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하 사회주의자 다룬
    '경성 트로이카' 이야기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칼라TV 팟캐스트 1회 방송
        2014년 11월 17일 03: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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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깔있는 진보 미디어’ 칼라TV가 제작하는 논픽션 책 팟캐스트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가 11월 17일 공식 오픈했다.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는 팟캐스트 방송에선 유일하게 논픽션과 르포르타주 분야 책을 다루며, 매주 월요일 업로드 된다. 김현진(에세이스트)과 송기역(르포작가)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책 소개 및 저자와의 인터뷰 외에, 신간 논픽션 브리핑, 우리 사회 노동 현장에 대한 리포트, 인문학 강의, 브릿지 코너인 ‘내 인생의 밑줄 쫙 별표 땡땡’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회 방송은 진보주의자들의 애독서인 <경성 트로이카>의 저자 안재성을 초대해, 1930년대 사회주의 계열의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자들의 삶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편집자>

    1930년대는 사회주의가 대세
    남녀평등은 기본, 지금도 핫한 이슈인 사형제 폐지까지 주장해

    한국의 사회주의는 1925년 조선공산당의 창당으로부터 시작된다. 한반도에 사회주의자들이 등장하면서 새로 만들어진 사회안전법으로 한 해에 만 사천 명, 적게는 삼천 명의 사회주의자가 검거되었다. 당시에는 사회주의가 대세였던 셈인데, 남한의 반공정책 때문에 그 역사가 외면되어 왔다. 안재성 작가는 조선공산당 강령이 지금 보아도 진보적이라고 평한다.

    “조선공산당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했던 강령을 보면요. 60여개의 강령 중에 그 당시에 벌써 7시간 노동제를 주장해요. 그리고 국민연금, 국민의료보험, 가족수당, 퇴직금 제도까지 강령에 들어 있어요. 남녀평등은 기본이고요. 우리도 근래에 관철한 호주제 폐지를 주장했어요. 그리고 외국인 차별대우금지, 비정규직차별금지, 즉 ‘1년 단위로 계약하지 마라’ 이런 내용이 들어 있어요. 더구나 아직 우리도 하지 못한 게 있어요. 사형제 폐지 같은 거. 굉장히 진보적인 강령이었죠. 그 내용을 접한 사람들에게 대단한 지지를 받았죠. 당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상당한 지식이었거든요.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사회주의자가 되는 게 영광스러운 일일 정도였어요.”

    조선의 체 게바라, 이재유

    1925년 조선공산당이 생긴 이래,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 몇 년 후 공산당은 거의 와해되어 버린다. 무너져 내린 공산당 재건 책임을 박헌영이 맡았지만 그는 상해에 있었기에, 국내에선 이재유, 김형선, 권형택 등에게 공산당 재건의 책임이 맡겨진다.

    이재유는 이현상, 김삼룡 등과 함께 ‘경성 트로이카’라는 자유롭고, 상하가 없는 위원회 방식의 민주적인 조직을 만들었다. ‘트로이카’는, 말 세 마리가 동등한 힘으로 마차를 끄는 러시아 특유의 삼두마차를 뜻한다. 이러한 명칭에서 이재유가 꿈꾼 사회주의가 어떠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1933년 여름부터 <경성 트로이카>에 대한 소문이 은밀하게 퍼져나가자, 국제공산당 코민테른의 지도를 받는 박헌영이 김형선을 국내 책임자로 경성에 보낸다. 김형선은 이재유에게 함경도로 가서 구속된 이주하를 대신해 노동운동을 할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이재유는, 노동운동이 발달한 함경도는 자신이 아니어도 충분하지만 노동운동의 초기 단계인 경성에는 자신이 꼭 필요하다며 김형선의 제안을 거절한다.

    당시 경성에는 소련 쪽에서 들어온 권형태가 이끄는 공산당 조직도 활동하고 있었다. 이재유는 권영태 그룹과도 노선 차이를 보인다. 토론과 협의를 중시하는 이재유의 트로이카는, 코민테른의 지시를 받아 노동자를 지도, 통솔하려는 권형태 그룹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한 노인의 증언에 의하면, 해방 후 이재유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박헌영의 이름은 처음 들었다고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서대문 형무소를 4번이나 신출귀몰하게 탈출한 이재유를 각 신문사는 대서특필했고, 민중들은 해방 후 나라를 이끌 지도자 5인 중 한 명으로 이재유를 손꼽았다.

    그동안 우리 역사에서 지워진 이름이지만, 당시 이재유의 인지도는 이와 같았다. 하지만 이재유는 검거된 후, 8년간의 긴 옥고를 견디지 못하고 해방 직전인 1944년 10월 26일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나이 40세였다. 이재유는 체 게바라보다 앞선 사람이었지만 해방 후 사람들은 그를 조선의 체 게바라로 불렀다.

    경성트로이카

    이효정의 생생한 증언들

    이재유와 함께 <경성 트로이카>를 만든 이현상은 훗날 빨치산 대장으로 활약하고, 지리산 토벌대에 의해 총살당했다. 이효정은 이현상이 동대문에서 노동운동을 할 때 여성들에게 많은 인기를 누렸다고 술회한다. 빨치산의 강인한 인상에 가린 이현상의 의외의 면모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이 줄줄 쏟아진다.

    이현상을 비롯해 김삼룡, 이관술 등 경성 트로이카 일원들은 당시 언론에서 어떤 고문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고문 강자’로 불리었다. 이재유는 ‘고문 강자 중의 강자’로 다섯 달이나 계속되는 고문에도 조직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들은 경성 트로이카의 일원이었던, 이효정으로부터 안 작가가 직접 들은, ‘생생한 증언’이다.

    이효정은 널리 알려진 이육사의 가까운 친척으로, 일제 강점기 때 총파업, 항일운동 등으로 형무소에서 갖은 고문을 견뎌냈고, 해방 후에는 월북한 남편 박두복이 간첩으로 남파된 일 때문에 또 한 번 감옥살이를 하며 갖은 고초를 겪었다. 이효정이 당한 고문은 차마 입에 올리기도 힘든데,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낸 후, 2006년에서야 독립유공자로 복권되었다.

    안 작가는 이효정을 통해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자유롭고 진보적인 사상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안재성이 만난 이효정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두 권의 시집을 낼 정도로 총기를 잃지 않았다. 책을 집필하기 위해 그녀를 인터뷰할 때 종종 같은 질문을 되풀이할 때마다 이효정은 이를 기억하고 “그건 전에 말씀드렸잖아요”라고 답하곤 했다.

    이효정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도 병으로 자리에 누운 상태에서 리영희의 저서 <대화>를 읽곤 했다. 여성 사회주의자로 파란 많은 생애를 보낸 이효정은 2010년 8월14일 향년 9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경성의 모스크바, 동덕여고

    <경성 트로이카>에는 이효정과 같은 동덕여고 출신의 여성 사회주의자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핵심 조직원인 박진홍, 이순금도 이효정의 동덕여고 동문이다. 당시 좌파들이 많은 집단을 ‘모스코바’라는 별칭으로 불리곤 했는데, 동덕여고는 ‘경성의 모스크바’로 불릴 정도로 사회주의자의 산실이었다.

    박진홍, 이순금은 각각 다른 시기에 ‘아지트 키퍼’였던 이재유와 연애를 했다. ‘아지트 키퍼’는 수배자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부부로 위장하고 함께 동거하는 상대를 일컫는 말이다. 철저히 비밀에 부치다보니 둘도 없는 절친이었던 이들은 서로의 아지트 키퍼가 이재유인지 알 수 없었다. 또한 같은 남자를 사랑한 줄도 알 리 없었다. 이들의 삼각관계의 전말은 팟캐스트에서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

    김현진 작가가 묻는다.

    “그 험준한 시대에 연애란 무엇이었을까요?”

    안 작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연애를 못하는 사람은 혁명도 못한다고 생각을 해요. 연애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여자든 남자든 누군가에게 매력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대중적인 흡입력을 가진 거잖아요. 진보주의자들은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사람들이에요. 낭만이 없는 사람은 이 사회에 그대로 적응해 살려고 하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사회를 변혁하겠어요.”

    남과 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경성트로이카

    해방된 후 월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수천명에 달한다. 박헌영이 월북한 후 남쪽에서 남로당을 이끈 김삼룡이 경찰에 붙잡혀 남긴 말은, 월북한 동지들의 미래를 예견하는 듯하다.

    “북에 올라간 박헌영 동지가 저렇게 모진 천대를 받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북으로 가겠소? 우리는 남북한 어디에도 갈 곳이 없소.”

    월북한 경성 트로이카 멤버들이 숙청을 당하고 푸대접을 받은 것은 그들의 자유로운 사상과 비판적인 기질에서 기인된 것이었으리라. ‘당은 무오류’라고 하는 북한의 스탈린식 사회주의가, 민주적으로 조직을 운영했던 경성 트로이카 멤버들과 맞을 리 없었던 것이다.

    자본주의가 심화되고 진보진영의 입지가 좁아지는 작금의 세태에, 경성 트로이카가 소환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작가 안재성은 이렇게 말한다.

    “36년 일제강점기, 18년의 박정희 독재를 지나, 정치적인 자유와 노동자의 법적인 권리가 상당히 많이 확보되었다 싶지만, 이제는 돈으로 사람을 조이는 세상이 되었다. 그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런 신자유주의적인 모순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경성 트로이카와 같은 진보적인 운동을 할 사람들이 언제나 요구된다.”

    <경성 트로이카>엔 1930년대의 경성 모습이 눈에 잡히듯 생생하게 묘사된다. 당시에 출간된 잡지, 문헌, 북한지도, 북한철도연감 등을 안재성 작가가 면밀히 조사한 덕분이다. 안재성 작가의 차기작 역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그는 최근 러시아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톡, 하바로프스크 등지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김명시라는 혁명적인 여성의 일대기를 다룬 장편소설을 집필하기 위한 취재 여행이었다. 김명시는 조선공산당 활동을 하며 이재유와 노선 충돌을 빚기도 했던 김형선의 동생으로, 조선의용군을 지휘한 무정 장군과 함께 중국 팔로군 구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인물이다.

    평생 간직하고 싶은 이소선의 생애 마지막 강연 곧 업로드할 예정

    안재성 작가와의 북 토크가 끝나고, 이어지는 ‘내 인생의 밑줄 쫙 별표 땡땡’ 코너에서는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 속까지 정치적인>의 목수정 작가가 독자들에게 홍신자의 <자유를 위한 변명>을 추천한다. 목수정은 인생의 어느 구비에서 홍신자를 만났고, 왜 이 책을 ‘내 인생의 책’으로 손꼽는 것일까? .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에서는 이번 주에 독자들에게 평생 간직할 만한 소중한 강연 파일을 선물할 계획이다. 2009년 이소선 여사가 <월간 작은책>에서 강연한 「이소선, 이소선을 말하다」를 업로드할 예정이다. 이 강연은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이 생애 마지막으로 남긴 1시간 30분 남짓한 강연이다.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2회 방송에서 다룰 논픽션 책은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창비)이다.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듣기 ☞ http://www.podbbang.com/ch/8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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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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