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과 찍은 사진이 없어요”
    [진짜 해피콜] 수리기사 응원 캠페인…‘물 한잔 대접하기’ 등
        2014년 10월 08일 10: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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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생겼다~ 잘생겼다~ SK텔레콤’ 광고 노랫말이 떠오르는 을지로 SKT 타워. SK브로드밴드가 선명하게 새겨진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큰 가방을 메고 모여듭니다. 빽빽하게 앉았지만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최첨단 정보통신 건물이 회색과 주황색으로 예쁘게 물들었습니다.

    SK브로드밴드 행복센터에서 일하는 1천명의 설치, 수리기사들이 10월 6일 일손을 멈추고 ‘진짜 사장’이 있는 건물을 찾았습니다. SK브로드밴드의 옷을 입고, SK브로드밴드의 지시에 따라 텔레비전과 인터넷, 전화를 설치하고 수리하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표정을 짓고, 이 집 저 집 뛰어다니며, 주말도 휴일도 없이 일해도 한 달에 200만원을 벌 수 없는 하청기사들입니다. 지난 3월 30일 노동조합을 만들고 하청회사에 교섭을 요청했지만, 아무 권한이 없는 ‘바지사장’들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들이 난생 처음 파업을 하고 집과 행복센터를 떠나 서울까지 ‘진짜 사장’을 찾아 나선 이유입니다.

    주황색으로 물든 SKT 타워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나름 공부도 잘하고, 피아노도 조금 칩니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많은 사회에서 7~8년 있으면 사회로 나올 제 아들놈 생각하니까 잠이 안 오더라구요. 제 아들을 위해 누구보다 절실하게 싸울 겁니다.”

    용산중구 홈고객센터에서 일하는 김재완 씨의 아들 얘기에 1천명의 눈빛이 빛납니다. 전봇대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는데 하청업체 사장이 하는 말은 “그러니까 조심하라고”입니다. 예전에 정규직으로 있던 회사에서 산업재해 처리했던 게 생각나서 산재를 얘기했더니 쌍욕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13년, 초등학생 아들이 대학교 2학년입니다. 제가 아이들과 찍은 사진이 거의 없더라고요. 밤에도 휴일에도 일만 하며 살았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살았을까요? 여러분들은 그렇게 사시면 안 된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인천에서 온 이해조 씨의 호소에 환호성이 터집니다. “저녁에 가족과 밥 먹을 시간, 휴일에 여행갈 시간을 꼭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느 센터장이 자기네는 남는 게 없어서 우리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에 온 것 아닙니까?”

    SK브로드밴드

    SK 본사 앞의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사진=노동과세계 변백선)

    아이들과 찍은 사진이 거의 없는 기사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했던 이해조 씨(46)는 2002년 하나로통신의 개통 기사로 일하기 시작해 지금 SK브로드밴드 기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가 일하는 인천서구 홈고객센터에는 58명의 설치, 수리기사가 있고, 이 중 25명이 노조원입니다. SK브로드밴드 인천지사는 정규직이지만, 고객센터는 모두 하청기사입니다. 그나마 그는 4대 보험이라도 받지만, 행복센터와 소사장으로 계약을 맺은 기사들은 하청의 재하청으로, 행복센터와 1:1로 계약한 기사들은 하청의 일용직으로 일합니다.

    그와 동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전봇대에 오릅니다. 발을 디딜 족장이 없는 전봇대는 정말 오르기 힘듭니다. 비오는 날은 특히 위험합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도 작업이 끝날 때까지 비를 다 맞으며 전신주에 매달려있어야 합니다.

    그는 전선을 감아놓은 테이프가 벗겨져 380V 가로등 전기에 감전된 적이 있었습니다. 마치 각목으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만약 정신을 잃고 손을 놓쳤다면 그대로 떨어졌을 겁니다.

    지난 8월 19일 전북 장수에서 티브로드 설치 기사가 비오는 날 전봇대에 올랐다가 떨어져 숨졌습니다. 그는 티브로드 영업·설치 특판점 소속으로 건당 수수료를 받는 하청의 일용직 노동자였고, 안전모, 안전화 등 안전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작업을 하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이해조 씨는 인터넷만 설치하던 시절에는 일이 쉬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이 점점 진화해 스마트TV가 되고, 전화와 인터넷과 TV가 결합되면서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에게 스마트TV 사용법을 천천히 설명해야 합니다.

    장비 불량으로 수리를 하러 가는 일도 많지만 리모컨 건전지가 없는데 TV 고장으로 신고가 들어와 달려가는 일도 허다합니다. 많은 고객들이 친절하게 대해주지만 진상 고객들을 만나면 인격마저 짓밟히는 설움을 겪기도 합니다.

    비오는 날 전봇대에 올라 380V에 감전

    우리 주변에 많은 기사님들이 있습니다. 전화하면 금세 우리 집으로 달려와 텔레비전과 전화, 인터넷을 설치해주고, 고장난 전자제품을 고쳐줍니다. 서비스센터로 찾아가면 망가진 제품을 바로 수리해줍니다. 손재주가 뛰어난 기술자들입니다.

    하루 종일 이 집, 저 집 뛰어다니고, 대기표를 받고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해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이 손을 움직입니다. 깨끗하게 차려입고, 항상 웃는 얼굴로 맞이합니다. 못된 소비자를 만나도 친절하게 대합니다.

    삼성과 LG의 전자제품을 고치고, SK, 티브로드, 씨앤앰 인터넷과 TV를 설치하는 기사들입니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이 기사들이 대기업의 정규직이 아니라 하청노동자라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이들이 건당 수수료로 돈을 받고, 한 달 월급이 최저임금 수준이라는 사실도 모릅니다. 이들이 건물 난간과 전봇대에 매달려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못 받거나 깎아준 수리비를 기사들이 물어낸다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지난해 삼성전자서비스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두 명의 노동자가 ‘배고파서 못살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죽고, 파업을 하고 나서야 설치, 수리 기사들의 처지를 알게 됐습니다. 삼성전자 184개 서비스센터 중에서 직영센터는 7개뿐입니다. 전국 177개 센터에서 일하는 6천여명의 기사들이 모두 비정규직 하청기사입니다.

    SK브로드밴드 91개 행복센터 4500명, LG유플러스 70개 고객센터 3000여명의 노동자도 모두 하청노동자입니다. 티브로드, 씨앤앰도 마찬가지입니다. KT는 직영으로 운영해왔던 올래 설치-수리기사들을 하청으로 전환하기 위해 1만 명의 희망퇴직을 받았습니다.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설치-수리기사들이 직영이 아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했습니다.

    기술 하나만 가지면 먹고 살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한국 사람들은 손기술이 좋다고 했습니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전자제품 설치, 수리 기사들은 기술자로 대접받았고, 먹고 살만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설치-수리기사들은 전파사 주인보다 훨씬 열악한 대우를 받으며 신종 노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설치-수리 기사, 기술자에서 신종 노예로

    우리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와 인터넷과 TV, 전자제품을 설치하고 고쳐주는 기사들을 응원하는 캠페인 ‘진짜 해피콜’이 시작됐습니다. 시원한 물 한 잔을 건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쉽게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통해 이들의 노동권을 지켜주고 연대하는 사회적 운동입니다.

    ‘진짜 해피콜’ 5가지 약속은 ①방문 기사님에게 물 한 잔 대접하기 ②일요일과 명절에 부르지 않기 ③기사님이 시간에 쫓기지 않도록 방문시간 여유있게 정하기 ④평가설문에 “좋은 서비스하는 기사님 원청회사가 직접 고용해 주세요”라고 답하기 ⑤설치-수리기사들의 노동권을 응원하고 알리기입니다.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선생님께서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연구소를 찾아간 기사들에게 ‘아, 가노을빛’이라고 쓰신 붓글씨 한 점을 내주셨습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생계비를 모아 200만원을 기금으로 내어주셨습니다.

    지난 9월 30일 삼성전자서비스,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티브로드, 씨앤앰 설치 수리기사들이 충북 제천에 있는 판화가 이철수 선생님의 집을 찾았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위영일 지회장은 “지금은 아저씨 막 부르는데 예전에는 ‘기사님 식사라도 하시고 가시죠’ 하면서 밥도 차려주고, 맘에 드는 기사분들은 자기 딸을 소개해주기도 하고, 그런 분위기들이 있었다”며 “그런데 요즘에는 내가 돈을 주고 샀기 때문에 서비스를 당연히 잘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사람이 아니라 상품으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철수 선생님은 “마음에서 우러나오게 해야 하는데 서비스를 쥐어짜고 서비스를 강요하는 건데, 모든 것을 돈으로 생각하는 사회가 되어서 그렇다”며 “응원하는 사람들이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다는 것을 알고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철수 선생님은 집집마다 대문에 붙일 수 있는 ‘진짜 해피콜’ 스티커 작품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재능기부 이어달리기’로 백기완 선생님은 명진 스님을, 이철수 선생님은 연극배우 유순웅 씨를 소개해주셨습니다.

    아이쿱 생협에서 전국 150개 매장에서 ‘진짜 해피콜’ 스티커를 비치하고 조합원들에게 전달하기로 했고, 전국의 많은 카페, 문화공간에서도 동참 의사를 밝혀오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에서도 조합원 가정과 사업장에 스티커를 배포합니다.

    이제 여러분 차례입니다. 설치 수리기사를 응원하는 따뜻한 마음을 함께 모아주실 거죠?

    필자소개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전 금속노조 비정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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