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는 왜 자국 국민을 죽였나?
    [책소개] 『가면권력』(한성훈/ 후마니타스)
        2014년 09월 28일 01: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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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대마도에 있는 국민보도연맹원들의 묘

    최근 이 책을 준비하면서, 일본 대마도 이즈하라의 태평사라는 절 한쪽에는 국민보도연맹원들을 모신 합장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전쟁 시기 학살당한 사람들의 묘가 왜 바다 건너 일본에 있는 것일까.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얼마 안 되어 예비 검속된 국민보도연맹원들이 산과 계곡에서 집단 학살되었는데, 거제도, 마산, 부산 등지에서 총살되어 바다에 버려진 이들이 조류를 타고 떠돌다가 대마도 인근 해안이나 바다에 떠올랐다 한다.

    이를 본 일본 쓰시마 어민들이 시신을 인양해 가까운 사찰에 가매장한 후 1963년 화장해 태평사에 안장하고 묘비를 세웠다. 한국에서는 유해를 발굴하거나 묘도 만들지 못한 채 오랜 세월이 흘러야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국가는 왜 자국민, 민간인을 죽였는가”라는 질문

    이 책은 한국전쟁 시기 국가가 자국민, 특히 민간인을 학살했던 대표적인 두 사건,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거창양민학살 사건을 다룬다.

    단순히 전쟁의 부수적 우연적 피해라기보다 국가가 이들을 자국의 ‘국민’이 아니라 ‘내부의 적’으로 범주화했고 상부의 명령에 따라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 두 사건은 국가와 국민(시민)의 관계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필자는 ‘학살’이라는 주제를, 가해자, 희생자, 생존자는 누구이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성실한 사실(fact) 기록과 더불어 사회인문학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두 사건은 잘 알려진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에서 벌어진 일들의 기록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전쟁 시기라 해도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민간인이 일방적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 자체에 놀라게 된다.

    필자 자신이 1999년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문제를 접한 후 희생자와 가족, 가해자들을 직접 만나고 현장을 다니면서 활동가와 연구자, 기자, 변호사 등과 함께 이듬해에 시민단체인 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를 조직했다는 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일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기록들은 발로 뛰어 얻게 된 사실들과 이 주제에 대한 오랜 관심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시점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전후부터 1960년 유족들의 활동과 1961년 쿠데타로 인한 진상규명 좌절, 1987년 민주화 이후 관련 시민단체들의 결성과 활동, 2005년부터 시작된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와 진실규명 과정, 2013년까지 진행되고 있는 법원의 소송 등을 담고 있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2009년 10월 진실화해위원회가 진행했던 진실규명 과정의 성과를 포함했으며, 거창사건은 근래에 이루어진 연구 성과와 유족들의 활동을 보충했다.

    가면권력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거창양민학살 사건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좌익 관련자들의 사상 전향을 목적으로 만든 관변 단체이다. 일선 경찰서가 회원을 모집하고 관리했으며, 검찰청 소속의 사상 검사들이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사상 전향을 책임졌다.

    회원은 30만여 명이었으며, 실제로는 결성 당시 지역에서는 회원 수를 채워야 했기 때문에 요주의 인물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 아버지와 아들, 형과 동생 등 가족이 함께 가입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쟁이 발발하자 이들은 ‘내부의 적’으로 간주되어 검속 후, A(갑: 사살), B(을: 조사 후 사살 여부 결정), C(병: 훈방)로 분류, 다수가 살해되었다. 사실 이들은 ‘사상 전향자’들이었기 때문에 북한군이 점령했을 때는 변절자 혹은 의심의 대상으로 간주되었다는 점에서 양쪽으로부터 배제된 비극적인 존재들이다.

    거창양민학살 사건은 1951년 2월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공비 토벌 작전 중이던 11사단 9연대 3대대가 양민을 학살한 사건이다.

    가해자, 희생자, 생존자

    이 책은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가에 대한 성실한 기록과 더불어, 사건의 가해자, 피해자, 생존자 및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저자는 가해의 책임을 말할 때 ‘국가’를 지목하는 것은 지극히 추상적이며, 그 결과 불처벌이라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직접 가해자는 학살을 집행한 군인과 경찰 등이지만, 위계 구조에서 명령을 내린 최고위층 또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저자는 이승만 정부의 최고위층, 검찰, 경찰, CIC 등의 역할을 증언과 자료를 통해 보여 주며, 어떻게 평범한 사람이 가해자가 되는지를 살펴본다. 희생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어떻게 ‘내부의 적’이 되었는지,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의 투쟁자들’로서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고 60여 년이 넘도록 진실을 규명하고 위령비를 세우기 위해 싸워 왔는지를 보여 준다.

    사건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

    올해 들어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관련해 중요한 두 건의 판결이 있었다. 2014년 9월 3일 부산고법 민사5부는 울산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항소심에서도 법원이 국가에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했다.

    또한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형사부는 국민보도연맹원 열 명과 관련해 국민보도연맹 사형 판결이 난 지 64년 만에 재심 결정을 내렸는데, 국민보도연맹원 희생자에 대한 재심 결정은 작년 2월 충남 지역에 이어 두 번째다.

    유해 발굴도 아직 진행 중이다. 한 기사에 따르면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 인근에 가면 야산 밑에 커다란 컨테이너가 있다. 컨테이너를 열어 보면 노란 플라스틱 통이 꽉 들어차 있다. 그 통 안에는 경남 마산 진전면 여양리에서 발굴한 진주 지역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골 163구가 빼곡히 들어 있다. 안치 장소가 없어 임시로 그곳에 보관돼 있다. 컨테이너 옆에는 용산고개에서 학살당하고 버려진 유해들이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최근 광주비엔날레 오프닝 행사에서, 임민욱 작가가 민간인 학살 사건을 소제로 대형 퍼포먼스를 진행했는데, 이때 이 컨테이너 두 개를 동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컨테이너는 광주 용봉동 비엔날레 전시장 앞 광장에서 계속 전시되고 있다. (관련 글 링크)

    필자 한성훈 박사는 이 프로젝트를 공동 기획했다.

    주요 내용

    1장┃대량학살에 있어서 ‘죽음’의 사유와 가해자와 증언자, 국가와 정치의 중요성에 대해서 썼다.

    2, 3장┃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다루었는데 국가기관의 1차 자료와 군인과 경찰, 피해자들의 증언을 엮었다. 이들 자료는 1950년 6월 25일 전후부터 전쟁 동안 벌어진 살벌한 풍경을 경찰과 생존자, 목격자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히 재연하고 있으며 학살이 전국적으로 전개된 양상과 각 기관의 개입, 살해 명령 체계를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4, 5장┃주제별 글을 새로 쓰고 최근에 있었던 재판 과정의 논의를 보충했다. 이 책은 11사단 9연대 작전명령과 불처벌, 군법회의, 복종 범죄, 유족 활동에 관한 내용을 자세하게 다루었다.

    6, 7장┃가해자와 피해자, 생존자로 나누어서 국제적 논의와 비교하면서 살펴보았고 전국유족회 활동과 5?16 쿠데타 정권의 부관참시를 서술했다. 최근의 논의로서 한국의 이행기 정의가 갖는 특징과 포괄적 과거청산의 의미를 서술하고 2010년 이후 법정에서 이뤄지고 있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정체성 회복과 법원의 소멸시효 배제 논리를 분석했다.

    8장┃가해자에 대한 불처벌 문화를 비판하고 명령을 내린 자와 국가의 책임이 왜 중요한지를 제시했다. 이 문제의식에 가해자 처벌이 보복이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로부터, 인간의 행위에는 선과 악이라는 경계선이 중첩되어 있는 현실, 그리고 진실을 가리는 사회의 침묵과 국가의 무책임, 증오의 문화, 정치의 책임 윤리를 담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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