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호 교수와 나의 자기혐오
        2014년 10월 13일 09:48 오전

    Print Friendly

    친일파 청산이 사실 스탈린의 지령이었다는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제게 대학교 선생 뻘되시는 이인호 교수/이사장으로부터 알게 됐을 때에, 저는 한 순간에 참 여러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일단 90년대말의 모스크바가 떠올랐습니다. 이인호 교수가 주러 대사로 부임됐을 때에는 저의 스승이었던 고 미하일 박 선생님의 기분은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러시아사를 공부해온 진보적 사학자와는 일단 “말이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우리 동료 학자가 대사관의 집무실에 앉아 있으면 쏘련의 망국으로 궁핍해진 우리에게 여러 모로 도움될 것이라고, 아주 낙관적으로 내려다보셨습니다.

    미하일 박 선생님은 김대중 대통령의 많은 정책 (“국제화” 등등)에 대해 “매판적”이라고 아주 매섭게 비판하셨는데, 이인호 교수의 대사 부임에 대해서는 참 각별히 좋게 생각하셨습니다. 역시 그 기대대로 됐다고 볼 수도 있죠. 대사가 된 사학자 이인호 교수가 미하일 박 선생님의 연구실을 일주일에 한 번꼴로 방문하시고, 차 마시고, 친하게 지내고, 여러 모로 도움되고…

    남한의 “민족적 주체성”을 대단히 의심했던 미하일 박 같은 좌파적 민족주의자 분한테는 그래도 이인호 교수와 같은 남한 인사의 존재는 남한에 대한 최량의 변호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 이 생각하다가 돌연히 또 생각난 것은, 2001년 서울, 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이 된 이인호 교수와의 재회이었습니다.

    그 때 그녀는 제게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나는 열심히 아는 사람에게 소개하여 팔아주고 있다”고 덕담(?)도 해주셨습니다. 제 주장 등에 대해 호불호를 떠나 일단 “서로 주장의 차이를 넘어 소통해야 한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글쎄, 그 순간에는 저도 미하일 박 선생님처럼 김대중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부정해도 이런 “진보인사 등용책”에 마음으로 감사를 보낸 거죠…

    이제 대통령만이 바뀐 것이 아니고, 쏘련식으로 표현하면 “당 총노선”이 바뀐 셈입니다. 신자유주의 시대 초기의 “소통”과 “국민 참여” 따위의 기만책은, 사회 전체의 보수화에 따라 불필요하게 돼 폐기됐습니다. 남은 것은, 1970-80년대에 이인호 교수의 많은 학생들에 대한 고문수사를 총지휘했던 김기춘 따위 식의 “법-질서” 담론 같은 거죠.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대들면 죽는다”는 권력의 공포전략입니다. “당 총노선”이 바뀌니 수많은 “원로급” 지식인들도 서로 경쟁하다시피 우리 위대한 지도자님의 영도에 부합하는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습니다.

    이인호 교수

    이인호 교수(방송화면)

    이인호 이사장 같은 경우, 근혜 할매의 품에 안기시는 것 역시 비교적 더 쉬운 셈입니다. 양쪽에서 조상 중의 하나가 일제시대에 영달했기에, 이를 합리화할 필요성에 따라 이제 역사를 좀 세탁할 필요가 잇고 해서요.

    과거세탁, 명분론이 강한 다소 유교적 사회에서는 명분이 없는 권력층으로서는 아주 중요한 행위입니다. 이 행위에 “원로”들이 얼마나 쉽게 동원되는가를 보노라면, 한국이란 국가의 포섭력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됩니다. 이 나라에서는 돈과 “높은 자리”로 매매되어지지 않는 게 과연 뭐가 있을까요?

    이인호 이사장으로 봐서는 저는 학생 뻘 후학이자 동료에 해당될 것입니다. 저도 모자라는 대로 지성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일단 이인호 이사장의 “스탈린 지령” 발언에 느낀 것은 무한한 부끄러움이었습니다. 부끄러움 이상의 어떤 자기혐오 같은 것입니다.

    역사로 밥 먹고 사는 우리 같은 중생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식량을 축내면서 이 사회에 비집고 들어가 있어야 하나요? 한 번 생각해보시죠. 의사가 오진을 하면, 이게 심한 경우 소송감입니다. 비행기 조종사가 판단 잘못해 한 순간이라도 승객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면, 면허증 박탈까지 가능합니다. 다사고의 버스 운전기사는 아마도 결국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할 것이죠?

    일단 정상적인 직장인에게는 직장과 관계있는 일에는 의도적 왜곡이나 오판의 자유는 없습니다. 의사는 개인적으로 박정희주의자라 해도, 국군 애호 정신이 아무리 강해도, 일단 군에서 구타로 파열된 졸병의 내장을 검사할 때에 원인은 외부적 타격으로 추정된다고 그래도 쓰긴 써야 할 것입니다. 직업과 관련해서는 본인의 의도 등과 무관하게 거짓말하면 안 되거든요.

    그런데 역사학자는, 참 무한한 자유입니다. “스탈린 지령”이란 말을 하고 나서 이를 뒷받침하는 쏘련 공식 문서 (아카이브 번호까지 명기하여)를 제출, 공개하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없습니다. 계속해서 직업적 면허증이라고 할 “역사학자” 타이틀을 달고 다녀도 되죠.

    사실, 박사학위/교수직과 함께 이 타이틀을 갖게 되면 그 다음에 그 박탈의 절차라고는 없습니다. 아무리 “황군과 위안부의 동지적 관계” 등등을 신나게 거론해도, 면허증 박탈은 불가능합니다.

    의학이나 수학 같은 분야에서는 입증이 불가능한 가설을 제기한 뒤에는 사실상의 “학계로부터의 축출” 같은 것은 가능해도, 인문학은, 무한한 해석의 자유의 영역입니다. 모든 것을 다 주관화시킨 “포스트”의 범람 이후로는 더더욱 그렇게 된 셈이죠. “일제 부역자를 배제하고, 그들과의 화해를 종용하는 제3의 목소리들까지 억압했던 쏘련의 전체주의적 담론이 국내 좌파에 영향을 주었다”라는 식으로 둘러대면 그만입니다. “사실”이 없어지고 “해석”만 남은 상태에서 이것도 아마도 이제 인문학에서 “해도 되는 말”로 받아들여지겠죠?

    우습지도 않은 꼴입니다. “사실 확인”, “과도한 일반화 배척”, “개별적 현상을 넘은 총체성 모색” 같은 기본적인 과학적 절차마저도, 바우만이 이야기하는 후기자본주의의 “액체 근대성” 속에서 인문학 분야에서 무의미해졌나 봅니다. “사실 확인 의무”마저도 없어진 우리네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납세자들의 돈을 받아먹고 있는지, 참 궁금해집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