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의 ‘반듯한 나라’는
    폭력과 테러 용인하는 것?
    [인도 수구보수파들의 생얼-16] 전통, 종교, 국가의 이름으로
        2014년 10월 20일 11:44 오전

    Print Friendly

    세상의 어느 종교든 자살을 권고하는 종교는 없다. 힌두교 또한 다른 어느 종교와 마찬가지로 자살을 권고하지 않는다.

    그런데 힌두 사회에서 자살을 장려하고 그 전통을 보존하려 애를 쓰는 게 있다. 바로 남편이 죽으면 과부가 된 아내가 따라 죽는 힌두 식 순장인 사띠(sati)이다.

    가장 최근 행해진 사띠로 세상의 주목을 받은 사건으로 1987년 9월 4일 루쁘 깐와르(Roop Kanwar)라는 시집 온 지 갓 일곱 달밖에 되지 않은 18세의 과부가 감행한 예가 있다. 라자스탄 주의 수도인 자이뿌르 시에서 80 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데오랄라(Deorala)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힌두 사회에서 자살이 장려되는 대상으로 합리화되는 또 하나의 예로 자살 특공대가 있다. 물론 후자는 최근에 만들어진 현상이고 널리 지지를 받지는 못하지만 그 합리화의 논리적 맥락이 주목할 만 하다는 것이다.

    2008년 마하라슈뜨라에 기반을 둔 극우 힌두정당인 쉬브 세나(Shiv Sena 쉬바지의 군대. 쉬바지는 영국이 인도를 침략할 때 끝까지 싸운 서부를 기반으로 한 지역 세력)의 대표인 발 타끄레이(Bal Thakeray)는 인도에서의 이슬람의 테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자살 특공대를 조직한다고 했다.

    이 두 가지의 자살이 논리적으로 허용되고 상당한 지지를 받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1987년 9월 4일 델리와 자이뿌르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인 데오랄라에서 일어난 루쁘 깐와르의 사띠에서, 18세의 젊은 과부 루쁘 깐와르는 24세 남편 말 싱(Mal Singh)이 죽은 지 하루 만에 화장용 장작더미에 올랐다.

    그런데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루쁘 깐와르는 자발적으로 사띠를 행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남편 가족들이 그에게 마취를 시켰다고 증언했고, 그가 불길이 타오른 후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무장 경호원들이 장작더미 주위를 지켰으며 실제로 적어도 세 번은 그가 빠져나오려 한 것을 몽둥이로 패 다시 밀어 넣었다고 증언했다.

    애초 라자스탄 주정부는 그 자리에 모이는 것조차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사띠는 꿋꿋이 거행되었다. 그 후 경찰은 루쁘 깐와르의 시동생이 장작더미에 불을 붙인 것을 확인하여 그에게 살인죄를 적용하는 등 가족의 남성 구성원들을 구속하였으나 결국에는 모두 석방되었다. 끝내 아무도 처벌되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 언론과 여성계에서는 사띠의 금지뿐만 아니라 사띠 행위를 찬양하고 미화하는 행위조차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배하였다. 하지만 이 지역과 전국에서 모인 수구 세력은 사띠 찬양의 축제를 열었다. 이 지역 대중들의 사띠 자살에 대한 지지는 인권 보호를 부르짖는 것보다 월등히 높았다. 사띠를 행한 그 자리는 힌두교의 성지가 되었고, 이어 순례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어린 과부 루쁘 깐와르는 힌두교의 여신이 되어 신화가 되었다.

    과부 순장 사띠가 지지를 받는 것은 사람들이 그것이 그 사회의 가치를 수호하는 방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의용단일가 소속 단체가 적극 조성하였으니 그 가운데 대표가 전통법수호협회(전통법 락샤 사미띠 Dharma Raksha Samiti)였다.

    처음 사건이 일어나자 여성 인권 단체들이 3,000명을 모아 사띠 항의 집회를 열었는데, 이에 대해 맞불 차원에서 전통법수호협회가 라자스탄 고등법원의 집회 금지 명령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여러 여성 단체를 비롯하여 70,000 명의 군중을 동원해 사띠 지지 시위를 벌였다.

    이 일에 우익 정당 또한 나름 굵직한 역할을 하였다. 나중에 제1야당으로 발돋움했고, 당시만 해도 세력 확장을 위해 보수 수구 이데올로기 전파에 발버둥을 치던 우익 정당 국민당은 군중 동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런데 그때까지 야당의 도전다운 도전을 받아본 적이 없던 집권 여당인 회의당 정부는 어정쩡한 자세를 취했다. 수상 라지브 간디는 형식적으로는 사띠와 사띠 찬양을 반대하고 나섰지만, 정부는 군중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은 채 머뭇거렸다.

    그럼에도 그 지역 우익 정당 세력은 라지브 간디 수상의 이러한 태도조차도 극렬하게 비판하였다. 그리고 그 비판은 항상 종교를 정치로 끌어들이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들은 라지브 간디를 “아버지는 파르시교도이고, 아내는 이탈리아 사람인 반(反)힌두 인사가 우리의 힌두교를 모독한다”고 하였다. 아무런 논리성도 없고 실체도 없는 그야말로 종교 감정 불 지르기일 뿐이었는데, 많은 국민들이 호응하였다. 이미 80년대 말에 인도 정국은 이미 휘발성이 강한 대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논리는 힌두는 전통법과 모국과 여성을 존중하는데, 모국과 여성이라는 두 여성성을 이어주는 것이 전통법 즉 종교라고 하였다. ‘우리들의 종교’를 위해 여성이 희생하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은 수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힌두 복고주의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면서 향후 인도 정치가 종교와 급속도로 연계되면서 종교 공동체주의가 정치의 전면에 나타나게 되는 또 하나의 계기로 작용하였다.

    그러다 보니 전통법을 수호하는 행위는 폭력이든, 전쟁이든, 자살이든 그 어떠한 방편이든지 간에 개의치 않았다. 불교에서 해탈을 이루기 위해 죽을 때까지 곡기를 끊는다거나 전생에 붓다가 자비를 베풀기 위해 굶주린 호랑이에게 몸을 던져 그 먹이가 되었다는 것과 동일한 논리다.

    1947년 분단 공간에서 마하뜨마 간디를 민족의용단이 암살한 것도 살인을 통한 힌두 전통법 수호의 일환이고, 이 사건 이후 1992년 아요디야(Ayodhya)에서 벌어진 바브리 마스지드(Babri Mmasjid) 파괴 또한 폭력을 통한 전통법의 수호로 널리 받아들여진다.

    2000년 디빠 메흐따(Deepa Mehta) 감독의 영화 《워터》(Water)가 갠지스 강을 모독했다 하여 봉사단가족(Sangh Parivar 상그 빠리와르) 단원들이 단체로 갠지스 강에 투신 자살하겠다고 협박하면서 영화 촬영을 저지한 것 또한 전통법 수호를 위한 행위가 폭력적인지의 여부와 전혀 관계치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띠라는 명백한 자살이 종교 안에서 정당한 행위로 권고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이제 수호하는 대상으로 전통법은 자연스럽게 국가로 해석된다. 이는 비단 인도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이는 전통법을 지키는 존재가 과거 전통 사회에서는 카스트 체계였지만 이제는 국가나 민족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힌두교가 민족이나 국가를 위해 자살을 방조하는 것을 넘어 자살을 권고하는 종교로 변할 수 있는 이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사회사적 맥락에서 볼 때 최근 불거진 쉬브 세나(Shiv Sena)의 자살특공대 조직 사건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쉬브 세나는 힌두교의 정치 이데올로기인 힌두뜨와(Hindutva 힌두주의)에 기초를 둔 마하슈뜨라 지역에 기반을 지역 극우 정당이다. 쉬브 세나의 타끄레이는 힌두뜨와를 교묘하게 반(反)이슬람 폭력 이데올로기로 만들어 힌두 자살특공대 조직을 천명하였다.

    쉬바 세라

    쉬바 세나 당원들의 모습

    쉬브 세나의 당 학생위원회가 “그래 우리는 테러리스트다. 국가를 보호하는 것이 테러리즘이라면, 국가를 팔아먹는 자를 응징하는 것을 테러리즘이라 한다면, 우리는 테러리스트를 마다하지 않겠다. 국가를 비난하고, 조국을 비난하고, 종교를 비난하는 자에게 폭탄 세례를 퍼붓는 것이 테러리즘이라면, 테러리즘에 대해 강력하게 싸우는 것이 테러리즘이라면, 우리는 테러리스트임을 자랑스럽게 느낀다”라고 일갈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이다.

    그들에게 폭력은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타끄레이의 자살 특공대 조직에 대한 발언은 2006년 뭄바이에서 발생한 무슬림에 의한 열차 연속 폭발 테러 이후에 시작하였다. 타끄레이는 “이슬람 테러가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데 이를 이겨내는 것은 힌두 테러를 키워 맞불을 놓는 것밖에 없다. 힌두 자살 특공대를 조직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천명했다.

    그는 무슬림 테러리스트로부터 힌두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이슬람권의 알카에다 조직과 유사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주장을 예비역 육군 중령 자얀뜨 라오 찌딸레(Jayant Rao Chitale)가 받아들여 특공대를 조직한 것으로 진전되었다.

    그는 당시 수상이자 연합 세력인 인도국민당 대표 바즈빠이(Atal Bihari Vajpayee)와 대통령 깔람(Abdul Kalam)에게 국가 수호를 위해 자살 특공대를 조직해야 함을 몇 차례 진정했으나 그에 대한 답변이 오지 않아 자기 스스로 그 조직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쉬브 세나의 논리 위에서 실제로 자살특공대를 조직했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극우 힌두 조직으로 람세나(Sri Ram Sena 람의 군대)가 있다. 람 세나는 실제로 2006년 마하라슈뜨라의 말레가온(Malegaon) 폭발 테러에서 39명의 희생자를 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조직을 세운 쁘라모드 무탈리끄(Pramod Muthalik)는 경찰이 마하라슈뜨라에 존재하는 여러 무슬림 테러리스트 조직을 적발하고 처벌하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이 나서서 그 일을 대행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무탈리끄는 2009년 1월 24일 망갈로르(Mangalore)에서 한 서구식 주점을 습격하여 그곳에서 유튜브를 하고 있던 여성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였다. 또 2008년 인도의 저명한 화가 후세인(M.F. Hussain)의 전시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들은 후세인이 바라따 마따 (어머니 인도) 여신을 누드로 그리는 등 힌두교를 모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패션쇼나 발렌타인데이 기념 식장을 공격하기도 했는데, 이 또한 힌두 고유의 전통 문화를 모욕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심지어 그들은 사회주의당은 불가촉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목표로 정치를 하는 불가촉민의 정당이기 때문에 힌두 사회의 근간인 카스트 체계를 뒤흔드는 단체라고 주장하면서 폭력을 행사하였다.

    그들은 라슈뜨라 락샤 세나(Rashtra Raksha Sena)라는 이름의 국가수호군을 창설하여 700명의 대원을 확보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체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거창한 이름의 군대나 특공대원은 아니지만 백주에 폭력을 행사하는 파시스트로서의 실체는 분명히 있다.

    자살이든 자살 특공대든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반(反)사회적 행위가 전통법, 종교, 민족, 국가의 이름으로 용인되고, 강요되고, 이제는 그것을 넘어 마음껏 활개를 치면서 상대방에 대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정치가 비합리적 종교 민족 이데올로기에 좌지우지 당하는 후진적 상태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테러리즘을 밀어주는 세력이 다시 집권하거나 아니면 이미 판단력을 잃은 보수 우중(愚衆)이 든든한 배경이 되어 줄 수 있다는 든든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부조리가 사방을 빙벽과 같이 쌓고 있는 모순은 비단 인도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퇴역 군인 수구 집단이 백주에 권총을 빼들고 성당 앞 마당에서 난동을 부린 일까지 일어났다. 군복을 입고, 무기를 들고, 민간인을 협박하는 등 실정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아무런 제재 없이 벌이더라도 정부 여당은 아무런 규제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성은 여성답게 아이나 많이 낳고, 학생은 학생답게 공부나 하고, 노동자는 노동자답게 하라는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당당히 주장한다.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반듯한 사회다. 그러면서 젊은이들의 문화를 적대시하고, 도시철도에서 노인들이 젊은이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작은 병리 현상이 아니다. 정권이 바뀌지 않는다는 더욱 큰 확신을 가지면 그들은 더욱 큰 수구 난동 세력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 어떠한 명분을 잃더라도 새누리당으로부터 정권 교체를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이 온갖 국가 조직을 동원하여 부정선거를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권력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서로 공유해서다. 그 확신이 굳어지면 부정선거를 넘어 더 한 일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백주 테러는 그 가운데 하나다. 사회가 보수화 된다는 것은 사회가 ‘반듯한’ 사회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그 옛날 전통 사회에서 통용되는 부조리의 모순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이치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 안에 여성, 젊은이, 소수는 서 있을 자리가 없다.

    필자소개
    이광수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