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개념 엄마’와 ‘노 키즈 존’
        2014년 10월 23일 02: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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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점이나 까페 등에 만5세 미만의 아이들 출입을 금지하는 ‘노키즈존(No Kids Zone)’이 늘어나면서 네티즌들의 의견도 찬반으로 갈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논쟁은 길게 가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노키즈존을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노키즈존에 대한 신중한 토론보다는 ‘무개념 엄마’ 시리즈가 온라인에서 줄을 잇고 있다.

    까페 테이블에서 기저귀를 갈았다던가, 아이가 괴성을 지르며 뛰어 노는 데 제지를 안 했다던가, 심지어 비행기나 고속버스 안에서 아이가 울어대서 짜증이 났다며, 장거리 여행에는 아이를 동반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무개념 엄마’에 대한 전반적인 적대 분위기에 아이 엄마들조차 스스로 노키즈존을 찬성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부 무개념 엄마들 때문에 함께 비난 받는 게 싫으니 차라리 노키즈존으로 하자는 것이다.

    된장녀, 김 여사, 지하철녀, 개똥녀, 그리고 무개념 엄마

    기실 일부 여성들의 행태가 온라인에 게재되면서 각종 ‘녀’ 시리즈가 나온 건 한 두 해의 일이 아니다. 된장녀로 시작해 개똥녀, 4호선 지하철녀 등 각종 여성들의 ‘무개념’ 행동을 질타하는 동영상이나 목격담이 올라오면 사람들은 일제히 ‘개념 없다’, ‘같은 여자지만 부끄럽다’는 등의 비난을 가했다.

    이는 ‘일베’ 등 극우 성향 사이트에서 ‘김치녀’로 승화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다른 남초 사이트들도 마찬가지로 ‘무개념녀’라는 각종 목격담이나 경험담이 올라오곤 하는데, 사실 여부를 가리기 어려운 내용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특정 상황의 가해자나 몰지각한 행위를 한 사람이 남성이었는데도 일부러 여성으로 둔갑시켜 유포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은 ‘같은 여자지만 부끄럽다’, ‘나도 여자지만 여성부는 해체되어야 한다’, ‘나 같은 개념 있는 여자가 일부 여자들 때문에 함께 비난 받는다’며 ‘그런 여자’와 나는 ‘다른 여자’라고 해명하기 바빴다.

    우스운 건 ‘일베’와 같은 집단적으로 여성혐오증을 갖고 있는 이들은 이런 여성들에 대해서도 ‘개념녀 코스프레’를 한다며 비난을 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안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여성들은 당당히 각종 ‘녀’ 시리즈를 양산하는 사회 전반의 여성 혐오나 여성 비하 문화에 반격을 하기는커녕, 원죄를 인정하며 보다 ‘개념 있는 여성’이 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을 하고 있다.

    남성 중심적 문화, 유리 천장, 부당한 가사와 육아 분담, 임금과 승진 차별, 각종 성차별에 개혁의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그런 체제에 착실히 순응하면서 더치페이나 척척할 줄 아는 개념 여성으로 살기로 작정한 것이다.

    심지어 스스로를 개념 있는 여성 혹은 진정한 페미니스트라고 규정짓는 여성들은 영국에서 여성들이 목숨을 걸고 얻어낸 참정권을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너무 쉽게 얻었기에 부끄러운 일이며, 그만큼 권리를 내세우기 어렵다고 주장하기도 하니 자학도 이런 자학이 없다.

    그럼에도 ‘안녕’ 대자보 당시 ‘김치녀로 호명되는 당신, 정말로 안녕들 하십니까’에서 보듯이 반격을 가하는 여성들도 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자. (관련기사 링크)

    노키즈존

    방송화면 캡처

    당신의 개념은 안녕하십니까?

    사실 카페 입장에서 ‘진상 손님’의 유형은 다양할 것이다. 손님 입장에서 보더라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손님은 너무나 많다.

    제 집 안방인 것 마냥 걸쭉한 욕설과 함께 큰 소리로 떠드는 젊은 친구들, 다른 손님들은 앉을 때가 없어 두리번거리는 데도 테이블을 몇 개씩 붙여 전공 서적을 늘어놓고 공부하는 학생들, 흡연실에서 가래침을 뽑아내며 담배를 피우면서 재를 털 때 조준조차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 등. 그러나 이들이 무개념 집단으로 낙인찍혀 호명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기본적으로 된장녀, 김치녀는 특정한 행위 행태를 보이는 여성 집단을 일컫는 말이고, 무개념 엄마 역시 아이와 함께 카페 등지에서 민폐를 주는 여성들의 집단을 이르는 말인데도, 그 외 남성이나 학생, 20대의 젊은 친구들이 민폐 집단으로 호명에 이른 것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선거 시기 ‘20대 개새끼론’은 일단 제외하자)

    반면 여성은 이기적이거나 허영심이 가득하고 일도 제대로 못한다는 신화가 굳어져 가고 있다. 아이들은 떠들기나 하는 불쾌한 존재이고, 조금 더 크면 학교 폭력이나 왕따를 일삼기에 회초리를 들어 강하게 훈육해야 하는 존재라는 합의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기에는 남성과 성인은 나무랄 게 없는 완벽한 존재임을 전제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무개념 엄마’를 새로운 비난의 재물로 삼게 된 것은 여성과 아이들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늘 남성과 비교해 무가치한 존재이자, 사회를 향한 발언권조차 없는 존재들이다.

    불편하다고 차별하자는 주장, 하필 왜 ‘노키즈존’이었을까?

    무개념 엄마가 발생하는 1차적 원인은 아이들을 완벽히 통제하기 어렵다는 데 기인한다. 갓난아이에게 울지 말라고 해서 울지 않을 것도 아니고,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한 3살 때부터 뛰지 말라고 한다고 아이들은 뛰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한다. 똥을 싸지 말라고 해서 싸지 않을 것도 아니고, 배고프지 말라고 해서 배고플 것도 아니고, 우는 것으로 자기 의사 표현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들은 보호해야 할 존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시끄럽고 불편하니 입장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은 육아에 대한 공동체 의식이 전혀 없다는 반증이다.

    그런데도 ‘아이가 우는데 내가 왜 불편해야 하냐’며 공동체 의식 따위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매우 일방적이다. 이 논쟁들 자체에는 아이들의 반론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노키즈존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부모와 외출할 권리를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과 다름없다.

    주로 ‘엄마’인 보호자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무개념 엄마는 있는데 무개념 아빠가 없는 이유는 주로 육아를 여성이 전담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는 육아를 병행할 환경을 제공하지 않고, 가정에서는 남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 덕분에 육아 전담자로 전환하는 여성이 대부분이다. 물론 스스로 육아에 전념할 것을 선택하는 여성들도 있다.

    어떤 이유로건 육아를 전담한 여성들은 외출할 때 아이를 동반할 수밖에 없고, 당연히 카페에 들를 수도 있고 식당에서 외식을 할 수도 있다. 그런 그녀들에게 ‘노키즈존’이라고 입장을 막는다면,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결국 노키즈존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특정 집단들을 제도적으로 차별하자는 것이다. 내가 불편하면 차별해도 괜찮다는 인식이다.

    그런데 그 차별 대상자가 엄마와 아이들이라는, 원래 공격당하기 쉬운 존재였거나 발언권조차 없는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

    노키즈존을 찬성하는 사람들 중 유난히 여성이 많은 점도 짚어볼 일이다. ‘나는 그런 여자 아니야’라는 변명과 ‘나는 개념 없는 여자가 되지 않을 꺼야’라는 다짐으로 자신에게 가해지는 차별들을 더욱 공고화시키는 건 아닌지 말이다.

    필자소개
    장여진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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