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울타리를 거두자
[그림책 이야기] 『행복한 사자』(로저 뒤바젱 그림 / 루이제 파쇼 글)
    2014년 10월 31일 11: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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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유명한 『행복한 사자』

일러스트레이터 로저 뒤바젱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사자입니다. 아내이자 작가인 루이제 파쇼를 만나 그림책『행복한 사자』를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행복한 사자』는 로저 뒤바젱의 작품 가운데 단연 최고의 작품입니다.

아주 행복한 사자가 있습니다. 사자는 사는 집은 아프리카의 밀림이 아니라 프랑스의 어느 아름다운 마을 공원에 있습니다. 울타리가 있는 집이니까 정확히 말하면 행복한 사자가 사는 동물원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행복한 사자’를 찾아와 인사를 합니다. 이른 아침엔 공원 관리인의 아들 프랑소와가 찾아옵니다. 퇴근길엔 뒤퐁 교장 선생님이 ‘행복한 사자’를 찾아와 인사를 합니다. 해질 무렵엔 팽송 부인도 사자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그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친구처럼 사자를 찾아와 인사를 하고 먹을 것을 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자는 공원관리인이 실수로 문을 잠그지 않은 것을 알게 됩니다. 사자는 처음엔 열린 문으로 아무나 함부로 들어오진 않을까 걱정합니다. 하지만 곧 자신이 문을 열고 나가 친구들을 찾아보기로 합니다. 그래서 ‘행복한 사자’는 자신의 집에서 나와 마을 사람들의 집을 방문하기 시작합니다.

과연 마을 사람들은 행복한 사자를 반갑게 맞아 줄까요? 그리고 행복한 사자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행복한 사자

‘행복한 사자’에서 ‘왕따 사자’로

『행복한 사자』는 누구나 한 번쯤 할 수 있는 상상, 그러니까 ‘동물원에 있던 사자가 마을로 나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단순하고 무서운 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정말이지 거기까진 누구나 할 수 있는 상상입니다.

그런데 루이제 파쇼와 로저 뒤바젱은 거기에 결정적인 아이디어 하나를 보탭니다. 바로 ‘행복한 사자’입니다. ‘행복한 사자’라는 놀라운 아이디어가 있었기에 『행복한 사자』는 영원한 걸작이 되었습니다.

동물원에 있을 때 사자는 행복했습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사자를 찾아와 반갑게 인사해 주었고 먹을 것도 주었습니다. 사자는 마을 사람들을 자신의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자는 ‘행복한 사자’였습니다.

그런데 사자가 동물원을 나와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혼비백산하여 달아납니다. 이제 사자는 더 이상 ‘행복한 사자’가 아닙니다. 또한 마을 사람들 역시 더 이상 사자의 친구들이 아닙니다.

어쩌면 당연한 이 장면이 사자에게 충격적인 이유는 자신이 동물원에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행복한 사자’였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을 친구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던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달아난다면 누구라도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이제 ‘행복한 사자’는 ‘왕따 사자’가 되었습니다.

사자와 울타리와 사람 사이

이쯤 되면 『행복한 사자』를 읽지 않은 독자라도 『행복한 사자』가 얼마나 강력하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한 사자』는 평화롭고 유쾌한 그림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이완시켜 놓고는 갑자기 전기 쇼크 같은 충격파를 독자에게 선사하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행복한 사자’를 한 순간에 ‘배신당한 사자’로 만든 루이제 파쇼와 로저 뒤바젱을 누구도 함부로 비난하기는 어렵습니다. 누구나 사자와 울타리와 사람 사이에는 두려움과 거짓 우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풀어야할 문제는 사자와 울타리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두려움과 거짓 우정이 주는 다툼과 어려움을 어떻게 해소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울타리를 거두고

『행복한 사자』는 놀라운 예술 작품입니다. 참된 우정에 관해서 유쾌하고 명확하면서도 이렇게 충격적으로 독자의 가슴을 파고드는 작품은 흔치 않습니다.

참된 우정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참된 우정에는 두려움도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동물원 울타리를 방패삼아 사자에게 우정을 과시한 것은 분명 거짓입니다. 사자가 울타리 밖으로 나오자 거짓 우정은 사라지고 마을 사람들의 공포와 배신이 드러납니다.

세상에 친구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친구 사이에는 울타리를 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울타리가 있습니다. 울타리는 적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때 필요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울타리로 너무 많은 적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경비초소와 차단기와 폴리스라인과 국경은 그 경계를 기준으로 양쪽에 있는 사람들을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적으로 만드는 울타리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울타리들의 숫자가 적으면 적을수록 좋습니다. 친구와 친구 사이에는 경계를 긋지 않기 때문입니다. 친구가 많을수록, 서로 믿고 사랑할수록 행복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루이제 파쇼와 로저 뒤바젱은 말합니다. 두려움이 친구를 적으로 만든다고, 울타리가 친구를 적으로 만든다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사자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세상의 모든 울타리를 거두고 서로 친구가 되라고 말입니다.

필자소개
이루리
동화작가, 그림책 평론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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