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니까 노동조합 만든다"
    베링거인겔하임동물약품 김은석 전 지부장의 원직복직 투쟁
        2012년 07월 05일 04:00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노동자니깐 노동조합 만드는데 뭐 문제있어요?”  베링거인겔하임동물약품 전 지부장이었던 김은석 해고자가 2010년 술자리에서 “왜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굳이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는건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답했던 말이다.

    특별히 회사측의 부당 노동행위가 있었던건 아니지만 노동자니깐, 당연히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노조를 만들다가 해고에 이르게 되었지만 그는 노조 근처로 집을 옮기면서까지 복직 투쟁에 나서고 있다.

    그를 비롯한 조합원의 1/3은 수의사이다. 사회적으로 안정적이고 신망받는 직업에 연봉도 꽤 높았다. 하지만 노조를 결성한 뒤 이러저런 이유로 연봉이 1/3이나 깍이기도 했다. 그냥 회사 말만 잘 듣고 일했다면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였을 것이다. 하지만 막연히 ‘우리도 노조 하나 만들자’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오히려 회사가 탄압을 할수록 노동자성을 더 자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17분 지각했다고 해고

    베링거인겔하임동물약품은 동물 약품을 제조하는 독일계 초국적 제약회사이다. 1976년 인체약품을 중심으로 한국에 진출했고, 90년대 동물 약품 법인을 별도로 설립하는 등 한국 제약 시장 내의 입지를 확장해왔다.

    대표이사인 구엔터 라인케는 대외적으로 사회 공헌도가 높은 것처럼 행세하고 있으나 2010년 8월에 설립한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정당한 이유없이 거부해왔다. 같은 해 12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나서서 단체교섭 진행에 관한 노사합의를 만들었으나 사측은 교섭에 나서지 않았고 오히려 김은석 전 지부장을 업무 태만 및 업무 거부로 세번이나 정직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7월 4일 김은석 전 지부장 원직복직 촉구 연대 집회(사진=장여진)

    그리고 올해 4월 30일 급기야 회사는 지시 불이행과 근무 태만을 이유로 김은석 전 지부장을 해고했다. 지시 불이행은 그간 김은석 지부장을 정직시키기위해 고의적으로 비효율적 업무를 지시하고 그것을 일일히 기록으로 남겨 조금이라도 지켜지지 않을 시 징계 사유로 써먹었던 그 행태였다. 근무 태만은 고작 17분 지각한 것을 의미한다.

    살처분 당하는 구제역 돼지와 같은 처지인 노동자

    7월 4일 베링거인겔하임동물약품이 위치한 서울역 연세빌딩 앞에서 김은석 전 지부장의 해고 철회 및 원직 복직을 위한 세 번째 연대집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중구협의회, 현재 파업중인 골든브릿지증권지부, 사무금융연맹 등 약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은석 지부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작년에 구제역으로 수많은 돼지, 염소, 소가 살처분을 당했다. 나 또한 그 현장에 가서 반나절 동안 살처분을 함께했다. 다시는 못하겠더라. 동물도 아프지만 그 옆에서 지팡이 짚고 술 한잔 하고 가라는 할아버지의 그 모습이 생생하다. 이 자리에 있는 많은 노동자들 입장이 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돼지 수명은 15년이지만 우리가 먹는 삼겹살은 6개월을 산 돼지이다. 억지로 살 찌워서 고기로 파는거다. 필요에 의해 사용자가 노동자를 고용하고 필요없으면 노동자를 자른다. 이것은 ‘구제역에 걸렸기에 질병 걸린 돼지를 죽이겠다, 노조를 만들었으니 해고하겠다’라는 것과 똑같다. 해고에서 빠진 동지들은 살처분 구덩이에서 살아남으려는 돼지들의 모습과 같다.”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더이상 노조는 살처분 당해서는 안 된다.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단결투쟁 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다. 오늘도 서울지역 곳곳에서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을 만났다. 8년 넘게 투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시간들이 지날 때까지 왜 나는 연대하고 관심을 가지지 못했을까 후회 된다.”며 “잘 나가는 소수 기업이 행하는 탄압을 반드시 뚫고 나아가야만 많은 곳에서 힘들게 일하고 투쟁하는 비정규직들 앞에 당당히 연대와 선도적 투쟁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결의를 밝혔다.

    같은 날 김호정 전국사무금융연맹 부위원장은 “내가 김은석 전 지부장에 대한 원죄가 있다. 내가 사무연대 위원장일 때 홍대 막걸리집에서 만나 노조만 만들면 단협도 만들어지고 전임 활동으로 연대투쟁도 하고 전체 노동자 이롭게 할 수 있다, 나만 믿어라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해고 당했다. 그런데 또 저렇게 표정이 밝을 수 없다.(웃음) 해고 당한 뒤 걱정 많이 했는데 혼자 전 투쟁사업장을 다닌다.”며 “사실은 우리가 역사를 바꾸는 동력이다. 안주할 때 싸우는 동지들이 자본의 정권을 뚫고 한걸음씩 발전했다.”며 격려했다.

    현 사무연대노조 공동위원장이자 화이자동물약품회사를 다니다 마찬가지로 해고되었던 심동원 위원장도 “많은 동물약품 제약회사 노동자들이 있다. 그 많은 회사 중 남아있는 곳이 베링거인겔하임이다. 비록 한 명이 해고되어 투쟁 중에 있지만 그를 지켜보는 4명의 조합원이 있고 회유와 탄압을 이기지 못해 탈퇴했지만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 소외 받는 동물약품 외국계 제약회사의 탄압에 베링거 노조가 맞써 대리투쟁을 하는 것”이라며 “오늘이 마지막 집회일 것처럼 함께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김은석 해고자는 해고 직후 혼자서 전 투쟁사업장을 돌아다니며 연대활동을 펼치고 있다. 본인의 원직 복직도 중요하지만 전체 모든 노동의 문제를 직접 체험하며 밤늦은 시간까지 이곳 저곳 농성장으로 쉼 없이 돌아다니는 그의 표정은 도저히 해고자라 볼 수 없을만큼 익살스럽다.

    “노동자니깐 노동조합 만드는데 뭐 문제있어요?” 그러니깐 말이다. 회사가 탄압하면 할 수록 굽히지 않고 더욱더 즐겁게 투쟁하는 김은석 해고자의 노조 설립의 이유가 단순하지만 명쾌하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