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의 대화, 목수정 인터뷰②
    "누구를 위한 사유화인지 고민해야"
        2012년 07월 05일 09:40 오전

    Print Friendly

    인터뷰 1부를 보시려면

    목 : 교육만으로 보면 한국은 공포가 지배하는 감옥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박 : 맞습니다. 요즘도 대한민국 전국의 아파트에서는 소위 우등생과 열등생을 가리지 않고 자살하는 아이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초중고 아니 유치원부터 벌어지는 무한경쟁의 소용돌이가 아이들을 모두 미치게 만들고 있어요. 저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 몇 년 전 삼성 유조선이 태안 앞바다에 기름을 유출했었는데 그 기름덩어리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숨을 헐떡이고 있는 바다새나 물고기들 같아요.

    목 : 어느 의사가 말했는데 자살하는 사람 상당수의 심정은 복수랍니다. 지금 학생들은 자살로 그것도 연쇄자살로 이 사회에 복수하고 있는 거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복수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것이 얼마나 절실하고 한이 맺힌 죽음들이겠어요.

     박 : 정말 듣고 보니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이군요. 복수라… 그럼에도 이 사회는 반성이나 대안 마련은 커녕 더 아이들을 닦달하고 있어요. 이 시스템을 깨지지 않고 사람이 존중받는 한국의 미래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는 더 가속화됐죠. 일제고사란 명목으로 전국의 아이들을 한날 한시에 시험보게 하여 성적순으로 일렬로 세우는 일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편법과 부정이 횡행했고요. 일부 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과 담당 선생님이 앞장서서 성적을 높이려고 부정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목적을 위해 어떤 수단을 써도 된다는 인식을 아주 어린 학생들부터 뼛속깊이 인식시키고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 성적으로 성과를 측정하고 돈으로 보상하는 끔찍한 제도가 교육현장에서 벌어져도 누구하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지요. 한국사회는 웬만한 사건이 아니면 자극도 못 받는 무감각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목 : 얼마 전에 교육운동을 하는 분들이 발간하는 우리교육이란 잡지의 요청으로 프랑스의 일제고사 관련 자료들을 보내드린 적이 있어요. 프랑스에서는 우파정권의 일제고사에 반대해 많은 선생님들이 거리에서 학교에서 시위를 벌이고 문제를 제기했죠. 결국 이제 폐지하기로 합의를 봤고요.

    박 : 한국에서는 일제고사를 거부한 게 아니라 학생들에게 선택권만 줬다는 이유로 2008년 7명의 선생님이 해직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로 선생님들을 해직시키는 정권과 교육부의 폭력성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더 큰 실망은 이곳 프랑스에서와 달리 소수의 선생님들만 무한경쟁 일제고사 반대에 나섰고 결국은 그 중 7분이 해직의 고통을 당하셨죠. 물론 지금은 복직이 되었지만 수년간에 걸친 험난한 법정투쟁의 결과였습니다. 우리 사회가 공공성이나 사회적 연대가 필요한 일에 적극적이면서도 광범위한 연대를 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한국의 교육현실에서 볼 때 가장 인상적인 면은 어떤 것이 있나요?

    목 : 하나 분명히 떠오르는게 있어요. 김예슬이에요. 어쩌면 한국과 같은 교육 환경속에서 그렇게 멋진 친구가 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멋져요, 정말. 당당히 대학을 거부하고 자신이 주인임을 선포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어요. 수많은 선생님들과 자본과 사회가 부추켰던 성공이라는 허위의 길을 당당히 거부하는 당찬 모습은 멋지지 않아요?

    박 : 김예슬씨와 같은 경우는 산업화된 한국 교육의 제조 및 유통과정에서 변질된 불량품이죠(웃음). 자본이 교육이라는 틀을 쓰고 공동체 구성원의 피를 빨아먹는 구조가 어느 새 한국의 대학에도 정착되었습니다.

    살인적인 등록금이 아니라 살인 등록금이 되었구요, 학문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수진의 상당수는 비정규직 시간강사가 채우고요.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은 모두 소유주인 재벌이나 재단으로 들어가고요. 이런 상황에서도 김예슬씨 같은 불량학생이 나오는데 희망을 갖고 싶습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프랑스와 철도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죠.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목 : 프랑스 철도공사인 SNCF가 운영하는 파리광역망 A, B선은 악명이 높아요. 파리시 자체의 공공교통서비스는 정말 만족스러운데 이게 딱 파리까지만이지요 . IN파리의 경계가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입니다. 이런 장벽을 깨는 게 1-5존의 요금 통합제 같은 것이 될 수 있고요. 파리에서 브르고뉴라고 30분 거리에 있는 역이 이용이 안되고 있어요. 역이 죽으니까 지역도 생기를 잃었죠. 2시간 정도 걸리는 지역 간 열차를 이용하려면 자리가 없어요. 완전 콩나물 시루인데 뾰족한 대안도 안보이고요. 이런 모든 게 고속열차인 TGV가 들어서면서 전면화 되었죠.

    파리 RER(수도권 광역철도) 2층 열차

    박 : 그런 부분은 한국과 비슷하군요. 한국도 고속열차 위주의 운행을 하다 보니 일반 열차인 무궁화, 새마을호는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발 디딜틈이 없고요 객차가 아닌 음식을 판매하는 카페칸에 까지 입석 승객으로 가득 차 운행됩니다. 이미 더 이상 열차를 투입할 수 없을 정도로 선로 용량이 꽉 차있어서 당장 해결책도 안 보이는데 수서에서 출발하는 고속열차노선이 생기면 그나마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것도 이명박 정부 방침대로 수서발 KTX가 민영화가 된다면 영영 해결할 길이 없을 거구요. 민영화, 더 정확한 의미로 말하자면 사유화인데요 이 사유화에 대한 목선생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목 : 결국 ‘사유화란 것은 누굴 위한 것인가?’라는 점이 우리가 가치 판단을 내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인것 같아요. 특히 사유화란 것은 기존에 공공적 영역에 있던 것을 변화시킨다는 것이잖아요? 공공적 영역이란 것은 사회적 영역이고 사유화란 소수의 개인을 위한 것이죠. 다수를 배제시키는 것은 결국 사회를 공포가 지배하는 것으로 만들어버리죠. 우리 교육현실처럼 1등만이 최고의 가치를 부여 받는 현실이 다수를 패배자로 만들고 결국 죽음의 길로까지 인도하잖아요.

    프랑스 텔레콤이라고 과거 국영기업이었던 회사가 사유화 되었죠. 그 결과 삶의 패턴을 자살로 만들었어요. 민영화 이후 프랑스 텔레콤 회사 직원들의 잇따른 자살사태는 경제정책이 인간을 살리는 정책이냐 죽이는 정책이냐 되돌아보게 만들었죠. 이곳 사람들이 사유화된 프랑스 텔레콤에 대해 가지는 불만은 보통이 아니에요. 고장 신고를 해도 수리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설치요청을 해도 언제 가능할지 모르죠. 고객상담실 같은 곳에 전화를 해도 소용이 없어요.

    상담 전화를 받는 곳이 모로코에 있죠. 모두 비용 절감을 위해 외주화를 하다보니 프랑스 현지보다 훨씬 인건비가 절약되는 모로코에 상담실을 설치한 겁니다. 상담을 받는 사람들도 책임감이 없고요 현실적인 도움도 못돼요. 모두가 불만이지만 주주들은 비용절감분 만큼 수익을 챙겨가겠지요. 박선생님, 열심히 싸우셔서 우리 철도를 지켜주세요. 우리 철도가 프랑스 텔레콤 꼴이 않나게요.

    (목수정님은 KTX 민영화가 가져올 디스토피아를 본 것처럼 KTX 민영화를 막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제 대화의 마지막 정거장을 향해 달려갈 시점이 되었다.)

    박 : 요즘 한창 이슈가 된 통합진보당 사태는 어떻게 보시나요?

    목 : 종교 같아요. 상징물로 대상화해서 껍데기를 숭배하는. 이미 애초의 순결한 마음은 다 사라졌지요. 장사를 하고 있어요. 저는 옛날 민주노동당의 문화정책 연구원 시절을 겪기도 해서 운동권이라고 불리우는 일부 사람들의 권위적인 행태들에 대해서 좀 알고 있지요.

    어떤 절대적 가치를 두고 그것에 대한 도전을 불경시하는 사람들을 과연 진보적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인간이 호흡하는 세상에 신성불가침이라는 영역이 존재할까요? 자신들이 행하는 행위들이 얼마나 커다란 폭력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측은해요.

    박 : 저는 차라리 이번 사태가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를 부탁했던 사람들에게는 많은 욕을 먹긴 했지만 지금 이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이 집권한 미래를 생각해보면 끔찍하지 않을 수 없어요. 몇몇 스타정치인들의 가면이 벗겨진 것도 불행 중 다행이고요. 진보정당도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서 보다 진정성있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도록 노력하는게 낫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국사회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는데 아주 쓴 약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프랑스는 오랜 우파정권을 종식시키고 좌파정권이 탄생했습니다. 시민사회가 갖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 알고 싶습니다.

    목: 새 정권에 대한 기대는 정말 큽니다. 지금까지 지속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프랑스 시민사회의 피로도는 한계점을 넘었고 지난 선거에서 결국 정권을 바꾸는 힘이 되었어요. 사회 곳곳 많은 분야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넘쳐나는 게 보여요.

    그런데 분명한 점 한 가지는 새 대통령 올랑드에 대한 기대는 아니란 겁니다. 올랑드는 사회당 출신이지만 엘리트 정치인이고 이미 미테랑 시절 좌파정당의 배신을 경험한 프랑스 사람들은 올랑드가 집권하더라도 당장 크게 변할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고 있죠. 하지만 사르코지가 훼손한 프랑스의 여러 가지들을 새 정부와 시민사회가 조금씩 되돌려 놓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 이 기대감으로 새로운 에너지가 생성되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와인을 한 잔씩 마시고 커피를 추가로 시켜 마시면서 계속된 인터뷰는 세 시간을 넘어 달려가고 있었다. 목수정님의 전화벨이 울리고 귀여운 칼리의 목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목수정님은 금새 목소리 톤을 애교 모드로 바꾸어 “응, 엄마 이제 막 끝나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게”라고 다정하게 통화를 했다. 칼리는 정확히 인터뷰가 끝난 시간을 안 것처럼 엄마를 호출하는 전화를 했다. 서울에서 가져온 목수정님의 책에 싸인을 받고 기념사진 촬영을 마치고 식당 문을 나섰다. 거리의 공기가 제법 쌀쌀해졌고 사람의 발길도 많이 줄어들어있었다. 목수정님의 제안으로 혁명광장인 바스티유역까지 지하철 한 정거장을 걸어가기로 했다. 바스티유 광장이 가까워 오고 혁명 기념탑인 7월의 탑이 보이자 1789년 7월 14일 앙시앙레짐(구체제)을 혁파하고 자유와 평등과 연대의 기치로 광장과 거리를 가득 메웠던 파리 시민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 했다. 목수정님은 광장의 혁명기념탑을 보더니 웃으며 말을 했다.)

    “저 혁명 기념탑위의 동상이 뭔지 아세요?”

    “아뇨.”

    “엔젤, 천사에요. 혁명을 수호하는”

    “아 그렇군요”

    “근데 우리 딸 꼬맹이 칼리가 뭐라는 줄 아세요? 옛날에 서울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파리에 왔을 때 저 동상위의 천사를 보더니 촛불소녀라는 거예요. 그래서 웃으면서 말해줬죠. 그래 네 말 들으니 정말 촛불소녀 같다. 하하하”

    “그러고 보니 정말 촛불소녀 같기도 하네요. 하하하.”

    프랑스 혁명과 한국의 촛불. 시민들이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공통된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을 바스티유 광장 기념탑의 천사소녀가 연결시켜주는 듯 한 생각이 들었다.

    목수정님은 바스티유 광장에 도착해서 철학자들의 카페를 소개시켜 주고 아직도 광장 바닥에 남아있는 바스티유 성의 담벼락 흔적들을 보여주었다. 오랜 시간 동안 열변을 토하고도 목수정님의 에너지는 넘쳐나고 있었다. 광장 기념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진 뒤에도 목수정님의 목소리가 귀에 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스티유광장 혁명기념탑인 7월의 탑 배경으로 박흥수 목수정

    파리, 프랑스는 자유의 공기가 넘실대는 공간이었다.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할 많은 것들을 품고 있는 도시이며 나라이다. 그러나 프랑스 사회가 이상향은 아니며 아직도 극복해야할 과제들이 산적해있는 사회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사회를 유지시키는 근본적인 정신은 한국 사회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공화국 정신이며 그 근간인 공공성이다.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모든 성원들은 바로 그 사회가 기본적인 생존과 생활의 기초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껏 개인의 책임으로 돌렸던 많은 것들이 실상은 사회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었으며 그 간극만큼 소수는 배를 불리고 다수는 고통을 감수해야했다. 더 끔찍한 현실은 그나마 유지되던 공공성도 자본의 이익을 위해 심각하게 훼손되는 일이 지속적으로 시도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서발 KTX를 민영화하거나 인천공항을 매각하는 일을 꼭 추진해야할 핵심과제로 놓는 권력과 관료시스템은 우리 사회의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전진을 생각할 때 얼마나 절망적인가?

    프랑스의 공공교통시스템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사회가 소수를 위해 봉사하느냐, 다수를 위해 봉사하느냐의 문제이다.

    바스티유 광장 근처의 구멍가게에서 3유로를 주고 포도주 한 병을 사서 광장 구석 쪽의 벤치에 앉아 목을 축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큰길을 덮었다. 인라이너들이었다. 고등학생에서 대학초년생 뻘로 보이는 남녀의 무리들이 자정이 가까워오는 한 밤중에 자유자재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달렸다. 무리들은 순식간에 바스티유 광장을 가로질러 어둠이 깔린 대로 속으로 사라졌다.

    한국의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이 야간자율학습의 압박과 스펙용 토익점수에 목을 매지 않고 한가로이 거리를 질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인가? 모든 사회구성원이 낙오되지 않으려고 바늘구멍을 비집고 아웅다웅 싸우는 현실을 바꾸는 건 가능한 것인가?

    우리가 어떤 세계를 그리고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바꿔나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은 공공적 시스템이 튼튼한 기초를 다질 때 실현된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사회 전 분야에서의 공적시스템이 공동체 구성원의 삶을 지켜줄 때 우리 사회의 인간적 가능성은 활짝 열리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무너져가는 공공성을 다시 세워야만 한다. “RE-PUBLIC” 이미 우리나라의 국호에 들어있는 정신 아닌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