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베는 왜 거리에 나왔나
    동일한 병리적 사회현상 진단, 원인 분석과 처방은 달라
        2014년 11월 11일 09: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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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베라는 존재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왜곡된 역사인식은 물론 소위 ‘패드립’에 강했으며, 각종 혐오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새 사람들은 이들을 ‘루저’ 또는 ‘찌질이’, ‘일베충’이라고 조롱하기만 했다. 나아가 일베를 하는 사람이라고 의심이 될 때에는 너나없이 ‘일베충’이라고 몰아붙이며 ‘조리돌림’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식의 진단은 일베의 탄생의 원인과 대처 방안를 내놓는 데에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단순히 루저이거나 찌질이이기 때문에 일베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세월호 유가족 단식 투쟁 농성장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이며 자랑스러워하던 일베인들은 더 이상 ‘루저’가 아니었음을 드러내는 중요한 단초였다.

    새정치연합의 이종걸, 추이매, 신경민 의원은 이 같은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 10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에서 ‘거리로 나온 일베,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공동주최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다소 상이한 진단을 내렸지만, ‘병리적 사회현상’이라는 데에는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현상에 대한 진단이나 원인 분석은 다소 상이했다.

    이종걸, 추미애, 신경민 의원은은 일베와 같은 현상을 ‘성숙되지 못한 시민의식’으로 규정하며 혐오범죄와 관련한 입법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정통성 없는 보수의 열등감 표출’이라고 보면서 보수의 민주화를 역설했다.

    양대웅 ‘더플랜’ 대표는 ‘빈곤의 파시즘’으로 진단하며 혐오범죄 처벌의 강화를 주장했고,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 교수는 남성주의적 문화 문제를 지적했다. 천관율 <시사인> 기자는 ‘권리와 의무가 불일치한 사회’에서 ‘무임승차’하는 시민들에 대한 혐오하는 것에 다수대중이 은밀히 공감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민주-진보 세력의 전략적 접근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일베

    사진= 미디어오늘 김유리

    누구의 분석과 진단이 더 정확할지는 모르겠다. ‘일베는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는 말과 같이 일베는 하나의 인격체일 수 없고, 수많은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이유로 일베에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다만, 확실한 건 이들을 ‘루저’, ‘민주의식이 결여된 시민’이라고 규정하기에는 훨씬 더 복잡한 사회, 경제, 정치적 문제가 혼재되었다는 점이다.

    일베, 보수정권이 만들었을까, 민주정권이 만들었을까?

    이날 발제를 맡은 이종걸 의원은 일베와 보수정권을 동일선상에 두고 봤다. 또한 일베의 소수자 혐오에 대해서는 “단순히 민주화의 실패나 민주주의의 허약함에만 근거하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일베의 소수자 혐오를 <증오범죄법>으로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미애 의원 진단 역시 비슷했다. 추 의원은 “일베는 개인적인 반사회적 심리라고 볼 수 없다. 징후적인 것”이라며 “우리 사회의 집단지성과 민주성의 후퇴의 징후”라고 말했다. 민주주의는 잘 확립됐지만, 성숙하지 못한 일부 시민이 일베에서 소수자 혐오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일베의 탄생 배경보다는 일베의 ‘보수성’에 주목했다.

    그는 일베를 포함한 온라인상의 극단적인 보수 세력에 주목했다. 바로 ‘서북청년단’ 재건위와 같은 부류이다. 그는 이들이 나타난 현상을 보수세력이 ‘불만’이 많다고 봤다. 그는 발제를 통해 “한국의 보수는 ‘보수적이지 않은 보수”라며 그 이유에 대해 “자기가 지켜야 할 가치와 이념이 있어야 했는데 그게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보수세력의 첫 번째 등장시기인 해방 이후 권위주의 정치 체제 동안에는, 독재권력이 기득권세력으로 동일시되어 지배의 정당성을 받지 못했다는 점을 들었다. 두 번째로는 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체제의 일부로 편입할 기회를 얻었는데, 과거 친일이나 독재에 대해 제대로 된 성찰이나 청산을 이루지 않고 편입함으로써 문제의 근원을 안고 있었다. 세 번째로는 영원히 집권할 줄 알았지만 10년간 실정하면서 지속가능한 보수를 꿈꾸었고, 그때 등장한 것이 뉴라이트였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보수세력은 다시 긴장감이 사라지고 다시 방황하게 됐고, 보수의 원류를 찾아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만들겠다는 도전을 벌이게 됐다는 것이 이 위원의 분석이다.

    특히 보수세력은 한국 현대사의 3단계인 건국-산업화-민주화를 예정된 것처럼 받아들여서, 다시 이를 거꾸로 올라가 산업화가 있기에 민주화가 가능했고, 건국을 했기에 산업화가 가능했다면서, 박정희 숭배에서 이승만 숭배로 이어지더니 급기야 현대사의 시작점인 해방 이후 서북청년단 등과 같은 세력을 미화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근현대사 역사 왜곡 사태같은 것이 바로 이 때문에 벌어진다는 지적이다.

    이 위원은 보수세력의 불만의 근원은 ‘상대적 박탈감’과 ‘보수 정통성의 결핍’으로 봤다. 실정에 대한 불안감이 있으면서도 사회적 가치들과 충돌하면서 열등감으로 나타난 게 아니냐는 것.

    그는 “종북 담론은 열등감의 표현”이라며 “남한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북한과 연계해 설명하면서 우월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천관율 <시사인> 기자는 좀 더 현상학적으로 접근했다. 세월호 농성장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인 이들이 애국가를 부르며 자긍심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천 기자의 발제는 지난 <시사인> 기사에서도 볼 수 있다. (기사 링크)

    그의 발제 내용을 요약하자면, 일베가 주로 혐오하는 세력은 여성, 호남, 진보세력이며, 이들을 혐오하는 이유는 ‘능력만큼 성공할 수 있는 세상’에서 ‘떼를 써서’ 특권층이 된다는 이른바 ‘무임승차’자들이기 때문이다. 일베에게는 세월호 유족 역시 대학특례입학, 엄청난 보상금을 받는 특권층 세력이다. (그러나 특례입학은 사실이 아니며, 일베에서 비교하듯 천안함 희생자와 보상금 규모를 단순 비교할 수 없다. 보상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

    그런데 문제는 일베의 주장은 나름 미묘하게 다수 대중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정의와 평등이라는 도덕적 감정을 기반으로 무임승차자에 분노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설명이다.

    이 지점에서 천 기자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한국의 진보세력은 2가지 과정을 은밀히 공유한다. 보수 지지자는 탐욕스럽거나 무지하다는 것”이라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데 보편적 복지의 대표적인 기획인 무상급식에 대해 보수는 ‘무상’을 공격하고, 진보는 ‘급식’으로 방어한다”며 “진보가 과연 무상급식을 보편적 복지로 승리하는 것이냐, 아니면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먹거리 문제로 돌파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 기자의 이 같은 지적은 민주-진보세력의 보편적 복지 정책은 다수 대중들의 ‘무임승차론’을 더욱 자극한다는 지적이다.

    일베에는 단순히 하위문화 코드를 즐기는 이들도, 단순히 소수자를 정말로 혐오하는 이들도, 자신의 빈곤의 상태를 무임승차자들을 혐오하는 것으로 정치적 목표(강한 보수정권)를 이루어내가기 위해 활동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단지 이들의 표현양식이 과격하다고 해서 ‘루저’나 ‘찌질이’ 취급을 하고, 이들의 표현양식만 제재한다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들에게 민주정부가 10년 동안 집단지성을 이루었는데 ,시민의식이 결여된 자들라고 몰아붙이는 것도 딱 맞아떨어지는 비난도 아닐 것이다. 그런 비난은 그들에게 아픈 비판이 될 거 같지도 않다. 오히려 지금은 그 표현의 방식가 양상은 전혀 다르지만  적지않은 대중이 공감하고 있는 민주-진보세력에 대한 불만의 근본적 원인을 진단해야 할 때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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