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과의 치명적 사랑?
이제는 결별을 고할 때!
[에정칼럼] 영화 <그랜드 센트럴> 감상기
    2014년 10월 02일 09: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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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개최된 서울환경영화제의 유일한 19금 영화로 기억되고 있는 한 편의 영화가 최근 국내에서 다시 개봉되었다. 엉뚱하게 기억되고 있는 그 영화는 바로 <그랜드 센트럴>이다. 프랑스 원자력 발전소를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로 원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방사능 노출에 대한 두려움과 사랑의 치명적인 위험을 교차시켜 보여준다.

그랜드 센트럴

영화 <그랜드 센트럴> 홍보 자료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준비가 된 가난한 청년 갸리는 피폭 위험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한 원전에 계약직 노동자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선배이자 동료인 토니의 약혼자 카롤을 만나 치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갸리의 피폭수치는 증가하게 되고, 갸리와 카롤의 위험한 사랑도 걷잡을 수 없어진다.

이 영화가 독특한 점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완공되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한 번도 가동되지 않았던 실제 원전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에 공개되지 않는 원전의 내부도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그랜드 센트럴>은 원전 노동자인 주인공들이 영화 속에서 일상적으로 느끼는 피폭에 대한 공포, 두려움, 고통 등의 감정들까지 쉽게 공유할 수 있게 한다.

원전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갸리에게 선배들은 원전을 ‘무색, 무취의 물질이 둘러싸인 곳’이라 일컬으며 ‘방호복을 입으면 숨이 막히고 앞이 안 보인다’는 얘기를 해준다. 다른 한 선배는 ‘불빛을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라며 자신들이 하는 일에 정당성을 부여해보지만 결국 원전은 ‘승자 없는 영원한 전쟁’이며 ‘우리가 싸워줘도 고마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자조한다.

“방사능은 우리 눈에 전혀 보이지 않잖아요. 냄새가 나는 것도, 그렇다고 형태나 색깔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에 노출되어 버리죠. 반면 한 번 방사능에 노출된 후에는 내 몸 밖으로 내보내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고통이 따릅니다. 방사능의 이런 점이 바로 사랑에 빠졌을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랜드 센트럴> 감독 레베카 즐로토브스키

방사능은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물질이다. 무색무취의 방사능처럼 원전 노동자도 그동안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존재였다.

원자력 발전하면, 일반적으로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복잡한 기계가 있는 중앙제어실, 그리고 동그란 돔이나 매끄러운 곡선으로 이뤄진 원전의 겉모습이다. 그 안에서 숨이 콱 막히는 방호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위험한 노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 안의 ‘일상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의 삶은 원전의 만들어진 이미지 안에 철저히 은폐되어 있기 때문이다.

“매순간 노동자들의 삶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순간들과 마주하게 된다.” – 영화 <그랜드 센트럴> 대사 中

원전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투입되고, 피폭 허용 최대치가 넘어선 노동자들은 퇴출되고, 또 다른 노동자들로 그 자리가 메워진다. 동료를 돕다 피폭을 당한 주인공 갸리는 원전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방사선량계를 숨겨 들키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으려 하는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마치 우리사회가 원전이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그 위험을 숨겨가면서까지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핵발전 노동자의 삶_포스터

<한-일 핵발전 노동 워크샵> 포스터

영화 <그랜드 센트럴>은 위험하고 위태로운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삶을 직접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전에 대한 피상적인 이미지를 깨주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얼마 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등이 공동주최한 한-일 핵발전 노동워크샵에서 들을 수 있었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근무했던 니이쯔마 히데아키씨의 생생한 이야기, 그리고 오랫동안 피폭노동문제를 취재해오며 원전 노동자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해왔던 저널리스트 히구치 켄지씨의 사진들 역시 원전의 문제를 고차원적인 분석으로부터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수준에서 문제를 지적하는 것으로 탈핵운동의 저변을 확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원전이 있는 고리, 월성, 울진, 영광의 주변 지역, 그리고 송전탑을 둘러싼 치열한 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밀양의 지역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기록한 『위험한 동거: 강요된 핵발전과 위험경관의 탄생』(이상헌·이보아·이정필·박배균 공저, 2014)도 탈핵을 가슴으로 공감할 수 있게 하는 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전은 불안하고 위험한 노동을 하고 있는 원전 노동자들의 고통만이 아니라 그리고 원전 주변에 사는 지역주민들, 그리고 원전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필요한 송전탑 주변의 주민들, 그리고 계속해서 쌓이고 있는 핵폐기물을 처리해야 하는 다음 세대의 고통과 위험으로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다.

원전에 의존하는 에너지 시스템은 비인간적인 상황을 지속해야만 유지될 수 있는데, 이렇게나 많은 희생이 따르고 있는 원전과 우리는 왜 결별하지 못하는 것일까? 체르노빌, 후쿠시마의 참사 이후에도 원전을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다는 허황된 믿음으로, 우리에게는 저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문을 걸고 있는 건 아닐까?

영화 속에서 남들의 시선을 피해 밀회를 즐기고 있던 갸리와 카롤은 원전에서 나오는 사이렌 소리를 듣게 된다. 카롤은 갸리에게 사이렌 소리가 네 번 울리면 테스트, 다섯 번 울리면 주의보, 여섯 번 울리면 경보, 일곱 번이 울리면 중대 경보라 일러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울리는 일곱 번의 사이렌 소리. 그 사이렌 소리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 우리사회를 향한 경고이다. 참사 수준의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고통으로 전기가 생산되고 있는 한, 원전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제는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원전과 이별을 고해야한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비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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