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법적 인간 아닌
    윤리 정치적 인간이 필요
    [책소개] 『사람의 거짓말 말의 거짓말』(남재일/ 천년의상상)
        2014년 09월 28일 12: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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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거짓말 말의 거짓말》은 언론 및 대중문화 강의를 하며 틈틈이 글을 써온 남재일 교수가 인문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사회 일반을 날카롭게 분석한 산문집이다.

    저자는 개인, 사회, 정치, 윤리, 언어를 아우르며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구체적 증상들을 진단하고, 명징한 문장과 적확한 표현으로 무심코 지나쳐왔던 일상의 문제들을 해부해나간다.

    우리 삶은 어떤 거짓말과 관념들로 이루어졌는지, 개인들은 무엇에 복종하고 있는지, 지배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자발적으로 내면화하고 있는지 멈추어 곱씹고 되짚는다. 한 가지 상황을 바라볼 때 그것에 달라붙은 여러 기존 이미지와 거짓말을 파헤쳐 본질과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자본주의사회, 곧 행복이 오직 자본의 증식으로 수렴되는 곳이자 하나의 역할과 기능만으로 자신을 호명하는 사회를 당연시 여기고 그것이 삶의 유일한 길이라고 느꼈던 사람들에게, 다른 삶의 방식을 향유하는 길을 보이려 애쓴다.

    사람의 거짓말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1%의 유혹

    남재일이 바라보는 오늘날 한국사회는 모든 것이 성과로 귀환하는 세상, 스스로를 착취하는 세상이다.

    ‘너 스스로 일과표를 짜고, 너 스스로를 돌보아라. 너의 옆은 돌아볼 필요가 없다.’ 경쟁을 통해 자기 통치를 하게 만드는 ‘유혹의 정치’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누구도 사람에게 곁을 내주지 않는다. 모두가 적이거나 경쟁자이므로.

    이곳에서 사람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혹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아) 고통과 불안에 시달리며 앞을 향해 질주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저자는 슬라보이 지제크의 말을 빌려 말한다. 우리는 “동의의 형태로 기만당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 속에는 1% 지배자들이 만들어낸 유혹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체제가 하는 ‘말의 거짓말’이다. 이 거짓이 켜켜이 익숙한 규범, 도덕, 법, 정치, 문화, 사회를 구성한다.

    흔히 좌파들이 공유하는 ‘유혹에서 깨어나면 달라지리라’는 신화는 틀렸다. 저자는 개인들은 단순히 속은 것뿐 아니라 자본가(혹은 권력자)들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가 제시하는 판타지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가능성을 보기 때문이라 말한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지,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면 행복해질 수 있겠지”라는 환상에 스스로를 옭아매며 자본의 유혹을 자신의 신념으로 복제하는 말과 행동이 ‘사람의 거짓말’이다.

    유혹당한 ‘성과주체’는 사랑 → 성적 매력 → 몸짱 → 피트니스 클럽 → 입회비 → 성과라는 경로를 통해 언제나 성과로 귀환한다. 그는 스타일을 현실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다른 방식의 사랑을 상상하지 못한다.

    자유를 상상할 때조차 그는 성과로 돌아온다. “출퇴근에서 벗어나 해외여행을 다니며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역시 돈이 있어야 한다. 더 벌어야 한다.” 성과주체는 꿈꾸는 삶을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성과로 설정된 스타일 속에 감금돼 있다.

    시선은 언제나 더 세련된 스타일과 유능한 자신만을 향한다. 그는 외부와의 소통을 철저히 단절한 나르시시즘적 개인이다. 동지도 적도, 주체도 타자도, 소통도 적대도 없는 자기증식의 세계 속에서 산다. 이 때문에 외부 현실이 전하는 어떤 메시지도 스타일로 사물화한다.

    그는 일당 10불을 받는 스리랑카 어린이들이 만든 1000불짜리 유기농 직물을 친환경적이고 인간적이라는 이유로 기꺼이 소비한다.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며 값비싼 채식을 하고 삼겹살 먹는 육체노동자를 야만적이라 비난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을 볼거리로 여기는 세계의 영원한 관광객이다. ―본문 22∼23쪽

    유혹의 정치가 만연한 사회에서 남재일은 “유효하지만 의미 없는 법에 복종하는 삶은 어떤 것인가?” 물으며, 준법적 인간과 윤리-정치적 인간을 구별한다.

    준법적 인간은 도덕과 관습, 법과 제도가 규정한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법과 무관하게 윤리적 행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법의 무용성을 드러낸 최초의 윤리-정치적 인간이었다.

    저자가 말하는 윤리-정치적 인간은 소크라테스, 예수, 브루노, 신화의 안티고네처럼 실정법을 위반하고서라도 자신이 설정한 진정성에 따라 윤리적 실천을 하는 사람, 이 실천을 정치적 행위로 간주하는 사람, 정치를 스스로 삶의 형식을 결정하는 과정으로 보는 사람이다.

    저자는 법에 의해 방치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 개인으로서 자신만의 표지를 따라 법 바깥으로 탈주하는 삶을 함께하자고 촉구한다. 자기 내면의 윤리를 따르고 타자들과 맞닿으며 이것이 정치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삶을 꿈꾼다.

    권력은 본성상 사랑하는 자의 삶, 즉 윤리적 삶을 억압한다. 윤리적 인간은 필연적으로 권력과 충돌한다. 그래서 윤리적 삶을 사는 인간은 결과적으로 윤리-정치적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윤리, 정치적 인간은 삶을 인간과 인간 간 사랑의 교환으로 가정하고, 법을 그 관계에서 행위를 여과하는 최소한의 장치로 생각한다. 한마디로 강제하는 법의 형식을 거부하고 실정적 내용의 정당성을 질문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반면 법과 윤리를 동일시하는 준법적 인간은 법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행위의 목적으로 삼는다. 그는 강제하는 법의 형식을 실정적 내용으로 오인한다. 그의 윤리는 텅 빈 공백으로 남으며, 정치는 법제도적 질서 속에서만 상상된다. 여기에는 스스로 삶을 변화시킬 어떤 단서도 없다. 그의 삶은 타자와의 대면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법과 거기에 복종하는 자신에 대한 응시로 끝날 뿐이다. ―본문 93쪽

    되풀이되는 단말마적 비극 앞에 이 책은 결코 훌륭한 진통제가 아니다. 현실을 노출하는 방식은 때로 과격하며, 사회의 무덤덤함에 대한 ‘찌름’은 도리어 아프다. 다만 살아남은 자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무수한 물음을 낳게 한다.

    뾰족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저자가 그리는 이상향은 있다. “삶이 99가지 소박한 참말의 향연이 되는 것.” 유혹에서 벗어나 반反유혹의 삶을 살아가는 이 길은 얼마나 멀고도 험한가. 그러나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께 ‘앓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희망이 온다. 미래는 ‘그들’이 아니라 소박하게도 어디선가 꿈틀거리는 소수의 윤리-정치적 인간, ‘나들’에게서부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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