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 출신 탈북자 신동혁,
그리고 시장성에 대한 생각
    2014년 10월 06일 01: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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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몇 년 전에 탈북자 신동혁의 공개 강연에 간 적은 있었습니다. 잘 알려진 바대로, 신동혁의 공식적인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그는 북조선에서 “최악”으로 알려진 개천관리소에서, 중노동을 해서 “표창결혼” 허가를 받은 부모에게 태어나, 오로지 그 수용소에서만 지내 거기에서 이념교육을 포함한 그 어떤 교육도 받지 못해 거의 “짐승과 같은 삶”을 살다가 한 번 그의 우연한 밀고로 어머니와 형이 공개처형돼 충격을 받은 바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는 “기적적으로” 수용소를 탈출하고, 조-중 국경선 넘어 탈북하고, 예외적인 배려를 받아 재중국 한국 대사관 직원의 도움으로 남한행을 합니다.

그리고 그 뒤의 활동을, 남한보다 주로 구미권에서 많이 하죠. 그의 구술을 바탕으로 한 바든 블레인 기자의 《Escape from Camp 14: One Man’s Remarkable Odyssey from North Korea to Freedom in the West》 (2012)가 서구에서 베스트셀러가 돼 북조선에 대한 “공포 왕국” 이미지 조성의 하나의 주된 근거로 작동된 것입니다.

그가 이야기한 개천관리소의 현실은 흔히 파쇼 독일과 비교돼 북조선 정권을 “파시즘과 같은 절대악”이라고 묘사하는 데에 거의 결정적 근거의 역할을 한 셈이죠.

제가 신동혁의 강연에 가서 느낀 점은? 개천관리소에 그가 정말 있었는가까진 몰라도, 엄청난 트라우마를 받은 사람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심적 외상증후군은 두드러지게 보였죠. 개천관리소인지 아닌지, 정말 인간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운 어떤 고초를 겪은 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교육도 못 받았다”고 하지만, 그의 한국어는 그렇게 말하기에는 너무나 잘 다듬어져 있었습니다. 아주 논리정연하게 강의했으며 파쇼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언급한 걸로 봐서는 세계사 상식 정도는 다 잘 돼 있었죠. 물론 탈북 이후 배운 게 많았겠지만, 아무 교육도 못받았단 사람은 이렇게도 성공적으로 공부할 수 있나, 싶었습니다…좌우간 저로선 이게 다 미스테리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북조선이 신동혁 관련으로 그쪽 입장을 밝혀 좀 주목됩니다.((http://www.kancc.org/bbs/board.php?bo_table=news&wr_id=6131 링크는 한국 정부에 의해 차단된 상태 ).

북조선의 주장에 따르면, 신동혁(본명 신인근)은 평북 북창군 신석리 출신의 광산 노동자이었습니다. 아버지 신경섭은 경제 범죄로 70년대에 처벌 받은 바 있어 “전과자” 가족에서 태어난 셈인데, 거기에다가 어머니가 “고의적 중살인”을 저질러 사형된 바 있었다는 거죠.

“이중 전과자” 가정에서 태어나고 고등중학교(고교)밖에 안 나온 고졸 신동혁은 탄광 노동자로 일하다가 북조선에서 자신에게 미래가 없다는 걸 깨닫자 2002년에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거기에서 붙잡혀 다시 본국 송환돼 잠깐 교화소에 다녀간 적은 있었답니다.

그러나 비법월경(한국식으로 하면 불법 출국/밀항)에 대한 처벌이 완료되자 다시 중국에 건나가서 거기에서 “개천관리소 출신”이라고 해서 남한 외교관들의 관심을 받아 남한으로 직행한 것입니다. 그런 특별 관심을 받지 않는다면, 잘 아시겠지만 중국이 아닌 제3국에 가서야 남한행이 가능해집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신동혁을 둘러싼 논쟁은 쉽게 정리되기 어려울 듯합니다. 저는 일단 지금으로서는 객관적 증거의 불충분으로 그 어떤 최종적 판단을 좀 유보해야 한다고 봅니다. 일단 신동혁/블레인의 스토리는, 여러 모로 취신하기 어려운 부분들은 꽤나 됩니다.

신동혁

신동혁씨(방송화면 캡처)

개천관리소는 평남에 소재하고 있는데, 여행증이 없는 사람이 평남의 오지에서 중국과의 국경까지 도주하는 것은 과연 “기적” 아니고서 가능할까요? 신동혁/블레인에 의하면 신동혁이 빈 집에서 하얀 쌀 가마를 훔쳤다든데, 글쎄, 북조선 지방민들에게 “하얀 쌀 가마”가 쉽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게 누군가의 집에 있다 해도, 이 정도 귀한 물건을 쉽게 훔치기도 힘들 터이고요…

그러나 물론 또 일면으로는, 새로운 증거들이 나오기 전에 북조선의 공식 입장도 완전하게 신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컨대 북에서 주장한 대로 신동혁이 “비법월경”(불법 출국)에 대한 교화소 처벌 정도로만 받았다고 해도, 일반 교화소에서도 얼마든지 – 적어도 서방인들 보기에는 경악스러운 – 인권 침해를 당하거나 목격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도가니>를 본 사람이면 다 알겠지만 각종 감시/처벌/훈육 기관의 실태는 남한만 해도 정말 천인공노할 수준입니다. 남과 북은 극도로 군사화된 개발주의 사회라는 정체성을 거의 똑같이 공유하는데, 북에서도 남한처럼 인권 사각지대들이 꽤나 있겠죠? 왜 없겟습니까?

그러니까 일단 그 어떤 입장도 취하기 전에, 한 번 북조선의 스토리가 근본적으로 사실에 가깝다고 가정해봅시다. 만약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그림이 그려집니다.

북조선의 오지에서 전과자라는 이름의 “3등 인민” 가정에서 한 청년이 자랐습니다. 북조선 공식 문서에서 그가 중국에 넘어가기도 전에 다른 아이를 성추행했다고 하는데,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좌우간 매우 불우한 환경에서 아주아주 큰 역경을 헤치면서 컸습니다.

성장과정에서 그의 어머니가 사형을 받는 것을 알게 돼 또 엄청난 충격에 휩쌓여 그에게 그의 조국 북조선이 극도로 싫어졌습니다. 어차피 지방 탄광노동자로 그는 거기에서 미래라고 없었습니다.

그는 한 번 보다 나은 미래를 모색하보려고 중국에 넘어가 봤는데, 운 나쁘게 공안들에게 붙잡혔습니다. 다시 한 번 나갈 때에 더이상 붙잡힐 일 없이 바로바로 남한인과의 만남을 모색해 개천관리소에서 도망왔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운좋게 남한에 가고, 그다음에는 그로서는 천국이나 다를게 없는 서방세계까지 구경하게 됐습니다.

서방세계에서 개천관리소 이야기의 가치가 얼마나 높은 지를 알게 된 그는, 그 뒤로는 그 이야기를 구체화시켜 “북조선 정권의 파쇼성”의 증인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굳혔습니다. 그로서는 그렇게 하면서도 아쉬울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의 가정을 “3등 인민”으로 만들고 어머니를 사형시킨 나라는 밉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글쎄, 이런 가설이 진실이라 해도, 저는 신동혁을 “인간쓰레기”라고 부르는 북조선의 입장을 지지할 수 없습니다. 왜 “쓰레기”에요? 한 번 역지사지해서 상상해보시죠.

만약 나 같은 사람은 사북광산지대에서 전과자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잡혀가 종신형 사는 꼴 보고, 고졸로서 탄광노동하다가 이 미친 대한민국에서 나에게 미래 없다고 판단하고 일본 밀항을 해보고, 일본에서 붙잡혀 다시 한국으로 강제송환 당해 이 미친 놈들의 감옥에서 간수들의 온갖 가혹행위를 다 참고 1-2년 지내다가 다시 한번 일본이나 미국행에 성공한다면…

아아, 나만 해도 이 XXX놈들의 남한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여 아주아주 고발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인지상정은 아닐까요? 신동혁이 “쓰레기”라면, 저는 차라리 이 세상의 모든 “쓰레기”, 그러니까 모든 고졸 탄광노동자, 모든 “3등 인민/국민” 출신, 모든 고생하는 민초들이 다 단결하기를 부르짖고 싶습니다!

단, 문제는 하나입니다. 남한에서 말 못할 군대 등에서의 인권 침해를 당한 사람은 가서 그의 상처를 (다소 과장하더라도) 높이 외쳐댈 타국이 없다는 점이죠. 아마도 북조선 이외에 말입니다.

일본이나 미국 가서 남한 군대에서의 폭언, 폭행, 사조직화된 부대들의 작은 왕들에 대한 수기를 쓰면 과연 팔릴까요? 팔리기는커녕 상업성 없는 걸로 판단돼 출판 자체도 힘들 것입니다. 남한은 1등 선진국이고 구미권의 선진시민들이 쓰는 휴대폰이나 차를 만들어주는 좋은 나라잖아요? 반대로 북조선은 적국이고 이미 “지옥”으로 구미권 시민들의 머리에 찍혀 있습니다. 북조선에 대한 고발의 시장성은…어머어마합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급이 바로바로 됩니다.

바로 이와 같은 시장성의 논리가 결국 탈북자 분들의 입을 좌우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 각자가 다 자기를 상품화시켜 팔아야 하는 자본주의 세계로 맨 몸으로 나오신 걸 생각하면…역시 인지상정으로 이해하죠. 자기를 부단히 팔지 않으면 안될 세상에서 나의 과거를 다소 과장시켜 팔아야 한다면…인간이 입에 풀질하기 위해 그렇게라도 할 수도 있겠죠. 이게 탈북자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들에게 자기 상품화를 요구하는 우리 미친 사회의 문제가 아닐까요?

저는 탈북자 분들과 달리 쏘련에서 획득된 학력자본 (학위)이 있어 그나마 그걸 팔아 서방세계에서 입에 풀질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게 전문지식을 제대로 습득시킨 쏘련의 교육체제에 저는 천배만배 감사할 뿐입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저도 끔찍한 지옥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 러시아에 대한 수기 같은 걸 팔고, 러시아의 암흑에 대한 강연질로 자기를 팔면서 노르웨이에서 연명해야 했었을까요? 아아,

그런데 저로서는 이 슬픈 스토리에서 반성해야 할 포인트는 있습니다. 저도 과연 저술활동할 때에 예컨대 남한 사회의 “시장”을 인식하고 있지 않나요? 예컨대 “복지국가”에 대한 환상들이 남한 사회에 많은 것을 의식, 무의식적으로 포착하여 노르웨이 사회의 복지주의적 부분을 크게 강조한 게 아닌가요? 제가 예컨대 요즘 러시아어보다 영어 저술을 더 많이 하는 것도, 그만큼 영어 저술의 시장성을 인식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이 지옥에서는 우리 모두가 다 걸어다니는 상품들입니다. 이 사실부터 직시해야 세계가 결국 바로 보이지 않을까요?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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