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바흐, 괴짜 피아니스트
[클래식 음악 이야기] 글렌 굴드(Glenn Gould, 1932 – 1982)
    2014년 10월 14일 03: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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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말. 말.

“나는 내 독특한, 괴짜 같은 행동이라고 불리는 것들로 인해 사람들이 내 연주의 진지한 면을 볼 수 없게 방해받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절대로 내가 괴짜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나는 언제나 장갑을 한두 개쯤 지니고 있으며 때로는 연주를 위해 구두를 벗기도 한다. 또한 콘서트 도중에 청중들이 내가 코로 피아노를 치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연주에 심취한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절대로 독특한 행동이 아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집중 상태가, 결과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눈에 그런 식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악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작곡가가 오선지에 자신의 영감 또는 악상을 그려 넣은 하나의 작품이자 결과물이다. 작곡가는 이 오선지 위에 수많은 음정들 외에도, 작품의 성격을 잘 반영해 줄 템포와 박자 등도 함께 삽입한다. 즉, 작품 연주에 필요한 지시 사항들이다. 작곡가는 이러한 다양한 지시 사항들을 통해 자신의 의도가 연주자에게 그대로 전달되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러한 악보는 불완전하다.

대부분의 악보에서 연주법들이 강요되는 것도 아니며, 동일한 패시지들을 서로 다르게 연주될 수가 있다. 연주자가 정확한 음정은 낼 수 있지만 그에 부가되는 여러 다른 음악적 요소들, 예를 들어 음표 위의 악센트 표시는 어느 정도 힘을 주어 연주하라는 것인가? 다이내믹을 표시하는 “포르테(f)”와 “피아노(p)”의 강세도 어느 정도로 세게 또는 약하게 연주해야 되는 것인지 그에 대한 절대적 기준은 없다.

마찬가지로 빠르기에서도 Presto(프레스토, 매우 빠르게) Allegro(알레그로, 빠르게), Moderato(모데라토, 보통 빠르게), Lento(렌토, 느리게) 등의 정확한 빠르기가 분당 초당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휴지(pause)”와 “페르마타(fermata)”의 경우는 더더욱 가늠하기가 어렵다. 음표의 2~3배? 혹은 한 마디? 즉, 악보의 지시 사항들의 구현은 전적으로 연주자의 주관에 달렸다는 것이다.

악보에 표기된 다양한 악상기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연주에서 악보가 드러내는 불완전성은 명확하다. 그렇다면 악보에 아무런 악상기호(템포, 강약, 프레이즈 등)가 없는 바로크 음악은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가? 악보에 곡의 뼈대, 즉 기본적인 박자와 음정들만 표시되어 있는 악보로 과연 어떤 연주를 할 수 있을까? 연주자의 개성이 한껏 담긴 장식음들로 즉흥연주를 해도 될까?

놀랍게도 그렇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은 연주자의 감각과 경험, 그리고 기호에 따라 즉흥적으로 기교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연주자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해 놓았다. 연주자는 작곡가의 의도에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악곡을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악보에 악상기호가 빼곡히 그려져 있는 고전시대(모차르트, 베토벤)와 낭만시대(쇼팽, 슈베르트, 브람스)의 작품보다 연주자의 자유분방한 장식음들을 허용하는 바로크 음악에서 두각을 나타난 연주자가 캐다나 태생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Gould, 1932-1982)이다.

탁월하고 다양한 연주 기술을 가진 굴드는 그 음악적 취향과 해석이 독특한 것으로 유명하다. 굴드의 연주는 가끔 지나치게 빠르거나 지나치게 느리다. 다른 연주자들이 4분 남짓한 동안 연주하는 음악을 10분이 넘도록 늘여 연주하기도 하고, 그와 반대로 다른 연주자들의 절반밖에 안 되는 시간에 연주를 마치기도 한다.

굴드가 가장 선호한 작곡가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이다. 굴드는 바흐의 대부분의 건반 음악을 녹음하였다. 굴드는 사춘기 시절부터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 BWV 988)>(1740?)에 흠뻑 빠져 즐겨 연주하고 끊임없이 연구했다. 그가 곡명에 “굴드베르크 변주곡”이라는 애칭을 붙일 만큼 애정을 가졌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55년에 컬럼비아에서 출반되어 엄청난 찬사를 받으며 당시 가장 많이 팔린 음반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음반에서 굴드는 바람이 흘러가듯, 질주하는 듯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템포와 프레이징(phrasing, 악구구성법)과 함께 에너지가 넘치면서 가끔씩은 광기를 부리는 통통 튀는 젊음의 기운을 마음껏 발산했다. 이전의 모든 해석과 연주 전통을 무시하고 그만의 개성적인 독특한 음색을 발휘한 이 음반을 두고 평론가들은 ‘미친 놈의 연주’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굴드는 이 작품을 1981년에 또다시 출반하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선보였다. 아리아와 30곡의 변주로 되어 있는 이 음반에서는 세 곡이 단위로 묶여져 있으며, 각 묶음의 첫 곡은 항상 캐논canon(모방 대위법) 기법으로 되어 있다. 각각의 캐논들이 한 음정씩 증가하는 규칙으로 배열된 것도 눈에 띈다. 이를테면 변주 3에서 1도 캐논, 변주 6에서 2도 캐논, 변주 9에서 3도 캐논 식으로 전개된다. 굴드는 각각의 변주 안의 모든 음표와 쉼표를 하나씩 진지하게 곱씹는 방식으로 빠른 부분은 너무 내닫지 않고 느린 부분은 매우 관조적으로 곡을 진행시킨다.

“콘서트를 할 때면 내가 희극배우처럼 느껴진다.”

“콘서트는 고통으로 가득 찬 속임수일 뿐이다.”

굴드는 공연을 싫어한 정도가 아니라 혐오했다. 그는 녹음실이 주는 통제와 친밀감을 유독 좋아했다. 연주 환경의 절대적 통제를 위해서 실내온도가 일정해야 한다고 하여 에어 컨디션 담당 기술자는 녹음 기술자만큼이나 바빴다고 한다. 굴드는 녹음 기술을 자신의 예술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연주 중 가장 좋은 부분만을 샘플링하여 최고의 완성도를 높이고 싶어 했다. 그는 이러한 편집 과정을 창조적 과정으로 생각하였다.

“테크놀로지야말로 나와 음악과 바깥 세계를 연결시켜 주는 고리”라고 한 굴드의 말은 우주시대가 열리면서 실현되었다. 1977년 세이건Carl Edward Sagan(1934-1996)이 선정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보이저호 골든 음반(Voyager Golden Record)에 그의 연주 음반(바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 2권 중 전주곡과 푸가 1번 다장조)이 선정되어 우주선에 실려 지구를 떠나 멀리 우주공간을 떠돌고 있으니 말이다.

글렌 굴드

글렌 굴드의 연주 모습

굴드는 작품 해석 이외에도 특이한 연주 자세로도 유명하다. 그의 스승이었던 알베르토 게레로Alberto Guerrero(1886-1959)와 함께 굴드는 건반을 위에서 치지 않고 낮게 앉아서 건반을 잡아당기듯이 쳤다. 이런 자세로 연주하면 각 음표의 분명함과 개별성을 유지하면서 매우 빠른 템포로 연주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건반에 대한 통제력이 상승하는 것이다.

굴드는 팔에서 손가락이 독립적으로 움직여서 건반을 치는 기술을 익혔다. 이러한 주법은 건반과 연주자의 몸이 일체가 되어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돕는다.

“음악은 내 안에 있고, 나는 음악 안에 있다.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내부에서 외부로, 내면이 된 외부로 나아감이다… 그것은 에워싸고 조여 온다. 그러면서도 귀로 올라오는 기쁨, 혹은 첨예한 고통으로서, 아주 작은 부분이 되어 내부에 머문다.”

굴드는 음악에 도취되어 몸을 앞뒤로 움직이기도 하고 황홀한 표정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가도 갑자기 온통 얼굴을 찌푸리고 입을 크게 벌리기도 하고, 한 손만으로 연주하는 부분에서는 지휘를 하는 듯이 손을 높이 쳐들고 흔들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작품에 몰입 상태를 청취자는 귀로도 들을 수 있다. 녹음이 진행되는 동안 굴드는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낮은 소리(“따라라라” “딥딥딥” “투루루루” “빰빠라빰빰” “우르르르르”)로 끊임없이 무언가 중얼거린다. 무의식적인 그의 노래는 그의 어머니가 연주를 모두 노래하도록 시킨 어릴 적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첫 음반 녹음 현장에 나타난 굴드의 모습은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외투에 베레모를 쓰고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까지 끼고 나타난 것이다. 그의 ‘장비’는 악보 뭉치와 수건 묶음, 큰 생수 두 병, 작은 알약통 5개, 그리고 특별한 피아노 의자였다. 굴드가 열 살 때 보트 계류장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친 이후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높이 조정이 가능한 의자를 만들게 된 것인데, 그는 평생 동안 이 의자를 들고 다녔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 이태리의 성 베드로 대성당은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이 웅장한 건물 기둥 안에는 또다시 정교한 조각들이 새겨 있는데, 인물들이 입은 주름 진 옷,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어느 한 곳도 같은 그림이나 조각이 없을 만큼 바로크 예술 양식은 화려하고 다양하여 볼거리도 이야깃거리도 많다.

그만큼 바로크는 풍부하다 못해 지나칠 정도의 과장된 감정이 표현된 시대이다. 회화에서는 모든 인물들의 감동적인 표정과 몸짓이 있으며 건축양식과 조각에서는 장식적이며 역동적인 운동성이 엿보이다.

이러한 사조는 음악에도 당연히 반영되었다. 글렌 굴드는 바로 이러한 바로크적 성향을 건반 위에서 재현했다. 굴드는 바흐의 음악에 잠재하는 본질을 확실히 이끌어 내면서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했을 정도로 자유롭게 바흐를 연주했다.

굴드는 바흐 시대 악기의 여리고 별로 변화가 없는 소리를 늘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굴드는 역사가 오래된 스타인 웨이((Steinway & Sons) 사에서 나온 CD318 피아노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 피아노는 건반이 매우 가벼운데, 굴드의 음반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엄청난 스피드는 아마도 이 피아노의 특성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굴드가 만들어 내려고 했던 소리는 음색의 섬세하고 미묘한 차이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굴드가 연주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피아노 연주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마치 쳄발로 연주처럼 맑고 가볍다.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에는 분명 다른 연주자의 그것과는 다른 뭔가가 있다. 그러나 그가 취하는 모든 행동은 매우 바로크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바로크 음악을 매우 바로크답게 연주했던 연주자이다. 바흐 음악의 모방 대위적 텍스처를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놀라운 기술적 능숙함으로 바로크 음색의 섬세함과 연주자 자신의 자유로운 감정의 비상을 표현하였다. 연주할 때의 그의 여러 다양한 표정과 모습 그리고 그가 내는 소리 역시 작품에 대한 또 하나의 장식적 처리 내지 해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작곡가의 연주자에 대한 지시 사항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연주자가 취해야 할 방법은 그 음악 안에 무엇이 있으며 무엇이 감지되고 발견되며, 청각적으로 무엇을 제공하는지 그리고 청중들에게 그 음악에 대해 무엇이 이해되었는지 전달하는 데 있다.

또한 작곡가에 대한 의무를 가진 연주자는 악보의 지시 사항에 대한 일종의 충성과 진실성을 표현해야 한다. 악보에 대한 충성 원칙에 따라, 또는 미학적 일관성에 따라 청취자는 그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연주가가 그 작품을 연주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익숙한 것이 꼭 잘된 연주는 아니다.

‘바로크Baroque’란 용어는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일그러진 진주’(일그러진 둥근 보석)를 뜻한다. 프랑스 계몽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바로크 음악에 대해 “화성적으로 혼란스럽고, 전조와 불협화음이 가득하고, 노래는 굳어 있고 자연스럽지 못하며, 음정도 잡기 어렵고 움직임은 억지스러운”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말했다. 그런 바로크 음악을 자연스러우면서 다양하고도 활기찬 들을 거리가 있는 음악으로 이끌어낸 굴드의 연주는, 당대 사람들이 들었을 소리를 오늘날 최대한 가깝게 재현했다고 볼 수 있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당시만 해도 지루하고 변화 없는 음악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아무도 이 작품을 연주하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이 세상에 완전한 악보란 없다.

필자소개
한양대 음악대학 기악과와 동대학원 졸업. 미국 이스턴일리노이대 피아노석사, 아이오와대 음악학석사, 위스콘신대 음악이론 철학박사. 한양대 음악연구소 연구원, 청담러닝 뉴미디어 콘테츠 페르소나 연구개발 연구원 역임, 현재 서울대 출강. ‘20세기 작곡가 연구’(공저), ‘음악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번역), ‘클래식의 격렬한 이해’(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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