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져 묻는 용기, 넘어서는 자유
    [책소개] 『감히 알려고 하라』(수유너머R/ 너머학교)
        2014년 11월 01일 01: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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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이 건네는 말’ 시리즈는 고전의 원문에서 눈길이 머물고 가슴이 뛰는 ‘씨앗문장’을 붙잡아 삶의 문제와 연결하며 고전을 읽는 시리즈로, 『감히 알려고 하라』는 고전 5편을 통해 ‘감히 따져 묻는’ 정신에서 참된 앎과 인간다움을 찾는다.

    칸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에서 왜 지성이 아니라 감히 따져 묻는 ‘용기’가 중요하다고 했을까? 중세가 어둠의 시대였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비과학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따져 묻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병권 선생은 어떤 권위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는 ‘배움 이전에 갖추어야 할 배움’이라 할 수 있으며, 기계부품과는 다른 인간다움의 의미, 즉 나를 넘어서는 자유, 너에게 공감하는 연대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감히 따져 묻는’ 정신은 다른 4편의 고전에서도 이어진다. 김현식 선생은 『성서』「욥기」를 통해 인과응보의 교훈으로 치부하거나 싸구려 희망으로 적당히 위로하지 않고, 진실되고 정직하게 고통을 마주하는 자세를 생각해 본다.

    전덕규 선생은 ‘공부는 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의 답을 『대학』에서 찾고, 마지연 선생은 ‘셰익스피어에게 주디스라는 여동생이 있었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진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 지적 자유와 물질적 조건의 관계를 발견한다. 강민혁 선생은 세네카가 남긴 “자기는 자신의 것이 아니다”라는 말에서 자신은 남에게서 빌려온 존재이며, 더 나은 자신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본다.

    이 고전들이 강조하는 ‘감히 따져 묻는’ 정신은 지금 우리 사회에도 절실하다. 어떻게 하면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고병권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넘어설 힘을 갖고 있답니다. 중요한 것은 그 힘을 내는 겁니다.”

    이 책은 좋은 앎과 삶이 나란히 가고자 노력하는 학문과 생활 공동체 수유너머R 선생님들이 십대들과 함께했던 강좌, ‘10대를 위한 고전 읽기-시대를 넘어온 물음’의 결실이다. 고전을 읽는 새로운 방법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고전이 건네는 말’ 시리즈는 『너는 네가 되어야 한다』『나를 위해 공부하라』『우정은 세상을 돌며 춤춘다』에 이어 『감히 알려고 하라』가 출간됨으로써 십대들이 고전 20편과 만나는 알찬 징검다리가 되어 줄 것이다.

    감히 알려고 하라

    기계부품으로 살 것인가, 인간으로 살 것인가? 

    “감히 알려고 하라”는 칸트의 글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의 첫 단락에 나오는 구절이다. 고병권 선생은 칸트가 계몽의 표어로 제시한 이 문장에서 인간이란 무엇인지, 자유란 무엇인지, 배움이란 무엇인지를 읽어낸다.

    ‘계몽된 사람’ 하면 우리는 흔히 지식이 많은 사람,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을 떠올린다. 하지만 칸트는 계몽이 ‘지성’이 아니라 ‘용기’의 문제라고 말한다. 부당한 것에 대해서 감히 따져 물을 수 있는 사람, 즉 ‘내가 틀렸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따져 보자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계몽된(성숙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용기는 어떤 권위에도 굴하지 않고 따져 묻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나의 이익만을 좇아 돌아가는 수레바퀴이기를 멈출 수 있는 용기, 즉 ‘나를 넘어설 수 있는 자유’까지 포함한다. 용기와 자유만 있으면 성숙한 인간일까? 한 가지 의미가 더 있다. 칸트는 프랑스 혁명을 지켜본 사람들에게서 인류의 진보를 발견한다.

    “혁명은 거기에 참여하지 않은 모든 구경꾼들의 가슴속에 열광에 가까운 소망을 갖고 동참하려는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남의 일을 내 일로 받아들이고 ‘공감’하는 것. 계몽된 인간에는 ‘너에게 공감하는’ 연대하는 인간이라는 뜻도 담겨 있는 것이다.

    부당한 고통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감히 따져 묻는 일은 고통을 대할 때도 필요하다. 김현식 선생은 『성서』의 「욥기」를 통해 ‘고통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풀어낸다. 욥은 더할 나위 없이 선하고 진실한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엄청난 고통이 닥친다. 욥의 친구들이 그런 것처럼, 우리는 고통을 대할 때 손쉽게 원인을 찾으려 들거나 성숙을 위한 과정이라고 싸구려 희망을 말한다.하지만 이런 태도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김현식 선생은, 불평하지 말라는 친구들의 비난에도 고통에 대해 집요하게 따져 묻는 욥의 모습에 주목한다. 따져 물음으로써 결국 야훼를 만나게 되고, 이 만남으로 고통을 다르게 대할 수 있는 힘을 얻기 때문이다. 참된 위로란 고통을 본질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질문을 던지는 것은 『자기만의 방』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글쓰기를 치열하게 탐색했던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은 왜 가난한가?’라고 뜻밖의 질문을 던진다.

    예술은 가난과 고통 속에서 탄생한다는 통념이 있다.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는 남자 대학의 식사와 여자 대학의 식사를 자세히 비교하면서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또한 ‘셰익스피어에게 만약 주디스라는 여동생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라고 물으며, 사회 속에서 여성의 지위가 어떠했는지, 그들은 왜 글을 쓸 수 없었는지를 밝힌다.

    “만약 여성이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면, 자신이 스스로 생각한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용기와 자유를 가진다면, 100년 뒤에는 셰익스피어와 같은 여성 작가가 출현할 거라고 했습니다.”

    100년이 채 안 된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떨까? 마지연 선생은 버지니아 울프의 씨앗문장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내가 바라는 것인가, 남이 원하는 것인가?

    칸트가 말한 ‘나를 넘어서는 자유’의 중요성은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생각과도 통한다. 강민혁 선생은 『인생이 왜 짧은가』에서 만난 “자기는 자신의 것이 아니다”는 씨앗문장을, 직장인으로서 자신의 생생한 경험과 함께 소개한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자신을 위해 자신을 요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두 남을 위해 자신을 소모하고 있”다. 남의 욕망이 내 욕망인 것처럼 착각하며 끌려다니는 것이다.

    또한 “너는 많은 것들로부터 도망쳤지만, 너 자신으로부터는 도주하지 못했다.”는 말처럼 통념과 습관에 물든 자기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한다.

    노력을 해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는데, 바로 우리 몸과 정신은 타자(조상, 자연 등)에게 빌린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는 자신의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훗날 죽음에 이르렀을 때 “자 가져가시오! 당신이 빌려 주었던 영혼보다 더 나은 영혼이 바로 여기 있소! 고맙소. 정말 잘 사용하였소!”라고 말하며 되돌려줄 수 있도록 타자에게 빌린 자기를 잘 간직하여 가꾸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잘 가꾸어야 한다는 세네카의 주장은 성리학의 창시자 주희의 생각과도 닿아 있다. 주희는 학문의 시작으로서 『대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특히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의미에 주목한다.

    “대학에서 처음 가르칠 때, 배우는 사람에게 반드시 세상 모든 사물을 대하여 이미 알고 있는 이치를 가지고 더욱 연구하게 해서 그 완성에 이르게 하였다.”

    전덕규 선생은 ‘이미 알고 있는 이치’가 바로 소학의 가르침, 일상을 생활 습관과 관련 있다고 해석한다. “주희에게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죠’라고 물으면 자신의 주변을 살피고 자신의 일상을 지탱하는 올바른 습관을 갖추고 자신과 가까운 것에 마음을 쓰는 것에서 시작하라고 말할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일상의 배움에서 시작한 공부는 ‘세상을 평화롭게 한다(平天下)’는 큰 이상을 이루는 공동체 차원의 문제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고전이 건네는 말

    고전은 오래되었으나 나이 들지 않는 책이다. 그 안에는 시대를 넘어온 물음, 시대와 장소에 제한받지 않는 물음이 담겨 있으며, 그 질문을 읽으며 자신의 삶을 가꾸어 온 사람들의 질문과 생각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고전을 읽는 것은 바로 이런 수많은 사람들의 배움에 동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배움에 제대로 동참하려면 원문을 읽어야 한다. “고전 요약본이나 해설서만 읽는 것은 어떤 사람에 대해 이야기만 전해 듣고 친구가 되었다고 믿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읽어야 할까?

    첫째, 고전이 우리에게 던져 준 하나의 질문, 하나의 말을 화두로 삼아 끈기 있게 생각을 밀고 나가 보자는 것이다. 고전의 원문을 찬찬히 읽다가 “눈길을 끌고 마음을 두드리는 문장”이 나오면 그 문장을 붙잡고 생각을 이끌어 간다. 그러다 보면 “생각의 씨앗처럼 또 다른 여러 질문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고전이 건네는 말’ 시리즈는 고전을 쓴 작가는 언제 태어나서 어떻게 살았으며, 이 씨앗문장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으로 썼는지 살펴보며, 씨앗문장을 포함한 원문을 보여 주며 찬찬히 생각을 이끌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둘째, 이 고전이 건네는 말, 씨앗문장을 내 삶의 문제와 연결시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말이나 문장이라 해도 내 삶의 문제를 낯설게 보게 하고 오늘 나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고전이 건네는 말’ 시리즈는 고전을 읽는 새로운 방법론으로 십대들과 고전을 읽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고전의 바다로 들어갈 좋은 징검다리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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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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