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폭력의 야만 반복되는 이유
    [인도 수구보수파들의 생얼] 권력관계,사회구조 바뀌어야
        2014년 11월 06일 09: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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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회로 <인도 수구보수파들의 생얼> 연재를 마친다. 필자들은 인도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제가 바로 우리의 문제이고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전하려고 했다. 그동안 연재 글을 보내준 이광수, 한형식 선생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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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수구보수파들의 생얼-18> 링크

    성폭력은 인도사회 수구집단의 논리와 사고방식이 가장 야만적으로 표현되는 현상이다. 성폭력을 저지르는 가해자들의 행위와 태도뿐만 아니라 성폭력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을 통해서도 인도 수구세력의 생각은 잘 드러난다.

    2012년 12월 인도 수도 델리에서 23세 여대생이 남성 6명에게 집단강간과 폭행을 당했고 병원 치료 13일 만에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인도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알려진 이 사건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인도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다시 한 번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사건 1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이 터져도 이내 잠잠해지고 낡은 관행 속으로 되돌아가버렸던 과거와는 분명히 다른 상황이다.

    하지만 낙관적이지만도 않다. “살인의 추억”이란 영화에서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야?”라는 송강호의 대사처럼 어느 외신은 “인도는 강간의 수도(capital)인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달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 제목에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 정도로 인도의 성폭력 문제는 아직도 심각하다.

    사실 공식적인 통계만 보면 인도의 성폭력 건수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당히 낮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보고되지 않은 사건이 훨씬 더 많을 거라 생각한다. 1990년에서 2008년 사이에 강간사건은 두 배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강간사건의 실제 증가보다 신고되지 않던 사건들이 신고된 것이 원인이라고 본다.

    국제적 인권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Human Rights Watch)도 신고되는 강간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들에 따르면 많은 피해 여성들이 신고를 꺼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피해자를 오히려 비난하는 낙인효과다.

    피해자의 행실, 처신을 원인으로 돌리거나, 가족이나 촌락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비난하는(심지어 ‘명예살인’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분위기로 인해 강간사건 피해자는 사건 이후에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강간사건을 신고해도 경찰이나 병원에서는 무시하고 그냥 돌려보내는 일도 허다하다.

    많은 성범죄 사건이 몇 년씩 종결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게다가 강간피해 사실을 입증한다는 명분으로 “처녀성 검사”를 강요받는 치욕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인도 출신 여성작가 소냐 팔레이로는 “성폭행 피해자에 대해 더럽혀졌다고 보는 인도의 문화가 문제다. 아무도 성범죄 피해자와 결혼하지 않으려 해 결국 가해자와 결혼하는 것이 해법으로 제시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라고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말했다.

    델리사건 이후 인도 정부의 대응은 예외적으로 신속했다. 그러나 이것은 인도 정부의 자발적인 의지 때문이 아니었다. 인도 국민들이 과거와는 다르게 커다란 분노를 시위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 정부를 움직인 것이다.

    사건이 알져지자마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신속한 처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경찰은 용의자 여섯 명을 곧바로 체포했다. 사건 발생 직후 범인이 모두 체포됐고 살인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은 이례적인 경우다. 2012년 델리에서만 600건에 이르는 성범죄가 경찰에 접수됐지만 유죄 선고가 내려진 것은 단 한 건이었다.

    인도 의회는 정규 업무를 제쳐놓고 사건 대책을 논의했고 야당 대표는 범인들을 교수형 시켜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그리고 법과 관행의 개정도 이루어졌다. 성폭력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별도의 재판 절차가 만들어졌다. 성폭력에 대한 정의도 더 포괄적이 되어 성기 삽입 이외의 다양한 공격 행위들도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처벌도 강화되었고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치료와 재활에 필요한 비용도 보상하게 만드는 법도 만들어졌다. 형사소송법 상에 40년 만에 가장 큰 변화가 도입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권이 이렇게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은 누구나 짐작하듯이 올해 5월의 총선 때문이었다. 델리사건에 대한 국내외의 여론이 심상치 않은 것을 눈치 챈 정치인들이 갑자기 반성폭력 활동가라도 된 듯이 행세하고 있다. 델리사건의 피해여성을 싱가포르까지 가서 치료받게 한 것과 피해자가 이송되는 공항에 수많은 정치인들이 등장한 것도 표를 의식한 가식이라는 비판이 많다.

    정치권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입으로는 성폭력을 비판하고 처벌강화를 위한 법제화도 하지만 정작 정치권 내부에서의 자정 노력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명백한 성폭력 가해자가 정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되었는데 이들을 제재하는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고 있다.

    최근 5년간 성폭력을 비롯해 여성을 상대로 가한 범죄행위에 연루된 국가고위직 선거후보자 수가 200명이 넘고 그 중 6명이 당선되어 현재도 주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밖에 여성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에 연루된 국회의원 수가 36명인 것으로 공개되었다.

    성폭력 문제에 대한 인도 정치인, 고위관료들의 말도 그들의 여성비하적 인식 수준을 잘 보여준다. 인도의 최고 수사기관인 중앙수사국(CBI)의 국장은 “도박을 금지하기 힘들면 도박을 합법화해서 수입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성폭력을 막을 수 없다면 즐기는 것과 같다.”는 말을 해서 비난을 자초했다.

    델리 경찰 책임자의 발언은 보수적 시각을 잘 보여주는 또 다른 흥미로운 예다. 그는 인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사건의 97%에서 가해자는 피해자가 아는 사람이고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는 가해자의 집인 경우가 많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이 통계는 언론에서 주로 보도하는 공공장소에서의 엽기적인 성폭력 사건보다 일상의 공간에서 만연한 성폭력이 진짜 문제이며, 치안의 획기적인 강화만으로 성폭력을 줄이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사회적 관행, 의식, 문화, 제도가 모두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경찰 책임자는 이 통계를 성폭력 사건에 대한 경찰의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의 부주의한 처신에 책임을 돌리는데 사용했다. 그는 여성들이 가해자의 “침실이나 집으로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인도 여성시위

    인도 비하르주의 파트나에서 벌어진 시위. 집단 성폭행 피해자의 사망 소식에 시위가 더욱 격렬해졌다. 사진=신화통신

    이렇게 노골적이진 않지만 보수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또 다른 입장도 있다. 이들은 여성에 대한 보호와 전통가치의 부활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즉 여성을 보호받아야 할 약자로 대상화하면서 사회의 보수화를 위한 명분으로 성폭력 문제를 악용하고 있다.

    이런 관점은 성폭력 사건의 증가 원인을 여성의 지위 향상, 사회활동 증가에 있다고 보고 여성들을 다시 전통적인 여성(그들의 표현으로는 “진짜” 여성)으로 되돌리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보호라는 명분으로 여성의 자유를 제한하려 한다. 여성의 “문란한” 태도와 옷차림이 성폭력을 유발한다는 오래된 남성 중심적 논리가 되풀이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이러한 의견은 주로 정치인, 보수적 사회활동가 그리고 특히 종교인들의 주장이다. 어느 성직자는 성폭력을 당한 여성은 성폭력을 행한 남성을 형제로 품고 그들의 손을 잡고 신께 도움과 용서의 기도를 올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과학적이고 진보적인 분석 같지만 실제로는 아주 반동적인 시각이 깔려있는 논리도 있다. 인도의 남녀차별 문화를 비판하면서 그로 인한 남녀의 성비불균형을 성폭력의 주원인으로 보는 시각이다. 실제로 인도의 고질적인 남녀차별은 여아 출산을 부담스러운 짐으로 만들었다. 태아 성감별과 여자태아 낙태는 불법화되기는 했지만 광범위하게 저질러지고 있다. 그 결과 인도 거의 모든 지역에서 남녀의 성비 불균형은 심화되고 있다.

    여성의 부족으로 결혼하지 못하는 가난한 남성들에게 다른 사회적 소외, 빈곤으로 인한 불만까지 더해져 교육받은 상류층 여성을 상대로 성폭력이라는 방식으로 복수한다는 논리가 널리 유포되고 있다.

    2011년 인도 경찰 발표에 따르면 여성을 상대로 한 납치와 인신매매(trafficking)는 전해에 비해 각각 19.4%와 122%나 증가했다. 이 주장을 하는 이들은 납치와 인신매매의 증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

    그러나 이 논리를 반박하는 사실들이 적지 않다. 여성차별은 빈부에 상관없이 만연한 풍조이고 더 부유하고 더 교육받은 계층도 예외는 아니다. 여아낙태로 인한 남녀성비 불균형이 가장 심한 지역은 남부 델리를 비롯한 부유한 지역들이다. 그리고 인신매매, 성매매 증가의 배경에는 여성비하적 문화와 급격한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조직범죄가 있다. 이 논리는 가해자를 피해자화하거나 가난한 남성을 악마화하는 오류에 빠진다. 한국의 소위 일베충에 대한 진보논자들의 분석에서도 이런 논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성폭력이 행해지는 양상을 보면 원인은 너무나 자명하다. 오랫동안 그리고 현재에도 성폭력은 더 많은 권력, 부를 가진 더 높은 계급의 남성들이 그 우위를 이용해 가난하고 낮은 신분의 여성들에게 공공연하게 저지르던 행위였다. 하층의 남성들이 상층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범죄는 여전히 예외적이다. 이런 종류의 사건만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행태 자체를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인도 농촌의 지배계급인 지주-상층카스트 동맹은 자신들의 특권, 지위를 이용해 땅 없는 농민, 하층 카스트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저질러 왔지만 이로 인해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성폭력 피해자 중에 압도적인 수가 달리트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2007년 우따르 프라데시에서 보고된 성폭력 사건들을 분석한 시민단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의 90%가 달리트였고 달리트 피해자의 85%가 미성년 소녀들이었다.”고 한다. 독립 이전부터 현재가지 인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달리트 여성은 그들의 낮은 사회적 지위, 빈곤에 의한 차별에 더해서 여성으로서의 차별까지 받아야 했다. 달리트 여성이 성폭력의 주된 대상이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델리 사건 이후에 인도 국내외 언론은 앞다투어 엽기적인 성폭력 사건들을 보도했다. 그 중에 인도에서 성폭력의 또 다른 사회적 원인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사건들이 있다. 바로 촌락에서 촌장이나 촌락회의, 촌락재판을 통해 여성을 성폭력하는 사례들이다.

    몇 달 전에도 웨스트 벵갈의 어느 촌락에서는 촌락 밖의 남성과 문란한 행위를 해 촌락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촌장의 명령에 따라 집단 강간이 행해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촌락의 나이든 남성들이 주도하는 촌락 재판은 다른 부족과의 허가 받지 않은 관계에 대한 처벌로 처음에는 벌금을 선고했는데 여성이 가족이 벌금을 내지 못하자 집단강간이라는 처벌을 내렸다는 것이다. 사건의 진상을 둘러싼 여러 말이 무성하지만 인도 사회에서 전통적인 촌락이 얼마나 폐쇄적, 폭력적이며 여성차별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자르칸드주의 치르가곤 마을에 사는 19세의 피어리 쿠마리는 몇 년 동안 같은 마을에 사는 네 명의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 결과 아이를 낳았다. 피어리는 마을의 원로들에게 네 명의 성폭행 가해자들이 자신의 딸을 책임지게 해 줄 것을 요구했다. 촌장은 촌락회의를 소집하여 가해자 네 명에게 각각 3000루피(약 69불)의 벌금을 내도록 판결했고, 피어리에게는 이들 남자들과 부도덕한 관계를 지속해왔다는 이유로 마을을 떠날 것을 요구했다.

    피해여성이 명백하게 부당한 이 판결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자 촌장은 경매를 열어 그녀와 딸을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팔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경매가 열렸고 피어리와 그 딸은 고작 6루피에 팔렸다. 오랫동안 인도 여성들의 삶은 가족, 카스트나 촌락 같은 공동체의 비공식적 관습과 전통적 가치관의 지배를 받아왔다. 그 속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공동체의 전통적 가치관의 권위에 의존해 자행되었다.

    앞의 통계에서 본 것처럼 미성년자들이 성폭력 피해자의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것은 성폭력이 나이 많은 그래서 사회적으로 더 우위에 있는 남성이 사회적 약자인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저질러짐을 의미한다. 즉 사회적 권력의 많고 적음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결정짓는 중요한 조건이다.

    2013년 BBC의 보도에 따르면 인도에서는 해마다 7,200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성폭력을 당한다. 어린이 피해자들은 경찰로부터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모욕을 받기 일쑤다. 어린 소녀들이 인신매매되어 성매매업소에 팔려가는 것도 큰 문제다. 성매매 업소로 팔린 어린 소녀들은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한다. 성인이 되면 이들은 자신의 고향 등지에서 다시 어린 소녀들을 모집해 팔아넘기는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해마다 10만 명에 달하는 어린이들이 실종되는데 이들 대다수는 성적 학대를 받는다고 추정되고 있다.

    성폭력이 단기간에 대규모로 조직적으로 자행된 경우에도 주목해야 한다. 잠무 카시미르의 분쟁과 대규모 종교공동체주의 폭동이 일어났을 때마다 성폭력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힌두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은 성폭력을 ‘인종청소’를 위한, 서로를 쫓아내고 말살시키는 전쟁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인권단체들의 보고에 따르면 인도군은 동북부의 부족민 지역에서의 무력분쟁에서도 군사적 목표를 위해 조직적으로 성폭력을 사용한 증거가 있다고 한다.

    인도의 성폭력이 수구적 가치관과 목적에 의해 일어나며 따라서 인도 사회의 권력관계, 사회적 구조, 문화와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만이 성폭력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임은 자명하다. 2012년 델리 사건은 인도 사회를 시험하고 있다. 인도 사회의 오랜 악습들인 여성차별, 여성 대상 성폭력은 줄어들 수 있을까? 인도 여성들 스스로가 인도 사회가 어느 길로 갈지를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앞길이 밝지 않다.

    필자소개
    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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