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로2012, 스페인 우승의 밑바탕에는
    [축덕후의 정치직관] 장기적 관점 가진 투자....유스시스템 20년
    By 시망
        2012년 07월 05일 09:51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유로 2012가 스페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공수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비야와 푸욜이 부상으로 빠졌음에도 최초의 유로대회 연속 우승, 최초의 3연속 메이저대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은 것.

    거기에 더해서 제로톱이라고 불리는 False9(가짜 9번)을 선보이면서 유로를 보면 현대축구의 흐름을 알 수 있다는 진리까지 재확인시켜줬으니 그야말로 북치고 장구치고 혼자서 다 한 셈이다.

    스페인 선수들이 컵을 드는 장면(사진=바르셀로나 구단 홈피)

    가히 스페인 축구의 전성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텐데.. 그 원인은 무엇일까?를 짚어보려 한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이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니 동의할 수도, 동의 못 할 수도.

    유스시스템 기반이 힘을 발휘

    먼저 스페인축구가 강한 이유를 들라면 먼저 ‘유스시스템’을 이야기할 수 있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맨유가 바르샤에게 탈탈 털린 후에 퍼거슨 감독은 잉글랜드 유스시스템을 재정비하지 않고서는 바르샤를 이길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 정도로 스페인의 유스 시스템은 다른 국가들과 차별화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국가들과 차별되는 스페인 유스시스템의 강점은 무엇일까? 스페인의 클럽들이 제각각의 철학을 유스시스템을 통해 완성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스페인 유스를 이야기하면서 빠질 수 없는 클럽이 바로 바르샤이다(스페인이 이번에 시도한 제로톱 전술을 가장 완성도 있게 보여주는 클럽이 또한 바르샤이다).

    바르샤의 유스시스템을 또 이야기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요한 크루이프이다.. 크루이프가 90년대 초반 바르샤의 감독으로 오게 되면서 네덜란드의(정확하게는 아약스) 토털 풋볼과 유스시스템이 스페인에 접목됐다. 현시기 최강의 유스시스템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바르샤와 요한 크루이프가 계약하던 장면. 계약도 중요했지만, 크루이프에게 바르샤 유스에 대한 전권을 맡겼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리고 20여년의 시간이 흘러서야 유스시스템이 안착된 것이다(유스 시스템에 대한 장기적인 관점과 투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이 바르샤 축구, 스페인 축구의 전성기로 이끌었다.

    비단 바르샤 뿐만이 아니다. 레알 마드리드, 세비야, 에스파뇰, 빌바오 등도 유스시스템에 많은 투자를 했다. 이러다 보니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재능들이 이 클럽, 저 클럽에서 말 그대로 뿜어져 나오고 있다. 이런 재능들을 바탕으로 스페인의 전성기가 온 것이다.

    스페인뿐 아니다. 어쨌든 4강에서 떨어졌지만, 미래가 더 기대되는 독일의 경우 21세기 초반 녹슬은 전차군단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유스시스템의 장기적인 정비였다.

    독일은 유스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에만 천억원이 넘는 돈을 들였고, 유스시스템이 없는 클럽의 리그 진입을 불허하는 방식으로 유스시스템을 강제했다. 그 후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과거 분데스리가는 동유럽 선수들의 천국이라는 말도 들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의 독일 출신 선수의 비율이 올라간 것은 인상적이다.)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면 장기적으로 스페인 전성기를 불러온 원인은 유스시스템이지만, 단기적으로 짚어야 하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지역감정이 해소됐다는 것이다.

    스페인은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하는 까스티야,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까딸루냐, 세비야를 중심으로 하는 안달루시아, 그리고 순혈주의의 상징인 빌바오 지역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이 지역 간의 감정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과의 8강 승부차기에서 제대로 보여준다. 나도 보면서 깜놀했던 장면이었는데 무엇이었냐 하면 보통 한 선수가 승부차기를 준비하면 나머지 선수들은 스크럼을 짜고 골이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지 않은가?

    그런데 스페인 선수들은 어느 누구도 스크럼을 짜지 않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말로만 듣던 스페인의 지역감정이 축구에 스며든 사례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 팀 설령 한국을 이긴다 해도 우승은 어렵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랬던 스페인이 바뀐다. 그 전에 스페인이 선수를 뽑는 방식은 두 가지 방식이었다. 감독이 마드리드 출신이라면 실력에 관계없이 마드리드 선수를 중심으로 뽑는다. 반대로 감독이 바르셀로나 출신이면 바르셀로나 선수를 중심으로 선발하고(이렇게 뽑으면 실력이 약해져서 떨어진다), 아니면 출신지역 안배를 해 버린다(이러면 팀케미스트리가 개엉망이 되면서 떨어진다).

    이런 두 가지 방식 밖에 몰랐던 스페인이었지만, 아라고네스 감독(마드리드 출신)이 유로2008을 앞두고 취임하면서 바뀐다. 아라고네스 감독은 그동안은 의심할 여지없이 주전이었던 라울(레알 마드리드의 주장이었던)을 과감하게 뽑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라울이 스페인에 컵을 안겨준 것이 몇 개인가? 없지? 선수는 실적으로 말해야 한다”(맥락이 이랬다는 말이지 정확하게 저렇게 말하지는 않았다)라고. 그러면서 과감하게 바르샤 선수를 중심으로 라인업을 짠다. 그리고 라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유로2008을 우승해버리면서 지금까지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비판하던 여론을 잠재워버린다(말 그대로 잠재워버렸다. 라울이 다시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일은 없었다).

    유로2012에서도 바르샤 유스의 역할은 지대했다.

    이렇게 지역이 우선이 아니라 감독이 보는 실력을 중심으로 선수를 선발하는 것이 정착됐고, 유로2012에서의 델 보스케 감독(역시 마드리드 출신이다) 또한 그런 선발기준을 지켜냈다.

    실력중심의 선발. 이런 믿음은 그 동안 갈등을 자아냈던 팀 내의 잡음까지 없애는 효과를 가져왔고(단적으로 더 이상 스페인 선수들이 승부차기에서 스크럼을 짜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 결국 멋진 경기력으로 우승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결론내자…

    내가 보고 들은 것이 축구와 정치뿐인지라 축구를 보면서 정치와 비교하는 것이 전부인데.. 아니 정확하게는 스페인의 우승을 보면서 한국의 좌파를 비교하는 것인데.

    보고 있으면 한숨이 나온다. 심지어 스페인이 그나마 하다가 말아먹었던 지역(정파)안배조차도 제대로 안 되는, 과반이 넘으면(51%라 할지라도..) 의석을 독식해 버리는 구조에서 팀 케미스트리는 넘의 동네 이야기일 것이고..

    장기적이고 좌파의 철학이 있는 유스시스템을 통한 재생산 구조 없이 그저 이들이 하는 일은 중앙에 동원되는 것이 거의 전부가 아닌가?라는 의문이 드는 청소년위, 청학위를 보면서 좌파의 미래가 있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일 것이다.

    가뜩이나 중앙집권적이기 마련인 청년들인데 지역에서부터, 현실에서부터 점차 성장하는 시스템을 고민하고 만들지 않는다면 말 그대로 입진보들을 대량 양산하고 마는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기적으로 정파등록제이든 뭐든 정파를 인정하고 그 실력에 따른 정치적인 책임을 지우는 방식의 도입과 장기적으로 당직과 공직, 지역에서 차근차근 사람을 키울 수 시스템을 만드는 것. 이것에서 좌파의 미래를 찾을 수는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스페인 우승을 보면서 무척이나 많이 들었다. 끗…

    필자소개
    지역 공동체 라디오에서 기생하고 있으며, 축구와 야동을 좋아하는 20대라고 우기고 있는 30대 수컷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