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 그리고 저항의 미래
        2014년 11월 24일 11:28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저는 며칠 전에 캘리포니아 특강 여행을 마치고 오슬로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여독이 풀리지도 않고, 캘리포니아에서 보고 들은 부분들에 대한 기억들도 계속해서 반추하게 됩니다.

    저는 여태까지 많이 다닌 것은 유럽(주로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영국 등)이나 구쏘련, 아니면 한국과 일본이었는데, 거기에서는 어딜 가도 대체로 익숙한 풍경들을 보게 됩니다. 예컨대 대도시 어디라도 미치는 대중교통 같은 것 말입니다.

    복지제도 차원에서 한국이나 일본이 아무리 유럽과 달라도 지하철이나 버스망 구축은 사실 유럽을 출발점으로 하여 지금 같으면 오히려 유럽 이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죠. 서울이나 동경은 정말로 자동차 없이 살아도 되는 두 군데의 메트로폴리스들입니다.

    또 어느 나라를 가도 식당의 웨이터들이 쓰는 언어나 대학교 강당에서 쓰는 언어나 같다는 것도 몸에 익숙한 것이죠. 물론 독일이나 프랑스만 해도 서비스 노동자들의 상당 부분을 이민자, 그것도 많은 경우에 유럽 바깥으로부터 온 이민자들이 차지하긴 합니다.

    그래도 의무교육이 잘 돌아가고 대학이 무료고 해서, 그 이민자들의 2세 같으면 사실 토박이들과 거의 같은 문화자본의 소유자가 되고 맙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은근한, 또는 노골적인 차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만 말입니다.

    미국 지하철

    미국 지하철의 모습

    그러나 이 모든 기본 전제들을, LA가 전복시킵니다. LA라고 해서 대중교통이 전혀 없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비교적 짧은 노선의 지하철도 있고, 약간의 버스 노선도 있긴 있습니다. 현지인들이 “버스 안에서 살해사건이 벌어지곤 한다”고 타지 말라고 협박(?)했지만, 아직 운전을 못하는 저는 궁여지책으로 계속 버스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서울이나 동경, 그리고 그 어느 유럽의 대도시와 달리 LA에서는 대중교통에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대중교통이 안가는 데가 더 많은 거죠.

    통계적으로는, 출퇴근 시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LA에서 1할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제가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통계적으로 봐도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저와 같은 외국인이거나 유색인종들이었으며, 주로 멕시코 등 중남미 계통의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버스 운전사들도 마찬가지이었죠.

    사실 LA에서는 “라틴계”와 “저임금 육체노동자”는 거의 동의어입니다. 유럽만 해도 저임금 근로자들 중에서는 이민자 출신들은 비교적 많긴 하지만, LA만큼 “계급”과 “종족”이 확실하게 중첩되는 경우는, 정말 보기 드뭅니다.

    통계적으로는 LA 총인구의 약 48%는 라틴계입니다. 그들 중에서는 소수는 영세업자나 기술자 등이지만, 절대 대다수는 바로 LA 경제 전체를 뒷받침해주는 저임금 육체노동의 커다란 풀을 이룹니다.

    이것은 정말 동아시아는 물론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어려운 광경이긴 합니다. 대학에서는 당연히 영어가 지배적입니다. 학생들의 절반 가까이 아시아 각국의 출신들인데도 말입니다.

    그 학생들 중에서는 일부는 본국에 돌아가겠지만, 일부는 미국에 남아 지배자(여전히 주로 앵글로-색슨계의 백인)와 피지배자 (라틴계의 육체노동 계층과 흑인계의 육체노동자, 극빈/룸펜프롤레타리아계층) 사이의 일종의 기술자/중소사업자의 중간계층을 이룰 것입니다.

    그러나 호텔에서 제 방을 청소해주는 사람도, 식당에서 음식을 팔아주고 갖다 주는 사람도, 상점의 계산대에 앉아 있는 사람도, 공사장에서 일요일인데도 일하는 사람도, 버스 운전하는 사람도 영어를 한다 해도 아주아주 잛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의 언어는 스페인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에서도 법률적 신분(합법 이주자/비합법 이주자)이나 출신국가 (멕시코 내지 엘살바도르/과테말라, 온두라스 등등 중미 국가), 국적(미국 국적/영주권 보유 여부), 세대(이민 1세냐 아니면 2세 이상이냐), 그리고 물론 재력/학력에 따라 천차만별의 차별들이 발견되지만, 거시적으로 봤을 때 그들은 패권적 백인/영어사회/문화와 공존하는 또 하나의 “평행적 사회”(parallel society)를 이룹니다.

    그러한 “평행적 사회”의 단편들을 유럽의 일부 이민자 게토지역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만, LA과 같은 도시만큼 이 현상은 유럽에서는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독일에서는 예컨대 우편회사 등의 저임금 근로자라 해도, 대체로는 독일인이거나 거의 독일화 된 이민자 2세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LA 같으면 노동계급의 중-하부를 거의 예외 없이 라틴계와 흑인들이 이루는 등 종족-계급 (ethnoclass)의 현상은 매우 가시적입니다.

    계급들이 종족의 벽으로 나누어진 만큼 그 사이의 교통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중교통이 없는 LA는 오로지 고속도로 등으로만 연결돼 있는, 서로 간에 거의 잘 소통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마을”들로 이루어져, 정말 도시다운 동네 사이의 상호적 융합, 침투가 없는 커다란 “마을들의 모음”으로 보일 뿐입니다.

    서울광장 등 유럽이나 한국 도시에 익히 보이는 “중앙 광장”도 거기에서는 없고, “다운타운”은 있다 해도, 상당수의 동네들은 이 “다운타운”과 무관하게 살아갈 수 있는 모양입니다. 모래알형 사회다운 모래알형 도시랄까요?

    신자유주의가 저항을 불가능화 시키기 위해 사회적 소통을 마비시켜 사회를 아노미 상태로 빠뜨리는 체제라면, 아마도 LA처럼 막 널리 퍼져 있는 “마을 모음형 도시”는 거의 신자유주의 시대의 모범도시가 될지도 모릅니다.

    지배자들의 교묘한 이간책에 놀아 지배자도 아닌 한인이라는 중간계층을 겨냥한 20여년 전의 흑인 폭동들과 같은 “인종 폭동”이 아닌, 조금 더 연대적이고 장기적인, 이성적이며 포괄적인 저항의 형태를, 과연 이 도시가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한인 등의 중간적 마이너리티들은 백인을 따라가 “모델 마이너리티” 돼야 한다는 “계급 상향적 집착”과 흑인, 라틴계에 대한 각종의 (상당 부분은 백인들로부터 전수 받은) 편견을 극복하고 범계급적인 저항 연대를 흑인/라틴계와 함께 구축할 수 있을까요?

    한인 커뮤니티의 민족주의는, “백인처럼 성장하자”는 쪽이 아니고 백인 헤게모니에 눌린 모든 소외자/소수자/피착취자와의 “범마이너리티 연대”, 즉 반패권 쪽으로 발전될 수 있을까요? 그래도 한국인이 제일 많이 사는 서방의 도회지인지라, 저로서 LA의 미래는 아주 궁금합니다.

    필자소개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