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 사람, 맛, 숨 그리고 생활
    [책소개] 『안도현의 발견』(안도현/ 한겨레출판)
        2014년 10월 19일 12: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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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도현 시인이 시 절필 선언 후 처음 쓴 글인 《안도현의 발견》은 시인의 눈길이 머문 달큼한 일상의 발견 201편을 담은 산문집이다.

    《안도현의 발견》에는 시간의 무게와 함께 쌓인 시인의 문학과 삶, 사람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 사람, 맛, 숨, 그리고 생활이라는 다섯 개의 부로 나뉘어 단순하지만 순수하게 투박하지만 담백하게 담겨 있다. 〈한겨레〉연재 당시 3.7매라는 지면의 한계로 규격화될 수밖에 없었던 글은 책으로 나오면서 조금 더 숨 쉴 수 있게 되었고, 시인의 진정성 있는 목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은 1부 〈생활의 발견〉에서 시에 대한 생각(‘동심론’, ‘연애의 기술’, ‘죽은 직유’ 등), 읽었던 책에 대한 단상(‘벗’, ‘청장관전서’ 등),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아까징끼’, ‘당꼬바지’ 등), 생활 속에서 보고 느낀 것(‘도끼’, ‘모기장’, ‘가을은 온다’)에 대해 말한다.

    2부 〈기억의 발견〉에서는 제주 4·3사건, 동학농민운동, 유신 등 아프지만 절대 잊어선 안 되는 기억(‘하섬’, ‘제주공항’, ‘단체 영화’ 등), 문학에 대한 기억(‘문고판’. ‘원고료’, ‘〈현대문학〉에게’ 등), 감싸고 보듬어주고 싶은 기억(‘고래’, ‘낙선축하주’ 등)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3부 〈사람의 발견〉에서는 시인이 아끼고 존경하는 선생님(‘채현국’, ‘전우익’, ‘권정생’, ‘신경림’ 등), 곁에 두고 술잔 채워주고 싶은 벗(‘박배엽’, ‘박남준’, ‘이정록’, ‘이병초’, ‘유강희’ 등),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은 사람(‘조운’, ‘배호’, ‘문정’, ‘물고기 청년’ 등)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4부 〈맛의 발견〉에서는 봄이면 생각나고(‘마늘종’, ‘곤드레나물밥’, ‘5월 병어’ 등), 여름만 되면 먹고 싶고(‘갑오징어’, ‘고구마순’, ‘정구지찌짐’ 등), 가을이라 떠올리게 되고(‘무말랭이’, ‘간장게장’ 등), 겨울이어서 한 숟갈 뜨고 싶은(‘태평추’, ‘매생이국’, ‘물메기탕’ 등) 음식에 대한 군침 나는 일화를 늘어놓는다.

    5부 〈숨의 발견〉에서는 시인이 전원생활을 하고 이곳저곳을 오가며 직접 보고, 만지고, 냄새 맡았던 꽃(‘마타리꽃’, ‘변산바람꽃’ 등), 나무(‘참나무’, ‘멀구슬나무’ 등), 풀(‘참비름’, ‘양구 곰취’ 등) 그리고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시인이 쓴 201편의 글은 비록 짧지만 ‘작고 나직한 기억되지 못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차분하고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본다. 《안도현의 발견》에 있는 시인의 ‘숨소리와 발소리가 들리는’ 문장은 우리의 가슴속에 다복다복 들어와 박힐 것이다.

    안도현 발견

    사소한 것들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살뜰한 믿음

    《안도현의 발견》에는 유독 ‘작고’, ‘나직하고’, ‘사소하고’, ‘별 볼일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만경강 둑길에서 만난 논병아리나 101전 101패의 전설적인 기록을 가진 ‘똥말’ 차밍걸, 곤달걀 속 껍질을 깨고 밖으로 걸어 나오지 못한 죽은 병아리가 그렇고, ‘어떻게든 견디는 게 삶인’ 냄비받침과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든 이웃들을 위해 늘 열려 있던 타인능해라는 이름의 운조루의 큰 쌀통이 그렇다. 발자국의 발자국이 쌓이고 쌓여 조붓한 길이 된 토끼비리와 시인의 완주 작업실 돌담 아래 피어 있는 꽃무릇이 꼭 그렇다.

    시인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산기슭에 홀로, 혹은 두세 포기 피어 흔들리는 구절초의 가는 허리를 오래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사내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시인의 재치 있으면서도, 깊은 이 한 마디 말을 통해 우리는 ‘작고’, ‘나직하고’, ‘사소하고’, ‘별 볼일 없는’ 것들이 산기슭에 홀로, 혹은 두세 포기 피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 기억과 망각 사이 아름다운 것과 여기, 우리 사이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시인은 운조루가 보여주었던 나눔처럼 사소한 것들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그 ‘살틀한’ 믿음을 나누고자 한 발짝 먼저 걷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가만히 듣고, 그저 바라본다. 두 팔을 벌리며 ‘귀뺨을 맞더라도 용기를 내’서 그 믿음에 가까이 가라고 말한다. ‘제주공항’에서 제주에 여행을 갈 때는 공항에 내리면서 한번쯤 옷깃을 여미자고 말하는, 시인이 보여주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그래서 더욱 따뜻하고, ‘줄임말’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먼 나라에서부터 깃털이 해지도록 날아온 수고가 잘 느껴지도록 그냥 도요새가 아니라 ‘알락꼬리마도요’라고 부르자고 말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그래서 더 아름답다.

    사소한 것들을 오래 응시하고, 어루만져보고, 귀 기울였을 때에야 볼 수 있는 발견의 기록을 마주하며 우리는 그 믿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직접 보고 느끼며 사소한 것들 안에 있는 사람을 진전시키는 힘을 발견하게 된다.

    단 하루라도 오랫동안 바라보자

    자연과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발견하려고 애썼던 시인은 누군가를 잊을 때조차 자꾸 들여다보았다고 말한다. (“너를 잊으려고 나는 너의 사진을 자꾸 들여다보았다”, 안도현의 시 〈연락선〉 중에서) 이처럼 시인은 《안도현의 발견》에서 무엇을 반대하고, 무엇을 규명하고, 무엇을 의심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연애의 기술’에서 ‘호들갑 떨지 말고 소리 나지 않게’ 다만 ‘가능한 많은 시간’을 살펴보라고 했듯이, ‘개불알풀꽃’에서 학생들에게 연보랏빛이거나 연분홍빛인 꽃을 찾아 자신의 트위터로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했듯이, ‘꽃이 피어도 꽃이 핀 줄 모르고’, 누가 사라져도 사라진 줄 모르고, 자신이 살아가는 이 고장에서 어떤 소리들이 들리는 줄도 모르고,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시인은 ‘단 하루라도 오랫동안 바라보자’고 말한다.

    아니, 시인의 벗인 시인 문정처럼 “바라볼까?”라고 권한다. 귀를 막고 싶은 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 여기 이렇게 끄떡없이 살아 있다고 세상에 보내는 서로의 숨비소리를 듣고, 보자고, 또 다른 귀와 눈을 열어보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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