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제도의 쟁점과 개혁 방향(2)
    [기고] 1인 1표, 권역별 개방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하며
        2014년 11월 13일 09: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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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선거제도들의 쟁점과 개혁 방향(1) 링크

    필자는 기본적으로 선거제도 개편에 대하여 현재의 제도보다 조금이라도 더 비례성과 합리성이 제고될 수 있는 제도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한국 정치의 현실상 비례성이 100% 반영되는 제도가 도입되기란 거의 불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비관론도 가지고 있다. 더구나 모든 측면에서 100% 완벽한 제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참고하고 지향할 만한 선거제도는 분명히 있다. 그동안 진보진영은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를 대안으로 주창하여 왔다. 하지만 상기한 바와 같이 필자는 독일식 제도는 복잡할 뿐만 아니라 유권자의 의사를 명료하게 대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진보진영의 대안으로 삼기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개방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하며 이하에서 개략적인 설계도를 그려보고자 한다.

    개방형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개요

    전체 국회의원을 1인 1표의 권역별 비례대표로 선출하는 제도는 사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서 보편화된 선거제도이다. 아래에 유럽연합 28개국의 국회(양원제의 경우 실질적 권한을 가진 하원 기준)의원 선거제도를 간략하게 소개한다.(가나다 순)

    선거구1-5

    내용은 영문 위키피디아를 참조

    위 표를 보면 유럽 국가들의 보편적인 선거제도는 전체 의석을 권역별 인구에 따라서 할당하고 각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 방식으로 선출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1인 1표제로 국회의원의 지역 대표성과 선거구별 표의 등가성, 정당 지지도에 따른 의석배분의 비례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이고 이해하기에도 쉽다.(더불어 끊임없는 보궐선거도 필요없게 된다.) 그러함에도 왜 우리나라에 이러한 선거제도가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것인지 필자로서는 매우 의문이다.

    한편 투표방식을 ‘개방형’으로 하는 것은 정당의 비민주적 공천 관행을 차단하고 유권자의 인물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위 표에서 보듯이 개방형 명부제도 상당히 보편적인 제도이다.

    다만, 전 회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개방형에는 정당의 명부 순위가 아무 의미가 없고 순전히 개별 득표순으로 당선 순서가 정해지는 완전개방형(핀란드)과 정당의 명부 순위는 존재하지만, 특정 후보가 일정한 비율의 득표를 하면 앞 순위 후보자들보다 우선적으로 당선될 수 있는 제한적 개방형(스웨덴, 네덜란드, 벨기에 등)이 있다. 각각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완전개방형의 경우이다. 15명을 뽑는 선거구에서 어느 정당이 아래와 같이 10명의 후보를 냈고, 후보들이 얻은 총 득표는 10만 표로서 5명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선거구2

    이때, 당선되는 후보는 득표순에 따라서 김일동, 조칠동, 정오동, 이이동, 최사동 5명이다. 즉, 명부의 순위는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실제로 각 당은 제비뽑기로 순위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또는 아무래도 명부의 맨 위에 오르는 것이 유리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1순위 후보만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제한적 개방형의 경우이다. 제한적 개방형은 구체적인 제도 설계에 따라서 차이가 상당히 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가정한다. 위의 경우와 같이 15명을 뽑는 선거구에서 어느 정당이 10명의 후보를 내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이 당의 총 득표수는 10만 표이며 5명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이때, 우선 당선은 그 정당이 얻은 총득표수/후보수 이상의 표를 개별 후보가 얻은 경우로 한정하는 것으로 한다.(물론 이와 다르게 정할 수도 있다.)

    선거구3

    먼저, 우선 당선을 위한 득표수는 100,000(표)/10명=10,000표이다. 위에서 우선 당선표 이상을 얻은 자는 김일동과 조칠동, 정오동이므로, 당선자는 김일동, 조칠동, 정오동이 우선적으로 선정되고, 나머지는 순번에 따라서 이이동, 박삼동이 된다. 순번이 뒤지는 최사동, 강육동, 장구동, 임십동은 이이동, 박삼동보다 많은 표를 얻었지만, 우선 당선표에 미달했기 때문에 순번을 거슬러 당선되지 못한다.

    즉, 정당의 당선 순위 결정권을 인정하면서 유권자의 후보 선택권을 부분적으로 반영하도록 한 것이다. 선거구의 선출 인원이 매우 많은 경우에는 유권자가 선호 정당의 후보 중에서 누구에게 투표해야 할지 막연해지기 쉬운데, 이때 특정 후보에 대한 강한 선호가 있는 유권자 외에는 대체로 1번 후보에게 기표하면 되므로 유권자로서는 편리한 면이 있다.

    한국형 제도 설계

    (1) 개요

    첫째, 300명의 의원 전원(또는 대다수)을 광역시도를 기초로 한 권역별 선거구에서 비례대표로 선출한다. 따라서 모든 의원은 비례대표이면서 동시에 광역시도의 지역대표가 된다. 지금처럼 지역 소선거구에서 1등으로 당선된 1급 의원과 전국구 비례대표로 당선된 2급 의원으로 나뉘지 않게 된다.

    둘째, 투표 방식은 유권자가 투표용지의 정당란 아래에 표기된 개별 후보자란에 투표함으로써 ‘정당’뿐만 아니라 그 정당의 ‘후보’까지 선택할 수 있다. 지금처럼 민의와 관계없이 정당 지도부에게 낙점을 받아 정당 명부 상위권에 오르기만 하면 당선이 보장되는 방식이 아니라 유권자로부터 충분한 지지를 받아야 당선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셋째, 현행 지역구 무소속 출마보다 출마할 수 있는 요건을 까다롭게 한다는 전제 하에 정당에 속하지 않은 무소속 후보의 1인 명부 출마도 허용한다.

    (2) 권역별 비례 선거구의 설정

    17개 광역시도(세종시 포함)를 기준으로 선거구를 설정하고 300석의 의석을 선거구의 인구비례로 할당한다. 인구에 따른 광역시도 의석배분은 아래 표와 같다.

    선거구4

    2014년 7월말 안전행정부 지방자치단체 행정구역 및 주민등록 인구 기준

    이 중에서 개방형 명부제임을 감안하여 유권자의 인물 선택 편의와 선거구별 선출 인원의 현저한 격차를 방지하기 위하여 한 선거구에서 선출하는 최대 인원을 20~30명 정도로 제한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서울과 경기도는 몇 개의 선거구로 분할해야 한다. 20명으로 할 경우, 생활권과 지리를 고려하여 서울은 3~4개 선거구, 경기도는 4~5개 선거구로 나눌 수 있고, 30명을 기준으로 하면 서울은 강남/강북 또는 서부/동부의 2개 선거구, 경기도는 북부권, 남서권, 남동권의 3개 선거구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권역별 선거구의 수는 20개 또는 22~24개가 된다. 한편 세종시는 부득이하게 1명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가 될 수 밖에 없는데, 세종시는 지역적 독자성에 기반한 행정구역이라기보다는 행정도시라는 특수성에 기반한 행정구역이므로 이를 별개의 선거구로 하지 않고 충남-세종의 1개 선거구로 묶을 수도 있을 것이다.

    (3) 선출 방식

    개방형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의원을 선출한다. 완전 개방형 명부제가 유권자의 선택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한다는 점에서 원론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후보자 중에서 1명을 선택해야 하는 유권자의 피로감이 있을 수 있고, 선거운동 과정에서 개별 후보들이 정당의 규율을 넘어선 과도하게 각개약진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제한적 개방형 명부제도 가능하다고 본다. 득표율에 따른 비례의석 배분 방식도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이 글의 주된 주제가 아니고 각 방식에 따른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4) 당선 하한선과 무소속 후보 문제

    국민 의사의 온전한 대변이라는 측면에서는 당선 하한선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하겠으나 지나치게 과도한 정당 난립을 규제하는 것은 일정 부분 합리성이 있고,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일정한 하한선 제도를 두고 있다는 측면에서 하한선 문제를 접근할 수 있겠다. 다만, 독일과 같은 전국 5% 하한선은 지나치게 엄격하여 소수 정당의 진입 자체를 가로막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개인적 의견은 전국적으로 2~3%의 기준을 충족하는 선에서 하한선을 두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다만, 10인 이하의 작은 선거구에서는 실질적인 하한선이 법정 하한선보다 훨씬 높아질 수도 있다.

    무소속 출마를 허용하는 문제도 고려하여야 한다. 모든 의석을 비례대표로 선출하면 무소속 출마가 불가능해지므로 참정권을 부당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비례대표제라고 해서 무소속이 이론적으로 불가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터키나 폴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권역별 비례대표에서 무소속 후보의 1인 명부 출마가 가능하다.

    우리의 경우에도 무소속 후보의 1인 명부 출마를 허용하되, 출마 요건은 현행보다 엄격하게 하고 선거구별로 발생하는 최저 당선 득표율을 충족하는 경우에 당선되도록 하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현행 제도에서 지역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려면 300인 이상의 추천(현행 소선거구 인구 평균의 0.15% 정도)을 요하는데, 선거구가 광역화된 측면까지 감안하여 선거구 평균 인구의 0.2% 정도인 5천명 정도의 추천인을 받도록 하고, 1인 명부의 득표율이 선거구별 선거 결과에 따른 최저 당선 득표율을 넘기면 당선이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무소속 출마 자체를 원천봉쇄하지 않으면서 무분별한 출마를 규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5) 전국구 조정의석을 둘 것인지

    전국구 조정의석은 현재 스웨덴과 덴마크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전체 의석 중 일부를 권역별 선거구가 아닌 전국구로 유보하는 것이다. 스웨덴의 경우 총 349석 중 11%인 39석을 조정의석으로 두고 있고, 덴마크는 총 179석의 22%인 40석을 조정의석으로 두고 있다.

    조정의석 제도의 의의는 권역별 선거에 따른 정당들의 의석 배분율이 전국적인 득표결과와 불일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조정하여 보다 온전한 비례 효과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예컨대, 선출 인원이 10명 이하의 작은 선거구의 경우 심하면 10% 이상을 득표하여도 의석을 얻지 못하는 정당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전체 선거 결과는 작은 선거구에서 의석을 얻기 힘든 군소 정당에게 불리해지고 득표에 따른 비례성이 축소되게 된다. 권역별 선거구 결과를 총합한 전국 득표율에 따라서 조정의석을 추가적으로 정당들에게 배분함으로써 완전한 비례성을 달성하게 된다.

    우리의 경우 국회 총 의석 300석의 10% 이하인 20~30석 정도를 전국구 조정의석으로 유보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유권자가 전국구 명부에 대하여 별도로 기표해야 하는지는 논란의 소지가 있겠다.

    우리나라에서 1인 2표제가 도입되기 이전(2000년까지)의 전국구의원 선거와 동일하게 보아서 전국구 명부에 별도 기표하지 않으면 직접 선거 원칙에 위배된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지만, 권역별 비례명부에 대한 투표가 이미 정당에 대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1인 2표제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한편으로 무소속 출마의 허용과 전국구 조정의석 제도가 서로 상충되는 면은 없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럴 가능성은 낮겠지만 무소속 당선자가 상당수 생기게 되면 전국구 조정의석을 통하여 완전한 비례성을 달성하는 것이 어렵게 될 수 있다.

    맺으며

    필자가 선거제도에 처음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이념․정책 지향의 진보정당이 현재의 제도 하에서는 생존 자체가 어려운 현실을 접하고 나서였다.

    하지만, 지난 수년 사이에는 (잠재적인) 진보정당 지지자로서의 입장을 떠나서, 현행 양당제가 야기하고 있는 정치 질곡과 퇴행을 극복하고 국민들의 다양한 이념지향과 계층적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신진 정치세력의 제도권 진입을 활성화하지 않고서는 나라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이 들기 시작했다.

    따라서 필자는 어떠한 제도가 되었든 현재보다 비례성과 대표성을 조금이라도 제고할 수 있는 제도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현행 선거제도의 골격 하에서 비례의석수를 늘리는 방안, 3인 이상 선출을 전제로 하는 일본식 중대선거구제의 도입도 최소한의 긍정적인 효과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적어도 진보진영이 내세울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은 필요하다. 필자가 제시한 선거제도가 가장 훌륭한 것도 아니며 많은 문제점이 있고 여러 가지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전혀 다른 대안이 있을 수도 있다.

    비록 정략적인 이해에서 제기되고 있다 하더라도 개헌을 비롯한 통치구조 개혁론이 제법 강도 있게 불거지고 있고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른 선거구 재편이 불가피한 지금 시점이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위한 최선의 시기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안 될 것이라는 회의론을 넘어서서 백가쟁명의 논의와 대안 제시가 있기를 기대한다.

    필자소개
    노무사. 진보정치 무당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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