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아버지가
비정규직 아들의 정규직화 반대?"
    2014년 10월 29일 03: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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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현대자동차 식당 게시판에 나붙은 몇 장의 대자보가 울산지역 신문은 물론이고 중앙지에까지 기사로 등장하는 보기 드문 일이 발생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아산공장 식당 게시판에 흔히 붙을 수 있는 수많은 대자보 중 유독 한 가지 내용의 대자보가 왜 이렇게 언론기사에 이용되었을까? 신문사 기자들이 할 일이 없어서 현대자동차 식당 게시판이나 쫒아 다니지는 않을 것인데.

신문 기사에 보도된 대자보의 내용을 보면, 지난 9월 18일,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내려진 “현대자동차 사내 비정규직은 불법파견이 맞다”라는 판결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내용들이다.

이들이 부착한 대자보의 내용을 더 살펴보면 “현대자동차 사내 비정규직 노동자를 불법파견으로 판정한 법원의 판결은 잘못되었다”라는 논조를 유지하면서 “재판관이 현장의 현실을 모르고 판결한 것 아니냐”, “판결 땜에 혼란스럽다”, “정규직의 고용이 불안하다” “공장 내부환경을 무시한 판결로 인해 고용불안만 가중되며 그 피해는 힘 없는 조합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것”라는 등등의 내용이다.

대자보를 발행한 단위를 보면, ‘길을 아는 사람들'(언론에서 현장조직이라고 강조하지만 나는 그분들이 공개적이고 조직적으로 노조 활동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울산공장 현장 초급관리자(반장)들 모임인 ‘반우회’, 사내 취미서클 동우회 모임인 연합동호회, 각 공장의 ‘0공장 간부사원 일동’, 아산공장 협력사 대표 등등이다.

박10

10월22일 발행된 “2공장 관리자 일동” 명의의 대자보 내용 중

나는 이번 대자보 사태를 보면서 아주 기본적인 궁금증을 가졌었다.

“저 사람들이 왜 이런 대자보를 발행했을까?”라는 궁금증부터 “저들이 감히(?) 법원 판결을 대놓고 폄훼할 만한 인사들이 아닌데”, “게시판에 나붙은 수많은 대자보 중 왜 이 대자보만 언론에 이렇게 크게 보도가 되고 있는지?”, “법원 판결이 내려진 당시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1개월이 지난 뒤에 갑자기 떼거지로 대자보를 부착하고 나선 이유가 뭔지?”, “10월 24일 윤갑한 사장이 불법파견 문제로 국회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직전에 왜 이런 대자보들이 쏟아지는지?”.

언론에 따르면 반우회에는 반장 830여명이 가입되어 있다는데 “830여명의 반장들이 법원 판결을 반대하는데 다 동의를 하고 있는지?”, 연합동호회 회원이 1만5000여명이라는데 “이들 1만5000여명의 회원들에 뜻이 대자보 내용과 같은지?”

그 궁금증을 풀어 볼려고 내가 가입되어 있는 현장 활동가들의 밴드에 아래와 같은 질문을 올렸다.

“동지들이 알고 있는 반장들 중 아들이 현대자동차 사내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자가 있는지 확인해 달라”

그러자 댓글이 줄줄이 달려온다.

“내가 아는 학교선배 중 반장이 있는데 그 중 두 명의 아들이 현대차 사내 비정규직임”, “우리 반장 아들도 4공에 비정규직임”, “내 친구도 반장인데 글마 아들도 3공장에 비정규직으로 일하는데”….

맞다. 현대자동차 반장들 중 아들이 사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리고 관리자들의 아들 중 그런 경우도 많고, 동호회에 가입된 회원들의 아들 중에도 현대자동차 사내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이 내가 아는 현실이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당신의 아들이 현대자동차 사내 비정규직 노동자로 근무를 한다.

그 아들을 지켜보는 아비로서 이번에 계약기간이 끝나면 또 연장을 해 줄 것인지? 늘 고용불안에 애태우는 아들을 지켜보며 같이 속을 태운다. “맞선을 보러가도 비정규직은 퇴짜를 맞는다”는 현실에서 정규직의 임금보다 훨씬 적은 아들의 임금을 보면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귀가 번쩍 뜨인 게 정규직 아비와 비정규직인 그 아들의 처지였다.

그런데, 2014년 9월 18일, 대한민국 법원에서 “현대자동차 사내 비정규직 노동자는 불법파견된 노동자가 맞다. 따라서 현대자동차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할 의무(의제)가 있다. 그리고 입사 후 2년이 경과한 날로부터 차별적으로 적게 지급한 임금도 체불임금이니, 재정산해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추가로 지급하라”라고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을 들었을 때 정규직 아비와 비정규직 그 아들은 얼마나 기뻤을까? ‘우리 아들도 머지않아 정규직이 되겠구나’, ‘나도 이제 하청이 아니라 정규직이 된다’ 아비와 아들은 얼마나 부푼 꿈을 가졌을까?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현대자동차 공장 안에서 지난 수년간 차별의 아픔을 당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는 아들을 두고 있는 반장, 동호회 회원, 관리자들이 “사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잘못되었다. 그 판결을 물려라”고 대자보를 붙이고, 언론에서 이 사실을 대서특필하고 있으니, 이를 지켜보는 아들의 입장에서 얼마나 기절초풍 할 일인가?

‘아니 내 아버지가 나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법원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저렇게 주장하시면, 그러면 내 아버지가 나를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라는 것 아닌가?’

사태가 이 지경이면 정상적인 가정이 유지될 수 있을까?

지금 현대자동차 회사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딱 이런 꼴이 아닌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평상 시 보여주는 행동이 있다. 그런데 평상 시와 아주 다른 행동이 나타나면 “왜 저럴까?”라는 의심을 하게 마련이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대규모 불법파견 판결이 법원으로부터 내려진 지 한 달이 지난 뒤, 갑자기 쏟아진 법원판결 ​비난 대자보와 윤갑한 사장의 국감 증인 출석 등 일련의 상황을 짚어보면, 회사 측의 의도(?)에 의해서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는 선전집단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된다.

인사권을 틀어쥔 회사가 관리직 조직을 동원하고, 조합원 범위인 반장들 조직까지 동원하고, 나아가 취미활동을 하는 서클에 대한 지원금을 미끼로 연합동호회까지 동원하고 있다는 ‘의심’은 이제 ‘확신’으로 나아가게 만들고 있다.

아무리 회사가 권력을 행사하더라도 아비와 자식 간의 천륜마저 뒤흔들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대한민국 법원에서 “불법파견이니 회사는 정규직으로 전환시켜라”고 판결을 해줬는데 현대자동차 사내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는 아들을 둔 아비에게 “법원판결이 틀렸다”고 대자보를 발행하는데 동의하라고 하는 것은…. 이것이 자본인가?

필자소개
박유기
전 현대자동차노조 위원장, 전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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