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학, 조선의 개혁개방 외치다
    [책소개] 『쉽게 읽는 북학의』(안대희/ 돌베개)
        2014년 11월 01일 01: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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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은 불행하게도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近代)의 문을 열어젖히지 못했다. 이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 당시를 조명한 많은 책들에서 조선이 일본에 의해 강제 개항되던 19세기의 우왕좌왕한 모습을 다루었다. ‘조선의 못난 개항’이란 이름의 책도 출간된 바 있다. 그렇다면 강제 개항 전 조선의 지식인들은 무엇을 했던가?

    18세기와 19세기, 실학(實學)이 조선의 사상계에 넘쳐날 때, 북학파(北學派) 혹은 이용후생학파(利用厚生學派)라 불린 일군의 실학파 학자들이 있었다. 그 대표적 인물이 홍대용, 박지원, 그리고 박제가이다. 이들은 강대국 조선을 꿈꿨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북학(北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사상을 가장 정밀하게 담아낸 책이 바로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1750~1805)의 명저 『북학의』北學議이다.

    『북학의』는 조선 500년 역사에서 출현한 수많은 명저 가운데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위대한 저술이다. 당시 현실을 바탕으로 쓴 저술이면서도 역사를 넘어서는 보편적 사유를 담고 있어 지금도 여전히 문제적 시각을 보여 준다.

    북학의

    소중화(小中華)에서 탈피해, 세계를 새롭게 보는 눈을 제시하다!

    『북학의』는 무엇을 말하는 책일까? 『북학의』는 이름 그대로 풀이하면 <북쪽을 배우자는 논의>다. 여기서 북학(北學)은 북쪽에 있는 나라 곧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우자는 것이다. ‘북학’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북학의』에는 “중국을 배워야 한다”(學中國)는 언급이 20번쯤 나온다. 발전 모델을 거의 전적으로 중국에 두고 그 문화와 기술을 배움으로써 부국강병을 추진한다는 인상을 받게 만든다. 그렇다면, 당시 박제가가 청나라 곧 중국을 배워야 한다고 한 까닭은 무엇인가? 당시 조선은 경제와 국방, 문화와 기술 등 많은 분야에서 낙후되어 남에게 배우지 않고는 세계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박제가는 우선 중국을 배우고 차례로 일본과 서양을 배워서 국력이 강하고 문화가 발달한 문명의 나라로 만들자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러한 시각은 당시 조선을 지배하던 소중화(小中華) 의식과는 명백한 차이를 보인다.

    소중화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명나라 이전의 중국만을 숭모한다면, 박제가의 중국은 그 나라, 그 땅에 국한된 의미가 아니다. 우리보다 앞선 선진문물을 가진 곳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 땅은 중국이 될 수도, 일본이 될 수도, 더 멀리 인도와 유럽이 될 수도 있다.

    이데올로기가 아닌 실생활에서의 개혁.개방이 최상책이다!

    박제가가 이야기하는 북학의 주장은 얼핏 보면 이데올로기적이며 국가 위주의 색채가 짙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북학의』에서 다루는 것은 서민의 행복하고 윤택한 삶이다. 박제가는 그것을 이용후생(利用厚生)이란 말로 표현했다. 여기서 <이용>은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영위하는 것을 가리키고, <후생>은 삶을 풍요롭게 누리는 것을 가리킨다.

    책을 펼치자마자 보이는 수레에 대한 묘사나 벽돌의 제작법에 대한 상세한 서술을 통해 이러한 박제가의 집필 목적을 확인할 수 있다. 언뜻 현대 한국인에게는 매우 낯설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그만큼 박제가는 입고 먹고 거주하는 기본적 생활을 윤택하고 편리하게 영위하는 민생(民生)을 중시했다.

    의식주를 해결하지 않고서 윤리 도덕을 말하는 것은 허울 좋은 이상에 불과하다고 본 박제가는 풍요로운 생활을 추구할 권리와 방법을 제시했다. 물질적 풍요를 적극적 추구의 대상으로 전환한 것은 도덕 우위의 학문이 권위를 행사하던 학문 토양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조 학문의 전통에서 『북학의』는 지극히 이단적이다.

    현대 한국 사회가 되새겨보아야 할 가치의 발견

    박제가가 열정적으로 주장한 것들은 그 이후 역사에서 실현된 것도 적지 않고, 미완의 과제로 남은 것도 많다. 물론 방향 설정이 잘못된 것도 없지는 않다. 결과와는 무관하게 『북학의』는 250년 전 조선의 현실과 그 현실을 극복하려는 지식인의 고뇌를 명쾌하게 드러낸다. 그의 방향 설정은 대체로 정확했고, 그의 고뇌는 현재와 미래의 우리 사회가 곰곰이 되새겨 볼 가치가 있다. 박제가와 『북학의』는 우리 지성사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한학자 안대회의 새로운 『북학의』 독법

    이 책은 『북학의』를 완전히 새롭게 분류했다. 『북학의』 원본은 내편과 외편, 진상본 3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책은 3종의 전체 내용을 주제에 따라 4장으로 다시 분류하고 재구성했다. 또한 각 장은 세부항목을 두어 분야를 나누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편성했다.

    현대인이 『북학의』를 읽을 때에는, 북학의 실천보다는 북학의 논리에 가치를 두어 읽는 것이 바른 순서라고 판단하여 외편의 글을 내편의 글 앞에 두는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각 장의 앞부분에 그 장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적당한 분량의 해설을 붙였다. 이러한 새로운 분류는 박제가가 『북학의』를 통해 표현한 사상을 체계적이고 명쾌하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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