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전산업' 육성이 대책인가?
    [기고] 참사의 구조적 원인 밝혀야 구조적 대책 나온다
        2014년 10월 31일 05: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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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200일이 다 되어간다. 지난 10월 29일 295번째 사망자 황지현 양의 시신이 197일을 기다린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직 9명의 실종자가 남아있다.

    유가족과 시민들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외치는 동안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가 있었고,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발표가 있었다. 검찰은 해경 몇 명을 사법처리하는 꼬리자르기로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았고 감사원 감사도 청와대에 대해서는 언급도, 자료공개도 없었다. 검찰과 감사원이 나서서 정부 책임을 면제해 준 꼴이다.

    정작 박근혜 정부는 규제완화, 민영화의 정책 기조는 변함없이 유지하는 가운데 문제투성이 안전대책만 내놓았다. 정부가 낸 대책은 대형선사와 안전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즉 안전문제에 대한 권한과 능력을 더욱 더 민간기업에게 넘겨 안전한 사회를 도모하겠다는 것이었다.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된 안전규제 완화 문제는 6개월이 넘도록 해결하지 않은 채, 오히려 안전대책을 안전산업 육성 경제정책으로 둔갑시켜 안전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다른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이제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밝히고, 정부의 정책기조와 안전대책을 재검토해야만 한다.

    세월호 참사에서 제대로 밝혀져야 할 구조적 원인

    한국에서 연안여객선 사고는 20년 주기로 반복되어 왔다. 1953년 창경호 침몰(300여명 사망), 1970년 12월 남영호 침몰(326명 사망), 1993년 서해 훼리호 침몰(292명 사망) 등.

    모든 사고가 과적 혹은 과승으로 인해 복원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기상악화, 빠른 조류 등으로 인해 복원력을 잃고 침몰한 대형사고다.

    즉 세월호 사건에서 검찰이 “선사 측의 무리한 증톤 및 과적으로 인해 복원성이 현저히 악화된 상태에서 운항하던 중, 조타수의 조타 미숙으로 인한 대각도 변침으로 배가 좌현으로 기울며 제대로 고박되지 않은 화물이 좌측으로 쏠려 복원성을 잃고 침몰했다”고 하는 것은 이전 침몰사고에서도 거의 똑같이 원인으로 지적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이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왜 똑같은 원인의 사고가 여전히 반복되는가를 파고들어야 한다. 같은 원인이 계속 반복되는 것은 구조적인 원인은 바뀌지 않은 채 남아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 조사는 선장 및 선원, 청해진해운 관련자 처벌에 초점을 두고, 국정감사는 행정기관의 문제점 및 관련자의 징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한계적이다. 정부의 정책기조 문제, 기업의 이윤추구 일변도의 문제 등 구조적 원인까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대형참사

    세월호(위)와 서해 훼리호 참사

    무엇이 선사의 위험한 운항을 용인해주었나

    유병언 일가가 구원파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기업경영을 해 왔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불법 행위가 충분히 용인될 만하다고 생각했기에 위험한 운항을 계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에게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시해도 된다는 신호로 작동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우선 안전에 대한 규제완화 문제다. 2009년 이후로 전반적인 규제완화 기조 하에서 선박 관련 규제도 대폭 완화되었다. 가장 잘 알려진 선령제한 완화(25->30년)뿐만 아니라 카페리 과적 및 적재기준 완화, 여객선 엔진개방검사 완화, 점검 대상 선박 선령기준 완화 등이 2009-2011년에 걸쳐 이루어져졌다. 이 중 선령제한 완화는 해운조합이 오랫동안 강력히 주장해 온 것이다.

    다음으로 선박 소유주 양벌규정 완화를 들 수 있다. 상법에 선박 소유주 책임제한이 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사업주가 유일하게 처벌받을 수 있는 양벌규정이 2009년 12월에 완화되었다. 이전에는 선장이 과적‧과승을 하면 선박 소유자에게도 벌금형을 부과했는데 이는 선주나 선사의 압력이 없으면 선장이 무리하게 과적‧과승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9년 선박안전법을 개정하면서 과적‧과승에 대한 주의와 감독만 ‘일정하게’ 했으면 이를 어긴 당사자에게만 책임을 묻고 선사의 최고경영자나 실소유주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양벌규정이 “사업주의 경영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결과 정부가 의도한 것처럼 청해진해운 등 해운사업의 경영의욕은 고취되었을 것이다. 안전규제 전반이 자신들이 요구한 대로 완화되고, 양벌규정까지 완화되어 선장에게만 책임을 지우고 자신들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확실한 신호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고 원인으로 반드시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이 청해진 해운이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행위를 강화한 동기가 된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 기조를 더욱 강하게 이어받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기조 자체가 변화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필요한 안전규제를 다시 강화할 수 있다.

    정부의 안전관리감독의 실패는 운항관리자들 탓인가

    선장이 불러준 수치를 받아 적기만 한 운항관리자들은 구속되었다. 그런데 과연 이 운항관리자들만 이렇게 일했을까? 이렇게 일하는 관행이 생긴 이유는 무엇인가? 운항관리자들이 해운조합의 영향력 하에서 일하면서 선사에 손해가 가는 결정은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이미 드러났다.

    해운법 22조 5항에 따르면 운항관리자는 여객선등의 안전운항을 위하여 출항의 정지를 요청할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이러한 권한을 행사하기 어려웠다. 또한 이번 국정감사에서 “여객 및 여객선 수는 급증하였으나, 필요한 운항관리자 수는 검토하지 않고 현원을 기준으로 선사의 운항관리비용 부담률을 인하”하였으며 “운항관리자는 오히려 감소”했다는 것이 지적되었다.

    운항관리자 제도는 1970년 남영호 사고 이후 처음 도입되었고, 1993년 서해 훼리호 사고 이후에는 정원이 늘어나고 국고보조금도 늘었다. 그러나 서해 훼리호 사고가 잊히기 시작하자 정부는 운항관리자 유지를 위한 정부보조금을 줄이기 시작했고, 정부지원금이 줄어들자 해운조합은 운항관리자가 퇴직하면 더 이상 충원하지 않는 식으로 운항관리자 수를 줄였다.

    늘어나는 여객 및 여객선 수를 고려하지 않고 정부는 선사들의 요청에 따라 운항관리비용 부담률을 지속적으로 인하했다.(운항관리자 월급은 정부보조금+운항관리비용으로 충당된다.)

    더구나 9월 2일 정부가 발표한 <연안여객선 안전관리 혁신대책>에는 “운항관리자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고, 업무 해태‧불이행 시 강력 제재”하겠다는 내용만 있지 운항관리자 수를 늘리겠다거나 운항관리비용 부담률을 다시 인상하겠다거나 정부보조금을 늘리겠다는 방안은 전혀 없다.

    말단책임자 처벌, 해경 해체하면 구조업무를 잘하게 되는가

    해경의 무능한 대처도 핵심적인 문제다. 우선 VTS 업무는 해경이 새로 가져온 업무이지만, 핵심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해경 내부에서는 한직이었다. 최소한의 규율도 없이 VTS 업무를 했다는 것이 이번 사고에서 드러났다.

    또한 사고해역에는 원래 중형함이 배치되었어야 했는데, 중국어선 단속에 모두 가 있었다. 국감자료를 보면 구조활동의 현장지휘 책임자인 목포해경서장도 불법조업 중국어선 단속을 위해 출항한 3009함에 머물며 현장지휘를 소홀히 했다. 헬기가 현장으로 출동하는데도 타지 않았다.

    이러한 해경 대처의 문제에 대한 감사원의 조치내용은 관련자에 대한 징계 요구와 해양경창청장에 대해 인사자료를 통보한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이것으로 뿌리 깊은 관행과 해경 업무의 방향성이 수정될지 의문이다.

    해경이 구조업무보다 중국어선 단속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변화시켜 온 이유를 봐야 하는데, 선박 대형사고가 자주 발생하지 않는 상황에서 안전훈련을 강화한다고 해서 성과가 쌓이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어선 단속 업무를 강화하면 눈에 보이는 성과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선박사고뿐만 아니라 어디든 안전업무는 성과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정부부처 전반에서 성과주의가 지배하고 있는데, 당연히 안전업무가 뒤로 갈 수밖에 없다. 지금은 해경 내부 관계자조차 “불법 중국어선 단속에 치중한 나머지 평소 인명구조 훈련에 큰 비중을 두지 못했다는 지적에 따라 실제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강화할 방침” (<연합뉴스> 9월 10일자)이라고 하지만 성과주의 하에서 과연 이 기조가 계속될 수 있을지 믿기 어렵다.

    그리고 2012년 수난구호법이 개정되면서 해경은 해난구조업무를 민간에 위탁하기 시작했다. 현행 수난구호법에 따르면 사고 책임선주는 사고 초기에 직접 구난구조업체를 선정하여 계약을 맺어야 한다. 구조업체 활동비는 우선 선주와 계약된 보험회사가 지급하고, 비용이 과다한 경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입해 활동비를 선지급하고 선주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게 되어있다.

    이러한 구조 하에서는 우선 선주가 싼값에 구난업체를 찾으려 하거나, 이번 세월호 참사 때처럼 엄청난 구난구호 비용을 보고 해경간부가 자신과 친분이 있는 업체를 소개시켜주게 된다. 어느 쪽이어도 구난능력이 우선시될 수는 없는 것이다. 대형참사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임무인데 정부는 이러한 구조업무 마저도 시장의 논리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선장과 선원 처벌, 통제강화로 책임감이 높아지는가

    선장과 선원들은 제대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러한 선원들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내는 구조가 남아있다면 이들을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사고의 재발방지가 불가능하다.

    청해진해운은 비상시에 대비한 선내 비상훈련은 매 10일마다, 기름유출 대처훈련은 매월, 비상조타훈련은 매 3개월, 선체 손상 대처훈련과 인명사고 시 행동요령은 매 6개월 마다 실시하여야 했다.

    그러나 이런 훈련이 규정대로 이루어졌더라도 계약직 선장과 4-12개월짜리 단기 계약직 선원들로 구성된 팀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리 없다. 3-6개월 단위의 훈련은 아예 받아보지도 못한 채 퇴사하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선원이라도 몇 달만 일하고 관둘 배라면 설비가 고장 나거나 배에 문제가 있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대형사고는 사전에 존재했던 문제들이 동시에 발생할 때 일어난다. 징후 없는 대형사고는 없다. 이러한 징후를 잡아낼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결국 배를 직접 다루는 선원들뿐이다.

    우리나라 내항 선원의 처우는 외항 선원보다 열악하다. 국내 내항여객선 선원은 총 802명(2013년 12월31일 기준)인데 그 중 비정규직 선원이 602명(75%)이다. 특히 1급 항해사는 총 10명으로 8명이 비정규직이고, 그중 2명은 1년 미만 단기계약직이다.(<한국경제>, 5월 20일자)

    이러한 고용구조 하에서는 훈련이 효과를 발휘할 수도 없고, 선원들에게 책임감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고용구조 문제도 주요한 구조적 원인으로 다뤄져야 한다. 지난 9월 2일 발표된 연안여객선 안전관리 혁신대책에는 내항 선원들의 처우가 열악하다는 사실만 지적되어 있지, 이를 개선할 대책으로는 감독하겠다는 선언뿐이고 한편에서는 제복착용, 음주검사 등 통제책만 나열하고 있다. 이런 상태로는 전혀 개선이 어려울 것이다.

    안전한 사회를 위한 우리의 과제

    첫째, 정부 정책기조도 사고 원인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규제완화, 안전업무의 민영화라는 정책기조는 전혀 변한 것이 없다. 크게 이슈가 된 선령제한만 다시 25년으로 되돌렸을 뿐, 규제 전반이 강화된 것이 아니다. 안전점검을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인력과 장비 등을 제대로 마련할지 의심스럽다.

    연안여객선 안전관리 혁신대책에는 안전관리 체계를 혁신하겠다며 “자체 안전관리 전담인력 채용 또는 안전관리 전문회사 위탁 등 선사의 안전관리 책임‧의무 강화”라고 언급되어 있다. 정부가 안전관리 전문회사를 육성하고 이를 각 선사에 연결해주겠다는 말인데, ‘안전사업’이라는 새로운 돈벌이 분야를 만들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언딘과 같은 사례만 추가로 만들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둘째, 정부의 재발방지 대책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연안여객선 안전관리 혁신대책>의 탄력운임제, 유류할증제는 선사의 이윤 보장은 확실히 해 줄 것이지만, 이윤이 보장된 선사가 자연스럽게 안전업무에 투자를 늘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또한 낙도에 대한 준공영제는 ‘검토’하겠다고 하는데, 철도‧의료 민영화 등 전반적인 민영화 기조 속에 공영제가 현실에 맞지 않다며 현행 유지를 할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 사항만 나열된 현재의 운항관리규정을 국제안전관리규약(ISM Code) 수준으로 대폭 수정·보완”할 것이라 하지만 이것도 선박 사고가 났을 때 매번 나왔던 대책이다. 언제, 어떤 노선부터 도입할지 전혀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8월 26일 발표된 <국가안전 대진단 및 안전산업 발전방안>도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안전산업을 육성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국민들은 국가의 구조업무를 방기한 데 대한 분노가 컸는데, 이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기는커녕 결국 안전을 시장논리, 기업책임으로 맡긴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셋째, 안전대책은 다시 제출되어야 한다. 안전대책의 방향에 대해서는 다음을 제시한다. 우선 국가재난안전관리체계는 책임과 권한이 일치하도록 재구성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7시간의 공백은 단순히 정치적 책임을 묻는 질문이 아니다. 선박사고는 2차, 3차의 희생자가 적지만, 화학공장이나 핵발전소 사고 같은 경우 대처가 몇 시간만 늦어도 다수의 심각한 2, 3차 피해자가 발생한다. 사고수습 권한을 현장책임자 1인에게 주더라도, 현장에서 제대로 활동할 수 있게끔 국가 최고책임자가 구조를 위해 자원을 움직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 재난안전관리 체계의 재구성의 방향성은 책임과 권한의 일치이다. 한국은 권한은 위에 있어서 현장책임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지만, 사고가 일어났을 때의 책임은 아래가 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처벌이 필요하다. 기업이 위험한 행동을 멈추게 하는 강력한 압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안전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최대 약점이라 할 이윤을 압박할 강력한 제도가 그것이다.

    운항관리자의 출항정지권을 현실화하는 방안, 선원들이 위험하다고 판단할 경우 운항을 거부할 권한, 사고 발생 시 해당 기업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거나 최고경영자‧실소유주를 처벌할 수 있는 제도 등이 도입되어야 한다. 정부는 이런 기업의 탐욕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도록 제어해야 한다.

    필자소개
    사회진보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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