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
    [기고] 복지부의 출산장려 캠페인에 부쳐
        2014년 10월 01일 05: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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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독자이며 20대 기혼여성인 김지현씨가 정부의 출산장려 캠페인에 대해 기고 글을 보내와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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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복지부가 ‘아이 좋아 둘이 좋아’라는 출산장려 캠페인을 벌인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화가 나는 동시에 모멸감을 느꼈다. 내 자궁은 이제 시댁뿐만 아니라 국가에도 저당 잡힌 공공재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제 아이를 낳느냐고, 왜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냐고 질문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불효이고 사회의 해악인 것처럼 말하는 당신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출산캠페인

    보건복지부의 출산장려 캠페인

    내 자궁은 늙지 않았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노산, 기형아, 노후의 불행 등을 언급하며 당장 임신하지 않으면 인생의 실패자가 될 것처럼 몰아세우는 어른들이 많았다.

    아이를 낳을 계획이 있는지 물었던 것이 아니라, ‘빨리 낳아야 한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이미 내 자궁은 늙었고, 더 늙기 전에 부모님에게 손주를 안겨드리는 효도를 해야 사람의 도리라는 것이다.

    내 자궁은 태초부터 효도를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었고, 용도 폐기되기 전에 반드시 한번은 사용해야 할 물건도 아니다. 내 자궁 걱정은 내가 할 테니 어르신들은 요실금이나 전립선암을 먼저 걱정해주길 바란다.

    덧붙여 임신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밭’ 걱정만 하지 말고 ‘씨’ 걱정도 하시라.

    여자는 여자 구실을 해야 여자?

    시집을 보낸 친정 엄마와 아빠는 내가 아이를 낳을 생각이 별로 없다는 것을 눈치 채셨다.

    그러자 엄마는 매우 충격적인 말을 하셨다. “여자는 여자 구실을 해야 여자”라고. 친정 엄마조차도, 그 스스로가 여자이면서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아이를 낳는 것이 여자 구실이라면, 남자는 씨를 뿌리는 게 남자 구실인 건가? 내가 아이를 낳지 않(못)하면 여자 구실을 못한 것이니 여자가 아니게 되는 것인가? 결혼 안 하고 애를 낳아도 ‘아이고 내 새끼, 여자 구실 잘 했네?’라고 하실 건가?

    엄마와 아빠는 온통 시댁과 사위 눈치만 봤다. 아빠 친구의 딸이 몇 년 만에 임신했을 때 아빠 친구가 “드디어 내 딸이 여자 구실 해서 다행이다”라고 하셨단다. 딸자식 시집보낸 친정 부모의 마음이 그렇더란다.

    하지만 늘 그렇듯 부모님이 간과하시는 게 있다. 나는 시댁의 이쁨을 받으려고 결혼한 것도 아니고, 아이를 낳는 문제는 양가 부모님이 아닌 당사자들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아무리 간섭하려 해도 간섭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지 세 번 이상 말씀하시면 발길을 끊고 싶어진다고.

    애는 어떻게든 키워진다는 신화

    시댁에서는 나름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셨다. 아이를 낳으면 외벌이로 살기 힘들 테니 ‘용돈’을 보내주시거나, 직접 아이를 키워주시겠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준비가 되어 있으니 일단 낳으라는 것이다.

    친정에서도 그랬다. 시댁에서 그렇게 나온 이상 무슨 걱정이겠냐고, 일단 낳으라고.

    그러나 이것이야 말로 무슨 씨받이도 아니고 애만 훌렁 낳고 시댁에 맡기거나 애 낳은 값으로 용돈을 받는다니, 발상 자체가 너무하지 않은가?

    육아휴직을 쓸 수 없는 직장 특수성상 출산하자마자 퇴사가 결정되는 나에게, 임신은 곧 실업을 의미한다. 그런데 애 낳고 시댁에서 보내주는 용돈을 받으며 애만 보고 살라니,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아이를 한 번 낳으면 되돌릴 수 없듯이, 내 직장도 커리어도 모두 되돌려지지 않는다. 그걸 용돈과 맞바꾸려면 한두 푼으로 안 된다는 건 다들 알고는 계신 건지 궁금할 따름이다.

    한 친구는 연속 임신으로 본의 아니게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남편의 외벌이로는 생활이 불가능해져, 전세금 1천만 원을 올리지 못해 전월세로 살고 있다. 다른 한 친구는 육아휴직 기간 동안 시댁과 남편의 밥만 축내는 식충이 취급을 견디지 못하고 시댁에 애를 맡기고 직장에 나가지만 아토피가 있는 아이에게 인스턴트 식품을 먹이는 시부모님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른 한 친구는 평일에는 친정 엄마게 맡기고 주말에는 데려오는데 친정엄마가 허리가 너무 나빠져서 고민이다.

    만약 시부모님이 용돈뿐만 아니라 전세금이 없을 때 전세금도 주시고, 그렇다고 전업주부라고 무시하면서 퍽하면 오라 가라 하지 말고, 애들 먹이는 거 입히는거 가르치는 것에 대한 교육철학은 모두 제 말을 따라주신다면 다소 고려는 해보겠다. 물론 가시방석과도 같은 그 길을 갈 이유는 없다.

    저출산

    저출산 관련 여성/노동/시민단체 기자회견 자료사진

    워킹맘들은 너무해? 애 낳는 순간 회사에서는 죄인.

    최근 대기업 여성 정규직 비율이 남성과 비교해 터무니없이 낮다는 기사에 달린 네티즌들의 댓글은 “여자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애 핑계대고 맨날 야근은 피한다”는 류의 글이 넘쳐난다. 어떤 여자들은 “같은 여자지만 아줌마들이 얄밉다”는 글도 남긴다.

    어쩌다 운이 좋아 내가 대기업을 다니고 있어서 육아휴직제도도 뻔뻔하게 잘 쓰고 복직했다 치자. 유치원에 있는 아이를 데리러 칼퇴근이라도 할라치면 동료들이 “아줌마는 저래서 안 된다”고 눈치를 줄 것이고, 아이가 혼자 있는 게 마음에 걸려 야근을 못할 때에도 “이기적인 아줌마”라는 뒷담화를 들을 것이 뻔하다.

    남편이 육아를 정확히 반을 부담해준다면 아마 야근도 함께하고 출장도 기꺼이 갈 테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는 ‘바깥 일’은 남편이, ‘집안 일’은 아내가 하는 공식이 있다.

    가계 경제의 주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남편들은 더 많은 연봉과 승진 등의 이유로 조금씩 육아에서 멀어질 것이고, 그것은 바로 나를 뒷담화하는 남성 다수가 하는 행태일 테다. 전업주부인 아내를 두었거나, 남편을 대신해 시간제 일자리를 선택한 아내들 덕분에 직장에 몰두하고 있는 바로 그 남자가 내 목을 쥐고 있다는 말이다.

    일부 여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육아휴직이라도 가면 그만큼 일손이 부족한 것을 육아휴직을 쓴 여자 탓을 하고, 그 여자가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 퇴사를 결정하면 희대의 ‘쌍년’이 된다.

    회사가 유휴인력을 가동하지 않아 육아휴직제도 자체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문제나, 아이가 있는 여자/남자를 배려하지 않는 사내문화에 대한 문제의식보다는 ‘육아휴직 잘 받아 쳐먹고 퇴사하는 여자’ 탓만 하는 사회에서 애를 낳는 순간 죄인이 된다.

    그런데 국가가 나에게 심지어 둘이나 낳아야 한다고 내 세금을 막 퍼다 쓴다고?

    사회에서 멀어지고, 집안에서 무시 받는 나

    요새는 가사와 육아가 부부의 공동 책임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고는 하지만 정작 주변을 돌아보면 희귀 사례이다. 아이 맡길 곳도 없고 아직 어려서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한 친구는 베이비시터와 파출부, ‘가노’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보채는 아이들 덕분에 하루 3시간 이상 푹 자본 적이 없는 생활을 몇년째 유지하면서도 아침저녁으로 남편 밥상 차려주고 청소하고 명절이나 제사 때에는 시댁에 불려가 하루 종일 노예처럼 일하고 온다.

    육아휴직을 사용한 친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남편의 저녁 밥상을 차리는 데 애가 울어서 애 좀 봐달라고 했더니 정말 쳐다만 보고 있더라는 말이 어디 한두 번 듣던 말인가.

    육아를 전담하는 것이 곧 집안의 청소와 빨래, 남편 또는 아내의 아침 밥상까지 모두 차리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닐 텐데, 왠지 한국 사회에서는 전업주부가 됐건 육아휴직중이건 무임금 고강도 노동을 감내해야 한다.

    그렇다고 맞벌이 부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정이 낫냐. 그렇지도 않다. 내가 아는 어떤 부부는 육아와 가사를 정확히 반반 부담하기로 했고, 요일을 지정해서 칼퇴근 후 아이를 돌보기로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은 자신의 업무의 특수성이나 중요도를 내세우며 자신의 차례가 돌아와도 아내에게 양보하길 강요했고, 어느 순간 여자는 직장에서는 야근은 커녕 일찍 퇴근하는 날이 잦은 이기적인 여자로 찍혔다. 동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은 물론, 회사 내에서 자기발전을 이루기 어려워졌다.

    아이를 낳는 걸 고려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한때 나도 자궁의 노후화라는 압박감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봤다.

    비교적 다른 남편들보다는 집안일을 훌륭하게 해내는 남편이 있으니 남들보다는 육아 스트레스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육아휴직 사용은커녕 출산휴가 후 퇴사를 해야 하는 직장문제가 컸다. 돈 때문이 아니라 성취감 때문에 시작한 이 일을 임신과 출산 때문에 그만둬야 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 한 번 품어본 적도 없는 자식, 내가 남들 만큼 모성애를 갖추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아이 때문에 인생의 큰 모험을 하기에는 두려웠다.

    나름 고액의 연봉을 받았던 한 언니도 출산 후 퇴사해야 했는데, 재취업을 하려니 마트 캐셔 말고는 없더란다. 죽도록 공부해 4년제 대학을 졸업해 고액의 연봉을 받던 서른 살 여자가, 출산 후 30년 동안 시간제 일자리만 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헝클어진 머리에 옷 어딘가에는 밥풀이 묻어있는 채로 장을 보고 있던 아줌마들도 알고 보면 이대 나온 여자에, 직장 후배들이 롤모델로 꼽던 커리어우먼이었을지 모른다.

    이외에도 모유 수유를 하지 않으면 나쁜 엄마 딱지를 붙이고 살아야 한다는 것, 아이를 제대로 훈육하지 못했다며 ‘무개념 엄마’ 소리를 듣고, 커피를 마시고 싶지만 ‘노키즈존’이라는 푯말 앞에서 서성거려야 하는 것, 남들 다 하나씩 갖고 있는 ‘북쪽얼굴’의 패딩 하나 사주지 못해 미안해야 할 것들도 두렵다.

    아이를 낳는 순간 지금까지 이루어 왔던 것들은 물론이고 앞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살아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조금은 품위 있고 우아하게 살고 싶다. 그러니 나에게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간 채 아이 하나 제대로 키우자고 억척스러운 엄마가 되라고 강요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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