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노동자정당 건설 운동에 대한 제언
    [투고]주류에서 밀려난 '패잔병 연대'가 되어서는 안돼
        2012년 07월 06일 12: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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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 후 통합진보당이 더 이상 진보정당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이 생겼다. 진보신당을 포함해 다른 진보/노동자 정당을 추진하는 다양한 흐름이 있다. 노동 쪽의 주요한 흐름으로는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 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전국 활동가모임’,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 모임’ 그리고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등을 들 수 있다. 영남노동운동연구소의 임영일 교수처럼 ‘억울하지만 정당 운동에서 철수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정당 운동의 영역에서 ‘통합진보당’이 아닌 다른 진보 정당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의견이 주로 ‘국민참여당과 함께 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에 근거한다면, 노동 쪽에서는 이에 더하여 ‘돈 대고 몸 댔는데 명망가 좋은 일’만 시켰다는 배신감이 깊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제대로 다시 한번 해보자는 주장을 반대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저 ‘통합진보당’의 꼴은 눈 뜨고 못 봐주겠다는 ‘비분강개’ 만으로는 당을 만들 수도 온전히 유지할 수도 없다.

    2004년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정치포스터

    나는 그런 이유에서 왜 진보정당이 왜 ‘노동’ 없는 진보정당이 되었는지에 대한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의 진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 근처에도 못 가본 내가 말하기엔 적절치 않은 주제라고 생각하지만 때론 하수도 구경할 땐 고수보다 바둑이 잘 보이는 법이다.

    민주노동당의 태동은 97년 ‘국민승리21’의 성과와 ‘노동법개악저지투쟁’으로 이어진 민주노총의 동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진행된 정리해고, 구조조정, 공기업 민영화는 대규모 사업장이 주력을 이루던 민주노총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사내 하청으로 인해 더 이상 늙은(지켜야 할 게 많아진) 노동자를 대체할 젊은 노동자는 조합에 수혈되지 않았다. 어쩌다 들어 온 젊은 노동자도 요즈음 같은 시기에 ‘목숨’ 걸 기란 쉽지 않다.

    금속노조에서 매년 발표하는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의 평균 연령은 42.6세이며 평균 근속 년 수는 17.1년이다. 노조의 고령화는 ‘투쟁’이 무기일 수밖에 없는 노조를 결정적으로 약화시켰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기 시작한 그 때에 민주노총 중심의 노조운동은 본격적인 하강 국면에 접어든다. 10석의 의석이 생겼고 일당백 의원들과 보좌관들이 맹활약했지만 ‘제도’를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본격적 하강 국면에 들어간 노동조합은 자신을 돌보기에도 힘겨워 했다. 민주노총 출신의 위원장들은 더러 있었지만 민주노동당의 모든 조직, 특히 기초 조직은 여전히 배고픔을 견딜 수 있는 학생운동 출신들로 채워 졌다. 그들은 젊고 유능했으나 대개의 경우 현장 경험이 일천했다. 정치도 사람이 하는 건데 사람들의 구성에 따라 조직이 가는 방향은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민주노총이 ‘돈’은 댔는지 모르겠지만 ‘몸’을 댔는지는 의문이다.

    조합을 통해 집단 가입한 아저씨 당원들은 오히려 학생운동을 경험한 먹물 당원들보다 소위 말하는 ‘당성’이 떨어졌다. 선거나 특별당비 독려 전화를 하다가 이런 아저씨 당원들에게 무안을 안 당해본 당직자는 없을 것이다. 대규모 사업장이 밀집된 지역을 제외하면 노동자 당원은 그저 동네 아저씨일 뿐이다. 잘해야 1표인.

    명망가나 정파, 학생운동 출신 활동가들에게 ‘노동’ 없는 진보정당을 만든 책임을 지라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노동’ 없는 진보정당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민주노총이 진보정당을 노동자정당으로 만들 능력도 의지도 없었기 때문이다.

    총연맹 상층 활동가들과 민주노동당 정파의 짝짓기는 노총도 당도 기형적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부분을 덮어 놓고 출발하는 ‘노동자 정당’은 같은 오류를 반복할 뿐이다. 최근의 통합진보당 사태와 민주노총의 무리한 총선 대응은 이를 반증해주고 있다.

    새로운 ‘노동자 정당’은 노동조합운동을 통해 성장한 다양한 활동가들이 지난 십여 년 간의 진보정당 운동을 통해 성장한 정당 활동가들과 함께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출마자, 기획, 조직 등의 모든 부문에서 함께 활동해야 한다. 기획/선전/정책 등은 정당 출신 활동가들이 연대사업은 노조 출신이 역할 분담하는 기계적인 역할 분담은 오류를 반복할 뿐이다.

    당은 이들을 위해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가동해야만 한다. 새로운 노동자 정당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꼭 상근이 아니더라도 최소 100명의 활동가를 그 당에 파견하고 책임질 자세가 아니라면 그 당의 운명도 장담할 순 없다.

    또 하나 비정규직 문제다. 하청 노동은 비단 대공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매일 받는 대출, 보험, 핸드폰 가입을 위한 아웃바운드 콜이 거의 대부분 하청/파견 노동으로 이뤄진다. 그들은 단결할 조건 조차 보장 받지 못한다. 대공장의 사내 하청 노동자들보다도 이들의 조건은 열악하며 거의 대부분 여성 노동자들로 구성된다.

    투쟁 사업장 중심, 제조업 공장 하청 노동자 조직이 주를 이루는 민주노총 식 비정규직 조직화가 포괄하지 못하는 비정규직은 도처에 널려 있다. 영세 식당에서 일하시는 노동자들, 작은 IT 회사에서 일하는 IT 노동자들, 작은 빌딩에서 일하시는 노동자들, 대형 프랜차이즈에서 일하는 청년노동자를 민주노총이 조직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그것은 지역에 근거한 정당이나 지역 운동 조직이 유기적 역할을 할 때만이 가능하다.

    한정된 역량으로 비정규투쟁 사업장에 연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정당 본연의 일은 그 투쟁을 양산하는 제도를 고치기 위한 이데올로그와 정책을 생산하고 이슈를 만드는 일이다. ‘청년유니온’의 주휴수당 투쟁은 좋은 본보기이다.

    민주노총은 조직화가 가능한 사업장/업종 단위의 비정규직 조직화에 중심을 두고 노동자정당은 조직이 어려운 지역 비정규직을 위한 진지 구축에 중심을 두고 움직일 때 비로소 제대로 된 노동자 정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노동자 정당에 소속된 노동자 당원은 ‘민주노총’이 그런 길을 가도록 앞장 서야 할 소명을 가져야 한다. 노동자 정당의 현대자동차 조합원이라면 ‘단일노조’를 만들기 위해 당연히 투쟁해야 한다.

    지금 논의되는 ‘노동자 정당’이나 ‘좌파 정당’이 가야 했는데 실패한 뻔한 길로 가기 위한 매력 없고 심심한 길이 아니라 가보진 않았고 때론 틀릴 수도 있지만 해보지 않은 상상과 실험이 가능한 떨리고 역동적인 과정이 되어야 한다. 노동운동과 정당운동의 주류에서 밀려난 패잔병들의 연대. 재미 없다.

    필자소개
    진보신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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