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치 재편,
    혁신의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2014년 10월 01일 10: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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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상구씨의 첫째 글  ‘진보정치,재편합시다’ 링크

    진보정치 재편을 대체 어떤 식으로 하자는 것이냐 하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또 지금 있는 진보세력들을 다 모아봐야 국민들한테 별 감동도 없을 테고, 무슨 대단한 혁신이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해서 뭐하느냐 하는 의견도 많이 접합니다. “기껏해야 운동권 연합당이고 민주노동당만도 못하다. 괜한 짓 하지 마라.” 이렇게 구박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모두 일리가 있고, 올바른 지적입니다.

    노동당, 정의당, 민주노총, 노동·정치·연대, 진보교연(진보대연합을 위한 진보교수연구자모임) 등은 그 동안 진보혁신회의(준)라는 임시적 성격의 공동논의 기구를 만들어서 진보정치 재편과 재건을 위한 논의를 해왔습니다. 노동당의 참여유보 결정으로 진보혁신회의 본조직 출범이 힘들게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우선은 이들이 모두 모여 하나의 당을 만드는 것이 진보재편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고, 벌써 비웃는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정말 아무 새로울 것 없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게 맞구나 하고요. 제 심정도 같습니다. 솔직히 이 정도조차도 실현 가능할까 의심을 많이 합니다.

    게다가 이 계획이 실제 현실이 된다고 하더라도, 예전에 민주노동당을 만들 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나눠질 때, 그리고 통합진보당이 만들어 질 때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나 있을까 고민도 됩니다.

    오히려 중요한 건 그 이후의 계획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진보혁신회의(준) 참여 조직들끼리 합쳐지는 것으로 진보재편이 끝나면 저도 힘이 많이 빠질 것 같습니다. 이들끼리의 통합이 진보재편의 1단계라면, 그 이후 혁신의 과제를 수행해 나가면서 진짜 진보적 대중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가는 진보재편 2단계가 이어져야 합니다.

    진보재편 2단계의 과제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1단계는 하나마나입니다. 그런데 2단계를 하기 위해서는 1단계가 꼭 필요합니다. 1단계 없는 2단계는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기 때문입니다.

    또한, 1단계 재편이 별 감동은 없겠지만, 그것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조금은 있습니다. 진보정당이 정당으로서의 기본꼴을 비로소 갖추는 일입니다. 일단은 이것부터 말씀드리고, 뒤에 가서 2단계의 과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당은 정당으로서 해야 하는 최소한의 기본이 있습니다. 이걸 못하면 그 정당은 더 이상 정당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현재의 진보정당들은 정당으로서의 기본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첫 번째, 진보정당은 이 사회를 어떤 식으로 바꿀지 그 미래의 상과 이를 이루기 위한 전략을 갖추고 늘 다듬어야 합니다. 하지만, 진보정당 중 어떤 정당들은 선거 전략은 항상 고민하면서 한국사회 변혁 구상은 강령에만 묻어두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마련해 놓고 써먹질 않는 게 장롱면허와 똑같습니다. 1종 보통이 아니라 대형면허를 땄어도 장롱면허로는 차 운전 못합니다.

    진보정당 중에는 이념이 누구보다 급진적인 걸 자랑하는 당도 있는데요, 이런 정당조차도 선거 때는 낙하산 공천에 몰두합니다. 꾸준한 지역활동이 없는 건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의회주의·선거주의, 이런 비판은 이제 아무도 누구에게 할 수 없을 지경이 됐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진보정당은 전국 방방곡곡의 지역과 현장에 자기 조직을 가지고 대중 속에서 움직이고 있어야 합니다. 진보정당 가운데 어떤 정당들은 이런 점에서 봤을 때 역시 정당의 꼴을 갖췄다고 보기 힘듭니다. 이들의 지역 조직은 아주 옛날에는 투쟁조직의 하부기관처럼 움직이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당원들의 동아리 모임으로 전락했고, 요즘엔 꼭 동문회처럼 움직입니다. 동아리는 신입회원 가입이라도 할 수 있지만 동문회는 모여서 옛날 얘기만 합니다. 물론, 이것마저도 없어 지역조직을 못 꾸리는 곳이 절대 다수입니다.

    세 번째, 정당은 세상일에 대한 대응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이상적인 미래사회의 구상을 어느 날 갑자기 떡하니 내놓는 것하고는 완전히 다른 겁니다. 현실의 정치세력은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이슈를 제기하거나 선도하기도 하고, 이슈를 관리하며, 최소한 이슈 다툼에 끼어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권투에서 잽이든, 어퍼컷이든, 훅이든 계속 주먹을 날려야 이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진보정당 가운데는 바로 이 세상일에 대한 대응 능력을 잃은 정당이 있습니다. 사실 진보정당을 자처하는 당 가운데 어느 한 당이라도 제대로 된 이슈 대응 능력을 갖추고 있었더라면 쌀 전면 개방 국면을 이렇게 무기력하게 보내지는 않을 겁니다. 의료민영화 싸움의 선두에 진보정당이 서 있다는 걸 국민 누구나 인정했을 것입니다. 피케티의 주장을 한국에 적용해서 세금수입이 실제 어느 정도나 늘 것인지, 부유층이 얼마나 세금을 더 내야 하는지 어느새 계산해서 제시하고, 세금 논쟁의 방향을 틀었을 수도 있습니다.

    진보재편 1단계는 별 감동을 못 주겠지만, 최소한 진보정당이 당의 꼴을 갖추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지금 보다는 나은 조건에서 정치적 이슈 제기 및 대응 능력 갖추기, 지역과 현장 조직 만들기, 장기적 전략 갖추기 등을 고민 할 테니까요.

    아울러, 지난 몇 년의 진보정치 분리의 과정에서 진보정당으로부터 몸 또는 마음이 떠난 사람들이 다시 모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동네마다 상근하는 활동가 한 명씩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 지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압니다. 이 활동가들을 다시 불러 모읍시다. 민주노동당 시절 한국 최대의 진보적 싱크탱크를 구성했지만, 지금은 뿔뿔이 흩어진 정책연구원 동지들도 다시 초대합시다. 진보정당 당원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뻐 히죽 웃던 당원들도 다시 모아봅시다.

    또한, 집단으로 입당했다 탈당했지만, 진보정당에 여전히 관심이 있는 노동조합 조합원들에게도 진심을 갖고 함께 해달라고 제안합시다. 진보재편 1단계는 이들 모두에게 다시 움직여달라는 긍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1단계 재편을 통해 기존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모이고, 새롭게 생긴 작은 희망을 보고 다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면 이를 통해 새로운 에너지가 생길 수 있습니다.

    1단계 재편을 통해 2016~2018년의 3년, 잘못하면 진보정치의 ‘삼재’가 될 지도 모르는 이 시기를 견뎌내는 힘을 갖추는 것이 진보정치가 살아남는 방안일 수 있습니다.

    만약 진보재편 1단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진보정치의 부활을 염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마 ‘학습된 무기력’이 팽배해질 겁니다. 어떤 일을 해도 상황을 극복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무기력을 배웁니다. ‘뭘 해도 안 되는 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게 되고, 실제 어떤 노력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아무런 동기유발이 되지 않아 그냥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 이 상태는 이미 진보정당 가운데 일부를 집어 삼켰습니다. 3~4년 전 까지만 해도 진보정당에 애정을 갖고 활동했던 대여섯 명 쯤의 사람들을 알고 있다면 전화를 한 번 돌려보십시오. 그 무기력의 실체를 어렵지 않게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진보재편 구상을 설명 드리기 위해 몇 분에게 전화를 했을 때, 가장 많이 접했던 반응은 “관심 안 갖고 산 지 오래됐다.”였습니다. 진보재편 1단계는 이러한 무기력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계기입니다.

    진보재편 1단계를 이루고 나면 곧바로 2단계 작업에 들어가야 합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어떤 정치공학적 설계를 할 것인가를 말씀드리려는 건 아닙니다. 그 반대로 진보적 대중 정당의 본연의 모습을 갖춰 나가는 데 온 힘을 쏟자는 제안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대중성을 우파적으로 해석할 경우, 대중정당은 ‘미디어 정치’에 익숙한 존재면 됩니다. 우파적으로 발전된 대중정당은 또 여론조사, 지지율 같은 것에 극도로 민감합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기존의 미디어 구조 하에서 대중들에게 잘 먹히는 정책을 내놓고, 대중들에게 호소력 있는 사람을 리더로 내세우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정당은 중앙당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전문가나 명망가 위주의 인사를 영입하여 공천을 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여론의 향방을 보면서 정책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말을 바꾸기도 합니다.

    구로민중의 집

    구로 민중의집 행사의 모습(사진=노동당)

    그런데 대중성의 좌파적 해석은 좀 달라야 한다고 봅니다. 이때 말하는 대중성이란 ‘대중적 토대’를 말합니다. 진보적 대중정당은 대중적 토대가 굳건히 쌓인 정당에게만 부여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이름입니다. 노동조합-진보정당이 긴밀하게 연결된 정당 구조가 한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 때 이걸 시도하다가 실패한 것이고요.

    물론, 이러한 구조를 만들자고 해서 미디어와 연계된 정치 문법을 무시하자거나 여론조사나 지지율 같은 것에 신경 쓰지 말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런 부분에서 너무 아마추어적이라 문제입니다. 이에 관한한 우리는 좀 더 민감해져야 하고, 좀 더 세련되어야 하며, 좀 더 유능해져야 합니다.

    거미는 중심에서 주변까지 넓게 거미줄을 칩니다. 먹이는 주변에 걸리기도 하고 중심에 걸리기도 합니다. 거미는 부지런히 중심과 주변을 횡단하면서, 먹이를 먹습니다. 정당 조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논쟁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어느 한 측면의 대중성을 위해 또 다른 측면의 대중성을 가벼이 취급하는 게 문제일 뿐입니다.

    이제 어떤 방식으로 토대를 쌓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토대를 쌓는다는 것은 단순히 당원을 많이 가입시킨다는 말이 아닙니다. 당의 지역 조직을 많이 만들고 상근자를 두고, 지지자를 부지런히 만들자는 데 국한된 말도 아닙니다.

    그 보다는 지역과 현장에서 대중들이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되도록 당이 적극적으로 돕고 지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만나서 자신의 문제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안내해야 하며, 이를 위해 그야말로 열심히 만남을 조직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가장 중요한 것은 중소영세노동자 사업입니다. 조선소에 수만 명씩 일하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부터 대도시 구석구석의 요양보호사 노동자들까지, 회사를 뛰어넘어 조직되어야 할 노동자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지역’ 단위로 움직여야 겨우 조직이 가능한 노동자들도 많습니다. 조직화 사업은 그야말로 꾸역꾸역 진행되고 있습니다. 진보정당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들 속에 녹아 있어야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더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번째, 마을 공동체 운동 및 협동조합 운동에 대해 진보정당 차원의 입장을 마련하고 이 흐름에 함께 해야 합니다. 최근 2~3년 동안 전국적으로 마을 공동체 운동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과거에 진보정당이나 노동조합 운동을 했던 활동가 가운데 지금은 마을 공동체나 협동조합 운동을 하는 분들이 아주 많이 계십니다.

    그 동안 한국의 지역사회는 온통 보수우익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습니다. 마을 속 생활의 관계망 속에 진보적 흐름은 별로 잡히지 않았습니다. 마을공동체 운동은 이런 지역 사회의 상황을 바꾸는 의미가 있습니다. 협동조합 운동은 돈 버는 데만 몰두하는 자본주의 회사제도 말고, 다른 방식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훌륭한 시도입니다.

    그런데 마을 공동체 운동이나 협동조합 운동은 그 자체로 급진적이거나 진보적인 것은 아닙니다. 사실 노동조합 운동도 그렇고요. 이 운동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오른쪽으로 갈 수도 있고, 왼쪽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공동체 운동은 자칫 사회적 제도 개선보다는 구성원 스스로의 협력을 통한 직접적인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 체제의 변화 보다는 체제와 상관없이 움직이거나 혹은 체제를 보완하는 데 그치기도 합니다. 이 역시 노동조합에게도 있는 특징입니다.

    물론 이건 제 생각이고 틀릴 수도 있지만, 이제 막 번성하기 시작한 마을공동체 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이 주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려면, 정치를 외면하면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현실정치에 개입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보정치는 이들을 안내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마을공동체 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도 진보정치가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을 느끼는 마을공동체 활동가들의 목마름에 화답해야 합니다. 마침 세월호 국면을 통해 마을 안에만 머물렀을 수도 있는 활동가들이 국가와 사회에 대한 총체적 고민을 주민들과 나눌 기회가 다시 주어졌습니다. 진보정치는 바로 이 분들과 함께 할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세 번째로, 세월호 사태를 겪으면서 그 동안 한 번도 사회의 문제가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었지만 이제 세상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게 아니라 그 반대라는 걸 깨달은 사람도 확실히 많아졌습니다. 진보정치는 전열을 정비하고 이 분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또, 전국 13곳에서 진보교육감이 당선됐습니다. 선거과정에서 진보교육감을 응원한 많은 시민들이 있습니다. 진보정치가 주민들과 교육감을 연결해주는 다양한 역할을 한다면 이 또한 진보정치의 뿌리 내리기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이런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찾아 나서고, 이들과 함께 하고, 만약 우리에게 자격을 준다면 그들을 모으는 일, 바로 현실에 제대로 뿌린 내린 진보적 대중정당을 만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진보재편의 2단계는 이렇게 지역과 현장의 토대를 다시 쌓는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이 일들은 바로 ‘지금’ 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진즉 했어야 되는데 못했으니 이제부터라도 해야 하는 일도 있고, 지금 아니면 기회를 놓치는 일도 있습니다.

    진보재편 2단계는 진보정치 재편 1단계를 통해 정당의 최소한의 꼴이 갖춰져야 도전해 볼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이 밖에도 진보재편 2단계의 혁신 과제는 많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좀 더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필자소개
    노동당 전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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