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그랬을까?
[책소개] 『간첩의 탄생』(문영심/ 시사IN북)
    2014년 10월 19일 12: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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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비현실적이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이라는 긴 이름이 붙은 탈북자 유우성씨 스토리가 그렇다.

북한 의사 출신으로서 남쪽으로 내려와 갖은 고생을 이겨내고 서울시 비정규직 공무원이 돼 성공신화를 써내려가던 유우성씨는 하루아침에 간첩 혐의를 뒤집어쓰고 신문 1면을 장식하게 된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검찰과 국정원이 혐의를 입증하겠다고 내놓은 자백과 자료와 증언은 모두 조작됐거나 불법 수집돼 증거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북쪽에서 내려온 평범한 젊은이가 알고 보니 간첩이었다는 ‘발표’보다도 나라의 큰 기관인 국정원과 검찰이 협력해서 죄 없는 사람을 간첩으로 몰았다는 것이 훨씬 더 큰 충격이었다.

유우성씨는 1심과 2심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 받았다. 그렇더라도 유우성씨 스토리는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멀다. 국고를 축내가며 생사람을 간첩으로 만들려고 기를 썼던 국정원과 검찰의 책임자들이 그들이 저지른 죄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첩의 탄생

간첩 증거 조작 사건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국정원과 검찰 라인은 윗선 아랫선 할 것 없이 모두 처벌받지 않고 빠져나가고 말았다. 국정원과 검찰의 보복성 수사와 조처로 북한 화교 출신이지만 스스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았던 유우성씨와 그 가족은 한국 국적을 유지하거나 새로 취득할 수 없게 돼 더 이상 한국에 발을 붙이지 못할 신세로 내몰리고 있다. 가해자가 처벌받기는커녕 다시 피해자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 해체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이 책 <간첩의 탄생>은 21세기 대명천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치졸한 사기극 겸 복수극을 치밀하게 추적한 책이다.

베테랑 방송 다큐 작가이자 소설가인 지은이 문영심은 전작 김재규 평전 <바람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에서 보여준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해 자료에 충실하면서도 소설보다 훨씬 박진감 있는 법정 드라마를 써내려간다.

그녀는 머리말에서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을 저지른 국가기관과 공무원에게 어떤 처벌을 내려야 할지 묻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이 특별법이나 특별검사가 없어도 모든 국민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받고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기원하며 글을 써내려갔다.

그녀는 독자들에게 조잡한 증거를 조작하는데 예산을 낭비하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힌 국가 정보원에는 해체명령을 내려달라고 주문한다. 국정원과 손잡고 증거를 조작하고 인멸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공식기관이라는 사실을 내세워 법원을 기망하고 사법체계의 근간을 위태롭게 한 검사들에게는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그들이 유우성씨에게 구형했던 법정 최고형인 징역 7년을 선고해달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건조한 기사를 읽으면서는 짐작도 하지 못했던 생생한 디테일이 숨 쉰다. 평소 친하게 지냈던 국정원 직원이 돌변해 자신을 간첩으로 몰아가는 끔찍한 경험을 하면서 자살을 불사해가며 저항하는 유우성의 투쟁이 고스란히 담겼다.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가 4개월간 독방에 감금돼 협박과 회유, 구타를 당한 끝에 오빠가 간첩행위를 했다고 허위 자백하는 과정, 그 뒤 극적으로 변호사들의 조력으로 국정원의 손에서 놓여나 증언을 뒤집는 순간을 마치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세밀하게 그려냈다.

유가려씨는 작가에게 “나라의 큰일을 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랬을까요. 이해하기도 용서하기도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이 책 말미에는 유우성씨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간첩이 된 탈북자들에 대해서도 실려 있는데 유우성씨가 무죄 판결을 받은 뒤 그들 역시 하나 둘 혐의를 벗어가는 중이다.

이 책은 온 나라가 전속력으로 박정희 시대로 후진하는 걸 바라보면서 절망하거나 외면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현실을 바꾸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비뚤어진 세상을 바로 잡으려면 잠수를 타거나 냉소만 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이들이 마음에 들어 할 만한 책이다.

끈질긴 법정 투쟁 끝에 유우성씨에게 자유를 돌려준 장경욱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저들은 상대가 당황해서 자신을 믿지 못하고 정신무장이 흐트러지는 경우에는 언제든지 상대를 가지고 놀고 괴롭히는 작자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자존심을 지키고 사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는 사람들 앞에서는 비겁하게 회피하는 자들입니다. 배짱 있게 밀고 나가며 치밀하게 대응해 나가면 백전백승입니다.

작가는 왜 이 책을 썼는가

아버지의 고향은 평안북도 신의주다. 아버지는 공산당이 싫어서 고향을 버리고 남한으로 왔다고 했다. 한국전쟁에 나가 목숨 걸고 싸웠으며 언젠가는 통일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65년을 살았다. 아버지가 월남해서 잠시 살았던 충청도나 그 후에 30년을 살았던 인천보다 아버지의 고향인 신의주를 고향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방송작가가 되어 북한에서 온 사람들을 몇 차례 취재했다. ‘자유’를 찾아 목숨 걸고 대한민국을 찾아왔다는 그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어딘가 주눅 들어 보였고 지치고 슬퍼 보였다. 유우성을 만나면서 탈북자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의 고향을 잊지 않아서일 것이다. 27년간 방송 글을 쓰면서 차 떼고 포 떼고 방송에 적합하게 구성해야 했던 다큐멘터리가 답답했다. 외압에 시달려 프로그램을 누더기처럼 너덜너덜 기워서 내보내야 했을 때는 포도청이라고 불리는 목구멍을 폐쇄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책 쓰기는 방송 글보다 한결 자유로워서 숨통이 트인다. 방송할 때나 책 쓸 때나 재미와 사실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는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믿는다. 문학을 전공하고 소설 쓰기를 꾸준히 해온 것이 다큐멘터리와 스토리텔링을 결합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책을 쓰면서 민주주의는 ‘법치’가 제대로 돼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상식을 배반하고 법치를 무시하는 ‘공안권력’을 고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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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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