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의 대화, 목수정 인터뷰①
    "대중교통은 공공성의 척도"
        2012년 07월 04일 11: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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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흥수씨는 18년간 열차를 몰고있는 철도 노동자이고 기관사다. 철도노조에서 철도정책연구팀장을 맡고 있으며 사회공공연구소의 철도정책 객원연구위원으로 일을 하고있다. 박흥수씨가 ktx 민영화와 지하철 9호선 사태와 관련하여 일본과 유럽의 철도시스템을 조사하고 왔다. 그 과정에서 한국사회의 공공성과 대중교통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목수정씨와 인터뷰를 하고 그 내용을 레디앙에 보내왔다. 2번에 나누어서 게재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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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뒷골목에서 공공성을 이야기 하다.

    2012년 6월 13일 수요일 오후시간. 파리의 남쪽 몽빠르나스 인근에 자리 잡은 프랑스 철도공사 SNCF 관계자와의 면담을 마치니 다섯시가 되었다. 목수정님과의 인터뷰 겸 저녁약속시간인 7시 30분 까지는 무엇을 하기도, 안하기도 애매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일단은 시내 북쪽에 자리 잡은 몽마르뜨 언덕으로 향했다. 파리 최고의 관광명소 중 하나이며 젊음의 에너지가 넘치는 몽마르뜨 언덕은 그저 앉아 있기만 해도 흥이 나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장소다.

    한눈에 보이는 파리 시내의 전경은 무수한 화가들과 사진가들의 작품 소재가 되기도 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한달음에 뛰어 올라간 몽마르트 대성당 앞의 계단에선 늘 그렇듯이 세계의 젊은이들이 어울려 즉석에서 올려지는 공연에 넋을 놓고 환호하고 있었다.

    유럽은 한창 유로2012 축구대회로 열광의 도가니였고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몽마르뜨 계단의 가로등에는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가 온갖 자세로 매달려 축구공으로 신기에 가까운 묘기를 펼치며 사람들의 입을 벌려놓고 있었다. 가로등 꼭대기까지 올라가 머리와 발로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코믹스런 마임을 펼치는 주인공과 관객 모두 몽마르뜨 언덕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목수정님은 바스티유에 살고 있다. 만나기로 한 곳은 그녀가 살고 있는 바스티유역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새인트 폴 지하철역. 몽마르뜨에서 바스티유로 간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중요한 의미를 담는 행로였다. 아직도 프랑스 사람들 중에는 신용카드 등의 비밀번호를 1871로 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1871년, 프랑스 국기 삼색기의 상징인 자유, 평등, 연대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던 혁명의 마지막 장소. 부자들과 권력가들로 이루어진 정부군과 이들을 지원한 외국 군대인 독일제국 프로이센군을 필두로 한 민중의 혁명열기에 놀란 오스트리아, 벨기에, 헝거리, 영국의 지배자들이 파견한 연합군대는 피의 일주일이라는 이름이 붙은 진압으로 혁명을 분쇄시켰다.

    몽마르뜨 골목길 담벼락의 1871 파리꼼뮌 기념동판.

    바리케이트를 쌓아 저항했던 파리 시민들은 1980년 광주의 시민들처럼 압도적 물리력을 동원한 반혁명군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파괴당했고 파리거리 곳곳은 시민들의 피로 물들었다. 혁명적 자치 공동체를 세운 2개월간 해방의 공간이었던 파리꼬뮌.

    그 마지막 저항지 중의 하나인 몽마르뜨. 파리꼬뮌은 맑스가 대영박물관 도서관에서 꼼짝 못하고 꼬뮌에 대해서 집필을 하게 만든 역사적 사건이었고 레닌의 소비에트 모델이기도 했으며 크로포트킨이 아나키스트 공동체의 기원이라고 칭할 정도로 수많은 혁명가들이 지향하는 미래에 달성해야할 과거의 시공간이었다. 모두가 형제이며 자매인 공동체, 결핍속에서도 부족한 것이 없고, 웃음과 노래와 시가 끊이지 않았던 곳. 사실주의의 선구적 화가 쿠르베가 파리꼬뮌의 예술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것만 보더라도 파리꼬뮌이 기존의 낡은 관습과 제도를 극복하고 새로 열리는 시대의 정신을 가득 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몽마르뜨에서 마지막으로 파리꼬뮌은 분쇄되지만 한 알의 밀알이 되어 프랑스와 유럽 전역에 자유와 평등과 연대의 씨앗을 날려버렸다. 몽마르뜨 언덕 주변을 걸으면서 1871년을 상상했지만 그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의 아쉬움을 위로라도 해 주듯 그림처럼 예쁜 골목길들을 돌아 내려오다가 건물 벽에 붙어있는 1871년을 기념하는 동판을 볼 수 있었다. 프랑스어를 읽을 수 없었지만 분명히 1871년의 희망의 공동체 파리꼬뮌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폭우로 변했다. 파리꼬뮌에 대한 회상이니 몽마르뜨 언덕의 낭만이니 하는 문제는 사라지고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내리 붓는 비를 뚫는 게 최대의 문제가 되었다. 큰 길가에 까지 나가 지하철 정거장에 도달하는게 최우선 미션이 되어버렸다.

    서울의 1/4면적에 14개의 노선을 갖고 있는 파리의 지하철 환경은 일단 역만 확인하면 빠른 시간 안에 어디든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칠 줄 모르는 빗줄기는 더 이상의 전진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여느 다른 행인들과 같이 길가 상점 입구의 처마에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비가 잦아들기는커녕 기세를 드높였고 약속시간은 가까워져 빗속을 뚫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에 지하철역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배낭에 방수커버를 단단히 씌우고 길을 따라 걸었다. 걷기 시작한지 5분여가 지나자 신기하게도 지하철역 입구가 보였고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으로 지하철역 안으로 몸을 피신시켰다. 이제 프랑스 대혁명의 시작 지점 바스티유로 가는 파리 지하철 1호선을 타는 일만 남았다. 파리의 지하철은 그 특유의 촘촘함과 환승 편의성으로 시내의 구석구석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폭우로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파리지하철 덕분에 다행히도 약속시간에 늦지 않았다.

    새인트 폴역의 지상으로 나오니 비는 거짓말처럼 그쳐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파리의 자유로운 공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일을 끝낸 퇴근 시간의 여유가 사람들 속에서 베어 나왔다. 작은 에소프레스 잔을 들고 카페 앞을 서성이며 길가는 이와 눈길을 마주치며 웃움짓는 할아버지, 화분 한 쪽에 올라타 나무 곁에 쪼그려 앉은 괴짜 철학자 같은 아저씨,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는 커플과 그 곁을 아랑곳 하지 않고 스치는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이곳이 바로 파리이며 자유의 거리 바스티유임을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전격 추진된 철도공사의 노사공동 유럽철도실사팀에 참여하게 되면서 파리방문 계획이 세워지자마자 목수정님과의 인터뷰를 생각했다. 그 동안 목수정님은 경향신문 등의 언론기고를 통해서 사회의 공적 시스템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왔고 특히 공공교통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해왔었기에 한국과 프랑스 사회의 교통시스템을 비교 분석할 수 있는 좋은 인터뷰 상대라고 판단했다.

    두 사회를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경계지점에 선 디아스포라로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했다. 그러나 너무 급박하게 추진된 해외조사 일정은 목수정님의 개인 상황을 전혀 고려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이역만리 날아가니 한 번 만나달라는 협박 반 읍소 반의 메일을 날리는 무식한 방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게다가 조사팀의 일정상 파리에 체류하는 시기 중 다른 일정이 없는 딱 하루의 저녁시간을 선택해야 했는데 하필이면 그 시기가 목수정님이 10여년을 넘게 살던 집의 이사 가기 바로 전날이었다. 목수정님은 답변 메일에서 이삿짐 더미와 남편과 아이를 두고 저녁 시간에 나오라는 과도하고 무리한 요구에 대해서 하소연을 했지만 결국은 나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수락했다.

    만나기로한 세인트 폴 지하철역 입구에서 길을 따라 멀리 보면 한 쪽 끝으로 지금은 오페라극장이 버티고 있는 바스티유광장이 보였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바스티유감옥 습격사건의 현장 어디쯤에선가 그녀가 걸어오고 있을 것이었다.

    퇴근길의 지하철역이었음에도 목수정님과 우리 팀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동양인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목수정님이 이끄는 대로 큰 길을 가로질러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골목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한국 음식점에 자리를 잡았다. 같이 식사를 하기로 약속했기에 목수정님이 값싸고 근사한 프랑스식 음식점으로 안내할 것 같았지만 예상은 빚나갔다. 외국의 여러 한국 음식점에서 높은 가격에 비해 맛있게 먹어본 경험이 별로 없었던지라 내심 실망을 했지만 뒤 늦게 나온 음식 맛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맛있는 저녁식사와 한잔의 와인과 목수정. 어쩐지 인터뷰는 성공적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생면부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목수정씨는 거침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우리는 서로 말하기 경쟁이라도 벌이듯 쉴 새 없이 말하고 또 말했다. 그 만큼 프랑스와 한국사회에 대해서 서로가 할 말이 많았다.

    목수정님은 가볍게 숙소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목수정(이하 목) : 숙소가 어디라고 하셨죠? 11호선 북쪽이라고 하셨나요?

    박흥수(이하 막) : 예. 릴라스라는 지하철역에서 내리는데 거기서 걸어서 3분이면 됩니다.

    목 : 릴라스가 무슨 뜻인지 아세요?

    박 : 아니요. 당연히 모르지요.

    목 : 라일락이라는 뜻이지요. 릴라스는 참 좋은 동네예요. 특히 제가 더 릴라스에 대해 애착을 갖는 이유는 우리 칼리를 가졌을 때 다녔던 산부인과가 릴라스에 있었거든요. 라일락꽃이 만발한 완만한 언덕길들이 있는 예쁜 곳이지요.

    (릴라스의 병원에서 임신 기간 내내 무료로 진료를 받았던 내용이 그녀의 책에 자세히 나와있다. 신기했다. 그녀가 남산만한 배를 이끌고 다녔던 동네에서 그녀를 만나러 왔다. 음식을 주문하고 본격적으로 두 사회가 품고 있는 문제를 하나 둘씩 열기 시작했다.)

    박 : 저는 공공성이 우리시대의, 그러니까 이 살벌한 무한경쟁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이자 가치라고 생각하고 탐욕스런 자본의 파도에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한국 사회의 공공성을 지키는게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올해 초부터 대통령 임기의 마지막 해에 전격적으로 추진되는 KTX민영화 문제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더 어두운 터널로 몰아넣는 일이 될 거라고 보고 이를 막기위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목선생님께서는 사회 공공성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목 : 한 사회의 공공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면 그 나라가 사람이 살만한 곳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중교통은 공공성의 척도이지요. 교육, 의료, 이동권 등 현대인의 삶을 지탱시켜주는 핵심 요소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여겨지고 취급받고 있는지 보면 그 사회의 삶의 질과 가치관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교육이든 의료든 교통이든 모두 경쟁의 논리고 승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 승자는 누군가요?

    (목수정님은 KTX 민영화 문제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른다고 말했지만 MB정권과 국토부의 KTX 민영화를 추진하는 목적을 점쟁이처럼 꿰고 있는 듯 했다. 정부는 경쟁을 통한 효율화로 국민 부담을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KTX를 민영화하겠다는데 수익의 주체는 재벌이다. 경쟁자체도 불공정하다. 유일한 흑자노선인 고속철도만 재벌에 넘기는 방안이다. 이런 불공정 경쟁에서 뒤처지는 공기업의 부채는 여전히 국민들의 몫으로 남는 문제에 대해서는 답이 없다.)

    목수정님의 목소리톤이 살짝 높아졌다.
    “공공성은 결국 사회 구성원이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죠. 한국은 이미 출산 파업 상태로 아이를 낳기도 무섭고 기르기도 무서운 사회가 되었어요. 그나마 임산부에 대한 지원도 법적으로 보장된 결혼관계에서 이루어지죠. 한때 프랑스는 저출산국의 대명사 였는데 지금은 높은 출산률을 기록하고 있지요. 사회가 어떤 시스템을 갖느냐가 그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이라고 봅니다.

    저는 여기 프랑스 국민이 아니지만 프랑스 국적 아이의 엄마에게 주는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어요. 제 아이 칼리를 낳을 때도 의료비를 정부가 책임졌고요.프랑스에서는 아이를 셋 이상 낳으면 모든 게 할인 돼죠. 모든 입장료, 교통비, 그 밖에 많은 부분에서 50%를 할인해줍니다. 게다가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할인 혜택이 주어지고요.”

    (그녀의 책 <뼈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을 보면 출산을 마치고 퇴원하면서 병원에 지불한 돈이라고는 몇 통의 전화비가 전부였다는 대목이 나온다. 저출산 대책은 정치인들의 선거철 공약집 구색 맞추기로 해결되지 못한다는 걸 프랑스 현실이 생생히 보여준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으레 프랑스는 선진국이니 충분히 그럴만하고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머니 먼 훗날의 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전 세계 수 백 개의 나라들 중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는 우리는 언제쯤이면 소위 선심성이 아닌 제대로 된 사회 시스템적 ‘복지’라는 게 가능할까?

    약속된 시간이 한정되어 있었기에 인터뷰 내용을 더 예각화 시켜야 했다.)

    파리 지하철을 설명하고 있는 목수정씨

    박 : 지하철 9호선 사태 아시죠? 올 상반기 박원순 서울시장 체제에서 제대로 충돌한 게 지하철 9호선 사태인데 파리 지하철과 비교해서 말씀 좀 해 주시죠.

    목 : 9호선의 요금인상 주장은 여기서 보면 정말 웃기는 일이지요. 박원순시장 아니었으면 어쩔뻔 했어요. 파리 시내에서 특정 구간만 다른 회사가 운영하고 그 운영사가 민영회사고 그 회사만 요금을 차별적으로 올려받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죠. 공공적 영역을 부순 것과 또 민간이 운영하니까 요금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받아들여지는게 프랑스 사회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파리의 지하철과 서울의 지하철을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일단 파리와 서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시내의 핵심 교통수단은 지하철이라는 겁니다. 파리 시내 어디를 가도 반경 500미터 안에 두 서너개의 지하철역이 있어요. 걸어서 5분 정도 가면 손쉽게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셈이지요. 그리고 버스는 관광객용이거나 보조 교통수단인데요 그래서 버스도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어요. 이것은 파리 시민의 삶의 질을 균질되게 유지시키는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죠. 그러나 서울은 지하철이 안다니는 곳도 많죠. 버스도 상당히 비중을 차지하고.

    박 : 저희는 지하철이나 철도를 이용하기 힘든 지역을 궤도 교통 소외지역이라고 하는데요…

     목 : 파리 시내에 룩셈부르크역이란 곳이 있어요. 서울로 치면 압구정이나 청담동 같은 동네라 할까? 굉장히 부촌이죠. 그런데 여기서 불과 20여분 정도 열차를 타고 나가는 교외지역은 삶의 질이 확연히 떨어져요. 지난 1월 공공교통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기고글을 신문사에 보낸 적이 있는데 철도역이 존재하고 이 혜택을 받고 안 받고의 차이가 주변 주민들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박 : 서울에서도 한 기관이 궤도교통 영향에 대한 버퍼 분석이란 것을 했는데 결과가 흥미로웠습니다. 가난하고 재정자립도가 낮은 구일수록 지하철역 이용 편의성이 낮게 나왔습니다. 지도에 교통 편의성에 따른 색을 표시했더니 마치 서울지역 여당과 야당의 득표율 분석표 같았지요. 재정자립도가 높고 부자동네일수록 더 살기 좋은 환경을 담게 되고 이 격차가 더 가속화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는 사이에 벌어져왔다는 것이죠.

    목 : 파리에 처음 왔을 때 파리의 공공교통시스템을 보고서는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제가 파리에 온 지 10여년이 되었는데요 당시 5만원 정도면 살 수 있는 정기권으로 파리시내외를 제한 없이 움직일 수 있어서 교통 천국이 따로 없구나 생각했었죠. 그런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광풍은 파리라고 가만 놔두지 않았죠. 최근 몇 년 사이에 파리 지하철역에 표 파는 사람이 사라졌어요. 여러 곳에 있던 이용객들을 위한 안내 센터는 폐쇄되거나 통합되어 서비스 질이 형편없이 떨어졌죠. 모두 우파 정권 아래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문제는 광역철도망인 RER노선들인데 시설은 갈수록 낙후되고 수송량은 포화상태에 이른 지 오래라 파리 외곽 사람들의 삶의 질을 형편없이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경제 위기가 심화되자 선로 시설물을 훔쳐가 열차 운행이 중지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고요. 특히 이들 노선은 잦은 고장과 프랑스 철도공사의 묵인 아래 이뤄지는 파업으로 운행 정지되는 일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이용객들의 원성을 사고 있지요.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후보들 마다 내세운 공약 중 다섯 순위 안에 드는게 파리 외곽의 철도교통망 대책이 될 정도가 됐어요.

    박 : 한국에서도 고물상에 팔기위해 호남선에서 열차 신호용 구리선을 절단해가서 고속열차 운행이 중단된 적이 있었는데요, 경제적 위기가 일상화된 지구촌 어디가나 비슷한 일이 발생하는 군요.

    제가 4년 전에도 파리의 교통망을 조사하러 왔었는데 그 때만 해도 지하철역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역무원들을 이번에는 볼 수 없었습니다. 관광객들이나 기계에 서투른 노인분들이 승차권 발매기 앞에서 쩔쩔매는 것을 보거나 노선도 앞에서 가야할 곳을 몰라 서성이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포함해서 공공교통서비스에 대한 대안이나 대책이 모색되어진 건 없었나요?

    목 : 우파정권의 교통정책에 제동을 걸고 새로운 변화를 이끄는 일이 작년 연말에 일어났어여. 전격적으로 추진된 건데요 녹색당의 제안을 사회당이 받아 입법화되었죠.

    파리 지하철은 존1에서 존5까지 중심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권역으로 나뉘어있어요. 과거 서울 지하철도 1구역, 2구역 나뉘었듯이. 그런데 파리 시내의 집값은 중심부일수록 높고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 시변두리나 외곽에 거주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더 가난한 이들이 더 먼 이동거리를 가야하니까 교통요금을 더 내게 되는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1-2존 이용자들이 한달 정액권으로 9만원 정도 내는데 1-5존 이용자는 17만원 정도를 지불해야하죠. 사회적 불평등을 더 심화시키는 문제를 낳은 것이죠.

    게다가 5존에 사는 사람들은 높은 철도 이용 요금을 내느니 차라리 승용차를 이용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 도로 혼잡도도 높은 실정입니다. 녹색당은 승용차 이용률을 낮추고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1-5존의 요금제를 통합해야 한다는 거죠. 당장 올해부터는 주말에 적용되고요 내년부턴 평일에도 전격 실시되는데 이에 따른 비용부담은 매년 5억유로 정도고 이 돈은 기업인들 및 부자들에게 세금으로 부과되게 됩니다. 거꾸로 보면 그동안 5억유로라는 엄청난 돈을 가난한 출퇴근자가 부담했다는 말이 되는 거죠.

    박 : 정말 부러운 현실입니다. 서울의 9호선과 신분당선 같은 민자 사업주체들은 어떻게든 공공운영기관보다 높은 요금을 징수하려고 혈안인데 한국과 반대로 멀리서 출퇴근이나 통학하는 사람들의 요금을 사회적으로 부담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민자사업을 정부나 지자체 재정을 줄이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기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은 시민들에게 전가하고 이익은 대기업이 챙겨가는 악순환이 뿌리 깊게 자리잡은 한국의 실정을 보면 가슴만 답답합니다.

    목 : 그래도 독일에 비하면 프랑스가 갈 길은 멀어요. 독일은 학생들의 교통요금은 무료에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사회적 할인제도가 있죠. 한 번은 뮌헨의 친구 집에 가족여행으로 방문할 일이 있어서 고속열차 티켓을 끊을 일이 있었는데 친구가 뮌헨에서 표를 구입해서 우편으로 부쳐줬죠.

    왜냐하면 독일의 경우 7살 이전 아이에게는 열차요금이 무료거든요. 비록 어린아이 요금이지만 프랑스에서 독일까지의 철도요금은 만만치 않은데 파리에서 끊었으면 왕복으로 상당한 비용을 지불했어야만 했죠.

    파리 RER(광역철도=수도권 인근 운행) 열차.

    박 : 흥미로운 사실이군요. 아무리 유럽연합이고 국경의 개념이 희박하더라도 독일에서 국적도 보지 않고 자국의 정책에 따라 다른 나라의 아이들이 이용하는 교통요금까지 받지 않는다는 것은 상당히 주목할 만 한 일입니다. 정말 세상엔 다양한 면이 존재하는 군요.

    저도 파리에 오기 전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의 도시교통시스템을 봤는데 독일의 공공교통은 정말 모범인 것 같았습니다. 특히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공공성을 후퇴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데 독일은 상대적으로 공공성을 잘 지켜내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목 : 프랑스도 철도가 잘 발달되어 있는 것은 맞아요. 그런데 한국에서 무조건 프랑스 철도를 베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프랑스에서의 파리는 철도로 치면 포털이라고 할 수 있죠. 파리와 수도권을 중심으로 철도가 발전하고 유지되다 보니 지역 간 직통으로 가면 더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는 노선도 일단 파리에 들렀다 원하는 지역으로 가는 게 시간상 더 절약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열차 편수와 이용시간 등에서 더 멀리 돌아가도 파리를 중심으로 열차가 운행되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존 노선의 간이역들이 사라지고 있고요.

     박 : 간이역들이 사라지는 것은 한국이나 프랑스나 마찬가지이군요.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이 사라져야 하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목 : 맞아요. 간이역 투어라도 하고 싶어요. 사라져가는 역을 살리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흘러도 보존해야만 하는 것이 있거든요.

    박 : 맞습니다. 보존도 너무 중요한 문제죠. 저는 신촌역을 볼 때마다 썩어빠진 자본의 탐욕에 분노가 일어나요. 신촌역을 민자역사로 개축하면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신촌역을 보존해야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일었고 개발을 맡은 측에서도 보존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원래의 신촌역을 완전히 허물어 버리고 한 쪽 구석에 기존의 신촌역과 전혀 다른 모형 건물을 장난감 미니어처럼 만들었지요. 그러고는 책임을 다했다고 발뺌하는 파렴치한 인간들을 보면 정말 화가 납니다.

    (섬머타임에 해가 길어져있던 하루도 밤이 깊었다. 어느덧 인터뷰를 약속했던 시간이 훌쩍 넘어서고 있었는데 이야기는 이제부터 무르익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정권이 바뀌었다. 그동안 집권했던 우파가 몰락하고 좌파가 새로 집권하게 되었고 프랑스사회의 기대도 한 층 높아졌다. 파리지역 철도망의 거리 할증요금을 폐지하게 된 것도 시민사회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좌우파 모두 무시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교육계에서 시작되었다. 학생들을 경쟁으로 내모는 일제고사가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무력화된 게 그 시작이었다.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목수정님의 목소리는 다른 톤으로 변했다.)  <인터뷰 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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