋풋한 청춘이 25년이라는 세월을 타국의 감옥에서 스러져간 것에 주목했다. 이것은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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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 녹화 모습

    눈 뜬 채 죽음을 맞이한 강민철

    강민철은 눈을 뜬 채 죽었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거 같았다고 한다.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에 그가 한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수류탄 부상으로 불편한 몸이었지만 죽을 때까지 엄격한 자기관리로 버텨내며 남한이건 북한이건 돌아가고 싶어 했다. 미얀마 정부 역시 그를 석방할 의사가 있었지만, 남도 북도 끝끝내 강민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석연치 않은 점도 많다. 함께 수형생활을 한 우요셋은 강민철이 죽기 얼마 전까지도 건강했다고 증언한다. 북한과 다시 수교를 맺은 미얀마가 그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해, 독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은 어떠한 종교의식도 장례식도 없이 화장장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해 허공에 흩어졌다. 버려진 그의 25년의 삶처럼, 그의 죽음도 그렇게 잊혀져 가고 있다.

    라종일 교수와의 북토크가 끝나고 ‘내 인생의 밑줄 쫙 별표 땡땡’ 코너에서는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 선생이, 할아버지가 들려준 ‘개똥 세 개 이야기’를 소개한다.

    ※ 버마의 정식 표기는 미얀마입니다. 이 글에서는 사건 명칭이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인 점 등의 이유로 부득이하게 내용 일부에서 ‘버마’로 표기했음을 알립니다.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듣기 ☞ http://www.podbbang.com/ch/8412

    필자소개
    자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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